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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 23년 차입니다. 컬럼비아 저널리즘 스쿨을 졸업했고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폭격이 쏟아지는 거리에서도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칸다알에서는 탈레반 검문소 50m 앞에서 인터뷰를 따냈고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는 물에 잠긴 뉴올리언스 거리를 허리까지 빠지며 걸었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한국에서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솔직히 고백합니다. 저는 한국을 무시했습니다. 선진국이라 하면 미국이 당연히 한 번이고 그 다음이 영국 프랑스 독일 정도 한국은 삼성 반도체와 오징어 게임이 전부 있는 나라였습니다. 미국이 인터넷을 발명했고 달에 사람을 보냈고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나라인데 한국에서 배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 오만이 일주일 만에 산산조각 났습니다. 하지만 그때 저는 몰랐습니다. 이 여정이 어디까지 흘러갈지 제가 얼마나 큰 착각 속에 살고 있었는지를요. 처음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월요일 아침이었습니다. 뉴욕 시에는 본사 편집회의실 편집국장 하워드 탈보트가 느닷없이 저를 불러세웠습니다. 레이첼 필립스 엑서터에서 난리 났습니다. 리가 났어. 학부모 위원회에서 CNN에 공식 취재 요청을 보내왔다. 한국수학여행건 네가가 필립스 엑서터 아카데미 마크 저커버그가 나왔고 록펠러 가뭄과 부씨 가문의 자녀들이 거쳐 간 학교입니다. 연간 학비가 6만 5천 달러 한화로 약 9천만 원 미국 교육의 정점이에요. 그 학교 11학년 학생 12명이 미국 교육부에 글로벌 교육 비교 프로젝트로 한국 수학여행을 다녀왔는데 돌아온 뒤 소셜 미디어에 올린 글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버린 겁니다. 미국은 선진국이 아니었습니다. 엑서터 학부모들이 격분했습니다. 이 학부모들이 누군지 아십니까? 월가 헤지펀드 창업자들이고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 대표들이고 워싱턴 로펌의 시니어 파트너들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에요. 하워드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습니다. K-POP 때문에 애들이 홀린 거야. 가서 가볍게 팩트 체크하고 정리해.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출장 전에 사전 취재를 했습니다. 미국 상류층 인사 몇 명을 만나서 한국에 대한 인식을 물었는데 대답은 하나가 같이 비슷했습니다. 월가의 한 대형 펀드 매니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시아 국가들은 순종은 있을지 몰라도 자유가 없지. 진짜 선진국은 규율 없이도 자유롭게 돌아가는 거야. 전직 국무부 동아시아 담당 차관보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습니다. 한국에서 배운다고? 우리가 태평양 건너서 지켜주는 나라잖아.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하버드 케네디스쿨 로렌 슈워츠 교수였습니다. 미국 학계에서 아시아 연구의 권위자로 통하는 인물이에요. 화상 인터뷰에서 그녀가 말했습니다. 한국의 경제 성장은 인정합니다만 시민 사회는 미국에 비하면 갈 길이 멀어요. K-POP과 삼성 반도체 말고 뭐가 있습니까? 저는 그 말을 다큐 도입부에 쓰려고 별표까지 쳐뒀습니다. 완벽한 전문가 코멘트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문제의 학생도 만났습니다. 코너 린치 해밀턴 엑서터 11학년 17살 아버지가 월가에서 120억 달러를 운용하는 헤지펀드 창업자입니다. 매 방학 아스펜에서 스키를 타고 여름이면 햄턴스 별장에서 보내는 집안이에요. 이 학생이 저를 보자마자 말했습니다. 모리슨 씨 저도 처음엔 한국을 무시했어요. 유럽이랑 미국만 바라보며 살았거든요. 아시아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였어요. 그러더니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인천공항에서 5분 만에 제가 배운 모든 것이 흔들렸어요. 아무도 통제하지 않는데 수백 명이 완벽하게 질서를 지키고 있었어요. JF 케에서는 TSA 요원이 수명이 있어도 아수라장인데 여기는 감시도 통제도 없이 질서가 돌아가고 있었어요. 그리고 이 말을 했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어요 우리가 자랑하던 시스템이라는 게 사실은 사람을 못 믿어서 만든 거였구나. 17살짜리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섬뜩할 만큼 날카로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반만 믿기로 했습니다. 직접 보면 별거 아닐 거라고요. 14시간 비행 동안 노트북으로 다큐 구성원을 썼습니다. 제목도 이미 정해졌습니다. 제 뜻에 대해 환상 엑서터 학생들은 한국에서 무엇을 보았나? 결론도 정해뒀습니다. K팝 문화에 매혹된 제트세트 과잉 반응을 냉정하게 분석하는 다큐로요. 그런데 인천공항에 내리는 순간 저는 그 구성안을 영영 쓸 수 없게 됐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장으로 향하는 통로를 걸었습니다. 14시간 비행에 지쳐서 빨리 호텔에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입국 심사장 앞에 도착하는 순간 발걸음이 멈췄습니다. 500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중국인 일본인 미국인 유럽인까지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본능적으로 주변을 둘러봤습니다. 통제 인력을 찾으려고요. JFK라면 이 정도 인원의 TSA 요원 신명은 기본이고 경찰이 10명 넘게 배치됩니다. 안내 방송은 쉴새 없이 울리고 고추를 벗어나면 즉시 호루라기가 울립니다. 그래도 이게 미국이냐고 소리지르는 사람이 꼭 있고 줄이 꼬이고 캐리어를 끌고 새치기 하는 사람이 생기고 그걸 말리는 요언한테 따지는 사람이 생기고 소동이 끊이질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눈에 띄는 통제 입력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멀리 구석에 공항 직원 두어 명이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이 완벽하게 질서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두 줄로 나뉜 대기선을 따라 사람들이 가지런히 서 있었습니다. 앞사람과의 간격도 일정했습니다. 누구 하나 큰 소리로 떠들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들도 조용히 아이를 달래며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저는 눈을 비먴습니다. 코너가 과장한 게 아니었습니다. 줄이 조금씩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앞에서 중년 남자가 실수로 캐리어를 옆사람 발등 위로 굴렸습니다. 저는 순간 긴장했습니다. JFK였다면 와터 하는 고함이 터지고 매니저를 찾는 소동이 벌어졌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발을 밟힌 여성이 괜찮다며 손을 저었고 실수한 남자는 깊이 고개를 숙여 사과했습니다.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아무 소란도 없었습니다. 제 차례가 왔습니다. 입국심사관은 젊은 여성이었는데 무표정하지만 정중한 태도로 여권을 확인했습니다. 방문 목적을 묻고 체류 기간을 확인한 뒤 도장을 찍어줬습니다. 전체 과정이 1분도 안 걸렸습니다. 빠르지만 기계적이지 않았고 차갑지만 무례하지 않았습니다. 수하물을 찾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컴베이어 벨트 주변에 이미 수십 명이 모여 있었는데 여기서도 사람들은 질서 정연했습니다. 자기 짐이 나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가 짐이 나오면 재빨리 집어들고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빠르게 비켜갔습니다. 한 노인이 무거운 짐을 들어 올리려 애쓰자 옆에 있던 젊은이가 자연스럽게 다가와 들어줬습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요. 고맙다는 인사의 젊은이는 그냥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자기 짐을 찾으러 돌아갔습니다.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요. 저는 23년간 CNN 다큐를 만들면서 전 세계 공황을 다녀봤습니다. 