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스님은 불법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행하고 인과를 분명히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부처님 제자라고 강조하신다.
불교에 관심을 가진 이들은 많지만 불교의 순수한 형태에 관심을 가진 이들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불교의 가르침이나 불교철학을 공부하는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지적한 일본 선사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선사는 덧붙여 불교가 철학적으로 심원한지, 훌륭한지 보다는 불교가 실제로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했다. 불교가 실제로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철학이나 가르침만을 논하는 것보다는 불교를 철학 아닌 경험으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가을빛이 완연해지고 있는 팔공산 자락을 휘돌아 찾아간 파계사 대비암에서 도원(道圓) 스님께 들은 법문은 그것이 전부였다.
佛法 어려울 것 없다
“나는 불법을 어렵게 말하지 않아요. 우리는 부처님 제자니까 부처님 하라는 대로하면 되는 거예요. 부처님이 이것 하지 말라 하면 하지 않으면 되고, 이것은 적극적으로 하라 하면,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자로서 할 일을 다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불법이 별스럽게 따로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그것이 문제예요. 부처님 가르침대로만 행하면 되는 것인데. 그래서 여설수행, 즉 부처님이 설하신 대로 수행하라고 했고 의교봉행, 즉 부처님 가르침을 의지해서 받들어 행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 이상 더 얘기할 것이 없어요. 한가지 더 강조한다면 그 속에서 인과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과를 분명히 알고 사리에 밝아야 합니다. 사리에 어둡고 인과를 몰라서 엉뚱한 짓을 하는 것이지 인과를 분명히 알고, 사리에 밝으면 엉뚱한 일을 하라고 해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니 부처님 말씀대로 행하면 그뿐이지 불법이 어디 따로 있는 줄 알고 엉뚱하게 헤매지 말라는 것이죠.”
“늙은이가 자꾸 말해서 무슨 도움이 되겠냐”며 한사코 법문을 마다하시던 스님께서 던진 이 말씀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그것말고 다른 무엇이 있으면 내놓아 보라는 듯, 기자를 건너다보시는 스님의 눈빛이 참 맑다.
“부처님 가르침을 많이 아는 것도 좋지만, 일상 생활에서 진실하게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해요. 부처님은 오계에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정리해 놓았잖아요. 그것만 제대로 지키면 사람노릇 잘하게 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오계만 제대로 지켜주어도 이 사회는 대단히 살기 좋은 세상이 될 수 있습니다.
'불살생', '불투도'의 계만 지켜져도 자물쇠로 잠굴 필요도 없고 남을 두려워 할 이유도 없어져요. 그런데 잘 안 지키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
그리고 계는 남을 위해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도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불사음의 계를 제대로 안 지키니 이 사회가 얼마나 혼탁해 졌어요? 내 남편, 내 아내 누구없이 혼란스러워져서 그 피해를 자손들이 모두 보고 있어요.
거짓말하지 말라는 계도 지키고 살아야 합니다. 거짓말하지 않고 악담하지 않고 이간질하지 않고 살아가면 신뢰를 가지고 살수 있어요.
그리고 술 먹지 말라 하는 것도 술을 먹으면 앞의 네 가지를 다 범할 수 있는 요인을 갖고 있기 때문이예요. 교통사고, 싸움 등 모든 것에 술이 주범이예요. 그런데도 그것을 못 먹어서 안달이 나고 술 먹지 말라는 것 자체를 우습게 여겨요. 그것은 청소년이나 지키는 것쯤으로 무시해 버리죠.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가 되려면 이 다섯 가지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그런데 누구든지 철이 들어서 이 다섯 가지를 제대로 지킨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면 자신 있게 지켰다고 하는 이가 드물 거예요. 천기자는 자신 있어요?” “자신 없습니다.” 스님이 크게 웃으신다.
오래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자신이 없다고 답할 수밖에 없는 부끄러움과 당혹스러움에 따라 웃고 있으니 스님께서는 “그런데 무슨 불법을 별스럽거나 야단스럽고 어렵게 알아 가지고 그럴 게 있느냐”며 마지막 일침을 놓으신다.
“그 다음으로 부처님께서 적극적으로 하라고 권장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육바라밀입니다. 너희들이 진실로 행복해지길 원하면 이 여섯 가지를 적극적으로 실천해라 하는 것이 육바라밀이예요. 그런데 실천 안 하잖아요. 실천 안 하니 이렇게 불안한 사회가 되었지. 모든 사람이 남에게 보시하고, 봉사하고, 몸과 마음을 다해 그렇게 한다면 이 사회가 극락세계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계율이라는 것이 오계만이 아니라 국가가 만들어 놓은 법령, 규율, 질서 등이 다 계율입니다. 이것을 잘 지킨다면 문제가 생기지 않아요. 교통사고가 왜 납니까? 법규를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준법 정신 속에서 살자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인욕인데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참을 줄 알아야 해요. 특히 부처님은 욕된 것을 참으라고 했거든. 당장 좋은 것에 빠져들고 싶은 것을 참을 줄 아는 것과 함께 남이 나를 욕되게 하는 것을 참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정진 바라밀은 부지런하고 조밀한 마음으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다음이 선정인데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좋은 생각이든 나쁜 생각이든 텅 비워놓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무엇이든 담을 수가 있게 되거든.
