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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무성(武聖)의 화신(化身)
차디찬 얼음으로 뒤덮인 방이었다.
무천룡은 화관과는 정반대 되는 환경을 갖고 있는 실내에서 정신을 되찾게 되었다.
얼굴 근육이 아주 거북하게 느껴졌다.
눈을 뜨기조차 힘들었다. 간신히 눈까풀을 깜빡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뿌옇게만 느껴졌다.
"이런… 몸이 온통 얼음으로 뒤덮여 있구나! 여기가 빙관(氷關)인가?"
무천룡은 지금 꽁꽁 얼어붙은 상태였다.
동상이 너무 심해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동상으로 죽거나 어떻게 살아난다 해도 사지를 잘라야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무천룡은 무사했다. 그의 몸이 철골인 때문이었다.
쩌― 쩌정―!
무천룡이 몸을 뒤틀자 그의 몸을 덮고 있던 얼음이 깨어져 나갔다.
빙관의 한기는 극음주(極陰珠)와 현빙담(玄氷潭)에서 오는 것이었다.
엄동설한의 추위보다 백 배 추운 곳이 바로 빙관 내였다.
'이 정도 추위를 견디지 못한다면…
언제고 칠마의 하나인 현음마가 현음지(玄陰指)를 쓸 때 피가 동결될 것이다.'
무천룡은 이를 악물고 다시 토납에 들었다.
화관과는 정반대 되는 수련이었다.
화관에서의 수련은 몸 안의 빙극진기(氷極眞氣)를 끄집어 외부에서 오는 열기를 몰아내는 것인데,
빙관에서의 수련은 몸 안에서 열양진기(熱陽眞氣)를 끌어내
외부에서 오는 한기를 몰아내야 하는 것이었다.
토납은 곧 순조롭게 되었다. 반복되는 호흡이 신기한 현상을 만들었다.
그의 몸 주위로 희디흰 기류가 일어나며 그의 모습은 빙관 안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흰 기류는 그의 내공지기가 이제껏 무형(無形)의 상태에서 유형(有形)의 상태로 되는 것이었다.
무극지경에 이른 현상이었던 것이다.
무천룡이 망아지경을 달리고 있을 때 어디선가 나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아… 이대로라면 용아는 열일곱 살이 되기 전에 나를 능가하는 고수가 될 것이다.
하지만…내 수명은 저 아이가 열일곱이 되기 전 다할 것이다."
정의무성의 탄식소리였다.
"내가 죽는 순간 나의 별이 질 것이다.
당고라산(唐姑喇山)의 칠마는 그 순간 내의 죽음을 알고 대무신국으로 쳐들어 올 것이다.
그러면 누가 그들을 막을 수 있겠는가?"
무신의 우려에 찬 음성은 계속 이어졌다.
"대무신국을 보호하고 있는 기문진이 그들의 침입을 일 년 만 막아준다면
용아가 나보다 강한 고수가 되어 그들을 능히 격파할 수 있을 테니…
그것만을 하늘에 빌어볼 수밖에 없겠다."
정의무성의 중얼거림을 무천룡은 들을 수 없었다.
정의무성이 자신의 죽음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대무신국에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모두 정의무성이 영생불사(永生不死)하리라 믿었다.
최소한 삼백 살은 살리라 모두 그렇게 믿고 있었지만 사실은 전혀 달랐다
. 정의무성은 오 년 안에 죽어야 할 운명이었다.
그것은 인력으로는 고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였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천기(天機)는 변하는 법이다.
정의무성에 의해 사필귀정(事必歸正)이 이루어지고
정도천하(正道天下)가 일어났듯이 정의무성의 몰락과 함께
사도천하(邪道天下)가 시작될 천기가 존재하고 있었다.
천기는 백 년을 주기로 정(正)에서 사(邪)로 돌아선다.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천하에 단 두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정의무성이었다.
또 한 사람은 정의무성을 가장 두려운 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서장 칠마전주(七魔殿主)인 심마였다.
그들 둘만이 그런 천기를 알고 있었다.
지금은 정도가 극성을 달리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울 듯이 극성이라는 것은 곧 쇠잔해진다는 것을 암시한다.
정도의 쇠잔은 바로 사도가 크게 흥기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사도의 중추세력은 곧 칠마를 말한다.
육십 년 전, 무저갱에 갇힌 다섯 마왕과 함께 천하를 피로 씻었던 칠마는
정의무성이 나타난 후에야 그때의 천기가 사도의 것이 아닌 정도의 천기임을 알았었다.
사도의 천기는 육십 년 이후에나 시작된다는 것을 심마는 정확히 통찰하고 있었다.
그래서 싸워 동귀어진하기보다 비굴하게 나마 목숨을 구걸해
중원을 밟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고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제껏 천기의 변화를 기다렸다.
천기가 정도에서 사도로 들어가기를 기원하였다.
정의무성이라는 위대한 존재가 사라지고,
사도의 천기가 멋들어지게 시작되는 것을 그들은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나이는 정의무성과 비슷했고 오히려 더 많은 자도 있었다.
하지만 겉보기로는 오히려 정의무성보다 훨씬 젊었고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젊어졌다.
이유는 그들이 익힌 것이 천리를 깨는 마공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익힌 마공에는 회춘(廻春)과 장생(長生)의 비결이 숨어 있고,
나이가 들어도 늙지 않는다는 마력(魔力)이 섞여 있었다.