뉴욕 JFK LA 국제공항 런던이 드로우 파리 샤를 드골 소위 선진국 공항들도 이 정도 질서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감시도 통제도 없이 질서가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코너가 말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자랑하던 시스템이 사실은 사람을 못 믿어서 만든 거라는 말 17살짜리의 감상이라고 무시했는데 직접 보니까 부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감시 카메라를 운용하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뉴욕시에만 7000만원 대가 넘습니다. 공항에는 TSA가 6만 명이 근무합니다. 우리는 감시와 통제로 질서를 만드는 나라입니다. 규칙을 세우고 벌금을 먹이고 유언을 배치해서 사람들을 관리합니다. 그런데 이 나라는 그런 것 없이도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노트를 꺼내 이렇게 적었습니다. 첫 번째 충격 감시 없는 질서 그리고 그 밑에 하나를 더 적었습니다. 질문 이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이렇게 된 걸까? 저는 그 질문 하나를 들고 서울 시내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서울의 새벽 거리를 혼자 걷게 되면서 저는 23년간 전쟁터를 누비며 한 번도 느끼지 못한 감정을 처음 느꼈습니다. 그날 밤 저는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14시간 시차가 몸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호텔 침대에서 2시간을 뒤척이다가. 결국 포기했습니다. 새벽 두 시였습니다. 답답해서 밖에 좀 나가기로 했습니다. 로비로 내려가는데 프론트 직원이 물었습니다. 산책하시려고요? 이쪽으로 나가시면 편의점도 있고 강변 산책로도 가까워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습니다. 새벽 2시에 외국인 여자가 혼자 나간다는 건데. 걱정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습니다. 호텔 문을 나서는 순간 저는 본능적으로 몸이 긴장하는 걸 느꼈습니다. 23년간 몸의 벤 습관입니다. 바그다드에서든 칸다에서든 뉴욕에서든 어두운 거리에 나서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습니다. 주변을 살핀다. 어두운 골목을 확인한다. 손에 뭔가를 쥔다. 차 열쇠 등 호신용 스프레이든 뭐라도 쥐어야 마음이 놓입니다. 이어폰은 절대 양쪽 다 끼지 않습니다. 한쪽 귀는 반드시 열어둡니다.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야 하니까요. 미국 여자라면 누구나 아는 규칙입니다. 해가 지면 경계 모두가 시작됩니다. 이건 뉴욕이든 보스턴이든 LA든 시카고든 미국 어느 도시든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23년간 그렇게 살았습니다. 전쟁터에서만이 아니라 제가 사는 맨해튼에서도요. 그런데 서울의 새벽 두 시는 달랐습니다. 호텔 앞거리로 나왔는데 어둡지 않았습니다. 가로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켜져 있었고 편의점 불빛이 골목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거리는 조용했지만 무섭지 않았습니다. 무섭지 않다는 게 이상했습니다. 새벽 2시인데 무섭지가 않다니 천천히 걸었습니다. 골목을 하나 지나고 큰 길로 나왔습니다. 편의점이 보였습니다. 안에 사람 서너 명이 앉아서 라면을 먹고 있었습니다. 평범한 풍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눈에는 전혀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새벽 2시에 유리벽으로 된 가게 사람들이 문도 안 잠그고 앉아 있다는 게요. 맨해튼 브롱스의 새벽 2시를 아십니까? 편의점 카운터 앞에 방탄유리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돈은 작은 회전판을 통해서 주고받습니다. 직원과 손님 사이에 물리적 장벽이 있는 겁니다. 강도를 막으려고요. 그게 미국 편의점의 일상입니다. 여기는 유리벽도 없고 방탄유리도 없고 경비원도 없었습니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계속 걸었습니다. 그때 앞에서 한 사람이 걸어오는 게 보였습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습니다. 혼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여성의 모습에서 저는 심장이 멈추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어폰을 양쪽 다 끼고 있었습니다. 핸드폰 화면을 보면서 걷고 있었습니다. 뒤도 안 돌아봤습니다. 주변을 경계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냥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새벽 2시에 혼자서 이어폰 양쪽 다 끼고 어두운 골목을 지나면서 저는 그 자리에 멈춰섰습니다. 뉴욕에서 이 장면은 불가능합니다. 보스턴에서도 불가능합니다. LA에서도 시카고에서도 디트로이트에서도 불가능합니다. 미국의 어떤 도시에서도 새벽 2시에 여자 혼자 이어폰 양쪽 끼고 골목을 걷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미국 여성들은 열쇠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걷습니다. 무기처럼요. 주차장에서 차까지 걸어가는 30초가 하루 중 가장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대학 캠퍼스에는 비상 호출기가 50 m마다 설치되어 있고 그래도 학생들은 혼자 걷기를 피합니다. 에스코트 서비스라는 게 있습니다. 밤에 혼자 기숙사까지 걸어가기 무서운 학생을 위해 같이 걸어주는 사람을 파견하는 서비스입니다. 미국 최고 대학들에 다 있습니다. 그게 미국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20대 여성이 새벽 두 시에 이어폰 양쪽 닦고 핸드폰을 보면서 걷고 있었습니다.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경계가 없었습니다. 그냥 집에 가고 있었습니다. 당연한 일이라는 뜻이요. 저는 이라크에서 폭격을 맞으면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았습니다. 아프간에서 총성이 울릴 때도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23년간 전쟁터를 누비면서 무서움이라는 감정은 어딘가에 봉인해 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서울의 새벽 두 시 거리에서 저는 생애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제가 봉인한 건 무서움이 아니었습니다. 안전하다는 감각 자체를 잊고 살았던 겁니다. 미국에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각이었습니다. 방탄조끼 없이도 괜찮다는 느낌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된다는 느낌 열쇠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지 않아도 된다는 느낌 그게 안전이었습니다. 23년간 전쟁터를 누빈 사람이 안전이 뭔지 모르고 살았다는 게 말이 됩니까? 말이 안 됩니다. 그런데 사실이었습니다. 좀 더 걸었습니다. 강변 산책로에 도착했습니다. 새벽 3시가 가까운 시간인데 조깅하는 사람이 2명 보였습니다. 벤치 자리에 앉아 있는 커플도 있었습니다. 아무도 서로를 경계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보고도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외국인 여자가 새벽에 혼자 산책로를 걷고 있는데 신기하게 보는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그게 당연한 풍경이니까요. 저는 벤치에 앉았습니다. 한강의 불빛이 수면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왜 울었냐고요. 화가 났기 때문입니다. 제 나라에 화가 났습니다. 미국은 세계 최강국이라고 자부합니다. GDP 세계 일 위 군사력 세계 일 위 그런데 제 나라 여성들은 새벽에 혼자 걷지 못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세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안전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미국의 연간 총기 사망자 수가 4만 명을 넘습니다.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많습니다. 매년 600 건 이상의 대규모 총격 사건이 발생합니다. 미국 여성의 3분의 일 이상이 살면서 한 번은 폭력 피해를 경험했습니다. 운동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여자가 새벽 2시에 이어폰 끼고 걷습니다. 저는 노트를 꺼내 이렇게 적었습니다. 두 번째 충격 공포 없는 밤 그리고 그 밑에 적었습니다. 이 나라를 지키는 건 경찰도 아니고 감시 카메라도 아니다. 뭔가 다른 것이 이 나라를 지키고 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편의점 앞을 지났습니다. 아까 그 사람들이 여전히 앉아 있었습니다. 라면 그릇은 치워져 있었고 이번엔 커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편의점 주인은 카운터에서 졸고 있었습니다. 