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축구의 영향력에서 방송 미디어의 비중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는 언론 매체 가운데 한국 프로축구를 소재로 한 전문성 있는 프로그램을 찾아보기란 그리 쉽지 않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각종 언론들은 축구를 테마로 한 신 개념의 방송 프로그램 제작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K-리그의 발전이 한국 축구의 장밋빛 미래를 가져온다는 목소리만을 남긴 채.
축구의 종가라고 일컫는 영국에서는 매주 토요일에 'Match of the day'라는 축구 전문 프로그램이 방영된다. 그들의 축구에 대한 애정만큼 시청률 또한 매우 높다. 이 프로그램은 간단히 말해 그 날의 프리미어리그 하이라이트 모음이다. 프리미어리그 중계권이 없는 공영방송 BBC가 프리미어리그 하이라이트 판권만을 구입하여 주말의 황금 시간대에 방영하고 있다. 토요일에는 많은 경기수로 인해 하이라이트와 분석 위주의 내용이 주가 된다면, 일요일에는 경기를 보다 심도 깊게 분석하고, 그 주의 이슈 등을 코믹하게 풀어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한국 K-리그에도 ‘전무후무’ 한 전문 프로그램이 등장하여 축구팬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바로 ‘비바! K리그’이다. 사실 2002년 월드컵 이전에 ‘비바 월드컵’이라는 타이틀로써 뿌리를 내린 이 프로그램은 이후에 ‘K-리그’를 주 소재로 하여 바로 영국의 'Match of the day'와 유사한 분위기의 내용으로 축구 팬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금주의 핫 피플은 올 시즌에도 변함없이 다시 찾아오는 ‘비바 K리그’를 이끌어갈 주인공인 ‘이광용 아나운서’이다.
2007년 3월 31일 KBS 본관. 오랜 겨울잠을 자고 다시 재개되는 ‘비바 K리그’의 진행을 맡게 된 이광용 아나운서를 로비의 한 커피숍에서 만날 수 있었다. 주말에도 각종 프로그램과 뉴스 진행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이광용 아나운서지만 연맹의 ‘핫 피플’ 인터뷰에 선뜻 응해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핫 피플 선정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기분이 좋습니다. ‘핫 피플’ 이라는 코너가 축구를 업으로 살아가는 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축구 프로그램을 한 지 1년도 안되었는데 선정해주셔서 감사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부담도 생기네요(웃음)”
다소 멋쩍은 미소를 보이면서도 축구에 대한 애정과 관심어린 눈빛이 확실했던 그의 모습에서 또 다른 축구의 내음이 풍기는 소중하고도 담백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사실 예전에 비바 월드컵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을 때도 관심 있게 지켜봤었고, KBS 안에는 축구를 정말 좋아하는 아나운서들이 많이 있고, 프로듀서 분들도 어떻게 하면 축구를 소재로 하여 프로를 재미있게 꾸밀 수 있는지 아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면서 비바 K리그라는 프로그램을 언젠가는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기회가 빨리 찾아온 것 같습니다”
축구에 대한 관심과 욕망은 KBS 아나운서들 사이에서도 꽤 유명했다. 자신이 입사 전부터 즐겨봤던 ‘비바 월드컵’이라는 프로그램을 기점으로 하여 ‘비바 K리그’의 탄생은 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작년 독일 월드컵을 마치고, 기존의 진행자였던 이재후 선배가 개인적으로 사정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후배에게 기회를 열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저한테 기회를 주셨는데 처음에는 준비가 덜 되어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일을 해나가면서 좋은 분들이랑 일을 함께 한다는 것, 그리고 즐기던 축구에서 조금은 부담으로 다가오지만 한 편으로는 그 속에서 더 즐길 수 있는 거리를 찾았다는 것이 큰 기쁨이라고 생각 합니다”
이재후 아나운서 체재로 끌고 갔던 ‘비바 K리그’. 그러나 그의 도중 하차이후에 바통을 넘겨받은 이광용 아나운서는 기존의 체제에 맞추어 바쁜 행보를 보냈다. 즐기던 ‘축구’가 업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부담으로 한때는 심적 고통은 있었지만, 누구보다 사랑하던 ‘축구’라는 소재를 일로 삼아 그는 하나, 둘씩 문제의 눈꺼플들을 벗겨낼 수 있었다.
