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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군 여행]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구만서원...........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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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군 여행]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구만서원...........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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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여기는 다녀온 지가 1달도 한참 넘은 곳인데 동선을 맞추기 위해 뒤로 미루다 보니 이렇게까지 시간이 흘
러 버렸다. 암튼 유랑자는 구만 서원에 도착을 했다. 그런데 이곳엔 구만서원만 있는게 아니고 선조들을 위한
불천위로 추원사를 건립하고 위패를 모신 사당도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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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무안박씨 영해파의 입향조인 수서공이 이곳에 터를 잡고 집성촌을 이룬 배경을 구만서원 입구에 설치된
화천약사(花川略史)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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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박씨 영해파의 입향조인 수서공이 이곳에 터를 잡고 집성촌을 이룬 배경을 구만서원 입구에 설치된 화천약사(花川略史)에서
위와 같이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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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 박선장 선생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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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가(五倫歌), 수서 박선장의 오륜가五倫歌 8수 중에서 3수만 소개해 본다.
1. 父子(부자)
村(촌)마도 못ᄒᆞᆫ 푸리 봄 이슬 마ᄌᆞᆫ 後(후)에
닙 넙고 줄기 기러 밤나ᄌᆞ로 부러낫다
이 恩惠(은혜) 하 罔極(망극)ᄒᆞ니 가풀 줄을 몰ᄂᆡ라
*[한 치도 안 되는 풀이 봄 이슬 맞은 후에/ 잎 넓고 줄기 길어 밤낮으로 불어났네/ 이 은혜 너무 망극하니 갚을 줄을 몰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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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君臣(군신)
이 님이 머기시고 이 님이 입피시니
十生 九死(십생구사)ᄒᆞᆫᄃᆞᆯ 님의 德(덕)을 나ᄌᆞᆯᄂᆞ냐
萬一(만일)에 大義(대의)를 모ᄅᆞ면 厮養(시양)이나 다ᄅᆞ랴
*[이 임이 먹이시고 이 임이 입히시니/ 겨우 살아나니 임의 덕을 잊을런가/ 만일에 큰 뜻을 모르면 못 배운 이와 다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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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1년(명종 19년) 호조정랑 송파 박전(淞坡 朴全) 의부인 淑人 新安 朱씨가 9세 된 아들 수서 박선장(水西 朴
善長)을 데리고 남편이 꿈에 이른 대로 산단화(橵丹花 명자나무)가 만발한 이곳 화천(花川)으로 이거하여 삼송
남몽오(三松 南夢鰲) 선생에게 수학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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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장래를 위하여 세 번씩이나 이가를 한 숙인(淑人:당하관(堂下官) 정삼품(正三品)ㆍ종삼품(從三品)인 문
무관(文武官)의 아내에게 주던 봉작(封爵).)에게 당시 유림에서는 맹모삼천지교에 비할 만 하다고 칭송하였으며
후손들이 몽화각(夢花閣)을 지어 그 은덕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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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夫婦(부부)
두 姓(성)이 ᄒᆞᆫ ᄃᆡ 모다 함ᄭᅴ 늘거 죽쟈 ᄒᆞ니
百年 情好(백년정호)야 이예서 더랴마ᄂᆞᆫ
그려도 恭敬(공경)ᄒᆞᆯ 줄 모ᄅᆞ면 雎鳩(저구) 아니 인ᄂᆞ냐
*[두 성씨 한 곳에서 함께 늙어 죽자 하니/ 평생 깊은 정 좋은 것이 이보다 더 하랴마는/ 그래도 공경을 모르면 물수리만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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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寸)마도 못한 으로 시작하는 오륜가는 첫째 수부터 다섯째 수까지는 부모의 은혜를, 임금의 덕을, 부부간의 공경을, 형제간의 의미
를, 친구간의 신의를, 나머지 난의 세 수는 오륜의 불변을, 예의의 실천을, 이웃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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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나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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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공은 13세에 삼송선생 장녀를 아내로 맞아 삼형제를 두었는데 장남 동천공 경은 벼슬을 싫어하고 학문과
지조를 견지 하여 서유가(鋤莠歌)와 상춘사(傷春辭)등을 지었으며, 차남 회이당 한은 1603년에 문과에 급제 선
산부사등 5개순 수령(판교)을 지냈으며 선정을 베풀어 국가 원종 훈신으로 책봉되어 향림과 후손들이 불천위로
추원사를 건립하여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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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 과천공(過川公) 로(璐)는 절개와 학문이 높아 남한하성지맹(南漢下成之盟)의 소식을 듣고 서쪽을 향하여 통
곡 하였으며 80세에 나라의 은혜를 입어 천추의 벼슬을 맏았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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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만서원(龜灣書院)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가운데 대청을 두고 좌우측에 온돌방을 놓았다. 정면에는 쪽마루가 설치되어 있
는데 아궁이가 있는 좌우 온돌방 앞쪽 부분은 연소를 고려하여 약간 높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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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옆으로 세원진 시비는 박선장의[오륜가]이다. 그의 나이 58세인 1612년(광해군 3)에 지어진 여덟 수의
연시조이다. 세상인심이 날로 변해가는 것을 우려해 경계의 방편으로 지은 어린이를 위한 교육용의 교재이다.