방탄율이 하나 없는 새벽에 편의점 졸고 있는 주인 문은 여전히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저는 그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이건 반드시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인들이 이걸 보면 믿지 못할 테니까요. 새벽 3시에 문이 열린 가게에서 주인이 잠을 자고 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다큐 소재가 아니라 뉴스 속보감입니다. 방에 돌아와서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공항에서 본 500명의 줄 새벽거리에 그 여성 방탄율이 없는 편의점 모든 장면이 머릿속에서 맴돌았습니다. 코너의 말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자랑하던 시스템이라는 게 사실은 사람을 못 믿어서 만든 거라는 말 17살짜리의 감상이라고 치부했던 그 말이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습니다. 공황의 질서는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낮에 일이니까 사람이 많으니까 어떻게든 설명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벽 두 시는 다릅니다. 아무도 안 보는 시간입니다. 감시도 없고 시선도 없고 체면도 없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에 이 나라가 보여준 모습은 낮보다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아무도 안 볼 때 드러나는 게 진짜 모습이니까요. 미국은 아무도 안 보면 법을 어깁니다. 과속 카메라가 없는 도로에서는 속도 제한을 지키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경찰이 없는 교차로에서는 정지 신호를 무시합니다. 아무도 안 보면 규칙은 사라집니다. 그래서 더 많은 카메라를 달고 더 많은 경찰을 배치하고 더 높은 벌써 벌금을 매깁니다. 감시가 질서의 전제 조건인 나라 그게 미국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는 아무도 안 보는 새벽 두 시에도 질서가 살아 있었습니다. 편의점 문은 열려 있었고 주인은 졸고 있었고 여성은 혼자 걸어가고 있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감시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이 나라를 지키고 있다. 그게 뭔지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반드시 알아내겠다. 저는 그렇게 다짐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몇 시간 뒤 아침이 오면 서울 지하철을 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지하철 안에서 벌어진 일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찾아간 한국 응급실에서 목격한 광경은 미국인으로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8시 서울 시내 취재를 위해 지하철을 타기로 했습니다. 호텔 직원이 가장 가까운 역까지 걸어서 10분 거리라고 알려줬습니다. 거리에 나서자마자 출근하는 사람들의 물결이 보였습니다. 정장을 입은 직장인들 교복을 입은 학생들 운동복 차림의 노인들까지 다양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게 있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지 않았습니다. 좁은 인도였습니다. 뉴욕타임스퀘어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오른쪽으로 걸었습니다.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들은 왼쪽으로 걸었고요. 급한 사람은 빠르게 앞질러 갔고 천천히 가는 사람은 슬쩍 옆으로 비켜섰습니다. 아무도 지시하지 않았습니다. 신호도 없고 안내 표지판도 없었습니다. 수천 명이 동시에 움직이는데 마찰이 없었습니다. 뉴욕 거리에서는 어떻습니까? 한 블록 걸으면 서너 번은 어깨를 부딪힙니다. 관광객을 욕하면서 비켜가는 게 뉴욕허이 출근 루틴이고. 좁은 길에서 서로 양보하지 않아서 혀를 차고 어깨를 밀치며 지나가는 게 일상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마치 안무를 짠 것처럼 사람들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지하철역 입구에 도착했을 때 저는 또 한 놀랐습니다. 경비원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뉴욕 지하철이라면 어떻습니까? 역마다 MTA 경찰이 서 있고 대형역에는 내셔널가드가 자동 소총을 들고 상주합니다. 개찰구에는 무임승차를 막으려고 요원이 붙어 있고 그래도 뛰어넘는 사람이 하루에 수천 명입니다. 뉴욕 씨가 모임 승차로 잃는 돈이 연간 7억 달러가 넘습니다. 군인까지 배치해도 못 막는 거죠. 그런데 여기는 그냥 교통카드를 찍고 지나가면 끝이었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여기서도 사람들은 오른쪽으로 걸었습니다. 올라오는 사람들은 왼쪽을 이용했고요. 에스컬레이터에서 더 놀라운 광경을 봤습니다. 모든 사람이 오른쪽에만 서 있고 왼쪽은 완전히 비어 있었습니다. 급한 사람들이 왼쪽으로 빠르게 걸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잠깐 이건 뉴욕에도 있는 규칙입니다. 서 있을 사람은 오른쪽에 뉴욕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도 같은 규칙이 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습니다. 뉴욕에서는 그 규칙을 안 지키는 사람 때문에 매일 싸움이 벌어집니다. 관광객이 왼쪽에 서 있으면 뒤에서 무부가 점점 거칠어지고 혀를 차고 가방을 밀치며 지나갑니다. 규칙이 있어도 지키지 않는 사람 때문에 규칙 자체가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겁니다. 여기서는 달랐습니다. 외국인까지 포함해서 모든 사람이 자연스럽게 오른쪽에 섰습니다. 아무도 왼쪽에 서지 않았습니다. 갈등이 없었습니다. 규칙이 갈등 없이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승강장으로 내려갔습니다. 바닥에 노란 선이 그어져 있었고 사람들이 그 선 앞에 두 줄로 서 있었습니다. 그 선이 정확히 지하철 문이 열리는 위치였습니다. 지하철이 들어왔습니다. 문이 열리자 안에서 내리는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양옆으로 비켜서서 길을 만들어 줬습니다. 마지막 사람이 내릴 때까지 아무도 타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차례대로 탑승했습니다. 뉴욕 지하철 출퇴근 시간을 아십니까? 문이 열리면 전쟁입니다. 내리는 사람과 타는 사람이 동시에 움직이며 서로 가방이 끼고 욕설이 오갑니다. 내리는 분 먼저라는 안내 방송은 배경 음악일 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안내 방송조차 필요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알아서 했습니다. 차 안에 들어갔습니다. 조용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이어폰을 끼고 있거나 핸드폰 화면을 보고 있었는데 전화 통화를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뉴욕 지하철에서 들리는 소음의 절반은 큰 소리로 통화하는 사람들이 만듭니다. 여기서는 그 소음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하철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미국은 시스템으로 질서를 만드는 나라입니다. 법을 세우고 규칙을 만들고 카메라를 달고 벌금을 먹이고 군인까지 배치합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규칙을 어기고 시스템은 끊임없이 사람을 감시해야 합니다. 미국의 질서는 감시 위에 세워진 질서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의 질서는 달랐습니다. 감시도 없고 벌금도 없고 경비원도 없는데 사람들이 스스로 질서를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이건 시스템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의 문제입니다. 미국이 250년간 자랑해 온 법 삼권분립 수정헌법 그 모든 것은 결국 사람을 못 믿기 때문에 만든 장치가 아닙니까? 권력을 나누고 서로 견제하게 만든 건 인간은 권력을 가지면 반드시 남용한다는 전제 위에 세운 겁니다. 규칙이 없으면 혼란에 빠진다는 불신 위에 세운 겁니다. 그런데 이 나라 사람들은 최소한의 안내만으로도 질서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감시가 아니라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질서였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뭐가 이 사람들을 이렇게 만든 겁니까? 저는 노트에 적었습니다. 세 번째 충격 규칙이 아니라 내면의 질서 그리고 바로 그날 오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촬영 스태프 중 한 명인 카메라멘토비가 취재 현장에서 대단을 내려가다 발을 허트렸습니다. 