“KBS에는 축구를 지망하는 캐스터들이 가장 많습니다. 서기철, 전인석, 최승돈, 이재후, 장웅 선배들 모두가 축구를 하고 싶어했고, 지금 중계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축구가 2002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해서 가장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스포츠가 되었어요. 혹자는 야구와 축구를 비교하기는 하는데, 점점 평행선으로 가고 있다고 보입니다”
이광용 아나운서는 ‘비바 K리그’ 뿐만 아니라, KBS FM 라디오의 ‘스포츠 하이라이트’도 진행하고 있다. 그야말로 KBS를 대표하는 스포츠 캐스터로의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많이 좋아했느냐는 필자의 질문에는 ‘두말하면 잔소리’라는 대답으로 맞장구를 친다.
“저는 84년도 K리그 출범당시부터 경기장을 자주 갈 기회는 없었지만 TV중계는 빠짐없이 지켜봤습니다. 당시 원종관, 서기원 대원로 선배님들이 중계를 하셨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또 국내 프로축구를 제외하고 대표팀 경기도 당시에는 동남아시아에서 열리는 국제 대회에 많이 참가를 했었습니다. 메르데카컵, 킹스컵 등 모두 한국 시각으로는 새벽에 열리는 대회였지만 항상 졸린 눈 비벼가면서 빠짐없이 지켜봤죠. 당시에는 초등학교 3,4학년 이었거든요(웃음)”
2002년 한일 월드컵의 4강신화. 이는 축구를 잘 모르는 문외한들에게도 ‘기적’ 그 자체의 기쁨과 희열을 안겨다 주었고, 숨겨진 애국 본능을 자극하는 기?제가 되었으리라. 이광용 아나운서에게도 축구에 몰두하게 해준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83년도 세계청소년 축구대회 4강 신화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16강을 넘어서 8강, 4강에 올랐었죠. 물론 준결승에서 브라질한테 패배해서 결승을 진출 못했지만, 지금의 한일월드컵 4강 신화 못지 않았어요. 그 모습을 보고 완전히 축구에 넘어간거죠. 그리고 3년 후에는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어요. 86년 멕시코 월드컵이었는데 역시 새벽시간에도 빠짐없이 경기를 지켜봤어요. 사실 아직까지 선수들이 뛰는 장면들이 녹화가 되어있는 것처럼 스쳐지나가요. 당시 어떤 선수가 들어가서 어떤 시점에서 어떤 장면을 연출했는지 말이죠. 누군가가 시험을 본다고 해서 공부를 한 것은 아니지만, 워낙 좋아하는 것이고 즐길 수 있는 것이니까 자연스럽게 각인이 되는 것 같아요”
과거의 추억에 사로잡힌 그의 표정 속에서 진정 축구를 즐기는 사람이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곧 이광용 아나운서의 ‘삶의 여정’을 잠시나마 들을 수 있었다.
“어렸을 적에는 축구를 좋아했어도 직접 직업과 연관해서 생각까지는 못했죠. 그렇지만,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쳐서 모교인 충암 고등학교를 입학하면서 점점 구체화된 저의 모습을 그려볼 수는 있었어요. 물론 충암 고등학교는 야구부가 유명한 학교예요(웃음)”
줄 곧, 학창시절 체육대회에 축구 반 대표는 빠짐없이 출전했다는 그의 목소리에서 그 때 그 시절의 추억에 사로잡히는 듯 했다. 그렇지만, 정작 자신의 현재의 자화상을 그리기에는 다소 부족했다. 그의 삶의 ‘세렌티피티’를 안겨다 준 시간은 바로 ‘연세대학교’에 진학하면서 부터이다.