오륜을 하나씩 차례대로 다섯 수를 노래하고 나머지 세 수는 오륜을 마무리한다는 뜻인 난(亂)을 덧붙여 오륜
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오륜가는 작품 서문과 함께[수서집]에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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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寸)마도 못한 푸리 봄 이슬 마잔 후에
닙 넙고 줄기 기러 밤나자로 부러낫다
이 은혜 하 망극하니 가풀 줄을 몰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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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의 성리 지향 이념의 구체적 실상은 십물잠(十勿箴)에서 실천 강령으로 제시된다. 십물잠(十勿箴)은 인격수양에 관한 10개 조의
경계서이다.
*십물잠 (十勿箴)
勿違親志 曾之罪人(물위친지 증지죄인) 어버이 뜻 어기지 말지니/ 증자의 가르침 어기는 죄인되리.
勿替友于 象之悖倫(물체우우 상지발륜) 우애 저버리지 말지니/ 상처럼 인륜 거역한 사례되리.
勿自暴棄 下愚不移(물자포기 하우불이) 자포자기 말지니/ 낮고 어리석음 벗어나지 못하리.
勿忘祭祀 葛伯同歸(물망제사 갈백동귀) 조상 제사 잊지 말지니/ 갈백 같은 위인이 되리니
勿謂不能 吾君之賊(물위불능 오군지적) 임금의 무능 탓하지 말지니/ 우리 임금의 적이 되리라.
勿附權貴 來惠之匹(물부권귀 래혜지필) 권귀에게 빌붙지 말지니/ 내혜 같은 위인이 된리라.
勿近損友 從之如崩(물근손우 종지여붕) 손해 되는 벗 사귀지 말지니/ 따르다보면 무너지게 되리라.
勿逐佩鞢 麤雜爲朋(물축패섭 추잡위붕) 활쏘기 즐기지 말지니/ 추한 것 벗이 되리라.
勿事博奕 牧猪之奴(물사박혁 목저지노) 장기 바둑 즐기지 말지니/ 돼지 기르는 종이 될 터.
勿怠供上 蜂蟻不如(물태공상 봉의불여) 윗사람 섬기기 게을리 말지니/ 벌 개미만도 못하게 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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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가는 첫째 수부터 다섯째 수까지는 부모의 은혜를, 임금의 덕을, 부부간의 공경을, 형제간의 의미를, 친구간의 신의를, 나머지 난의
세 수는 오륜의 불변을, 예의의 실천을, 이웃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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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교당(興敎堂),은 서원의 강당으로 중앙에 마루가 있고 양쪽에 협실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신문은 향사 때 제원의 출입문으로 사용되며, 주소는 원내를 수호하는 고지기가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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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만서원 중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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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박씨 영해파 화천종중 유교책판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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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가는 첫째 수부터 다섯째 수까지는 부모의 은혜를, 임금의 덕을, 부부간의 공경을, 형제간의 의미를, 친구
간의 신의를, 나머지 난의 세 수는 오륜의 불변을, 예의의 실천을, 이웃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
위의 시조는 오륜가의 첫수로 부모의 은혜를 노래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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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도 안되는 풀이 봄 이슬 맞은 후에 잎은 넓고 줄기는 길어 밤낮으로 불어났다. 이 은혜 너무 망극하여 갚
을 줄을 모르겠다는 것이다.” ‘오륜’의 관념적 주제를 잎이나 줄기, 밤과 낮같은 사물로 은유하여 형상화함으로
서 여타의 설명적이고 직설적인 오륜가와는 다른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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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만서원에 위패를 모신 분들의 면면을 살펴보자면 ...
