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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지낸 선친의 사십구재(四十九齋)
지난 3월 11일 노환으로 92세로 세연을 마치신 선친의 49재는 지난 4월 28일이었습니다. 평소 아버지의 49재는 제 손으로 의식을 치뤄 드리고 싶었습니다. 절에 모셔서 보다 장 엄하게 하는 것도 좋지만 제가 남들의 49재도 많이 집전한 바가 있어서 아버지는 꼭 제 가 직접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법당을 빌려서 하는 방법과 야외에서 하는 방법도 고려해 보았지만 여러 여건이 합당치 않아서 집에서 치르기로 한 것입니다.
우리는 5남매입니다. 5남매의 가족들이 모두 모여 아버지의 왕생극락을 한마음으로 기 원해 드리면 참으로 좋겠지만, 형과 남동생은 무교이고 제수씨는 기독교, 누나와 여동생 은 천주교에 적을 두어, 불교와는 인연이 없는 사람들 뿐이어서 49재에 관심이 있는 사람 은 없는 터입니다. 특히 형은 무교로 불교를 특별히 싫어하는 것은 없지만 목탁을 치고 염불하는 것은 썩 좋아하지 않아서, 이들을 49재에 동참시킨다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스스로 동참하는 사람은 막을 수 없으나 굳이 권하고 싶지 않아서, 둘이서 조촐히 치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49재는 새벽에 지낼 것이고 일단 둘이서 치를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각자 나름대로 기리라고 일렀습니다.
장례식 전에는 49재를 통하여 가족과 함께하는 장엄한 의식을 선보이고 싶은 생각이 없 지 않았으나 장례를 통해 얻어진 결론은 동참보다는 배려가 낫다는 것이었습니다.
몇몇 법우님들이 동참의사를 보이셨지만 직계가족도 마다하는 입장이라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직 불보살님만 의지하며 하고자 한 것입니다.
컴퓨터 책상을 상단으로 하고 그 밑을 영단으로 삼았습니다.
석가모니불
서재에서 사십구재를 지내려하니 묘안을 내었습니다. 이제 서재는 법당으로 변모했습니 다. 컴퓨터 책상을 상단으로 삼았습니다. 컴퓨터에 늘 부처님 작업을 하기 때문에 늘 그 속에서 부처님을 뵙기 때문입니다.
영단은 그 밑의 문갑을 치우고 상을 마련했습니다. 창문은 커튼을 새로 빨아 다리고 그 위에 탑다라니 둘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오색실을 가로로 치고 컴의 위쪽 벽에 모셔놓 은 석가모니부처님의 초상화 진영에 오색실을 매고 늘여 책장의 경전에 이어지게 하고 의식집에 등장하시는 부처님 열 세분과 보살님 열두 분 등 25위 불보살님 명호를 한지에 붓펜으로 써서 모셨습니다. 이렇게 하니 법당이 장엄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초재부터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동안 초재부터 6재는 4시에 기상하여 재계하고 기도준비를 한 다음, 5시 30분부터 약 1시간 40분 정도 소요되는 <삼보통청>과 <관음시식> 의식을 봉행하였고, 평일엔 역시 새벽 4시에 기상하여 재계하고 차를 달이고 공양미를 올리며 5시 30분부터 1시간 20 분 정도 의식을 통하여, 입정, 십념, 경전독송, 정근, 축원 등을 하였고, 저녁에도 역 시 마찬가지로 하면서 광명진언을 108번 추가하는 방식으로 하였습니다.
경전독송으로는 금강경ㆍ지장경ㆍ법화경(서품, 방편품, 비유품, 여래수량품, 관세음보살 보문품, 보현보살권발품)ㆍ아미타경ㆍ장엄염불(자작시 포함)ㆍ회심곡ㆍ영가법문 등을 번갈아 독송하여 영가로 하여금 법문을 듣고 집착과 번뇌를 여의고 왕생극락하기를 발원 하였습니다.
