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성장을 돕기 위해 스타트업 인터뷰 시리즈 ‘스타트업 취중잡담’을 게재합니다. 그들은 어떤 일에 취해 있을까요? 그들의 성장기와 고민을 통해 한국 경제의 미래를 탐색해 보시죠.
이국래 대표 /오상자이엘
이국래 대표(67)가 창업한 오상자이엘은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모두 이겨내고 코스닥 상장까지 성공한 기업이다. 90년대 초반 IT기업으로 출발해 신소재, 바이오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지난해에는 매출 637억원을 기록했다.
이 대표를 만나 샐러리맨의 코스닥 상장 기업 오너로 변신하기까지 여정을 들었다.
◇코스닥 상장 기술 기업이 탈모 완화 샴푸 만들게 된 이유
딥 폴리큐어 삼푸 /오상자이엘
오성자이엘은 끊임없이 확장하는 회사다. 원칙이 있다. 기존 하던 일에서 신사업 힌트를 얻는다. 화장품 사업이 대표적이다. 산업 소재로 ‘자이엘라이트’ 원료를 개발했다가, 이 소재로 화장품 사업에 진출했다.
대표 상품인 탈모 완화 ‘딥 폴리큐어 삼푸’는 남성 뿐 아니라 출산 후 출산 후 머리카락이 빠져 고민이었던 여성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군인 총상 치료 등에 쓰이는 자이엘라이트 성분이 볼륨 증가, 두피 각질 감소 및 보습 증가 등 효과를 낸다. 현재 온라인몰(http://bit.ly/3cEwZ8F)에서 한정 공동구매 행사를 하고 있다.
◇후배 12명 데리고 회사 차린 대우맨
이국래 대표 /오상자이엘
국민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학교 졸업 후 1978년 대우자동차에 입사했다. “우리나라가 고속성장기일 때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경제 성장의 주축이었던 자동차 산업군을 경험하고 싶어 대우자동차의 재무기획부에 입사했습니다. 경영 전반을 관리하며 사업계획을 짜는 게 주 업무였죠.”
회사 생활은 재밌었고 인정도 받았다. 하지만 회사 생활이 10년을 넘어 가자 매너리즘이 찾아 왔다.
그때 마침 업무 환경에 본격적으로 컴퓨터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컴퓨터가 널리 보급되면서 그에 수반한 소프트웨어 비즈니스도 생겨나게 됐다. 직장을 그만두고 컴퓨터 관련 창업을 하는 사람이 늘었다.
인터뷰하는 이국래 대표 /더비비드
“40대 중반이 되면서 삶의 분기점을 찾던 때였습니다. 남들 창업하는 모습에 ‘나도 창업을 해볼까’ 관심이 생기더군요. 대우자동차를 비롯해 항공기, 선박, 기계 등 국내 경제를 견인하던 기업들이 모두 3D 캐드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데서 기회를 찾기로 했습니다.”
정든 회사에 사직서를 쓰고 창업에 뛰어들었다. 감사하게도 대우에서 만난 12명의 동료가 여정에 동참했다. “제가 창업 결심을 얘기하자 많은 동료들이 뜻을 함께해줬습니다. 회사 생활을 헛되이 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뿌듯했습니다.”
◇제조공정관리 시스템으로 코스닥 상장까지 성공
충남 서산에 있는 생산 공장 /오상자이엘
1993년 PLM (Product Life Cycle Management. 제품수명주기관리) 회사 자이엘을 설립했다. PLM은 제조사의 설계부터 제조, 운영, 보수, 폐기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프랑스의 다소(Dassault)라는 3D 캐드 업체의 라이선스를 획득해서 국내에 보급하는 것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회사를 키우려고 12명 모두가 자정 넘어까지 일했어요. 덕분에 시행착오 없이 자리 잡았습니다. 사업 초창기 글로벌 IT 기업 IBM의 파트너 자격을 획득한 것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1997년 출신 회사인 대우그룹이 외환위기 직격탄을 맞을 때도 무사히 살아남았다. 1999년 벤처기업에 등록된 데 이어 2002년 코스닥 입성에 성공했다. 2008년에는 종합무역상사인 오상그룹과 인수합병을 거쳐 ‘오상자이엘’로 거듭났다.