발목이 심하게 꺾였고 순식간에 순식간에 퉁퉁 부어올랐습니다.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골절이 의심됐습니다. 저는 즉시 가까운 병원을 검색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병원보다 먼저 떠오른 건 비용이었습니다. 미국인이라면 당연한 반응입니다. 미국에서는 아프기 전에 먼저 지갑을 걱정합니다. 미국에서 구급차를 부르면 그것만 3000달러입니다. 하나로 400만원이 넘습니다. 응급실 문을 들어서면 거기서부터 위터기가 돌아갑니다. 엑스레이 1장에 500 달러 의사 상담 10분의 800달러 깁스를 하면 2000 달러 추가 보험이 있어도 본인 부담금이 수백 달러고 보험이 없습니다. 파산합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미국에서 개인 파산의 60% 이상이 의료비 때문입니다. 세계 일의 경제 대국에서 병원비 때문에 집을 잃는 겁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아파도 병원을 안 갑니다. 손가락이 부러져도 YouTube 보고 직접 부목을 댑니다. 이가 아파도 팬치로 지켜봐 직접 뽑는 사람이 있습니다. 웃기지 않습니다. 현실입니다. 선진국이라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현실이에요. 토비는 미국 보험이 있었지만 해외에서 적용이 될지 불확실했습니다. 저는 일단 택시를 잡아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최악의 경우 수천 달러는 각오해야 한다고 토비에게 말해줬습니다. 응급실에 도착했습니다. 접수 창고에서 여권을 보여주고 증상을 설명했습니다. 여기서부터 이미 달랐습니다. 미국 응급실에서는 접수만 하는데 30분에서 1시간이 걸립니다. 보험 확인하고 서류 쓰고 동의서에 서명하고 개인 정보 입력하고 아파서 죽겠는데 서류가 먼저입니다. 여기서는 5분이 채 안 걸렸습니다. 간단한 인적 사항을 적고 바로 대기실로 안내받았습니다. 20분 뒤에 의사를 만났습니다. 미국 응급실 평균 대기 시간이 3시간에서 4시간인 걸 생각하면 믿기 어려운 속도였습니다. 의사는 토비의 발목을 조심합니다. 꿈속에 살펴보더니 엑스레이를 찍자고 했습니다. 촬영실로 이동해서 엑스레이를 찍고 다시 진료실로 돌아왔습니다. 다행히 골절은 아니었고 심한 염자였습니다. 의사가 처방을 내렸습니다. 압박 붕대를 감아주고 소염제와 진통제를 처방했습니다. 물리치료 안내도 해줬습니다. 모든 과정이 친절했고 설명이 명확했습니다. 접수부터 처방까지 총 2시간이 채 안 걸렸습니다. 미국이었다면 접수의 1시간 대기의 3시간 진료의 1시간 최소 5시간은 가고해야 합니다. 그것도 운이 좋으면요. 수납 창고로 갔습니다. 저는 단단히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직원이 금액을 알려줬습니다. 토비가 보험이 없는 외국인이라 100% 본인 부담이었습니다. 응급 진료비 엑스레이 처치 약 처방 전부 포함해서 7만원 저는 직원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7만원이요? 달러가 아니라 원이요?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7만원 미국 돈으로 50 달러 남짓이었습니다. 저는 토비를 쳐다봤습니다. 토비도 저를 쳐다봤습니다. 둘 다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미국에서 같은 치료를 받으면 보험 없이 최소 3천 달러에서 5천 달러입니다. 한화로 400만원에서 700만원 구급차를 불렀으면 거기에 3000 달러가 추가됩니다. 토비가 만약 미국에서 다쳤다면 발목 염좌 하나에 1000만원 가까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7만원이었습니다. 뉴욕에서 괜찮은 버거 세트 두 개 값입니다. 토비가 말했습니다. 레이첼 이거 실화야? 싫어였습니다. 병원을 나오면서 저는 노트에 적었습니다. 네 번째 충격 생존의 비용이 다르죠. 그리고 밑에 하나 더 적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아프면 파산한다. 이 나라에서는 아프면 치료받는다. 같은 선진국인데 하나는 아픈 게 공포고 하나는 아픈 게 그냥 아픈 것이다. 세계 최강국이라는 나라에서 병원비가 공포인 게 정상입니까? GDP 세계 1위인 나라에서 구급차를 부를까 말까 고민하는 게 정상입니까? 뼈가 부러져도 YouTube 보고 직접 부목을 대는 나라가 선진국입니까? 저는 그 질문을 들고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공항의 질서 새벽거리가 고리 안전 지하철의 배려 그리고 응급실의 7만원 아직 이틀밖에 안 지났는데 이미 머릿속이 뒤집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셋째 날 KTX라는 고소열차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2시간 15분 만에 이동한 순간 저는 캘리포니아 고속철도에 쏟아 부은 1000억 달러가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셋째날 아침 저는 서울역에서 섰습니다. 부산 취재 일정이 잡혀 있었습니다
KTX를 타면 2시간 15분이면 도착한다고 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가 약 400km입니다 뉴욕에서. 워싱턴 DC까지와 비슷한 거리예요. 뉴욕에서. 워싱턴까지 암트랙을 타면 최소 세 시간 반이 걸립니다. 그것도 정 씨에 출발하면요. 암트랙은 지연이 일상입니다. 30분 늦는 건 양반이고 한 시간 두 시간 늦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좌석은 낡았고 WiFi는 끊기고 화장실은 말을 안 하겠습니다. KTX 엑스탑승구에 도착했습니다. 출발 5분 전이었는데 이미 승객들이 질서 정연하게 줄을 서 있었습니다. 당연하다는 뜻이요. 이 나라에서는 줄을 서는 게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았습니다. 열차에 올랐습니다. 좌
깨끗했습니다. 넓었습니다. 각. 좌석마다 충전 포트가 있었고 WiFi가 잡혔습니다. 차네가. 조용했습니다. 지하철에서. 봤던
같았습니다. 통화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정확히. 출발 시간에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오차도 없었습니다. 창밖으로 서울 시내가
지나가고 고틀판과 산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속도계를. 확인했습니다. 시속. 300km 흔들림이 거의 없었습니다. 커
올려 놓았는데 수면이 살짝 흔들리는 정도였습니다. 2시간. 15분 뒤에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정확히 두. 시간 15분이었습니다. 저는 좌석에. 앉은 채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떠오르는 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캘리포니아 고속철도.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름입니다 많은
자랑스러워서가 아닙니다. 부끄러워서입니다. 캘리포니아. 고속철도는 LA와 샌프란시스코를 잇는 프로젝트입니다. 두. 도시 사이 거리가 약 600km 서울에서 부산보다 좀 더 먼 거리입니다. 2. 프로젝트를 승인한
2008년입니다 당시. 예산이 330억 달러였습니다 한화로. 약 45 조 원 지금 얼마가 됐는지 아십니까? 1000억? 달러를 넘었습니다. 한화.
40 조 원이 넘습니다. 처음 예산의. 세 배가 넘게 불어났습니다. 그런데 완공이. 됐냐고요. 안 됐습니다. 아직도 공사. 중입니다. 첫 삽을. 뜬 지 10년이 넘었는데 열차가
번도 달리지 않았습니다. 현재. 완공 예정이 2030년대인데 그것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2040년지도 어려울 수 140 조 원을 들이붓고 10년이 넘
열차 한 대 못굴리는 나라가 있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2시간 15분 만에 사람을 실어 나르는
가 있습니다. 저는 부산역 플랫폼에 서서 생각했습니다. 이건 돈에 문제가 아니구나. 140
40 조 원이면 모자랄 게 없습니다. 돈은 쏟아 부었는데 결과가 없다. 그건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
쓰는 사람과 시스템이 문제라는 뜻입니다. 부산 취재를 마치고 다시 KTX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습니다. 왕복 4시간 반 미국이었다면 암트랙으로 편도만 7시간이 걸렸을 거리를 왕복하고도
남았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가이드가 인천 송도에 들르자고 제안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앞선 스마트시티 중 하나라고 했습니다.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스마트시티라는 말은 미국에서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습니다. 실리콘밸리가 매년 스마트시티를 외치지만 정작 샌프란시스코
서구 거리에는 노숙자 텐트가 가득하고 도로에는 구덩이가 넘칩니다. 예쁜 프레젠테이션만 있고
은 엉망인 경우를 너무 많이 봤습니다. 송도에 도착하자마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도로
도로였습니다. 차들이 막힘없이 부드럽게 흘러갔습니다. 신호 대기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가이드가 설명했습니다.