집에서 하는 것이라 이웃집에 민폐를 염려하여 모든 의식은 요령과 목탁을 쓰지 않고 죽 비로만 하였습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의식의 장중한 멋은 없었지만 정성은 다했습니다. 49재에는 생각을 바꾸어 요령과 목탁의 법구를 쓰기로 했습니다. 대신 목탁채에 붕대를 감은 다음 반창고로 단단히 동여맺고, 요령에는 요령추에 역시 반창고를 두르니 아무리 새벽이라 해도 소리가 새 나갈 염려가 없었습니다. ^^
그동안 초재부터 6재에 이르기까지는 오직 차와 향과 꽃, 백미, 삼색과일만 마련하여 조 촐히 관음시식을 베풀어 왔습니다. 이제 마지막 49재 막재를 맞이하여 보다 여법하게 하고자 삼색전과 삼색나물 다섯 가지 과일 등을 조촐하게 공양물을 마련하여 올렸습니 다. 공양물에 대해서는 일체 비니초님이 도맡아 했고, 상단과 영단의 모든 준비는 제가 했습니다.
25위 불보살님
南 南 南 南 南 南 南 南 南 南 南 南 南 南 南 南 南 南 南 南 南 南 南 南 南 無 無 無 無 無 無 無 無 無 無 無 無 無 無 無 無 無 無 無 無 無 無 無 無 無 廻 圓 歡 一 彌 除 金 大 大 大 大 大 大 當 千 淸 圓 極 東 寶 多 妙 廣 離 甘 向 滿 喜 切 勒 障 剛 願 聖 勢 悲 行 聖 來 百 淨 滿 樂 方 勝 寶 色 博 怖 露 藏 藏 藏 淸 菩 碍 藏 本 引 至 觀 普 文 下 億 法 報 導 藥 如 如 身 身 畏 王 菩 菩 摩 淨 薩 菩 菩 尊 路 菩 世 賢 師 生 化 身 身 師 師 來 來 如 如 如 如 薩 薩 尼 大 薩 薩 薩 地 王 薩 音 菩 利 彌 身 毘 盧 阿 琉 ㅇ ㅇ 來 來 來 來 摩 摩 寶 海 ㅇ ㅇ ㅇ 藏 菩 ㅇ 菩 薩 菩 勒 釋 盧 舍 彌 璃 ㅇ ㅇ ㅇ ㅇ ㅇ ㅇ 訶 訶 積 衆 ㅇ ㅇ ㅇ 菩 薩 ㅇ 薩 ㅇ 薩 尊 迦 遮 那 陀 光 ㅇ ㅇ ㅇ ㅇ ㅇ ㅇ 薩 薩 佛 菩 ㅇ ㅇ ㅇ 薩 摩 ㅇ ㅇ ㅇ ㅇ 佛 牟 那 佛 佛 佛 ㅇ ㅇ ㅇ ㅇ ㅇ ㅇ ㅇ ㅇ ㅇ 薩 ㅇ ㅇ ㅇ ㅇ 訶 ㅇ ㅇ ㅇ ㅇ ㅇ 尼 佛 ㅇ ㅇ ㅇ ㅇ ㅇ ㅇ ㅇ ㅇ ㅇ ㅇ ㅇ ㅇ ㅇ ㅇ ㅇ ㅇ ㅇ 薩 ㅇ ㅇ ㅇ ㅇ ㅇ 佛 ㅇ ㅇ ㅇ ㅇ ㅇ ㅇ ㅇ ㅇ ㅇ ㅇ
동방약사유리광불에서 감로왕여래까지.
극락도사아미타불에서 대행보현보살까지
제장애보살에서 대비관세음보살까지
미륵보살에서 회향장보살까지
붓펜으로 쓴 것이라 일찍이 붓글씨를 배웠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공양할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입니다.
공양준비 완료
상단과 영단에 공양상이 차려지고
상단 불단의 모습
상단에는 꽃ㆍ향ㆍ차ㆍ연등을 공양했습니다.