M&A 후 본격적으로 사업 확장에 돌입했다. “오상그룹은 무역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기업이었습니다. 일본의 소재를 국내 대기업에 납품하며 소재산업에 대한 이해도를 쌓았죠. 이후 오상의 특허 소재인 ‘팬캡’을 필두로 소재 사업을 했습니다. 팬캡은 사과, 배 같은 과일을 파손으로부터 보호하는 포장재인데요. 오상이 자체 기술로 발명해 특허까지 받은 제품입니다. 팬캡으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 간 순이익만 250억원 가까이 냈습니다. 저희 그룹의 효자 상품이 됐죠.”
◇소재 기업으로 턴어라운드
오상자이엘의 제품 연구개발 모습 /오상자이엘
기업 경영은 늘 불안의 연속이다. 성공적으로 자리 잡는 것 같다가도 금세 위기가 온다. 팬캡의 특허 보호 기간이 만료되고 경쟁사들이 유입되자 팬캡 사업으로 인한 이익이 반 토막 났다.
새로운 견인차가 필요했다. “신사업 계획을 세우기 위해 산업 구조부터 살폈습니다. 우리나라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제조 등 응용기술은 탁월했지만 이들 제품에 들어가는 소재 개발 능력은 약한 편이란 생각을 평소 많이 했어요.우리나라 다른 기업들이 이미 잘하고 있는 영역 대신, 우리나라에선 블루오션이라 할 수 있는 신소재 개발에 뛰어들기로 했습니다.”
러시아에서 관련 있는 신소재 원천 기술을 보유 중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2011년 모스크바로 넘어가 러시아 국립연구소의 연구진들을 만났다. “물질의 정체는 보헤마이트라는 학명의 광물질이었어요. 자연계에만 존재하고, 인위적으로는 만들지 못하는 소재였죠. 열전도율이 높아서 반도체 같은 부품이나 디스플레이 같은 기기의 과열을 방지하는 데 좋을 것 같았어요.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총상 환자에게 바르는 물질 힌트 얻어 화장품 개발로 전환
탈모 샴푸 식약처 인증서와 특허증 /오상자이엘
450억원을 투자해 러시아 연구진과 신소재 공동 개발에 들어갔다. ‘자이엘라이트’ 이름의 신소재 개발에 성공했다. 그런데 소재를 개발하고 보니 의외의 쓰임새가 발견됐다.
“산업용 소재인줄로만 알았는데, 러시아에서 군인이 총상을 입을 때 바르는 크림도 같은 성분을 하고 있더라고요. 상처가 빨리 아물게 하는 크림인데요. pH가 사람 피와 유사한 게 비결입니다. 환부의 열을 내리고 세균 감염을 막는 효과도 있어 화상치료제에도 쓰이죠. 그 성분을 응용해 화장품에 써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더군요.”
바로 소재 변환 연구에 들어가 화장품용 기초 원료를 만들었다. 소재 개발 후 활용 가능성 점검에 들어갔다. “2017년부터 2018년까지 1년 반에 걸쳐서 중앙대학교병원 김범준 교수(피부과) 연구팀과 임상시험을 진행했습니다. 피부 치료 소재로서 자이엘라이트의 역할을 규명하는 절차였죠. 탈모 완화 효과를 집중적으로 살펴봤어요.”
-어떤 결과가 나왔나요?
“조직 성장 주기에 중요한 세포 성장 촉진, 모발과 모낭 조직을 구성하는 단백질 발현 등 효과가 검증됐습니다. 아토피 치료제인 스테로이드보다 치료 기능이 좋다는 결과지도 얻었습니다.”
연구 과정을 담은 논문은 SCI급 국제 논문에 등재됐고 특허 출원에도 성공했다.
◇탈모 완화 샴푸로 화장품 사업 성공
오상자이엘의 AC크림과 딥 폴리큐어 삼푸 /오상자이엘
임상결과를 발판으로 화장품 제조에 착수했다. “기계공학과, 화학공학과 출신의 회사 연구진들이 개발에 투입됐습니다. ‘산업 소재도 잘 만들어왔는데, 화장품이라고 못 만들까’ 자신감이 넘쳤죠.”