인공지능이 실시간으로 교통량을 분석해서 신호 시간을 자동으로 조절한다고요 차가 많은 방향은 길게 적은 방향은 짧게 맨해튼의 신호 시스템은 수십 년 전에 설계된 겁니다 고정된 타이밍으로 돌아갑니다 타임
택시를 타면 2km인데 신호에 걸려서 20분이 넘게 걸릴 때가 있습니다 뉴욕하라면 누구나. 공감할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신호가 살아 있었습니다 공원으로 들어갔습니다 벤치가 있었는데. 그냥 벤치가 아니었습니다 팔걸이 부분에. 태양광 패널이 달려 있었고 핸드폰 충전 포트가 내장되어 있었습니다. 앉아서 쉬면서. 전화기를 충전할 수 있게 만든 겁니다. 벤치 옆에는. 작은 화면이 있었는데 현재 기온 습도 미세먼지 농도가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있었습니다. 센트럴파크 벤치에서. 핸드폰 충전을 한다고요. 좋은 농담이군요. 센트럴파크 벤치는 악서로 덮여 있고 페인트가 벗겨져 있고 운이 나쁘면 껌이 붙어 있습니다. 길을 따라 걷다가 쓰레기통을 발견했습니다. 위쪽의 태양광 패널이 달려 있었습니다. 가이드가 설명했습니다. 이 쓰레기통은 내부 센서로 쓰레기가 얼마나 찼는지 감지해서 80% 정도 차면 자동으로 청소 부서에 신호를 보낸다고요. 뉴욕 거리에 쓰레기통을 아십니까? 금요일 밤 맨 등 거리를 걸어 보면 쓰레기통이 터질 듯이 차있고 그 주변으로 봉투와 컵이 넓어져 있습니다. 쥐가 돌아다닙니다. 뉴욕 씨가 쥐와의 전쟁을 선포한 게 뉴스가 되는데요. 맞는 나라입니다. 줄이 퇴치 담당관이라는 직책까지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쓰레기통이 스스로 알려주니까 항상 깨끗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가로등도 특별했습니다. 기둥 중간에 작은 상자가 달려 있었는데 대기질 측정 센서라고 했습니다. 도시 곳곳에 가로 등에 센서가 달려 있어서 실시간으로 공기 상태를 측정하고 그 정보가 시청으로 전송된다는 겁니다. 특정 지역 공기질이 나빠지면 즉시 원인을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뉴욕에서는 가로등 전구 하나 갈아 끼우려면 시청의 민원을 넣고 몇 달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 사이에 어두운 골목에서 사건이 터지면 그제야 난리가 나고요. 하지만 제가 정말 가슴이 뜨거워진 건 기술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신호등 기둥의 작은 버튼이 있었습니다. 휠체어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누르면 신호 시간이 길어진다고 했습니다. 거동이 불편합니다. 편한 사람들이 여유 있게 건널 수 있도록 만든 겁니다. 인도에는 점사 블록이 깔려 있었고 음향 신호기도 있어서 신호가 바뀌면 소리로 알려졌습니다. 미국은 장애인 권리법의 선구자입니다. ADA 세계에서 가장 앞선 장애인 보호법 중 하나라고 자부합니다. 실제로 미국의 장애인 접근성은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하지만 법으로 만든 접근성과 마음에서 우러나온 접근성은 달랐습니다. 미국의 장애인 시설은 법이 요구하기 때문에 설치됩니다. 최소 기준을 맞추면 됩니다. 의문이니까요. 하지만 송도에서 본 것들은 법적 의무를 넘어선 배려가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횡단보도 신호 시간을 늘려주는 버튼 가로등마다 달린 대기질 센서 쓰레기통이 스스로 보내는 신호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철학을 가져왔습니다. 기술은 도구일 뿐입니다. 중요한 건 그 기술을 누구를 위해 쓰느냐입니다. 캘리포니아 고속철도는 사람을 이동시키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140 조 원을 써서 열차 한 대 못 굴리고 있습니다. 송도의 기술은 사람을 돌보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벤치아나 쓰레기통 하나 가로등 하나까지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기술로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이 나라는 기술로 사람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같은 기술인데 방향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저는 노트에 적었습니다. 다섯 번째 충격 기술의 목적이 다르다. 그리고 그 밑에 하나를 더 적었습니다. 140조 원으로 열차 하나 못 만드는 나라가 있고 벤치와 쓰레기통까지 똑똑하게 만든 나라가 있다. 문제는 돈이 아니다. 방향이다. 그런데 넷째 날 저는 경복궁이라는 궁궐 앞에서 스미소니언 박물관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금속 탐지기를 찾다가 찾을 수 없었을 때 저는 미국 교육이 세계 최고라는 마지막 자존심마저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넷째 날 아침 경복궁을 방문했습니다.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에는 스미소니언이 있지 않습니까? 워싱턴 dc 내셔널몰에 늘어선 19개 박물관 인류 역사의 보물을 한 곳에 모아놓은 세계 최대 규모의 박물관 단지입니다. 뉴욕에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있고요. 이집트 신전을 통째로 옮겨놓은 곳입니다. 동양의 궁궐 하나가 그것과 비교가 되겠습니까? 저는 속으로 스미소니언이 압도적으로 났다는 결론을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경복궁에 들어서는 순간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화려하지는 않았습니다. 스미소니언처럼 거대한 돈도 없고 메트로폴리탄처럼 그리스 신전 기둥을 본뜬 정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단정하고 품위가 있었습니다. 건물의 처마 곡선 기둥의 배치 돌바닥과 마당까지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스미소니언이 세계의 것을 가져와 쌓아 놓은 농장암이라면 경복궁은 자기 것을 자기 땅에서 가까운 우아함이었습니다. 다른 종류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저는 비교를 멈췄습니다. 하지만 제가 진짜 놀란 건 건물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었습니다. 궁궐 곳곳에 관광객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조용히 걸으며 구경했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도 다른 사람을 배려해서 빨리 찍고 비켜줬습니다. 아이들도 뛰어다니지 않고 부모 손을 잡고 걸었습니다. 출입 금지 구역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스미소년에서는 어떻습니까? 전 시물 앞에서 셀카를 찍느라 소란을 피우는 관광객이 끊이지 않습니다. 노 터치 표지판 바로 옆에서 전시물에 손을 대는 사람이 있고 경비원이 주위를 줘도 웃으며 넘기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세계적인 유물 앞에서도 질서는 경비원의 몫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경비원이 거의 보이지 않는데도 관광객들이 스스로 질서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공항에서 지하철에서 새벽 거리에서 그리고 이 궁궐에서 어디를 가든 같은 광경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장면이 있었습니다. 어떻습니까? 한복이라는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궁궐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분홍색 하늘색 노란색 초록색까지 화려한 색상들이었는데 촌스럽지 않고 우아했습니다. 그런데 한복을 입은 사람들 중에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아 보였습니다. 미국인 프랑스인 중동인 아프리카인 동남아시아인까지 정말 다양한 나라 사람들이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으며 행복해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스미소년이 떠올랐습니다. 스미소년에는 뭐가 있습니까? 아메리카 원주민의 유물이 있습니다. 이집트의 보물이 있습니다. 아시아의 도자기가 있습니다. 전부 다른 문화에서 가져온 겁니다. 메트로폴리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집트 덴드루 신전을 통째로 뜯어와 전시하고 있습니다. 그 리스의 조각상 아프리카에 가면 아시아의 불상 세계 국가 곳곳에서 수집했거나 좋게 말하면 구입했거나. 솔직하게 말하면 제국주의 시대에 가져온 것들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 나라들이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는 파르테논 마블 반안을 수십 년째 주장하고 있고 이집트는 대형 박물관에 있는 로제 타석을 되찾겠다며 국제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들은 조상의 유골과 성물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미국 정부 상대로 수백 건 넘게 제기했습니다. 한국은 정반대였습니다. 다른 나라 문화를 가져오는 게 아니라 자기 문화를 세계에 나눠 주고 있었습니다. 외국인에게 한복을 입혀 주고 함께 사진을 찍고 함께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빼앗는 문화와 나누는 문화 저는 그 순간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습니다. 미국은 세계의 문화를 소유하려 했습니다. 배에 실어 비행기에 싫어 미국으로 가져와 유리관 안에 넣었습니다. 그것을 문화 강국이라고 자부했습니다. 한국은 자기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가져가라고 내어 주고 입어 보라고 건네주고 함께 즐기자고 손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세계인들이 행복해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쪽이 진짜 문화 강국입니까? 궁궐을 나오면서 저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미국 문화를 진정으로 자랑스러워한 적이 있는가? 스미소니언을 자랑하면서 정작 그 유물들의 원래 주인들은 무시하지 않았는가.