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천성에서 엄청난 양의 곡물이 들어오는데 이번 강진때문에 그럴 수 없다네.
덩달아 곡물값은 폭등일테고 그렇지 않더라도 남은 땅에 무언가를 심어야했는데 올해는
콩으로 정했다.
일단은 콩모종을 포트에 부었다가 어제 부슬거리고 내리는 비를 맞으며 뙈기밭 하나에 옮겨심었다.
밭고랑엔 짚을 깔아서 풀이 나는걸 막아보려 하는데 아무래도 풀이 저 짚을 비집고 나오려면
힘들겠지...
까만 약콩.
쥐눈이 콩.
동네 사람이 씨앗하라며 두어되를 주었다.
밥에 얹어먹으면 별 맛은 없다네.콩나물을 길러 먹던지 청국장으로 발효를 시켜 먹던지
그건 내 맘대로 하라하는데 일단은 모종을 부었지.
고추 농사를 짓지않아서 고추를 말릴 필요성이 없는 빈 하우스에
줄을 맞춰 모종을 붓고 나머진 여기저기 빈 곳에 몇 알씩 넣었다.
새가 빼먹지않고 잘 나와주네.
애초에 그냥 밭에 심을걸 그랬나
빈 하우스 바닥에 심은 이 쥐눈이 콩 모종들.비 온 후에 심으라 그러는데
아무래도 토요일엔 꼭 심어야할 것 같다네.
대기업 차장으로 있는 막내 시동생에게 바쁘지 않냐고 은근슬쩍 물었더니
토요일에 약속이 있다 그러대.
음~~형은 일하러 다니구~
나 혼자 심을려고 했더니 엄두가 나질 않아서어~
애들이랑 내려오면 조켔다~~" 그랬더니만
일단은 그럼 약속을 조정을 해보고요 내려가는 방향으로 하지요."
그러대.
그나저나 그 날은 중학교 동창들이 놀러온대서
그러려므나~했는데 어쩔까나~~
그냥 모조리 일시키고 같이 어울려 놀까
펌글
문익점 이전에도 한국에 목화
한국의 옛 옷 연구 책펴낸 박선희 상명대 교수
한반도에서 면직물이 생산된 것은 고려 공민왕 때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들여온 이후가 아닙니다.
한반도에서는 적어도 삼국시대 이전부터 면직물을 생산했습니다.
문익점이 들여온 것과 품종이 달랐을 뿐 입니다.”
상명대 사학과 박선희(朴仙姬·50) 교수는 고대 한국에서도 면직물을 생산했다 고 주장한다.
그는
三國史記, 양서(梁書) 등 고문서를 보면 ‘백첩포(白疊布)’라는 면이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고 근거를 들었다.
(펀주: 문익점이 들여온 것은 중국 남부지방 목화.
그 전까지는 중국남부지방 목화를 북부지방에서 재배하는 기술이 없었으나
문익점 시대에 그 기술이 생겼다.
그 때 문익점은 한반도에서도 그 목화 생산에 성공한 것이고
중국남부지방 즉 더운 지역의 목화를 온대 지방인 한반도에서 생산에 성공한 것.
그때까지 한반도와 중국 북부지방에서는 중국 남부지방과는 다른 종류의 목화를 생산하고 있었다.)
박 교수는 최근 펴낸 ‘한국 고대복식, 그 원형과 정체에서 한국 고대복식의 기본 재료를 분석하고
바지 치마 관모 갑옷 등 고대복식의 기원을 밝혔다.
학계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왔던 고대복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민족주의 관점’의 접근법.
지난 5년간 복식사 연구에만 매달렸다는 박 교수는 이 책을 통해 한국이 모, 마, 면직물 등을 가공하고 직조하기 시작한 연대가
중국과 비슷하거나 앞선다고 주장한다.
고조선이 뼈와 가죽, 청동 등을 재료로 동아시아에서 가장 빨리 갑옷을 만들었다는 주장도 덧붙인다.
한민족의 고대복식 문화가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잘못된 통설’입니다.
복식뿐 아니라 생활 문화 전반에서 고대 한국은 나름대로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
그 동안 한국 고대복식사 연구는 1947년 출간된 이여성(李如星)의 ‘조선복식고’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전개해 왔다”고
지적했다.
복식사 연구 초기 단계에 쓰여졌던 ‘조선복식고’는 한국의 복식 문화가 중국이나 북방 민족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바탕에 깔고 있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중국과 한국의 고문헌 유물을 조사, 정리한 내용을 제시 했다.
그는 “ 복식을 매개로 삼아 고대 한국이 중국보다 앞선 문화를 영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 할 수 있을 것
이라고 강조했다.
펌글
첫댓글 _()()()_
감사히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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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연가님께서는 자연을 즐기시며 글도 올려주시고..오랫만에 대하니 반갑습니다..감사히 담고..좋은하루 되시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