어찌 생각하면 천리를 여기고 아주 오랫동안 죽지 않는다는 것이
천리를 지키며 살아나가는 정도의 신공과 마공의 대표적인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그랬기에 정의무성은 육십 년 전 자신에게 생명을 구걸하고
여섯 의형제와 함께 도망친 심마의 깊은 심계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아…천기가 사실로 나타난다면…"
정의무성의 탄식에는 밝은 장래가 아닌 암울함이 서려 있었다.
***
무천룡은 열세 살이 되는 날 칠겁관의 세 번째 관문인 빙관에서 나설 수 있었다.
정의무성은 그를 마중하고 있다가 자상한 미소를 지었다.
"수고 많았다. 이전 세 관문이 제일 힘든 관문이다.
나머지 네 관문은 보다 쉽게 통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소년 무천룡은 다소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너는 안력과 피부를 단련시키는데 성공했다.
이제는 코와 귀, 그리고 혀를 단련시키고 금갑신(金甲身)의 최후단계인
육감(六感)을 단련하는 극마천척대(極魔千尺臺)에 서게 될 것이다."
정의무성은 품 안에서 옥소(玉簫) 하나를 꺼냈다.
길이가 두 자 되는 옥소에는 구멍이 스물여덟 개나 나 있었다.
그런 피리를 불려면 손가락을 번개같이 움직여야만 한다
. 손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놀릴 수 있는 단계는
대무신공의 금갑신 다음 단계인 섬수신(閃手身)의 단계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피리 하나로 두 가지 곡조를 불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마음을 두 개로 나누는 양심신(兩心身)의 단계를 거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정의무성의 초식은 천하에서 가장 복잡했다.
양심신과 섬수신이 필요한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오른손과 왼손으로 쓰는 초식이 다르고
찰나지간 백 가지 초식을 시전하는 것이 정의무성 특유의 공격방법이었다.
그는 황산에서 십이마를 칠 때 아주 짧은 시간을 사용했다.
그러나 초식을 적게 구사한 것은 아니었다.
번개가 몰아치듯 그는 찰나지간 십이마 하나하나에게 칠초씩을 사용해
십이마 모두를 굴복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금갑신은 그런 단계로 들기 위한 기초단계에 지나지 않았다.
정의무성이 옥소를 들고 입을 열었다.
"이 피리로 너의 귀를 단련시킬 작정이다.
쇄심곡(碎心曲)과 미혼곡(迷魂曲)이 동시에 들릴 것이다.
처음에는 듣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대무신공으로 몸을 보호하고 귀를 연다면 거침없이 듣는 순간이 올 것이다."
"예, 할아버님."
"이 피리는 무저갱에 갇힌 취마(醉魔)에게서 뺏은 취마신소(醉魔神簫)이다.
피리 중 가장 훌륭한 보물이라 할 수 있지.
이 피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취마의 장소성(長簫聲)과 함께 천하에서 가장 독랄하다."
무천룡은 은근히 호기가 일었다.
"들어보고 싶습니다."
"허허…듣기 전 운기행공하고 있어야 한다.
호신강기를 끌어올리기 전 피리소리를 듣게 되면 정신을 잃고 만다.
너는 어서 대무신공으로 호신강기를 일으켜라."
"알겠습니다."
무천룡은 즉시 눈을 감았다.
그의 표정이 장엄해지며 그의 천령개에서 흰 기류가 일어났다.
'오…벌써 이런 수준이라니.
이 아이는 지금 이 상태로도 강호에서 열 손가락 안에 끼는 절대고수이다.
하지만…칠마를 상대하는 데에는 아직 무리다.'
정의무성은 희비를 교차하다가 피리를 입술 사이에 물었다.
삘리리― 삐이이― 익―!
아주 듣기 역겨운 곡조가 흐르는 동시에
졸음을 일으키는 몽롱하고 환상적인 곡조가 시작되어 무천룡의 고막을 때렸다.
놀랍게도 오른쪽 귀로 들리는 피리소리와 왼쪽 귀로 들리는 피리소기 각기 틀렸다.
양심신공으로도 펼치기 힘든 아주 기묘한 음공이었다.
"으으…!"
무천룡은 피리소리를 듣는 순간 운기행공을 중단했다
. 중단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저절로 중단되어 버린 것이다.
그가 괴로운 표정이 되자 정의무성이 취마신소를 입술 사이에서 떼어내며 웃음을 던졌다.
"허허…낙담해서는 안 된다.
정신을 잃지 않은 것으로도 성공이다.
이제 한 가지 구결을 알려 줄 테니 그것을 익히고 음공(音功)과 싸워 봐라.
훨씬 효과가 있을 것이다."
"송구스럽습니다."
무천룡은 음공의 침해에 얼굴이 백짓장보다 희었다
. 그는 음공에 패했다는 사실에 몹시도 심한 자책감에 빠졌다.
'아… 이런 고련을 쌓았건만 아직도 부족함이 너무 많다.'
정의무성은 무천룡이 접하고 있는 고통을 다 안다는 듯 미묘한 웃음을 지은 채
한 가지 구결을 말해 주었다.
"청명심법(淸明心法)과 부동신공(不動神功)을 한데 합한 청명부동신법(淸明不動心法)이다
. 대무신공과 일맥상통하는 것이고,
대무신공을 십성 알게 되면 자연히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음공에 저항하는데 아주 좋은 구결이지."
정의무성은 시를 읊듯 아주 천천히 말했다.
취마신소성에 기절초풍 놀랐던 무천룡은 청명부동심법을 듣는 가운데
아주 오묘한 진리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가 취마신소에 당한 이유는 너무 긴장한 탓이었다.