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를 내세우면서 정작 미국 거리에 무질서는 외면하지 않았는가? 한국 사람들은 자기 문화를 사랑하면서도 다른 문화를 존중했습니다. 빼앗지 않고 나누었습니다. 닫지 않았습니다. 열었습니다. 그게 진짜 문화 강국의 모습이라는 걸 저는 경복궁에서 배웠습니다. 하지만 경복궁에서 받은 감독은 서국에 불과했습니다. 그날 오후 저는 서울의 한 고등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코너가 수학 여행 때 다녀왔다는 바로 그 학교였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직접 안내를 해 주셨습니다. 학교 정문에 도착했을 때 저는 무의식적으로 무언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입구를 지나면서야 깨달았습니다. 금속 탐지기를 찾고 있었던 겁니다. 없었습니다. 금속 탐지기가 없었습니다. 미국 학교를 아십니까? 미국의 거의 모든 공립 학교에는 정문에 금속 탐지기가 있습니다. 학생들은 매일 아침 가방을 열어서 검사를 받고 금속 탐지기를 통과해요. 교실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공항 보안 검색과 똑같은 절차를 학교에서 메일하는 겁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총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이 일상입니다. 일상이라는 표현이 끔찍하지만 사실입니다. 매년 수십 건의 학교 총격 사건이 발생합니다. 초등학생들이 락다운 드리리라는 걸 합니다. 총소리가 들리면 교실 문을 잠그고 불을 끄고 책상 밑에 숨는 훈련입니다. 여섯 살짜리 아이들이 그걸 매달 연습합니다. 선생님들한테는 총격범이 들이닥쳤을 때 어떻게 그렇게 아이들을 보호할지 매뉴얼이 배포됩니다. 이게 미국 교육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 학교에는 금속 탐지기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그냥 정문을 지나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가방 검사도 없었습니다. 경비원도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웃고 있었습니다. 친구 어깨에 팔을 두르고 떠들면서 교실로 걸어갔습니다. 저는 정문 앞에 서서 한동안 그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눈이 뜨거워졌습니다. 이게 학교의 원래 모습이구나. 금속 탐지기 없이 락다운 훈련 없이 총격 공포 없이 아이들이 웃으면서 학교에 가는 것 이게 당연한 거구나. 미국이 비정상이었구나. 교실에 들어갔을 때 첫 번째로 눈에 띈 건 책상 배치였습니다. 책상이 일렬로 늘어선 게 아니라 네 개씩 모여 있었습니다. 네 명이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수업이 시작됐습니다. 수학 시간이었는데 선생님이 문제를 칠판에 적고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풀면 될까요? 여러 학생이 손을 들었고 선생님이 한 학생을 지목했습니다. 그 학생이 자신있게 일어나 자기 생각을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답이 틀렸습니다. 저는 긴장했습니다. 미국 명문 학교라면 어떻게 됩니까? 선생님이 즉시 오류를 지적합니다. 다른 학생에게 더 나은 답을 요구합니다. 틀린 학생은 창피를 당합니다. 실수는 곧 약점이고 약점을 보이면 경쟁에서 밀립니다. 여기서는 달랐습니다. 선생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좋은 시도였어요. 여기까지는 맞았는데 이 부분에서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다른 학생들도 그 학생을 비웃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같이 고민하는 표정이었습니다. 또 다른 학생이 손을 들어 다른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선생님은 그것도 훌륭하다며 칠판에 적었습니다. 한 문제를 푸는데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수업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어려운 문제를 내고 개별로 풀어보라고 했습니다.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앉아 토론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조를 유심히 지켜봤습니다. 네 명 중 한 명은 수학을 잘하는 것 같았고 한 명은 어려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잘하는 학생이 못하는 학생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천천히 설명해 주며 이해할 때까지 기다려줬습니다. 미국 명문학교라면 어떻습니까? 잘하는 학생이 혼자 풀어서 조 점수를 올립니다. 못하는 학생은 기여할 게 없으니 구경합니다. 그게 효율적이라고 배웁니다. 결국 그 조는 네 명이 함께 답을 찾았고 모두가 기뻐하며 손바닥을 마주쳤습니다. 못하던 학생이 가장 크게 웃었습니다. 쉬는 시간에 영어를 잘하는 한 학생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물었습니다. 너희 반 목표가 뭐냐? 그 학생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전원 합격이요. 모두가 원하는 대학에 가는 게 목표예요. 저는 이해가 안 됐습니다. 대학 정원은 정해져 있는데 어떻게 전원이 가능해요? 합격하냐?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거 아니냐 그 학생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물론 같은 대학에 다가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각자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도록 서로 돕는 거예요. 공부 잘하는 친구는 못하는 친구를 가르쳐 주고 특정 과목 잘하는 친구는 노트를 공유해요. 그러면 혼자 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거 아니냐? 오히려 가르쳐 주면서 더 확실하게 이해하게 돼요. 혼자 공부할 때보다 함께할 때 더 많이 배워요.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미국 명문학교의 목표는 아이비리그 합격률입니다. 엑서터 졸업생의 상당수가 하버드 예일 프리스턴에 갑니다. 그것이 엑서터의 자랑입니다. 하지만 그건 경쟁의 결과이지 협력의 결과가 아닙니다. 엑서터에서 친구의 노트를 공유한다고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건 경쟁우위를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니까요. 그런데 이 나라 학생들은 경쟁우위를 나눠줍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게 오히려 모든 모두에게 이롭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금속 탐지기 없는 정문 틀린 답에 칭찬하는 선생님 전원 합격을 목표로 하는 반 이게 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거라는 걸 저는 느꼈습니다. 사람을 믿는다는 것 함께 간다는 것 미국이 잃어버린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학교를 나오면서 저는 노트에 적었습니다. 여섯 번째 충격 경쟁이 아니라 협력 공항에서 새벽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응급실에서 고소 열차에서 스마트 시티에서 궁궐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닷새 동안 이 나라의 모든 곳에서 같은 것을 봤습니다. 감시 없이 질서가 돌아가고 통제없이 배려가 작동하고 경쟁 대신 협력을 가르치는 나라 60년 전만 해도 세계 최빈국이었다는 이 나라가 어떻게 이렇게 됐는지 그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섯째 날 저녁 코너를 다시 만났습니다. 여섯째 날에는 서울대학교에서 교수를 만났습니다. 그 교수에게 들은 이야기가 5일간의 모든 퍼즐을 맞춰줬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저는 물었습니다. 다섯째 날 저녁이었습니다. 저는 코너를 서울 시내 한 카페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코너는 수학 여행 이후 한국이 너무 궁금해서 방학을 이용해 혼자 다시 왔다고 했습니다. 17살짜리가 부모 반대를 무릅쓰고 혼자 비행기를 탄 겁니다. 코너는 제가 며칠간 한국을 돌아봤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묻지 않아도 알겠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저는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이가 왜 그런 글을 썼는지 이제 이해한다고 코너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습니다. 모리슨 씨 저는 엑스터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배웠어요. 특권을 가진 자유의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벳푸는 거죠. 그게 미국식 리더십이라고 배웠습니다.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맥서터 교육의 핵심이니까요. 그런데 한국에서 본 건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니었어요. 코너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계속했습니다. 한국 지하철에서 정장 입은 사람이랑 대학생이 나란히 서 있는 걸 봤어요.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고급 레스토랑 사장님이 지하철 타고 출근하고 대기업 간부가 버스에서 노인한테 자리를 양보하는 거예요. 엑서터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잖아요. 저는 조용히 듣고 있었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결국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거예요. 베푸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나뉘어 있어요. 하지만 한국에서 본 건 아무도 베푼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냥 당연한 거였어요. 