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캇 브래너(Scott Brenner) 목사
(다윗의장막 대표)
전직 변호사, 기도 중에 방언을 한국어로 받음
대학시절 ‘4차원의 영적세계’ 읽고 감동
스캇 브래너 목사는 미국인이다. 하지만 그가 예배를 인도할 때면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이다. 찬양도 한국어와 영어로 한다. 그뿐아니다. 그는 한국에 널린 알려진 ‘아버지 사랑합니다’ ‘성령의 불로’ 등의 곡을 한글로 작사 작곡했다.
브래너 목사는 다윗의장막 보컬이며 키보디스트이다. 다윗의장막은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워십찬양팀으로 영성과 음악성에서 크게 인정받고 있다. 이 시대에 예배의 부흥을 위해 세계 곳곳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전직 변호사 스캇 브래너 목사의 한국 사랑 이야기를 들었다.
“아주 어릴 때였죠. 가족들이 후원했던 선교사가 한국에서 사역을 하고 있었어요. 매년 연말, 선교보고 덕분에 한국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죠”
스캇 브래너 목사는 그후 대학에 들어가 조지 뮬러, 챨스 피니, A.W.토져 등의 책을 읽으면서 영적인 갈급함을 채워나갔다. “우연한 기회였어요. 하루는 서점에서 한국인인 조용기 목사의 ‘4차원의 영적세계’를 만났수 있었죠. 책을 한장한장 읽으면서 새로운 감동을 받았어요. 4차원의 영적세계는 제 사역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게 되었어요”
브래너 목사는 대학 졸업후 로스쿨에 진학했다. 앞으로 세계를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스스로가 자비량 선교사가 되기 위해 준비를 한 것이었다. 브래너 목사의 로스쿨 성적은 언제나 탑이었다.
“우리가 어떠한 곳에 있든지 최선을 다해 주님께 영광돌리는 것이 예배라고 생각했어요. 주님께 지금의 자리에서 최상의 것을 드리는 삶이 예배죠”
우수한 성적 덕분에 브래너 목사는 자연스레 학교의 기대를 많이 받게됐다. 졸업이 다가오자 조건이 좋은 곳에서 와달라는 스카웃 제의도 많이 받았다. 동기들은 월급이 많은 회사의 변호사로 들어갔다. 하지만 브래너 목사는 한곳에도 원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제게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어요. 교수와 친구들은 이해 못했지만, 전 성령님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시간이 지나니깐 좀 불안하기도 했어요. 아무리 좋은 점수를 받았더라도 일의 공백은 치명적이거든요”
하지만 브래너 목사는 그 일을 통해 때를 기다리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또 본인의 인간적인 면을 죽이는 훈련도 받았다. 믿음의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도 배울 수 있었다.
“믿음으로 모든 것을 내려놨어요. 바로 그 때부터 하나님은 일을 시작하셨죠” 졸업후 6개월이 지나서였다.
“갈보리 채플이라는 곳에서 음반제작 법률 자문을 맡았어요. 자동차 기름값 정도만 받고 일을 했죠. 남들은 저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제 마음에는 참 평화가 임했어요”
일은 이어져 세계 최고의 워십뮤직 음반을 제작하는 빈야드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얼마 후 음반제작에도 관련할 수 있었다. 중고등학교 때 교회에서 했던 음악활동이 도움이 됐다고 한다.
지금 그는 미국에 거주하며 벧엘월드아웃리치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다. 또 1년에 한번씩 유럽을 순회하며 집회를 인도한다. 한국에는 일년에 3∼4번 정도 들러 컨퍼런스를 인도한다. 시간을 합하면 6∼7개월 정도 한국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
“1995년 한국에 처음 왔어요. 컨퍼런스를 인도하기 위해서였죠. 처음 온 곳인지만 참 고향같이 느껴졌어요. 일을 마치고 한국을 떠나는데 계속 눈물이 흐르는 거예요. 마치 고향을 떠나는 사람처럼 말이죠”
미국에서 있어던 일이다. 한 목회자가 브래너 목사에게 “한국과 아시아에서 사역을 할 것”이라고 예언을 했다. 그는 어디로든 가겠다고 다짐했다. 일주일 후, 담임목사가 브래너 목사에게 아시아를 위해 특히 한국을 위해 선교하자며 모든 것을 책임지고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한 한국 목회자가 컨퍼런스에서 은혜 받았다며 한국에 와서 컨퍼런스를 열어달라는 것이었어요. 그 분과 전 주님의 뜻을 묻기 위해 기도했어요. 기도 중 제가 모르는 단어가 방언으로 흘러나왔어요. 같은 말을 5번 반복했죠. 그때 그 한국 목사는 기도하면서 깜짝놀라 두리번거렸다는 거예요. 다른 한국 사람이 왔는지 알고요. 제가 정확한 한국말로 5번이나 “가야할 길을 나에게 보여주옵소서”라고 외치더라는 거예요”
방언을 한국어로 받은 브래너 목사는 한국사역이 주님의 뜻이라 확신했다. 그리고 한국 사역의 문이 그에게 활짝 열리기 시작했다.
1997년 브래너 목사는 미국에서 6000명 정도 모이는 집회를 인도하고 있었다. 그 집회에 영동제일교회 김혜자 목사가 딸과 함께 참석했다. 집회 후 김 목사는 그를 한국에 초청하고 싶다고 했다. 또 김 목사는 그에게 찬양 사역에 관심이 많은 자신의 장녀 박성희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제가 그녀의 손을 잡고 기도하는 순간, ‘앞으로 너의 아내가 될 사람이다’라고 성령님이 말씀하시는 거예요. 후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도 절 만나기전부터 어머니에게 ‘엄마! 나는 찬양 사역을 하면서 변호사인 사람과 결혼을 할 것 같아’라고 얘기했었다고 하더라구요”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이요, 인도였다.
그 해 브래너 목사는 영동제일교회에서 찬양 컨퍼런스를 인도했다. 김 목사의 딸 성희씨는 집회내내 그를 위해 운전을 도맡았다. 그들은 사랑에 빠졌고, 1998년 결혼을 했다. 현재 그들 사이에는 조수아와 에스더 남매가 있다.
영동제일교회에서 개최했던 컨퍼런스를 모태로 1999년 ‘다윗의장막’이 탄생했다. ‘다윗의장막’은 집회의 실황을 녹음해 앨범으로 내놓고 있다. 앨범은 한국 기독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받았다. 지난 22∼24일 10집앨범 녹음을 위해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모든 나라 모든 족속으로 컨퍼런스’가 개최됐다. 브래너 목사는 ‘다윗의장막’은 함께 노래함으로써 마음이 상쾌해지고 성령이 임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고 전한다.
오늘도 스캇 브래너 목사는 주를 위해 신령과 진정으로 찬양한다. 그분이 우리에게 준 천상의 멜로디를 기억하면서….
- 이소흔기자 (shlee@fgtv.or.kr) / 순복음가족신문 -
“지금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스캇 브레너-
첫댓글 “가야할 길을 나에게 보여주옵소서”아멘 ~````````주님의 역사는 이 어찌 인간이 알리요~~~~ 확신하지요 주님의 역사를.
아멘.
아멘....
멋있다.. 하나님 정말 멋있습니다. 저에게도 가야할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