청명심법과 부동신공의 특징은 부드러운 것으로서 강한 것을 막는 것이었다.
마음을 긴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풀어놓을 대로 풀어놓아
음공이 그냥 스쳐 지나가도록 하는 것이었다.
"아, 이제 알 것 같습니다. 허무한 마음이 바로 음공을 막는 비결이군요?"
무천룡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었다.
"훌륭하다. 단 한 번 말해 주었는데 벌써 두 가지 심법의 정화를 알아냈구나.
너 같은 아이에게 절기를 전수하게 된 것이 기쁘구나.
네가 나의 손자라는 것은 정말 자랑스럽다."
정의무성의 노안엔 엷은 물기가 어렸다.
그는 손자를 통해 어린 시절의 자신을 느낀 듯 아련한 감회 속에 젖고 말았다.
"할아버지…?"
무천룡이 따라 울 듯 울먹였다.
"네게 눈물을 보이다니…허허…이 할애비도 많이 늙었나 보구나."
정의무성이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정의무성을 신인으로 보고 있던 무천룡은 그의 눈에 어린 눈물을 보고는
할아버지도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라는 것을 느꼈다.
'할아버지는 초인이 아니다. 나와 같은 범인이다.
다만 의지와 능력이 초인적일 뿐이신 것이다.'
무천룡이 입을 꾹 다물며 자신의 마음을 다졌다.
"네 아버지는 외유내강(外柔內强)이지만 나는 외강내유(外强內柔)한 편이다.
그러나 너는 외강내강(外强內强) 외유내유(外柔內柔) 모두 다 지녀야 한다.
그 경지는 무형신(無形身)의 경지 다음에 올 것이다.
남이 너를 알지 못하는 사이 너의 정신이 상대를 굴복하게 되는 경지가 그것이지."
정의무성이 냉정을 회복해 다시 피리를 물었다.
삐리릭― 삘릭―!
거친 소성은 쇄심곡이었다.
이어 뒤섞여 들려오는 몽롱한 곡조는 꿈결에서나 들을 수 있는 미혼곡이었다.
이토록 기묘한 음공의 창시자는 취마신소의 원주인 취마였다.
그는 소법과 음공(音功), 그리고 보법(步法)으로 천하를 주름 잡았다가
정의무성에게 제압당한 마두 중의 마두였다.
정의무성은 내공이 강하고 초식이 다양해 취마를 간단히 제압했으나
그의 음공에 대해서는 감복하는 바가 컸었다
. 그래서 그를 제압한 후 그의 소성을 연구했고
급기야 그보다 훌륭히 피리를 불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정의무성은 천하제일인이 되고서도 배우는 것을 중단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어찌 생각하면 그러한 기질이 바로 그를 천하제일인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할 수도 있었다.
삐리리― 삐익― 삐익―!
피리 하나로 두 가지 곡을 불 수 있는 사람은 당금천하에서 정의무성 하나뿐이었다.
마음을 두 개로 나누는 양심신의 주인은 현재로서 정의무성 하나였다
. 대검제는 양심신보다 훨씬 아래 단계에서 대무신공의 수련을 마쳤기에
그의 후계자가 될 수 없었고,
무천룡은 이제 배우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두 가지 곡조가 흐르는 가운데 무천룡의 운기행공이 그 도를 더해갔다.
무천룡은 고뇌에 찬 표정이었다가 점점 평화로운 표정이 되었다.
그의 마음 속은 아주 밝았다. 그리고 넓기가 망망대해보다 더했다.
정의무성은 열흘 동안 피리를 불었으니 무천룡을 혼절시킬 수 없었다.
"으허헛!"
피리소리가 끊어지고 웃음소리가 석실에 가득 찼다.
"너는 이제 어떤 마음(魔音)
, 사후(邪候) 아래서도 굴복하지 않는 청력의 소유자가 되었다."
"모두가 할아버님의 높으신 가르침 덕분입니다."
무천룡은 공손하게 절을 올렸다.
"너의 성취가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니 기쁘기만 한다.
이제 혀를 단련시키기로 하자."
혀를 단련시킨다는 말이 매우 흥미로웠다.
'혀를 단련시킨다…? 남과의 대화법을 말씀하시는 걸까?'
무천룡이 호기심 가득 한 얼굴을 할 때
정의무성이 미리 준비하고 있던 가죽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가죽주머니를 열자 자그만한 나무상자 열 개가 나왔다.
"이 물건은 만독마(萬毒魔)에게서 뺏은 것이다.
만독마는 독존(毒尊)으로 십절 중 독절(毒絶)보다 배분이 높고
훨씬 뛰어난 용독고수(用毒高手)이다.
그의 독공은 네가 독절에게서 배운 독공을 초월하는 것이다."
"아…!"
"여기 있는 것은 만독마가 얻은 만독경(萬毒經) 안에 적힌 방법대로 만들어진
십대극독(十大極毒)이다.
이 중 먼지 정도의 분량으로 황소 백 마리를 죽일 수 있는 독도 있다."
무천룡은 독절의 가르침을 통해 독에 대해 배운 바가 있었지만
그토록 엄청난 독에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진정 놀랍습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네가 이것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천룡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예에?"
"허허…그것이 바로 혀를 단련시키는 방법이다. 해약(解藥)은 없다.
너는 이것을 먹고 대무신공의 삼매진화(三昧眞火)로 독을 태워야 한다."