2018년 딥 폴리큐어 샴푸(탈모 완화 샴푸), AC 크림(여드름 크림) 순으로 제품을 출시했다. 기대가 컸는데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AC크림은 한 달 1만개씩 팔리며 성공했는데, 샴푸가 실패한 것이다. 재고를 잔뜩 준비했지만 한 달 몇 백개 씩 파는 데 그쳤다. “마케팅 요소를 고려하지 않은 게 패인이었습니다. 샴푸와 화장품은 시장 접근법이 달라야 했는데 화장품과 같은 방식으로 시장에 접근하면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습니다.”
끈적이는 제형의 딥 폴리큐어 삼푸 /오상자이엘
딥 폴리큐어 샴푸 사용 전후 비교 테스트 연구 결과 /오상자이엘
2019년 1월 화장품 마케팅 전담 팀을 꾸리고 제품도 개선에 들어갔다. 다른 화장품 원료처럼 피부에 흡수되는 게 아니라 피부 표면에서 세균의 침투 등을 막으며 피부를 보호해 주는 개념을 강조하기로 했다. 두피의 손상을 막아 탈모 완화 효과를 내는 차별점을 강조한 것이다.
가려움을 완화하고 두피의 열감을 해소하는 기능을 강화해 제품 리뉴얼도 했다. “탈모 완화 샴푸는 일반적으로 향이 만족스럽지 않거나 사용 후 머릿결이 뻣뻣해지는 등 아쉬움이 있었어요. 이를 보완하도롣 제품을 개성했습니다.”
자이엘라이트 외에 비오틴 등 다양한 영양 성분을 담아 찐득한 제형으로 돼 있다. 모낭을 깨끗이하고 두피와 보말에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피부임상시험센터에서 4주 사용 후 두피 각질 71% 감소, 두피 보습 53% 증가 효과를 인정받았다. 사용 즉시 얅고 가는 모발의 불륨이 살아나고 윤기가 나는 효과도 검증받았다.
“AC크림에 이어 샴푸까지 성공하면서 사업이 궤도에 올라섰습니다. 회사의 주력 사업으로 커가는 중입니다.” 샴푸 제품은 현재 온라인몰(http://bit.ly/3cEwZ8F)에서 한정 공동구매 행사를 하고 있다.
◇생활가전용 소재도 개발, 213명 회사로 성장
이국래 대표 /더비비드
이국래 대표는 오상자이엘의 끊임없는 혁신을 추구한다. 본업인 신소재 개발을 최우선에 둔다. “지난해 자이엘라이트 모체에서 광물질 결정 구조를 발전시킨 자이엘라이트X(JX)를 개발했습니다. 항균, 항바이러스, 항곰팡이 기능이 탁월한 소재죠. 에어컨이나 공기청정기, 냉장고 속 곰팡이를 일일이 관리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생활 가전에 JX를 적용하면 곰팡이 걱정 없이 이용할 수 있습니다. 주요 가전 제조사들과 협력 방안을 논의 중입니다.”
JX를 만든 방식으로 또다른 화장품 원료도 개발하고 있다. “자이엘라이트의 모성분에 화장품 성분인 세라마이드 결합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원료를 만드는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미세먼지를 차단하는 화장품 원료 특허도 보유 중이죠. 새 원료들이 화장품 사업 성장의 촉진제가 됐으면 합니다.”
이국래 대표는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회사를 키운 비결로 ‘신뢰’를 꼽았다. “사업은 흥할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어요. 그 기로에 있는 게 사람이죠. 저는 큰 그림만 그리고 구체적인 과정은 담당자에게 일임합니다. 속도가 더뎌도 믿어주는 쪽을 택했죠. 화공과, 기공과 출신의 연구진들에게 화장품 제조를 맡긴 이유죠. 없던 화장품 마케팅팀을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고요. 신사업을 여기까지 키워준 이들에게 감사합니다. 믿음 덕에 12명이었던 회사가213명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한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