마지막으로 지혜 바라밀인데 분수를 모르고 사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하듯이 지혜로운 이는 분수를 알고 살게 되어 있어요. 자신의 분수를 알고 그것에 맞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이의 삶입니다.
이 여섯 가지를 잘 지키면 행복할 수가 있다고 부처님께서 얘기해 놓았어요. 너희가 행복 하려거든 이런 것은 하지말고, 이런 것은 적극적으로 실천해라 하고 다 제시해 놨거든.
49년 동안 설하신 법문은 하지 말 것과 해야 할 것, 그리고 진리를 드러낸 말씀으로 요약돼요. 더 이상 뭐가 있어요? 밑천 하나도 안들이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을 다 설해 놓았는데 하나도 실천은 제대로 안 하면서 무슨 불법을 따로 구할 게 있냐 이 말이지.”
생활 속의 행(行)을 강조하시는 스님의 일상은, 23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동안 주지직을 맡아온 파계사 시절부터 대비암으로 옮겨온 지금까지 늘 한결같이 이어지고 있다.
23년 동안 파계사 주지를 맡았던 것에 대해 스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신다. “오래했지? 내가 명예에 탐착이 되어 너무 오래했어요, 하하하!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막급이지. 그때는 파계사를 위한다는 마음 하나로 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파계사를 극락세계로 만들어 놨다 한들 내 본분사에는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지. 그래서 상좌보고는 주지하지 말고, 참선 염불하면서 살라고 하지요.”
파계사를 위한 23년은 오늘 스님의 더욱 철저한 수행이 있게 하는 정진력으로 작용하고 있음이다. 아미타불 주력을 수행 삼고 있는 지난 몇 년 동안 스님은 새벽에 일어나 마당에 있는 탑을 세 번 돌고 간절하게 서원을 세운 뒤 마당의 큰 바위에 앉아 나무아미타불 주력 천주를 하루도 빠짐없이 하고 있다. 하루 일과 중 참선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아미타불 주력을 쉼 없이 하고 있다고 하신다.
요새는 아미타불 주력
“부처님 생각하는 것이 내 일상이야. 젊어서는 관세음보살 주력을 많이 했는데 요새는 아미타불 주력을 하고 있어요. 좌선과 염불을 함께 하면서 늘 부처님 생각하는 것으로 하루하루 보내고 있지.”
스님은 15살 되던 해, 은사이신 고송스님과의 인연으로 음력 삼월 삼짓날 절에 온 이후 은사스님의 가르침을 부처님 가르침처럼 따르며 익혀왔다. ‘마치 부처님을 뵙는 듯 눈이 부셨던’ 고송스님과의 인연 이후 한암스님 회상에서 경학을 배우며 승려의 기본을 갖추어 나갔던 스님은 한암스님을 ‘선교를 겸비한, 청백가풍이 철저했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한암스님은 중은 중노릇 잘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지. 딴 생각을 내지 말고 스스로 발심하여 인과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하셨어. 그리고 시줏물을 무섭게 알아야 된다고 했어. 수행자는 아무것도 안하고 전부 남의 시줏물로 살고 있으니 그 신세를 갚기 위해서는 오직 중노릇 잘하고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거였지. 도량에 다니시다가도 쌀 한 톨, 팥 하나라도 일일이 다 주웠을 정도니까. 그렇게 검박한 생활을 하는 분은 처음 봤어. 당신 방에 가봐도 조그만 책상 하나뿐이고 식생활도 아침엔 죽, 점심은 밥, 오후에는 불식(不食), 철저히 지키셨지.”
중이 출가를 했으면 참선, 염불, 경학, 대중봉사, 포교 다섯 가지를 잘해야 한다고 강조하신 한암스님의 가르침은 자신에게 맞는 공부법을 선택해서 수행하도록 하는 열린 수행의 기틀이 되었다.
도원스님은 또한 불교는 승속이 없고 장유가 없고 귀천이 없는 공부임을 늘 강조한다. 그리고 공부방법에 있어서도 참선, 염불, 주력 어느 것이든 길이 다르다 뿐이지 마지막 도착지는 같다고 가르친다.
“염불도 참선도 삼매에 들면 한가지야. 망상 다한 자리는 똑 같은 거니까. 매 순간 삼매 가운데 있으면 부처 자리가 바로 그 자리인 거지”
스님은 한암 스님을 모시고 있던 상원사에서 금강경, 육조단경, 화엄경, 원각경, 능엄경 등의 경전을 배웠다. 도원스님의 경학은 그 깊이나 넓이에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몰라. 내가 공부를 많이 했으면 이러고 있지 않아. 벌써 젊은 학인들 가르친다고 나섰지.” 아는 것이 없다는 스님의 부정은 겸손이기보다는 늘 새로운 정진을 이어가겠다는 다짐의 다른 표현으로 보였다.