정의무성의 표정은 아주 담담했다.
"독을 먹다니…소손은…"
"너는 태어난 직후 대무금강신단(大武金剛神丹)을 먹었다.
그 약을 먹은 사람은 백 년 간 만독불침지신(萬毒不浸之身)이 된다.
그러니 어떠한 독을 먹는다 해도 겁낼 것은 없다."
정의무성은 유쾌한 표정이었다.
'내가 벌써 만독불침지신이란 말인가?'
무천룡은 공연히 두려워했다 싶자 홍조를 띠었다.
무천룡은 곧 십대극독을 복용하게 되었다.
독약의 맛은 아주 썼다. 먹는 찰나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혀가 녹는 아픔이 느껴졌다.
"으음…!"
"독성이 너를 고통스럽게 만들기는 하여도 너를 죽이지는 못한다.
이제 너는 대무신공의결을 일으켜 독기운을 몸 안에서 태워 버려야 한다. 어서 실행하라!"
정의무성의 호령은 추상과 같았다.
"기해혈에서부터 진기운용을 시작하라. 고통을 감수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그것이다."
정의무성의 목소리는 대무신공기강의 힘이 깃들여 있었다.
그것은 무천룡에게 가뭄 속의 단비와 같았다.
무천룡은 할아버지의 엄한 지시에 냉정을 찾고 운기행공에 들어섰다.
운기하는 즉시 몸 안에서 신비한 기운이 만들어졌다.
웅후한 기운은 기해(氣海)에서 시작되어
먼저 석문(石門) 관원(關元)인 중극혈(中極穴) 쪽으로 뻗어나갔다.
그 힘은 말할 수 없이 강해 독기를 능가했다.
그 힘은 회음부(會陰部)까지 이르렀다가 방향을 돌렸다.
장강혈(長强穴) 부위가 화끈 달아오르더니
진기의 힘이 독맥(督脈) 이십칠개대혈(二十七個大穴)을 뚫기 시작했다.
뼈마디가 시큰거리며 사지가 화끈거렸다.
고통이 점차 가라앉으며 후련한 기분까지 느껴졌다.
대추(大椎), 신주(身柱), 신도(神道), 지양(至陽), 중추(中椎),
배중(背中), 명문(命門), 양관혈(陽關穴)이 차례로 뜨겁게 달아올랐고
사지백해에 힘이 느껴졌다.
머리 뒤쪽에 있는 뇌호(腦戶), 풍부(風府)의 혈도까지 화끈화끈 해지더니
임독양맥(任督兩脈)을 마비시킬 듯하던 독기가 스르르 녹기 시작했다.
독약을 먹음에 따라 일어났던 무서운 고통은 그와 동시에 완전히 사라졌다.
"휴우…"
무천룡이 독기를 다 태우고 눈을 뜰 때,
정의무성이 굳은 표정을 하고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의 손바닥 위 검은 단약 하나가 놓여져 있었다.
"이것은 독룡단(毒龍丹)이다. 열 가지 극독 중 두 번째로 강력한 무서운 극독이다."
"하하…이제는 두렵지 않습니다."
무천룡은 낭랑히 웃으며 독룡단을 받아 냉큼 입안에 털어넣었다.
독룡단은 혀에 닿는 순간 녹아 열수가 되었다
. 그 뜨거움이 지극했으나 무천룡은 화관과 빙관을 두루 거친 몸이기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것을 삼킬 수 있었다.
'으윽… 이것은 정말 지독하구나!'
끓는 기름을 삼키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다.
무천룡의 뱃속으로 흘러 들어간 독은 내가고수 백 명을 독살시킬 수 있을 정도의 분량이었다.
그것을 먹고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은 거의 기적이었다
. 그리고 지금 무천룡에 의해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먹는 순간 독수로 화해 죽기에 고통을 느낄 겨를조차 없을 것이다
. 하지만 무천룡은 독으로는 죽지 않는 몸이기에 극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온몸의 혈관이 끊어지는 기분이다.'
무천룡의 얼굴은 독룡단의 독기가 치밀어 오름에 따라
곧 흑빛으로 물들었고 머리카락이 희게 변했다.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지고 피부가 바싹 말라버리는 데도
지켜보고 있는 정의무성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크으으―!"
무천룡은 목이 타는지 절로 괴로움에 찬 신음소리를 냈으나
정좌한 자세에서 흐트러지지 않고 있었다.
'정신력이 강한 아이다. 내가 도와주어야 성공할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도와주지 않아도 되겠군.'
정의무성의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세월이 지나면 이 아이는 나를 능가하는 고수가 될 것이다.
그런데 하늘이 나를 빨리 부르고 있으니…
아, 이 아이가 천하제일고수가 되어
당고라산에 숨어 살고 있는 칠마를 쓰러뜨리는 것을 보지 못하겠구나!'
정의무성은 착잡한 마음에 눈을 감았다. 그는 한 시진 정도 꼼짝않고 있다가 눈을 지그시 떴다.
무천룡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은 처음 시꺼멓게 물들었다가 언제부터인가 제 살색을 찾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독룡단의 독기운으로 인해 다 타버린 때문에 반들반들한 대머리가 되어 더 귀여워 보였다.
피부는 바짝 말랐다가 본래의 살색을 되찾은 지 오래였다.
'탈태환골한 아이답군.'
정의무성은 무천룡의 몸에 무한한 신비가 깃들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태어난 직후 탈태환골한다는 것은
대무신국의 태자라는 신분이 있기에 가질 수 있는 기연 중의 기연이었다.