“최초의 스포츠를 업으로 하고 싶다고 생각을 한 것이 대학교 때였죠. 처음에는 스포츠 기자를 목표로 했습니다. 사실 스포츠 마니아들이 하루의 스포츠 신문은 꼬박꼬박 챙겨보는 습성들이 있어요. 저도 마찬가지였고, 항상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 기자가 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입버릇처럼 말했던 것에 사고의 전환의 발단이 된 것이 취업을 구체화하는 단계에서 였는데 ‘바로 내가 글을 잘 쓰는가’ 였어요. 고민을 많이 했죠. 그런데 즐겨하지도 않는 것 같고, 스스로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잘하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원점으로 돌아가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같은 학과 후배 녀석이 아나운서 준비를 한다고 해요. 그렇지만 당시는 아나운서가 어떤 것인지, 무엇을 하는 것인지,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인지를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옆에서 준비하는 것을 보면서 막연하게 스포츠와의 연결고리를 찾게 된 것이죠. 그게 바로 ‘스포츠 캐스터’였어요. 개인적으로도 ‘글’보다는 ‘말’을 하는 것이 더 재능이 있다고 판단을 했었고, 어린 시절에도 가끔 목소리 좋다는 말도 들었거든요(웃음). 그래서 취업을 고민하다보니 친구들이 너는 스포츠 캐스터가 ‘딱’ 이라고 말을 하더군요. 또 하나는 어느 날 잠실에 야구를 보러갔는데, 기자들이 본부석 뒤에서 좋은 자리에서 노트북을 갖고 경기를 보는 거예요. 처음에는 팬으로써 부럽더군요. 그렇지만 바로 위에 한 아나운서가 중계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는데 또 그게 더 좋아보였어요(웃음)”
대학 졸업을 하며 시작하게 된 방송 아카데미. 좋은 아나운서의 여러 가지 조건들을 갖추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를 해 나갔다. 하나 둘씩 배우면서 느낄 수 있었던 뿌듯함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다. 자신을 위해 맞춘,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스포츠캐스터라는 한 분야만을 생각하며 우회적으로 접근했지만 하면 할수록 아나운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에 관심이 갔고, 그 일들을 충분히 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기대감에 부풀었다.
“어떻게 보면 정말 어려운 길이죠. 그렇지만 저는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내가 정말 잘할 수 있고, 남들보다 좀 더 재능이 있는 분야로 운 좋게 선택을 했죠. 물론 엄청난 경쟁도 있었지만 삶에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실 아나운서의 합격자 발표에 저의 이름이 있을 때는 다 끝났다는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지만, 사실 인생의 한 단계라는 것이 순간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대학교에 합격했을 때 내 인생이 풀리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도 취업이 있고, 취업을 해도 그 안에서 나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들, 혹은 나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언젠가 잘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분들과의 경쟁을 하면서 살아야 되니까.... 물론 지금 KBS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감사하고 행복한 것이죠”
2002년 11월 23일은 이광용 아나운서의 인생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그야말로 피를 말리는 각 단계들. 마지막 명단의 이름석자를 확인하는 순간까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정말 간절했기에, 꿈의 실현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미리 경험했기에 더 긴장되었다. 이 모든 것이 그에게는 더 큰 기쁨의 희열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 아나운서의 합격 이후에도 그는 자신이 좋아했던 ‘축구’ 분야의 기회가 비교적 빨리 찾아왔다.
“개인적으로는 KBS에 입사하기 전에 1년간 케이블 채널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기가 좋았던 것이 2002년이어서 메이저 리그, 월드컵, EPL, 챔피언스리그, 부산 아시안게임을 모두 중계 방송 하게 되었습니다. 1년 동안 그 누구도 못할 만큼의 방송량을 소화한거죠. 야구도 30~40경기, 축구도 30~40 경기를 했거든요. 사실 지상파에서 한 명의 아나운서가 한 종목을 30~40경기 중계를 하려면 최소 3~4년이 필요해요. 바로 이러한 경험이 스스로 스포츠 중계방송을 할 수 있는 능력 배양에 도움이 되었고, 그것을 감안해서 KBS 에서도 기회를 빨리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006년 강진에서 열렸던 유소년 축구대회로 중계 데뷔를 한 이광용 아나운서는 기억에 남는 축구 중계의 질문에 신중한 답변을 내놓았다.
“사실 중계는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중계 보다는 제가 나중에 본격적인 중계를 하게 될 때 양질의 방송을 하기 위해서 내용을 채워나가는 단계라고 생각을 해요. 지금은 ‘비바 K리그’ 나, 라디오의 ‘스포츠 하이라이트’를 진행하면서 여러 가지 다양한 이야기 거리들을 접하고 나중에 중계를 할 때 써먹을 수 있는 단계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한 마디로 기초공사를 하고 있는 단계이고, 탄탄하게 땅을 다져서 중계에 투입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한낮 ‘완벽주의’에 속할까. 아니면 그의 내재된 고품격 아나운서다운 ‘가치관’일까. 필자는 어떤 것을 택하든 그의 생각에 큰 감흥을 얻었다. 시청자들을 위한, 스포츠 팬을 위한 그의 ‘거침없는 질주’가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필자는 오랜 시간 K-리그의 변화무쌍한 과정을 지켜본 이광용 아나운서에게 시대별 변화에 대한 느낌을 듣고 싶었다.
