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살롱은 누구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토론장이자 새로운 정보의 유통 공간이었습니다. 칼럼을 통해 조금이나마 여러분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다양한 토론거리를 제시하고 싶습니다. 트윈스 살롱이 열정적인 LG 팬들과의 소통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연애 상대로는 LG팬, 리버풀팬이 좋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적어도 배신당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 이 말은 LG와 리버풀의 뜨거운 팬심을 표현하고 있다.
LG는 영국 축구의 리버풀처럼 과거 화려했던 시절을 보낸 뒤 오랜 기간 동안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리고 '콥'이라 불리는 리버풀의 팬들처럼 어느 팀에도 뒤지지 않을 열정적인 팬층을 보유했다.
LG팬이 소개팅 상대로 높은 점수(?)를 얻게 된 이유는 변함없는 꾸준함 때문일 것이다. LG팬들은 성적이 좋을 때는 물론 그렇지 않을 때도 경기장을 찾아 선수들에게 열렬한 응원을 보낸다. 그렇기 때문에 LG에게 붙는 '최고의 인기구단'이라는 표현은 틀린 말이 아니다.
◆ LG, 왜 '최고의 인기구단'인가
가장 객관적인 인기의 척도는 홈 구장의 관중 수다. 얼마나 많은 관중을 유치하느냐가 그 구단의 인기를 대변한다. 직접 경기장에서 관전한다는 뜻의 '직관'은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하는 행위다. 따라서 관중 수는 충성도 높은 팬들의 규모를 나타낸다고도 볼 수 있다.
프로 스포츠에서는 대부분 팀 성적과 관중 수가 비례한다. 성적이 좋을수록 경기장을 찾는 팬은 많아진다. 하지만 LG는 그렇지 않다. 성적이 나빠도 관중 수가 줄지 않는다. 승패를 떠나 LG를 응원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는 팬들이 많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올 시즌 LG는 겨우겨우 중위권을 지키다 전반기 막바지부터 하위권으로 내려앉았다. 팀 성적으로 관중을 끌어올 수는 없는 상황. 그러나 놀랍게도 지난주(24일 현재)까지 LG의 올 시즌 관중 수는 KBO리그 전체 1위였다.
43경기에 총 71만1천332명이 관중석을 채웠다. 경기당 평균 1만6천543명의 관중이었다. 선두를 달리며 한국시리즈 2연패에 도전 중인 두산 베어스를 근소하게 제친 수치. 두산은 경기당 평균 1만6천349명의 관중 수로 전체 2위에 올랐다.
올 시즌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LG는 지난해까지 통산 누적 관중 수 1위를 달리고 있었다. 2천641만 7천818명(평균 1만2천598명)으로 2위 롯데 자이언츠(2천411만 5천673명, 평균 1만1천495명)보다 평균 관중 수가 1천명 이상 많다. 10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던 2003년부터 2012년까지도 LG의 관중 순위는 3위권 밖을 벗어난 적이 없다.
물론 LG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관중을 들일 수 있는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고 있는 것도 관중 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인구가 많은 서울이 안방이라는 점 또한 마찬가지. 그러나 그 또한 LG라는 구단의 일부다. 뉴욕 양키스와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미국과 일본의 최고 인기구단을 군림하는 것과 같은 이유다. 단지 LG는 양키스, 요미우리만큼 많은 우승을 경험하지 못했을 뿐이다.