무천룡은 실로 행운아였다.
그에게 시련이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불행한 출신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내가고수로 자라나는 데는 더없이 행운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무천룡이 가진 행운은 정의무성이 갖지 못했던 것이고 무천룡의 아버지 대검제도 갖지 못했다.
정의무성은 천행으로 지금 같은 절세고수가 되었고,
대검제는 훌륭한 부친을 만났지만 자질이 너무도 부족해 기연을 얻지 못한 불행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 대검제는 편히 지내고 있고 칠음절맥이라는 괴이한 체질로 태어난 무천룡은
인간으로는 견디기 힘든 고통 속을 겪어야 했다.
과연 어느쪽이 하늘의 운을 가졌는지는 누구도 정확하게 판별할 수 없을 것이다.
하여간 무천룡은 두 시진 간의 운기행공으로 독룡단의 독기운을 완전히 태워 버릴 수 있었다.
독기를 몸 안에 가졌다가 태울 수록 그의 근골은 더욱 강하게 되었다.
뼈마디의 강인함은 정의무성도 놀랄 정도였고,
강한 정신력은 정의무성도 측량키 힘들 정도였다.
무천룡은 운기행공을 마친 직후 세 번째 독약을 복용하게 되었다.
고독(蠱毒)!
그것은 아주 무시무시한 독으로 고독을 만든 사람의 조종으로 발작을 했다가
발작을 하지 않기도 하는 기괴한 힘을 갖고 있었다.
고독의 주인은 만독마였다.
만독마가 근처에 없는 이상 고독은 무천룡의 몸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제멋대로 움직이기 마련이다.
그때의 고통은 몸이 만장 절벽 아래서 떨어져 부딪치는 그 순간의 고통과 같이 지독했다.
"크으으―!"
무천룡은 고독을 입에 넣는 찰나 입술을 벌리며 피를 한 모금 토해냈다.
입안의 살점이 피에 묻어 나왔다.
그 모습이 하도 처참해 정의무성마저 냉정을 잃었다.
'으음, 진정 지독한 독이다.'
정의무성이 손자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무천룡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려 할 때였다.
"할… 할아버님, 저는 괜찮습니다."
무천룡은 다시금 치솟는 피를 꿀꺽 삼키며 눈을 감고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대단한 녀석! 천하제일인이라 불려졌던 영예도 너같이 자랑스러운 손자를 둔 기쁨만 못하리라."
정의무성은 뿌듯한 마음이 되어 무천룡이 고독을 태워버리는 과정을 지켜보기로 했다.
독과의 싸움은 사실 고통과의 싸움이었다. 고통과의 싸움은 그 자신과의 싸움이라 할 수 있었다.
무천룡이 금방이라도 혼절해 버릴 듯 극도의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할아버지가 앞에 있다는 사실에 불굴의 정신력을 느꼈다.
정의무성이 아마 다른 곳에 있었다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무천룡은 할아버지에게 자랑스러운 손자가 되기 위해
고독이 내장을 물어뜯는 데서 오는 고통을 악착같이 이겨 나갔다.
이틀 후 무천룡은 손가락 끝에서 검은 기류를 토해낼 수 있었다.
슈우욱―!
손가락에서 흘러나오는 매운 연기는 고독이 타버린 연기였다.
"하하…!"
무천룡이 고독을 태워 연기로 만들어 몸 밖으로 배설하며 웃음을 터뜨리자
정의무성이 기다리고 있다가 네 번째의 독을 건네주었다.
그것은 썩은 시체에서 뽑아낸 독골로 만든 독즙(毒汁)으로
쇠를 녹여버리는 강한 부식력을 갖고 있었다.
무천룡은 기다렸다는 듯 그것을 삼켰고 바로 운기행공에 들어갔다.
***
세월의 변화는 무천룡을 자라게 했다.
무천룡은 칠겁관 중의 여섯 단계를 거치는 데 사 년을 보냈다.
그간 그가 겪은 고통의 종류는
백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는 데 겪는 고통을 다 합한 것보다 많은 종류였다.
무천룡은 광음(光陰)의 개안관(開眼關), 화관(火關), 빙관(氷關),
음관(音關), 독관(毒關), 악취관(惡醉關)을 무사히 통과했고,
최후로 극마천척대(極魔千尺臺) 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 관문마저 무사히 거치면 금갑신(金甲身)을 얻게 된다.
천척대(千尺臺)는 아주 기이한 구조를 갖고 있었다.
천척대는 길고 가는 철봉(鐵棒)의 뾰족한 촉에 의해 꿰어진 채 그네처럼 흔들렸다.
한줌의 미풍만 불어도,
한 톨의 먼지만 앉아도
옆으로 떨어질 듯 위태로워 보이는 철봉 위 방석에
결과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소년이 하나 있었다.
검은 머리를 단정히 빗고, 눈을 감고 있는 소년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뚱이였다.
아주 씩씩하고 잘생긴 소년인데 짓고 있는 표정이 오래 된 절 안의 부처 얼굴같이 자비로웠다.
삘리리리―!
사람의 혼백을 취하게 하는 피리소리가 근처에 흐르고 있었다.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면 그 소리를 듣는 순간 혼백이 끊어지는 듯한 괴로움을 느끼며
피를 토해버릴 것이다.
어떤 때는 아주 강해 철봉을 박살내 버릴 듯한 선율은
철봉아래 정좌를 하고 있는 노인의 옥소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피리를 부는 노인의 이마에 송글송글한 땀방울이 맺혔다.