“1차적으로 인프라적인 면이겠죠. 그리고 지역 연고 시스템인데 우리 지역의 팀 이라는 강한 마음가짐이나 지역민의 충성도가 예전에는 크지 않았다. 점점 시민구단이 들어오고, 언론에서도 기업 중심의 기업의 이름이 들어가도록 구단을 명칭 했지만, 지금은 지역 이름을 중심으로 소개가 되는 것이 변화한 점이죠”
“플레이는 ‘재미면’ 에서는 예전에는 선수들이 팀이 적어서 그랬는지 한 경기에 선수들의 모든 것을 쏟는 면이나 경기 내에서 압축적인 것을 보여주는 맛이 더 있었어요. 요즘 프로축구에서는 재미있는 경기는 아주 재미있고, 기술적인 것은 훌륭하지만, 때로는 너무 느슨한 경우도 가끔 있는 것이 사실이거든요. 예전의 80년, 90년 초반의 프로축구는 제가 기억하기에는 지금 보다는 박진감이 넘치는 모습이 있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고 해서 지금과 과거가 많이 차이가 난다는 것은 아니구요(웃음)”
연이어서 좋아하는 축구 선수를 물어보는 질문에는 잠시 곰곰이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과거의 대표 선수들 보다는 프로 축구에서 맹활약한 선수들을 열거하며 추억을 곱씹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큰 감흥을 주었던 선수에 대해서는 오랜 시간 회고를 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들리겠지만 황선홍선수를 좋아해요. 무릎 십자인대 파열을 딛고 수술을 몇 차례 반복하면서 제기 했던 모습이 기억이 나구요. 사실 94 미국월드컵 때 볼리비아 전에서 황선홍선수를 엄청나게 응원을 했었지만, 전 국민적인 비난도 있었잖아요. 그렇지만 슬기롭게 이겨낸 것 같습니다. 또 96, 97년 황선홍선수의 플레이는 정말 그 누구도 다시 반복해낼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냥 예전에는 제공권을 이용해서 헤딩슛정도 할 줄 아는 평범한 선수라고 생각하겠지만, 미국월드컵 끝나고 고난의 시간을 이겨 낸 다음에 정말 공격 일선에서 전후, 좌우 가리지 않고 휘저으면서 기회를 만들고 득점을 하는 모습을 봤고, K리그 8경기 연속골을 기록하기도 했잖아요. 개인적으로 98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중국 평가전의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면 정말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을 해요. 물론 2002년의 유종의 미는 개인적으로도 흐뭇했죠”
시간이 지나 다시 비바 K리그를 소재로 대화를 나누었다. 작년에 바통을 넘겨받으면서 부랴부랴 시작했던 일이지만 이제 어느 정도 자신의 입지를 갖고 시작하고 싶다는 그의 목소리에서 또 다른 기대감을 갖게 했다.
“사실 작년에는 중간에 넘겨받아서 내가 이런 것을 하고 싶다는 것 보다는, 기존의 방식을 체득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렇지만 올 해는 이광용의 색깔을 입힐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모색을 하고 있어요. 제작하는 PD나 모든 분들이 바뀐 상태이고, 팀웍을 새롭게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죠. 그렇기에 오히려 새로운 색깔을 입히기에는 좋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희도 일종의 사명감을 갖고 있습니다. K리그가 살아야 한국축구가 산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죠. 축구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공감하는 부분임에도 막상 K리그에 대한 사랑이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따라주지 않고 있는데, ‘비바 K리그’ 라는 프로그램이 작은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프로가 재미가 있으면 그만큼 아직까지 축구를 잘 모르고, 덜 좋아하는 분들이 재미있을 것도 같네? 라는 생각을 해서 TV로 먼저 보게 하고 경기장으로 오게 하는 것, 그런 순환구조를 만드는 데 한축을 담당할 수 있었으면 좋겠구요, 그것이 ‘비바 K리그’ 가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고, 제가 열심히 진행해야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올 시즌 ‘비바 K리그’는 이광용 아나운서 뿐만 아니라 이정민 아나운서가 가세하여 두 명의 남,녀 MC 체제로 운영이 된다. 또한 해설위원도 작년에 이어서 이용수, 한준희 위원이 참여하여 다양한 축구 이야기를 선사할 예정이다.