코너가 저를 똑바로 보며 말했습니다. 모리슨 씨 진짜 교양은 뭘까요? 저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엑서터에서 배운 교양은 포크와 나이프를 어떤 순서로 쓰느냐? 어떤 억양으로 이야기하느냐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본 교양은 달랐어요. 평범한 옷을 입고도 남을 존중하는 것 아무도 안 볼 때도 줄을 서는 것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 그게 진짜 교양이었어요. 저는 그 말에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17살짜리한테 교양이 뭔지 배우고 있었습니다. 컬럼비아를 나온 23년 차 씨에는 다큐멘터리 PD가요 고코너가 말했습니다. 저는 엑서터를 졸업하면 아이비리그가 아니라 교육학을 공부하고 싶어요. 한국식 협력 교육을 미국에 도입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물었습니다. 주변에서 뭐라고 안 하냐? 코너가 웃었습니다. 처음에는 난리였어요. 기숙사 룸메이트들한테 따돌림 당하고 아버지한테 실망한다는 소리 들었어요. 월가 헤지펀드 창업자 아들이 교육학이라고요. 한국에 홀렸다고 배신자라고 욕 먹었어요. 코너의 눈빛이 단단해졌습니다. 하지만 포기 안 했어요. 혼자서 수업 시간에 친구들 도와주기 시작하고 기숙사에서 스터디 그룹을 만들었어요. 석탈 지나니까 1명 2명 따라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지금은 10명 넘게 같이 해요. 저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변화는 위해서 명령으로 오는 게 아닙니다. 아래에서 한 사람의 깨달음에서 시작됩니다. 한국도 처음부터 일했던 게 아닐 겁니다. 누군가 먼저 시작했고 따라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그게 문화가 된 겁니다. 그런데 한국은 대체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만들어 낸 걸까요? 60년 전만 해도 세계 최빈국이었던 나라가 어떻게 시민 의식에서 미국을 넘어선 걸까요? 여섯째 날 저는 서울대학교를 찾아갔습니다. 사회학과 권도하 교수를 만났습니다. 한국의 시민 의식과 사회 변동을 35년간 연구해 온 학자였습니다. 저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한국은 어떻게 이렇게 됐습니까? 일주일간 이 나라를 돌아보면서 저는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공항에서 새벽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응급실에서 학교에서 감시 없이 질서가 돌아가고 통제없이 배려가 작동하고 경쟁 대신 협력을 가르치는 나라 60년 전만 해도 세계 최빈국이었다면서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권 교수는 잠시 저를 바라보더니 조용히 웃었습니다. 모리슨 씨 1960년 한국의 1인당 국민 소득 소득이 얼마였는지 아십니까? 모릅니다. 79 달러였습니다. 잠시 머릿속으로 계산했습니다. 그 당시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소득은 약 3천 달러였습니다. 한국이 미국의 36분의 1 수준이었습니다. 미국이 디즈니랜드를 열고 Z 여객기를 타고 교외 주택에서 잔디를 깎고 있을 때 한국은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권 교수가 계속했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 국제사회는 한국을 포기했습니다. 복구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유엔 보고서에도 한국은 앞으로 백년이 지나도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교수가 손가락을 세워 보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세계 12위 경제 대국입니다. 백년이 아니라 60여 년 만에 해냈어요. 전 세계 역사에서 이런 사례는 다들 하나도 없습니다. 물었습니다. 비결이 뭡니까? 교수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습니다. 교육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전쟁 직후 이 나라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공장도 없고 자원도 없고 돈도 없었습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땅이에요. 미국처럼 광활한 국토가 있는것도 아니었고 유럽처럼 식민지에서 자원을 가져올 수도 없었습니다. 교수가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하지만 하나가 있었습니다. 부모들의 집념이었어요. 폐허 속에서도 굶주리면서도 부모들의 자식을 학교에 보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도 책은 샀습니다. 자기는 못 배웠지만 자식만큼은 배워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버텼습니다. 저는 조용히 듣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교육에는 항상 함께라는 가치가 있었어요.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잘 살자는 거였습니다. 이웃집 아이가 학교에 못 가면 동네가 나서서 돈을 모았어요. 한 집이 어려우면 마을 전체가 도왔어요. 그게 한국인의 핵심입니다. 권 교수가 갑자기 물었습니다. 모리슨 씨 1997년에 한국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외환위기 말씀이십니까? 네 IMF 사태라고 부릅니다. 나라가 부도 직전까지 갔어요. 경제가 무너지고 기업이 줄줄이 쓰러지고 실업자가 거리에 넘쳐났습니다. 교수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그때 한국 국민들이 뭘 했는지 아십니까? 금을 모았다고 들었습니다. 네. 결혼반지 돌반지 금목걸이 자기가 가진 금을 나라에 기부했어요. 집집마다 서랍을 열어서 금을 꺼냈습니다. 교수가 숫자를 말했습니다. 350만 명이 참여했습니다. 227톤의 금을 모았습니다. 저는 숫자를 다시 그물었습니다. 350만 명이요? 네 당시 한국 인구의 10분에 1에 가까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었어요. IMF도 놀랐습니다.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나라를 구하는 나라가 어디 있냐고요? 저는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350만 명이 결혼 반지를 기부하다니 결혼 반지가 뭡니까?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에 상징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약속하며 끼웠던 반지입니다. 그걸 뺏어 나라에 내놓은 겁니다. 나라가 위기에 빠졌으니까 나 하나의 추억보다 우리 모두의 미래가 중요하니까 미국에서 그래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불가능합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덮쳤을 때 미국인들이 뭘 했습니까? 약탈했습니다. 물에 잠긴 상점의 유리를 깨고 텔레비전을 들고 나왔습니다. 운동화를 훔치고 전자제품을 훔쳤습니다. 경찰도 막지 못했습니다. 일부 경찰은 같이 약탈에 참여했습니다. 저는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제 눈으로 봤습니다. 오늘 잠긴 거리를 허리까지 빠지며 걸으면서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재난 앞에서 미국인은 자기것부터 챙겼습니다.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미국인은 약탈했고 한국인은 결혼 반지를 모았습니다. 그 차이가 60년의 차이를 만든 겁니다. 권 교수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가 아직도 뒷전에 멤버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우리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우리나라 우리 학교 우리 회사 영어에서는 마이라고 하는 것들을 한국어에서는 우리라고 해요. 내 나라가 아니라 우리나라 내 학교가 아니라 우리 학교 그게 한국인의 정신입니다. 미국에서는 마이 하우스 마이카 마이 오피니언입니다. 모든 것이 나에서 시작됩니다. 개인의 권리 개인의 자유 개인의 소유 그것이 미국이 250년간 발전시켜온 가치입니다. 한국은 달랐습니다. 우리 집 우리 학교 우리나라 모든 것이 우리에서 시작됩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저는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머릿속으로 지난 일주일을 정리했습니다. 인천공항에 500명 새벽 2시 이어폰을 끼고 걷던 그 여성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응급실에 7만원 KTX 2시간 15분 송도의 스마트 벤치 경복궁의 한복 금속 탐지기 없는 학교 코너의 눈빛 그리고 권 교수의 말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됐습니다. 이 나라는 폐허에서 시작해서 교육과 협력으로 여기까지 온 겁니다.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굶주리면서도 자식을 학교에 보낸 부모들의 집려이었고 나라가 무너지려 할 때 결혼반지를 꺼낸 국민들의 헌신이었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를 선택한 사람들의 문화였습니다. 피와 땀과 눈물의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물었습니다. 전쟁터에서도 울지 않았습니다. 바그다드에서 폭격이 떨어질 때도 칸다흐에서 총성이 울릴 때도 카트리나의 물속을 걸을 때도 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서울대학교 연구실에서 결혼한 지 227톤 이야기를 듣고 울었습니다. 전쟁터에서도 안 무너진 제가 한국의 평범한 역사 앞에서 무너진 겁니다. 저는 귀국 비행기에서 열네 시간 내내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CNN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다큐멘터리가 탄생했습니다. JFK 공항에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출장 전에 써뒀던 다큐 구성원을 삭제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뜻에 대해 환상 엑서터 학생들은 한국에서 무엇을 보았나? 