노인은 피리 불기를 멈추고 위를 쳐다보았다.
"됐다. 너는 이제 금갑신을 이뤘다. 어서 내려오너라!"
"네, 할아버님."
철봉 위 방석 위에서 정좌하고 있던 소년이 기러기 털같이 가뿐히 날아 노인 바로 앞에 떨어져 내렸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소년의 신법은 이미 초절한 수준이었다.
"할아버님 덕에 금갑신을 얻었습니다."
그는 바로 대무신국의 태자 무천룡이었고 할아버지라 불린 사람은 전설적인 영웅 정의무성이었다.
"허허허…너의 뛰어난 성취가 또다시 감격케 하는구나."
정의무성은 뜨거운 눈길을 발하며 무천룡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아이가 무형신(無形身)에 이르기만 하면 칠마 따위는 겁내지 않아도 된다.'
정의무성은 무천룡이 삼 년 이내에 천하제일고수가 되리라 확신했다.
"너는 천일개정대법으로 철갑신이 되었다.
그리고 지난 사 년 간의 칠겁관 수련으로 금갑신이 되었다.
이제 철골금갑신(鐵骨金甲身)이니 누구도 너를 장력이나 도검으로 해할 수 없다."
정의무성은 돌연 손을 휘저었다.
콰아앙―!
"흐으윽―!"
할아버지의 다정한 목소리에 취해 있던 무천룡은
앞가슴의 부서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삼 장 정도 날아가 돌벽에 등을 부딪쳤다.
동굴이 뒤흔들리며 철봉 위에서 방석이 떨어져 내렸다.
"할… 할아버님…?"
무천룡은 입술 사이에서 피를 흘리며 경악의 눈빛으로 정의무성을 응시했다.
"많이 아프냐?"
"아… 아닙니다. 하지만 철퇴에 맞은 듯합니다."
"허허…그러나 살아 있지 않느냐? 네 가슴을 봐라."
"예에…?"
무천룡은 놀라 앞가슴을 내려보았다.
선명한 장인(掌印)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불그스레한 손도장인데 그것은 무천룡이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아주 희미해져 갔다
. 한순간에 가서는 장인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너는 금강불괴지신보다 십 배 강한 몸이 되었다.
지금 너를 칠 때 일성(一成) 공력을 사용했었다.
너는 쓰러지기는 했으나 내상은 입지 않았다.
알겠느냐? 그것이 바로 네가 지난 사 년 간 고생한 이유이다."
"제가 그 정도까지 이르렀을 줄은 몰랐습니다."
"허허…나는 너를 무림제일고수(武林第一高手)로 키우려 한다.
그러기에 고통을 주는 것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
너는 천하에서 가장 강한 내공(內功)과 외공(外功)을 얻었다.
이제 거기에 초식(招式)을 더하게 된다면 너는 무적이 된다."
무천룡은 의지를 불태우며 힘차게 외쳤다.
"할아버님의 뜻에 따라 반드시 천하제일고수가 되겠습니다."
정의무성은 흰 수염을 내리쓸었다.
"이제 너는 양심신(兩心身)이 되어야 한다.
양심신공(兩心神功)을 완벽히 익혀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생각하고
오른손과 왼손으로 각기 다른 초식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상당히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다. 양심신공 구결은 아주 난해하다.
그러나 칠겁관의 혹독한 수련보다는 쉽다
. 너라면 일 년 안에 양심신이 될 수 있다.
그 다음 섬수신(閃手身)의 단계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
정의무성은 침착히 말한 후 양심신공 구결을 말해 주었다.
그것은 진보가 아주 느린 무공이었다.
한 머리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생각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무천룡은 난해한 구결에 혀를 내둘렀다.
"정말 어렵군요…아직도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 상도를 벗어나기에 어려울 것이다
. 그러나 구결대로만 운기행공하면 저절로 얻게 될 것이다. 지레 겁먹을 필요 없다.
섬수신에 비한다면 오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다."
정의무성이 그의 심정을 헤아리며 격려를 해주었다.
정의무성은 무천룡이 칠겁관 안에 들어왔을 때에 비해 훨씬 늙어 보였다.
주름살이 얼굴은 뒤덮었고 눈가에는 진물이 잡혀 있기까지 했다.
두 눈빛이 번갯불을 능가할 정도로 밝지 않았다면
죽기 직전의 상태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늙고 추한 모습이었다.
무천룡은 자라고 그는 늙어가니 그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하늘의 조화였다.
***
작은 석실 안에서는 천하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벌거벗은 소년 하나가 돌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양손을 마구 놀리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각기 한 자루씩의 붓이 쥐어져 있는데
붓이 석실 바닥 위를 스칠 때마다 용사비등한 글씨가 쓰여졌다.
오른쪽 손으로 쓰는 것은 역경(易經)의 전문(全文)이고,
왼손으로 쓰는 것은 시경(詩經)의 시였다.
소년은 두 가지를 한꺼번에 쓰는데 조금도 쉬지 않았다.
붓이 흔들릴 때마다 연한 붓이 석실 바닥을 세 치 정도 파고들고 문장이 만들어지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됐다. 이 정도라면 양심신공에 대해서는 더 이상 수련할 것이 없겠다."
소년은 두 가지 글을 거의 동시에 끝내고 붓을 내던졌다.
그리고 곧 침울한 표정이 되었다.