“이용수 해설위원께서는 개인적으로 알지 못했을 때는 다가가기 힘든 분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프로그램을 같이 하면서 정말 다정다감하시고, 농담도 안하실 것 같은데 사석에서 잘 하시죠(웃음) 제가 작년에 도하 아시안게임을 갔는데, 이용수 교수님과 대표팀 경기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어요. 마치 ‘수행비서’ 처럼 같이 갔죠(웃음). 그 곳에서 정말 내가 화면으로 느꼈던 분과 다른 분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기술위원장으로 재직했던 이용수 해설위원에 대한 이광용 아나운서의 첫 느낌은 학구적이고, 해박하신 그야말로 원초적인 교수님으로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석의 만남은 그의 느낌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했다고 밝혔다. 이어서 한준희 해설위원에 대한 질문에 그는 바로 명쾌한 대답을 내렸다.
“그 분은 열정으로 똘똘뭉친 천재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처음에는 MBC에서 챔피언스리그 중계를 하실 때 나오시더군요. 처음에는 누군가 했죠(웃음). 사실 개성 없이 무미건조한 것 보다는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표현하는 것이 여러 가지 면에서 좋다고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한테 호응을 일으킬 수 있는 측면에서도 그렇고,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경우가 되거든요”
일반 팬들이 생각하는 한준희 해설위원의 첫 이미지는 이광용 아나운서에게도 동일했다. 독특한 발성으로 인기몰이를 한 한준희 해설위원은 그에게는 해설계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을 정도로 능력이 있는 ‘천재’라고 표현을 했다. 그러면서도 독일 월드컵 때의 인상적인 중계 모습을 일일이 나열하면서 웃음 짓는 그의 모습 속에서 일반 축구팬다운 친근한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이광용 아나운서와의 유쾌한 인터뷰도 시간이 훌쩍 지나고 있었다. K-리그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질문에는 시민구단의 활성화, 그리고 소위 말하는 축구의 저변이 덜 된 지방 중소 도시들에 대한 투자와 구단의 뿌리 내림을 외치고 있었다. 마침, 당일 창단한 ‘서울 유나이티드’와도 관련하여, K2, K3의 운영에 대한 소견도 간단히 들을 수 있었다.
축구를 사랑하고, 축구에 희열을 느끼고, 좀 더 많은 내공을 지니면서 팬들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그의 눈빛에서는 비상하는 새들의 자유로운 날개 짓처럼 고공 비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진정 ‘준비된 자’가 되기 위한 하나의 포석의 시간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축구 캐스터로써의 자세를 더욱 갖고 팬들에게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축구를 업으로 하는 캐스터들에게 꿈이라면 꿈일 수 있는 월드컵이라는 무대에서 저의 목소리로 고국에 계신 국민들에게 중계를 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합니다. 또한, 축구에 관련된 언론의 인프라 자체도 국민의 관심에 따라서 조명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지켜봐주시고, 항상 열심히 하고, K-리그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아나운서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흔히 준비된 자에게 새로운 기회가 오는 법이라고 했던가.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이며 더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오늘 주어진 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인터뷰를 통해서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다.
바다가 잔잔할 때는 어떤 배가 튼튼하게 만들어진 배인지 아는 사람은 없다. 큰 파도가 오고 배들을 향해 달려왔을 때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다. 현재의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여 보다 큰 꿈을 위해 전진하고, 자신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축구'라는 테마로 하여금 시청자들에게 준비된 모습을 갖추려는 이광용 아나운서. '비바 K리그'를 통해서 또 하나의 자신의 내재된 가치를 끌어올리고, 본인이 원하는 한국 프로축구에 기여할 수 있는 아름다운 질주가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K-리그 명예기자 김용일
첫댓글 그저 평범한 아나운서 인줄로만 알았는데. 기사 보고 다르게 보이네요~ㅋ 축구에 대해서도 해박한거 같고 K리그에 대한 애정도 있는거 같고... 급호감..^^;ㅋ
K리그 카페로 퍼갑니다.
이재후 아나운서도 좋아했었는데, 무슨 사연으로 그만두신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