*먼저 금인(琴軔, 1510~1592)의 자는 백임(伯任)이고, 호는 송계(松溪)이며, 본관은 봉화이다. 고려 학사 의(儀)의 후손이며 현감 계(啓)
의 손자로 원수(元壽)의 아들이다. 1540(중종 35)년 진사에 급제하였다. 기상이 준엄하고 뜻이 높아 일제기 성균관에 유학하매 선비들이 추
중하였다. 저서로 송계선생문집(松溪先生遺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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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필묵(紙筆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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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장(1555,명종 10∼1616,광해군 8)은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로 호는 수서이다. 1605년(선조 38) 50세의 늦은
나이에 증광별시에 급제하여 성균관 전적이 되었고, 1611년에는 구만서당을 짓고 제자에 대한 강론과 성리학
학문 정진에 평생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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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즐 미이디 마라 이웃 미오면 갈듸업서
일향(一鄕)이 바리고 일국(一國)이 다바리리
백년도 못살 인생이 그러그러 엇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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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남몽오(南夢鰲, 1528년~1591년)이다. 본관은 영양. 자는 경상(景祥), 호는 삼송(三松),삼송당(三松堂)이다. 아버지는 장사랑
기자전참봉 남기(南麒)이다. 경전을 널리 읽고 의리를 탐색하여 여러 번 향시에 장원하여 명성이 자자했다. 1573년(선조 6) 식년시
(式年試) 진사(進士) 1등 4위에 합격했으나 후진교육을 낙으로 삼아 가르치니 많은 선비가 운집하여 성취한 사람이 많았다. 퇴계 이황
의 문하에서 조목(趙穆)·김성일(金誠一) 등과 교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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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그뒤 1965년 지방유
림에 의해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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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간의 사랑을 읊은 마지막의 여덟째 수이다. “이웃을 미워하지 마라. 이웃을 미워하면 갈 데가 없다. 고을이
날 버리면 나라도 날 버리리라. 백년도 못살 인생이 그럭저럭 살아감이 어떠하겠느냐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도
이웃을 사랑하라는 전혀 낯설지 않은 교훈적인 성경 구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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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가는 윤리적 주제를 은유나 환유, 설의법을 적절히 구사하여 문학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오륜가 계열 중 가
장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요즈음엔 삼강오륜은 젊은이들에게는 케케묵은 단어가 되었다. 오륜을 말
하는 것조차도 주저해지는 세상이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졌다 해도 하나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다소 무
거운 주제이지만 잠시 사색에 잠겨볼 만한 시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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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6년(선조 29)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진사 금인(琴軔)·남몽오(南夢鰲)· 박장생(朴長生)·권호신(權虎臣)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봉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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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사(象賢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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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박선장(朴善長, 1555~1616)은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무안(務安). 자는 여인(汝仁), 호는 수서(水西). 아버지는 북평사
전(全)이며, 어머니는 웅천주씨(熊川 朱氏)이다. 1세 때 아버지가 서울에서 돌아가시자, 4세 때 어머니를 따라 경상도 울진 에 있는 외가
에 내려가 있다가 9세에 봉화로 이사 그의 사부이자 장인이기도 한 남몽오(南夢鰲)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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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년(선조 38) 51세의 늦은 나이에 증광별시(增廣別試)에 급제하여 성균관전적이 되었고 성리학에 힘썼다. 1608년 예안현감, 1614년
(광해군 6) 경상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한문시 <박박전가 薄薄田歌>와 시조 <오륜가 五倫歌>가 있으며, 저서로는 이
들 작품이 수록된 문집 [수서집 水西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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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오륜가를 뒤로하고 구만 서원 안으로 들어가 본다. 다행이 문은 열려있고 마당은 잡풀 등이 무성하다.