'할아버지께서 수일 간 보이지 않으시니…
혹시 할아버지 신상에 어떤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신공성취의 기쁨보다 착잡한 표정이 된 소년은 바로 대무신국의 천룡태자였다.
그는 정의무성을 찾고 있었다.
정의무성은 그가 한 단계 수련을 마칠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 모습을 나타냈는데 이번만은 달랐다.
그는 무천룡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무슨 일일까?"
무천룡이 고개를 갸우뚱할 때였다.
"용아…천룡아…!"
어디선가 정의무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할아버님이시다!"
무천룡은 연공실의 문 밖에서 들려온 음성에 반색을 하며 급히 뛰어나갔다.
정의무성은 돌바닥에 누워 그가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천하제일의 무신이 놀랍게도 칠공(七孔)으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하… 할아버님…?"
무천룡이 사색이 부들부들 떨었다.
정의무성은 피를 줄줄 흘리며 몸을 겨우겨우 일으켰다.
"나… 나를 부축해다오. 어, 어서!"
"할아버님, 이게 어인 일이십니까?"
무천룡이 급히 다가가 정의무성을 부축하다가 그의 미간에 나타나 있는
짙은 사기(死氣)를 보고 다시 놀랬다.
죽기 직전에 있는 사람의 얼굴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 현상이었던 것이다.
"허억, 이… 이것은?"
"나… 나는 사실 이 년 전에 죽어야 하는 운수였다.
이… 이 년 이나 더 산 것은 하… 하늘의 조화를 깨뜨린 것이다."
"크윽…할아버님!"
"그… 그러기에 지금 죽음이 가까이 오니 고통스럽기만 하구나."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할아버님께서 돌아가시다니요?"
무천룡이 눈에 뽀얀 물기가 어렸다.
"하늘이 행하는 일이니 어찌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있겠느냐?
이미 죽었어야 할 몸이고 할애비의 나이 이미 백이십이 아니냐?"
"그… 그래도 할아버지는 무신이시지 않습니까?"
"나… 나의 내공이 막강하기는 하나…
자연의 조화를 깨뜨릴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우리 무씨(武氏) 가문은 원래 조사(早死)의 혈통이다.
나는 무림고수였기에 두 갑자를 산 것이다. 실망하지 마라."
정의무성은 무천룡의 품에 안긴 채 비급을 꺼내들었다.
대무칠살식(大武七煞式) 비급과 섬수신(閃手身), 무형신(無形身)의 비급이었다.
"다행히 섬수신을 익히는 데까지는 살 수 있을 것이다.
그 이후부터 너는 혼자 수련해야 한다."
"흐흑…!"
"울 일이 아니다. 너는 이제 나의 후신(後身)으로 행동해야 한다.
대무신국의 왕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섬수신이 되면 대무칠살식을 시전할 수 있다.
그… 그 다음 무형신이 되어 제 이의 정의무성이 되어라."
정의무성은 말하며 손바닥을 무천룡의 천령개에 대고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분신전력술(分身傳力術)로 나의 진원지기(眞元之氣)를 네 몸 안에 넣어주겠다."
"아니 됩니다, 할아버님!"
"걱정 마라. 나는 조금 더 살 수 있다.
네… 가 섬수신의 단계를 넘어 대무칠살식을 시전하는 것을 보고야 죽을 것이다…
그러니 구결에 따라 나의 진원지기를 받아들여 폐… 폐관의 시간을 단축시켜라."
말과 함께 무천룡의 천룡개가 화끈 달아올랐다.
"으음…!"
무천룡은 견디기 힘들었으나 그것을 몸 안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거부할 경우 두 사람 다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들어 죽거나 폐인이 될 것이다.
내공전수는 삼주야(三晝夜)에 걸쳐 이루어졌다.
무천룡이 정의무성의 공력을 전수받고 정신을 되찾았을 때
정의무성은 이상한 모습을 하고 누워 있었다.
그는 멍하니 눈을 뜨고 숨을 아주 천천히 쉬고 있었다.
살아 있는 것이 분명했지만 시체를 보는 듯한 섬뜩함이 느껴졌다.
그의 손끝은 바닥에 글귀를 새겨놓고 있었다.
〈 나는 이대로 일 년을 살 수 있다. 너는 그 안에 대무칠살식을 완벽히 터득해야 한다
. 그리고 내가 죽고 칠 일 후 한 가지 변괴(變怪)가 닥쳐 너를 출관토록 유혹할 것 같다
. 하지만 이곳을 떠나서는 안 된다.
그것을 명심해라. 나의 말을 어긴다면 너는 태자(太子) 자리를 잃을 것이다. 〉
실로 유서(遺書)와 같은 글귀였다.
무천룡은 너무도 기가 막혀 눈물을 흘리지도 못했다.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이같이 허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는 칠겁관 내에서
천하를 뒤흔들었던 정의무성의 시체나 다름없는 몸뚱이와 자신만이 있다는 현실이
그를 당혹하고 슬프게 했다.
"크윽, 할아버지님!"
무천룡은 얼굴을 눈물로 덮으며 정의무성 무천형의 몸뚱이를 받쳐들었다.
정의무성의 몸뚱이가 짚단같이 가볍게 느껴졌다.
정의무성은 이제껏 누구에게도 힘을 빌지 않은 사람이었다.
남을 돕는 일은 있어도 남에게 도움을 입었던 일은 하나도 없었던 천하의 영웅이 바로 정의무성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 죽은 사람같이 되어 손자의 품에 안기는 것이었다.