◆ 선수에겐 '양날의 검', 감독에겐 '독이 든 성배'
최근에는 이른바 '탈 LG 효과' 때문에 퇴색되긴 했지만, 선수들 사이에서도 LG는 꼭 한 번 뛰어보고 싶은 구단이었다. 선수단 지원이 좋고, 조금만 야구를 잘하면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치어리더들에게도 LG는 한 번 쯤 맡아봐야 할 구단으로 통한다. 항상 많은 관중들 앞에서 설 수 있다는 점이 치어리더들이 꼽는 LG 응원의 매력. LG는 세련된 응원으로 KBO리그의 응원 문화를 선도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LG에게는 미디어의 관심도 쏟아진다. 잘해도 뉴스, 못해도 뉴스가 되는 구단이 바로 LG다. 그 바탕에는 LG의 두꺼운 팬층이 자리하고 있다. 수요가 있는 뉴스를 내보내는 것이 미디어의 역할이자 성격이다. 모든 것은 LG가 인기구단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러한 LG의 인기는 선수들에게 '양날의 검'이 된다. 성적이 좋을 때 받던 엄청난 환호가 성적의 하락과 동시에 차가운 비난이라는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 데뷔 초기부터 필요 이상의 인기를 얻은 선수들은 쉽게 나태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LG의 A 선수는 "팀 성적이 좋지 않은데도 경기장에 많이 찾아와주시는 LG팬들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면서도 "LG팬들의 남다른 관심과 응원은 선수들에게 힘을 주기도 하지만 그 반대일 때도 있다. 한마디로 잘할 땐 2배로 좋고, 못할 땐 2배로 힘들다"고 말했다.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구단과 선수, 그리고 감독을 비난하는 것은 모든 프로 스포츠를 즐기는 팬들의 권리다. 그러나 LG의 팬들은 그 수위가 꽤 높을 때가 많다. 이는 A선수의 말대로 선수들의 주눅들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감독들에게도 LG의 사령탑은 쉽지 않은 자리다. '독이 든 성배'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다. 좋은 성적을 낸다면 명장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 엄청난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LG의 감독들은 유독 팬들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박종훈 감독은 "LG의 많은 팬들의 기를 받아 오랜 부진을 끊고 싶다"고 말했다. 김기태 감독은 승리할 때마다 "팬들 덕분"이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양상문 감독은 "어린이 팬"을 언급하며 세대교체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 극성인가 열정인가, 또 한 번 청문회 가능성
사실 팬들의 적극적인 의사 표현은 LG뿐만이 아니라 KBO리그 전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그 파급력도 점차 강해지는 추세다. 한화 이글스가 김성근 감독을 영입한 것, 선동열 감독이 KIA 타이거즈와 재계약을 맺은 뒤 엿새만에 사퇴한 것에는 모두 팬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LG팬들은 2000년대 중반부터 힘을 행사했다. 2006년 당시 사령탑이던 이순철 감독에 대한 현수막 시위가 시작이었다. 이는 이순철 감독의 자진사퇴를 부르는 계기가 됐다. 이후 박종훈 감독이 사령탑에 있던 2011년에 LG팬들의 집단행동은 절정에 이른다.
2011년 8월18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를 마친 잠실구장 중앙출입구에 LG팬들이 운집해 박종훈 감독과의 만남을 요청했다. 일명 '청문회 사건'이다. 박종훈 감독은 팬들 앞에 확성기를 들고 서 성적 부진에 대해 사과했고, 박용택도 선수단을 대표해 팬들에게 남은 시즌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올 시즌에는 이미 양상문 감독을 비난하는 현수막 시위가 잠실구장 외야 관중석에서 있었다. 그리고 일부 팬들은 28일 롯데와의 경기를 마친 잠실구장 출입구에서 2011년과 비슷한 상황을 재현해 구단과 감독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강경한 불만 표출은 LG팬들 사이에서도 찬반이 갈린다. 분명한 것은 그런 팬들의 행동이 선수들의 경기력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경기 중 내걸리는 사령탑에 대한 인신공격성 현수막에 선수들 대부분은 "보기 불편하다"는 반응이다. 5년 전 박용택도 팬들 앞에 서 사과와 함께 "부담스럽다"는 요지의 말을 남겼다.
팬들의 시위가 반등으로 이어진 사례도 없다. 2006년에는 이순철 감독이 결국 중도 퇴진했지만 LG는 사상 첫 꼴찌로 시즌을 마쳤다. 2011년에도 급격한 내리막을 멈추지 못하고 공동 6위에 올라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박종훈 감독은 시즌을 완주한 뒤 사임했다.
팬들에겐 나쁜 의도가 없다. 팬들이 바라는 것은 하나다. 응원하는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 다만 LG팬들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 그 뜻을 전달하고 있다. 그만한 열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구단과 선수단도 팬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단순히 '조용히 응원해주면 좋을텐데'라고 생각하기보다 팬들이 왜 그런 행동에 나서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그리고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반성하고 고쳐나갈 필요가 있다.
'극성스럽다'와 '열정적이다'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뜨거운 LG팬들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극성스럽다 할지라도 결국엔 관중석을 가득 채워 LG 선수들에게 응원을 보내주는 팬들이 아닌가. LG를 '최고의 인기구단'으로 만들어준 것이 팬들임을 구단과 선수들은 잊지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