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을 맡고 계시는 만큼 스님은 종단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었고 개선책이나 해결책까지 일목요연하게 지적했다.
‘원로스님들이 종단의 기본 골격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스님의 생각이기에 누구보다 종단에 관심이 많은 까닭이다. 그러나 누구 하나 잘못된 점을 지적하거나 방향을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고 또 원로회의에서 집약된 의견이 존중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 스님은 늘 어른 노릇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원로들이 앞장서서 체계를 새롭게 잡아 주어야 할 문제가 많아요. 교육부분을 살펴보더라도 강원은 3~4백년전 선사 스님들이 순한문으로 하던 교육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거든.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변천해 돌아가는데 불교를 현대화한다고 하면서 현대에 발맞추려는 노력은 없다는 거지.
현대의 빠른 변화에 보조를 맞출 수 있는 새로운 교육방법이 나와야 해. 또한 행자교육 문제도 말만 행자교육이 부족하다고 할 뿐, 구체적으로 어떤 실행은 없어. 행자시절에 승려 기본교육이 철저히 되어야 하는데 근본교리도 모르면서 흐지부지 지나가고 있는 실정이야. 이런 것도 종단의 어른인 원로들이 고민을 해서 행자들의 지속적인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초를 잡아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하고…”
어른의 자리를 지킨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계속되는 도원스님의 종단 걱정에서 실감한다. 스님은 “종단의 소임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개개인의 이익에 매이지 말고 종단화합을 위한 큰마음을 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어른노릇 해야 하는데
다과를 앞에 놓고 얘기를 나누는 동안 스님의 모든 말씀은 과일의 단맛처럼 술술 넘어갔다. 스님이 이처럼 받아먹기 좋은 쉬운 법문을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법문 하라고 하면 모두 어려운 법문만 해요. 남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 하면 ‘아이구, 저 스님 선법문 하는구나’ 하지만 법문이란 알아듣게 해서 깨우쳐 주자고 하는 것이지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해 가지고 뭐하겠어. 선법문을 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알아듣지 못하는 법문은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쉽게 알아듣도록 해주는 것만 못해요.”
이어 스님은 “집착을 놓고 생사가 둘이 아님을 확실하게 믿을 수 있어야 한다”며 “불법을 공부해 왔는데 참선을 했든, 염불을 했든, 절을 했든 죽음 앞에서 의연하지 못하면 공부를 잘못 한 것”이라고 했다.
죽음 앞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불법을 제대로 공부했는지를 알 수 있다면 큰일이 아닌가? 스님은 놓치지 않고 중간 점검의 방법까지 제시해 주신다.
“그래서 불법을 생활화하자는 거지. 일상 생활이 불교화가 되어야지. 하루가 지나 저녁이 되면 잠깐 앉아서 자기 하루를 돌아봐야 해요. 하루가 지나면 하루를 돌아보면서 부처님답게 살았는지 살펴보고, 또 한 달이 지나면 한 달을 돌아보고, 일년을 살고 나면 일년을 돌아봐서 어떤 것을 못 살았고 어떤 것을 잘 살았나 하는 것을 점검하고는 앞으로는 더욱더 부처님답게 살수 있도록 다짐을 해나간다면 중간 점검이 되는 거지. 그렇게 반조하는 정신이 있어야 불법을 생활 속 깊이 실천할 수 있는 겁니다.”
도원 스님은?
도원 스님은 어려서 몸이 몹시 약했다. 1928년 경북 영천에서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스님은 12살 때는 숨이 거의 넘어가 거적에 덮힌 채 하룻밤을 지내기도 할 정도였다. 그러나 스님은 그 날 밤 어린 시절 소풍갔던 수도사에서 참배한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고 다시 깨어났다.
그렇게 시작된 불연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동향인 은사 고송 스님이 상좌를 구하러 마을에 왔을 때 부모님들의 권유로 고송스님을 만나면서 열매를 맺었다. 그 다음날 절로 들어와 버린 스님은 41년 고송스님을 은사로 득도, 51년 동산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한 다음 월정사·파계사 주지, 학교법인 능인학원 이사장, 학교법인 동국학원 이사를 역임했고 현재 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을 맡고 있다.
포교가 잘못되었는지 불자들이 부처님의 근본 교리보다는 기복에만 끄달린다고 걱정한 스님은 “스님들 책임이 크다”고 자책하신다. 그래서 스님은 매월 18일 대비암과 대구 은적사 초하루법회때 <승만경>, <유마경> 등 부처님 가르침을 풀어 전하는 일에 각별한 의미를 두고 있다.
“돌이켜 보면 불보살의 화현을 곳곳에서 만나면서 살아왔다”는 도원 스님은 많은 불자들이 무심의 경지에 이르러 우주법계에 충만한 부처님을 늘 만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것에 촌각을 아끼며 팔공산의 기운을 지켜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