무천룡은 무림십절 중 의절에게서 의학을 배운 바 있었다.
그는 정의무성의 맥을 짚어 본 후
정의무성이 의식을 잃기 전 써 놓은 내용이 모두 틀림없음을 알게 되었다.
정의무성은 그렇게 일 년을 보낸 후 어느 순간 소리 없이 죽어야만 했다.
대라신선(大羅神仙)이라 해도 정의무성을 구할 수는 없었다.
"아…내가 할아버님의 만년을 너무 피로하게 했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닐까?
내가 할아버지께 불효를 한 것이 아닐까?"
무천룡은 정의무성의 얼굴 위에 눈물방울을 떨어뜨리며 훌쩍훌쩍 거렸다.
그는 담대한 편이었으나 아직 어린아이였다.
고독감이 엄습해 오자 미치고 싶을 정도였다
. 밖으로 뛰어나가 정의무성이 이렇게 되었다는 것을
아버지 대검제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나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 십칠 세가 되기 이전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정의무성의 추상같은 호령이 아직 귀에 쟁쟁했다.
무천룡은 정의무성을 안아 침상 위에 눕힌 후 맹세를 했다.
"할아버님께서 저를 지켜보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연공에 열중하겠습니다."
무천룡은 그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 속에 빠져들었다.
'할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 대무신공을 십성까지 익히자.
그것만이 할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효도가 될 것이다.'
무천룡은 눈물을 훔치며 정의무성이 최후로 전한 비급을 살펴보았다.
〈 대무칠살식(大武七煞式) 〉
정의무성이 칠마와 두 번째 겨룬 후 칠마의 무공을 격파하는 방법을 알아내고 만든
일곱 가지 초식이 제일 먼저 눈에 띄였다.
"이것을 익혀 서장에 숨어 있다는 칠마를 제압하자.
언제고 그들의 수급을 할아버지께 선물하리라!"
그는 마음을 굳게 다지며 다시 한 권의 비급을 펼쳤다.
양심공과 함께 대무신공 초식을 시전하는 바탕이 되는 섬수신공(閃手神功)이
깨알만한 글귀로 가득 적혀 있었다.
무천룡은 우선 그것을 익혀야만 했다
. 섬수신공을 완벽히 익힌 후라야 대무신공을 초식에 실어 쳐낼 수 있기 때문이다
. 섬수신공을 익히지 못한다면 대무신공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세 번째 비급은 무형신공(無形神功) 비급이었다.
그것을 익히게 되면 검(劍)이나 장(掌)을 사용하지 않고 무형지기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게 된다
. 그 경지는 대무신공의 최후 단계였다.
'모든 것을 삼 년 안에 익히리라!'
무천룡은 세 권의 비급을 완벽히 익힌 후에야 출관하리라 맹세하며
할아버지가 누워 있는 침상 아래서 섬수신공을 연마에 들어갔다.
섬수신공을 꼭 익혀야 하는 이유는 섬수신공을 익힌 후에야
대무신공의 장법(掌法), 검법(劍法), 도법(刀法), 보법(步法), 지법(指法)을 시전할 수 있어서였다.
무천룡은 섬수신공비급을 벗삼아 침식을 잊었다.
간혹 정의무성이 무사한가 돌아보는 것이 휴식의 전부였다.
정의무성은 조금도 자세를 바꾸지 않고 잠자기를 계속했다.
눈을 뜨고 자는 것이 처량하고 답답해 보였다.
무천룡은 정의무성의 눈을 볼 때마다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자신에 대한 정의무성의 지극한 정성을 잘 아는 그였기에
조부의 최후 모습에 지극한 슬픔을 느끼는 것이다.
무천룡은 석 달 후 섬수신공을 완벽히 익힐 수 있었다.
손가락을 퉁길 시간 안에 두 손을 번갈아 일백 번 쳐낼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천하에서 가장 빠른 출수(出手)를 할 수 있게 된 무천룡은 처음으로 살인초식을 몸에 익히게 되었다.
제일 먼저 익혀야 하는 것은 대무신국의 왕족만이 익히는 여러 가지 검장법(劍掌法)이었다.
대무신검(大武神劍), 대무신장(大武神掌)이라 이름 붙여진 정의무성의 독창절학이 바로 그것이었다.
범인이라면 평생을 수련해도 일성조차 터득할 수 없겠지만
무천룡에게는 난해함을 주지 못하는 절학이었기에
일주일 사이로 모든 것을 능숙히 익히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그의 내공이 자신의 상상을 수십 배 능가할 정도라는 것이었다.
"할아버님의 진원지기가 점점 나의 것이 되어 가는구나. 이대로 삼 년을 지낸다면…
나는 할아버님께서 만년에 성취했던 내공 수준에 버금할 천하제일의 내공을 지니게 될 것이다."
무천룡은 자신이 정의무성의 후신이며 분신이라 여겼다.
정의무성은 죽어 가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 무천룡으로 또 한번 태어나는 셈이었다.
무천룡은 그제서야 정의무성이 원하는 것이
제이의 정의무성을 만드는 것임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바로 무성(武聖)의 화신(化身)으로!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감하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즐감~1
제2의 정의무성 탄생, 기대됩니다
즐감함니다!!!!!!!!!!!!
ㅈㄷㄳ
감사합니다
재미있네요
ㅎㅎㅎ
즐독
즐감요!!!!!
무성화신
즐감요~
즐감
즐독했습니다~~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즐독요
즐독~~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무리 빈틈없이 준비해도 허점이 있기마련 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