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문제의 대책 마련에 분주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장애여성의 모성권은 여전히 침해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재가여성장애인 욕구조사 및 프로그램개발’(2002) 조사결과를 보면, 임신 중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주위의 도움 없이 혼자 해결하는 경우가 26.8%, 정기적인 병원진료를 받는 장애여성은 24.6%에 불과했다.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더라도 상당수 장애여성은 장애인용 진료 장비나 기구의 미비, 의료진의 장애에 대한 이해부족, 접근성의 문제 등으로 적절한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6일 제9회 한국여성장애인대회 일환으로 '건강한 모성권 확보를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
▲토론회에 참석한 한국여성장애인연합회 각 단체들 |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은 2010 제9회 한국여성장애인대회를 열고 5일 그레이트 뷰티풀 맘(Great Beautiful Mom) 콘서트 겸 개막식 행사를 치른 데 이어, 둘째 날 ‘건강한 모성권 확보를 위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지정산부인과 지정, 양육도우미서비스 제공 등 지원책에 대한 의견이 쏟아졌으나, 정작 정부 측과 병원 측 답변은 미흡했고 지원책이 출산서비스에만 머물러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서울디지털대학교 홍성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지난해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진행한 ‘여성장애인 의료관리체계구축연구’ 자료를 토대로 주제발제를 했다. 홍 교수는 “국공립병원을 중심으로 지정산부인과를 선정하고, 여성장애인에게 의료서비스를 지원하기 위해 자원을 집약해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홍성대 교수는 지정산부인과 제도 도입을 주장했다. |
홍 교수는 우선 국공립병원을 중심으로 수화통역 등 장애여성의 특성 및 의료서비스에 대한 기초적 이해를 갖춘 도우미를 의료기관 내에 배치하자고 밝혔다. 의료진의 장애특성에 대한 이해 부족 문제는 장애인의 일반적 특성 및 임신·출산관련 특성에 대한 교육프로그램을 의료진에게 제공하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홍 교수는 의료기관의 진료 기피 문제는 처벌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보험수가 가산을 통해 자발적 진료를 유도하고, 의료기관 이용의 경제적 어려움 문제는 직접적 현금급여제공이나 본인일부부담금 산정특례제도와 같은 방법을 제시했다.
홍 교수는 “지정산부인과제가 단순해 보이지만 도입되기까지 많은 과제가 있어, 단기적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 등으로 규정을 마련하고 의료수가 등은 장기과제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진 지정토론에서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오상진 강사는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데 실효성이 적은 이유는 실제 필요한 사람에게는 지원이 부족하고 아이를 원치않는 사람에게 강요하고 죄인 취급하기 때문”이라며 “활동보조서비스 안에서 양육도우미서비스가 이뤄지는데, 최근 장애등급재심사로 등급이 떨어지는 경우 속출해 오히려 정부가 모성권을 침해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오 강사는 “현재 출산장려정책은 주로 임신과 출산에 관한 일시적 지원에 치중되어 있는데, 돈 한번 준다고 끝이 아니라 지속적 보육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출산정책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정책이 아닌, 도움이 필요한 여성장애인에게 현실적인 정책을 마련해 줘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권오숙 이사는 청각장애여성 양육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
청각장애여성회 권오숙 이사는 청각장애여성이 의사소통이 어렵다는 이유로 제왕절개를 강요당하거나, 수화통역사가 없어 와우수술이 잘못돼도 병원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등 양육에서 고통받는 사례를 제시하며 눈물을 흘렸다.
권 이사는 “1~3세까지 수화가 가능한 영아양육도우미와 114·112·119 등에 영상전화기 설치, 아기의 위험을 감지할 있는 무선신호기 등 보장구 등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하고 “우리는 사회와 소통하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국립재활원 여성재활과 김영진 과장은 “여성재활과에서 여성장애인의 임신과 출산을 지원하는데도 이를 알고 찾아오는 여성장애인이 너무 적어 분만실을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고위험군에 속하는 장애산모일 경우 산전 관리 등 능동적 자세와 참여가 필요하다”라고 국립재활원의 지원제도 이용을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 이두리 사무관은 “현재 산모신생아 도우미는 2주 파견, 중증장애인은 4주 파견을 하고 있으며, 서울의 국립재활원 지정산부인과 외에 전국 여섯 개 권역에 지정산부인과 설치를 추진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토론이 끝난 후 한 청각장애여성은 “국립재활원에서 왜 장애여성이 찾아오지 않느냐고 하지만, 오히려 국립재활원 측이 가만히 앉아서 홍보를 소홀히 한 것이 아니냐”며 항의했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의 이영미 공동대표도 국립재활원이 장애여성 임신·출산을 돕는다는 걸 처음 알았다며 "여성재활과라는 이름 자체가 차별적인 느낌을 준다”라고 지적하고 “국립재활원이 16개 시도에 내려가서 얼마나 홍보를 했나, 지부를 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나를 생각해줬으면 좋겠다”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현재 찾아오는 여성장애인이 없어 분만실이 꾸려지기 어렵다는데 지방에 있는 여성장애인은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물었다. 이에 김 과장은 “먼저 국립재활원이 롤모델이 되면 자연스레 전국 6개 권역별 병원이 더욱 쉽게 추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으나 참가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지는 못했다.
참가자들은 “출산보다 양육이 더 힘든데 어제오늘 출산만 얘기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양육서비스도 더욱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라고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토론회가 끝난 후 각 지부 시상식을 끝으로 제9회 한국여성장애인대회는 막을 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