그 파일을 휴지통에 버렸습니다. 14시간 비행 동안 쓴 인 세 구성안을 열었습니다. 제목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배운다. 미국이 잃어버린 것 CNN. 본사에 도착하자마자 편집 국장 하워드 탈보트를 찾아갔습니다. 하워드는 제 얼굴을 보더니 물었습니다. 뭘 봤길래 그런 표정이야. 노트북을 여러 구성원을 보여줬습니다. 하워드가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시큰둥했습니다. 또 K-POP 이야기겠거니 하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읽어 가면서 표정이 바뀌었습니다. 공황 이야기에서 눈썹이 올라갔고 새벽거리 이야기에서 입을 다물었고 응급실 7만원 이야기에서 고개를 갸웃했고 금속 탐지기 없는 학교 이야기에서 읽는 속도가 느려졌고 결혼 반지 227톤 이야기에서 손이 멈췄습니다. 다 읽고 나서 한참을 침묵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이거 삼부작으로 만들자. 프라임타임 편성이다. CNN 프라임 타임 저녁 8시 황금 시간대입니다. CNN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슬롯이에요. 파모드가 그 시간을 내줬다는 건 이 다큐가. 미국 사회의 파장을 일으킬 거라고 판단했다는 뜻입니다. 3주간 밤을 새워 편집했습니다. 인천공항 영상 서울 새벽 거리 영상 방탄율이 없는 편의점 영상 서울 지하철 영상 응급실 영상 KTX 영상 송도 스마트시티 영상 경복궁 영상 학교 수업 영상 한국에서 찍어온 모든 영상을 담았습니다. 내레이션은 제가 직접 했습니다. 첫 회가 방영된 날 밤 저는 편집실에서 실시간 시청률을 지켜봤습니다. 방영 시작 10분 만에 소셜 미디어가 폭발했습니다. 첫 해방영 20 4시간 만에 시에는 역대 최다 스트리밍을 기록했습니다. X 실시간 트렌드 1위에 올랐고 한국 관련 게시물이 하루 만에 200만 건을 돌파했습니다. CNN 다큐멘터리 역사상 전례 없는 수치였습니다. 댓글이 쏟아졌습니다. 찬반이 격 격렬했습니다. 뉴욕타임스가 리뷰를 실었습니다. 외면할 수 없는 거울 미국이 스스로를 직시해야 할 순간이 왔다. 폭스뉴스는 정반대였습니다. CNN이 자국을 비하하고 있다. 시청자의 구독료로 반미 프로파간다를 만드는 것이 정상인가? 워싱턴 포스트는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논쟁적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들을 담고 있다. 불편하더라도 직시해야 할 현실 미국 전체가 둘로 나뉘었습니다. 사무실에서 카페에서 가정직거실에서 한국 이야기가 화제였습니다. 우버 기사가 저를 알아보고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 한국 다큐 만든 사람이지. 우리 와이프가 보고 울었어.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출장 전에 인터뷰했던 하버드 케네디스쿨 로렌 슈워츠 교수가 CNN 생방송에 출연해서 반박을 시도한 겁니다. K 팝과 삼성 반도체 말고 뭐가 있습니까라고 했던 바로 그 사람이요. 슈워츠 교수가 생방송에서 말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편향적입니다. 한국의 긍정적인 면만 부각시키고 부정적인 면은 의도적으로 배제했습니다. 한국의 높은 자살률 극심한 입시 경쟁 저출생 문제를 왜 다루지 않았습니까? 앵커가 물었습니다. 교수님 그런데 이 다큐의 핵심은 한국이 완벽하다는 게 아니라 미국이 배울 점이 있다는 건데요. 인천공항에서 통제 입력 없이 500명이 질서를 지킨 건 사실입니까? 슈워츠 교수가 말했습니다. 그건 문화적 차이일 뿐이고 앵커가 끊었습니다. 교수님 한국 응급실에서 외국인이 보험 없이 7만원에 치료받은 건 사실입니까? 그건 의료 시스템이에요. 미국에서 같은 치료를 받으면 보험 없이 최소 3천 달러에서 5천 달러라는 건 사실입니다. 슈워워츠 교수가 말을 잊지 못했습니다. 앵커가 마지막으로 물었습니다. 교수님은 한국에가 보신 적이 있습니까? 침묵이 흘렀습니다. 없습니다. 방송이 끝나고 소셜 미디어가 다시 폭발했습니다. 가 보지도 않고 비판하는 학자라는 먴이 퍼졌습니다. 다음 날 슈워츠 교수가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다큐멘터리 삼부작을 모두 시청했습니다. 인터뷰에서 했던 발언을 철회합니다. 한국에 대해 다시 공부하겠습니다. 저는 그 사과문을 읽으며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저도 변했으니까요. 국제 반응도 쏟아졌습니다. BBC가 후속 다큐 제작을 발표했습니다. 프랑스 르몽드가 기사를 실었고 독일 슈피겔이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유네스코 교육국장이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며 이렇게 썼습니다. 모든 교육 정책 담당자들이 봐야 할 다큐멘터리 한국의 교육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가르친다. 그 글이 5만 번 넘게 공유했습니다.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미국 교육부 장관이 저를 만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백악관에서 한 시간 동안 한국 이야기를 했습니다. 장관은 진지하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한국 교육 시스템을 연구하는 태스크포스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당신도 참여해 주십시오. 저는 다큐 프로듀서이지. 교육 전문가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장관이 대답했습니다. 직접 본 사람이 가장 잘합니다. 그리고 필립스 엑서터 아카데미 학장이 공식 성명을 냈습니다. 이 문장을 읽었을 때 소름이 돋았습니다. 우리 학생들의 관찰이 옳았음을 인정합니다. 필립스 엑서터는 한국의 교육 철학에서 배울 점이 있는지 검토할 것입니다. 250년 역사의 필립스 엑서터입니다. 마크 저커버그를 배출한 학교가 한국에서 배울 게 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한 겁니다. 다큐가 방영된 뒤 석 달이 지나서 미국 곳곳에서 작은 변화들이 시작됐습니다. 유저지의 한 국립학교에서 전원 합격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한국에 협력 학습 모델을 벤치마킹한 거였습니다. 학생들이 서로 가르쳐 주는 스터디 그룹을 만들었고 석 달 만에 학교 평균 성적이 올라갔다는 보고가 나왔습니다. 시카고의 한 쇼핑 센터에서는 에스컬레이터에 오른쪽에 서 주세요.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매니저가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아무 안내 없이도 지키는 걸 보고 부끄러웠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텍사스의 한중학교에서는 매주 금요일을 협력의 날로 지정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작은 움직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가장 기쁘게 만든 건 시청률도 아니고 언론 반응도 아니고 백악관 면담도 아니었습니다. 코너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모리슨 씨 하나 더 알려 드릴 게 있어요. 아버지가 변했어요. 처음에 한국에 홀렸다고 화를 내셨던 분이요. 다큐를 보시더니 한참을 아무 말 없이 계시다가 이러셨어요. 코너에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아들 이가 옳았다. 저는 전화기를 들고 한참을 아무 말 못했습니다. 월가에서 120억 달러를 운용하는 헤지펀드 창업자가 17살 아들에게 네가 옳았다고 말한 겁니다. 미국 금융계의 자존심을 생각하면 그 한마디가 얼마나 무거운 말인지 아실 겁니다. 그리고 코너가 한마디를 더 했습니다. 아버지가 다큐를 세 번 돌려보셨대요. 세 번째 볼 때 어머니랑 같이 보셨는데 결혼 반지 227톤 장면에서 어머니가 오셨대요. 그러더니 아버지가 어머니 손을 잡으셨대요. 아버지가 어머니 손을 잡는 건 제가 태어나서 처음 봤어요. 저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맨해튼의 밤이었습니다. 7만 대의 감시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을 거리 열쇠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걸어야 하는 거리 서울의 새벽이 떠올랐습니다. 이어폰 양쪽 다 끼고 걸어가던 그 여성 문이 활짝 열린 편의점에서 졸고 있던 주인 같은 밤인데 같은 지구인데 한국에 사는 분들께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들은 모르실 겁니다. 새벽 2시에 이어폰 끼고 걷는 게 얼마나 놀라운지? 편의점 문이 열려 있는 게 얼마나 기적 같은일인지 지하철에서 내리는 사람을 기다려 주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당연하다고 생각하시겠지요. 당연하지 않습니다. 세계 어디에도 당연하지 않습니다. 23년간 전쟁터에서도 울지 않았던 제가 서울에서 울었습니다. 그 눈물이 제 대답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사연 어떠셨나요? 연간 학비 9000만원짜리 학교 학생들이 한국을 다녀오더니 미국은 선진국이 아니었다고 선언했고 그걸 팩트체크하러 간 시에는 23년차 전쟁 다큐 PD가 서울에서 울었습니다. 바그다드 폭격에도 카메라를 놓지 않았던 사람이 새벽 2시에 이어폰 끼고 걷는 한국 여성 한편 한 명을 보고 멈춰섰습니다. 우리가 매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줄을 서는 것 내리는 사람을 기다려 주는 것 편의점 문을 열어 두는 것 모르는 사람의 짐을 들어주는 것 우리한테는 당연한 일상이 세계 최강국의 기자를 무너뜨렸습니다. 가끔 우리는 잊고 삽니다. 이 나라가 얼마나 대단한 나라인지 60년 전 79달러짜리 나라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할아버지 할머니가 굶으면서도 자식을 학교에 보냈고 부모님 세대가 결혼 반지를 꺼내 나라를 구했고 그 위에 우리가 서 있다는 걸요 자랑스러워해도 됩니다. 아니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 공감되신 분들은 댓글에 대한민국 국민이라 자랑스럽다 한 줄만 남겨주세요. 그 한줄이 모이면 이 영상이 더 많은 분들께 전해집니다. 이 영상이 마음에 드셨다면 좋아요와 구독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댓글 하나하나가 다음 영상을 만드는 힘이 됩니다. 그럼 다음 사연에서 다 또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