구만서원은 마을 뒤편 산자락 끝에 북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경내에는 사당인 상현사(象賢祠), 강당인 흥교당
(興敎堂), 출입문인 신문(神門), 관리인의 거주지로 쓰이는 주소(廚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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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인 상현사(象賢祠)과 강당이 각기 별곽을 이루면서 좌우에 나란히 병렬로 자리 잡고 있다. 사당과 강당 전
면 담장에는 각기 삼문과 사주 문을 두고 사당과 강당 사이의 경계 담에는 두 건물을 오갈 수 있는 일각문을 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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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내 건물로는 3칸의 상현사(象賢祠), 8칸의 흥교당(興敎堂), 신문(神門)·주소(廚所) 등이 있다. 상현사에는 동쪽으로부터 금인·남
몽오·박장생·권호신의 위패가 열향으로 봉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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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째 권호신(權虎臣, 1558~1629)은 1558년(명종 13)∼1629년(인조 7). 조선 중기 유학자‧효자. 자는 백무(伯武)이고, 호는 도은(陶隱)
이다. 본관은 안동이고, 본적은 경상북도 영천(榮川: 현 영주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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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는 권기수이고, 부친 권인(權寅)의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 권준신, 권언신이 있다. 1582년(선조 15) 식년시 생원 2등 25위로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대과에 응시하지 않았다. 평생 부모 봉양에 전념하여 효렴(孝廉)으로 경기전참봉
(慶基殿參奉)에 추천되었으나 노친이 계심을 이유로 사양하였다. 여가에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도 전념하여 제자들이 많았다. 저서로 『도은선
생문집(陶隱先生文集)』 2권 1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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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 위패를 모시고 있는 상현사는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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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만서원은 1676년(숙종 2)에 사림에서 건립하였다. 진사 금인(琴軔), 진사 남몽오(南夢鰲), 도승지 박선장(朴善
長), 참봉 도은(陶隱), 권호신(權虎臣)등 4현(賢)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하고 묘호(墓號)를 기영사(耆英
祠)라 하다가 1766년(영조 42)에 구만서원(龜灣書院)으로 승격한 뒤, 1868년(고종 5)에 흥선대원군의 훼철령으
로 철폐되었다가 1967년 부설하여 지금까지 춘추제향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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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만서원 바로 옆에 오미자 밭이있어 잠깐 들어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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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자 :~일반적으로 나무 이름의 끝 글자가 자(子)이면 열매나 씨앗을 약용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구기자, 복분자와 함께 오미자
(五味子)는 자 자 돌림의 대표 약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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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를 먹어보면 신맛, 단맛, 쓴맛, 짠맛, 매운맛의 다섯 가지 맛이 모두 섞여 있다 하여 오미자다. 실제로 미각이 얼마만큼 발달해야
만 이 다섯 가지 맛을 다 구분할 수 있을까? 미각이 둔한 나는 기껏 찝찔한 맛을 느낄 따름이다. 오미자 화채나 차를 먹어보면 신맛이
강하여 그저 시금털털하다는 느낌이다. [산림경제]에 보면 “육질은 달고도 시며 씨앗은 맵고도 써서, 합하면 짠맛(鹹味)이 나기 때문에
오미자라고 한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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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가지의 맛이 난다는 오미자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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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자의 효능: [동의보감]에는 “몸이 약하고 몹시 여윈 것을 보하며, 눈을 밝게 하고 신장을 덥히며, 양기를 세게 한다. 남자의 정(精)
을 돕고 음경을 커지게 한다. 소갈증(당뇨병)을 멈추게 하고, 열이 나고 가슴이 답답한 증상을 없애주며, 술독을 풀고 기침이 나면서 숨이
찬 것을 치료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오미자는 인삼과 거의 같은 수준의 귀한 약재로서 널리 애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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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자는 가을이면 이렇게 빨갛게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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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afe.daum.net/b2345/9toB/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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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봉화읍 구만서원길 5
(지번)봉화읍 화천리 438
소개:송계 금인·삼송당 남몽오·수서 박선장·도은 권호신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위패를 모시고 있는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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