영단의 모습
영단에는 연근전ㆍ고구마전ㆍ 버섯전과 세 가지 나물인 세발나물ㆍ방풍나물ㆍ취나물과 탕국ㆍ김ㆍ물김치ㆍ두부ㆍ떡ㆍ 과자 등을 올렸습니다. 흰봉투와 주황봉투는 노잣돈과 지전... 주황봉투엔 법우님들이 장례식에 부조하신 돈을 지전으로 환전하여 올려 놓은 것입니다. 깜빡 지전을 안 찍었네요.
선친의 영정과 위패
선친은 1924년(갑자년) 농촌에서 태어나 슬하에 5남매를 두시고 평생 농사만 짓고 사시 다가 꼭 20년 전인 1995년 3월 7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선비(先妣)께서 돌아가시자 시골 생활을 정리하고 상경하시어 저의 집에 모시게 되었는데 그때 연세가 72세였습니다.
소일거리로 무엇이 좋을까 궁리하던 차 무엇이 하시고 싶으냐고 하시니 "공부가 하고 싶다." 고 하시어 종로에 있는 <고려학원>에 등록해 드렸는데, 열심히 공부하시어 당시 최고령 초등학교 자격을 취득하시도 하셨습니다.
이렇게 2년여를 사시다가 천안에 있는 막내동생네서 모시겠다고 하여, 아무래도 손자가 있는 곳이 덜 적적하시겠다 싶어 허락하여 7년여를 지내셨는데, 그러신 중에 고관절병을 얻어 화장실출입도 못할 정도로 쇠약해지시어 다시 모시고 올라와 보양에 힘쓰니 건강이 다시 좋아져 천안과 고모님댁으로 무시로 다니신 바 있다가 80대 후반부터 건강에 이상 신호가 보여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저보다는 비니초님이 온갖 정성을 기울여 봉 양해드리니 다시 상경하신 후로 11년 동안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간 몇 번의 병원 진료를 받았지만 별 이상이 없어 돌아가시기 전까지 별달리 드시는 약이 없었습니다. 약이라면 변비약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치매가 오고 몸이 점점 쇠약해져 가는 모습을 보며 마치 고골관(枯骨觀)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대소변을 받아내고 목욕시켜 드리는 일이 전혀 귀찮거나 싫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은 대개 비니초님이 도맡아 했습니다. 저는 늘 보조의 역할을 했습니다. 소변이 나오면 기분이 좋았고 대변이 나오면 안심했습니다.
비니초님이 "아버님 사랑해요." 하면 미소를 띠고 "나도 사랑해!" 하시던 아버지... 이제 돌아가시고 보니 그 때가 그리워집니다.
先嚴父宜寧後人南福成靈駕
위패는 제가 정성을 다해 접었습니다.
위패 옆의 흰 연꽃
이 꽃은 수련이라고 하네요.
연꽃이 있어 더욱 장엄되었습니다.
재료는 제가 사왔는데 비니초님은 이때 친정부모님이 교통사고로 입원 중이라 토요일만 되면 진주 경상대학병원에 가서 간병하느라 연꽃을 비빌 새가 없어 연잎은 제가 다 말아 놓았고 꽃은 비니초님이 완성한 것입니다. 상단과 영단의 연꽃을 네 개 만들었습니다.
카네이션도 달았습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잠시 서 보았습니다.
의식집과 목탁, 죽비, 요령
비니초님 자리
모든 준비가 끝난 모습입니다.
오전 5시 30분, 왕생의례를 거행하였습니다. 전통적인 49재의식이 시작된 것입니다.
시련의식(侍輦儀式)은 생략했습니다. 시련이란 시방에 두루하신 한량없는 불보살님과 도량을 옹호하는 여러 하늘과 팔부성현을 맞아 모시어 영가를 천도하는 법요에 증명이 되어 주시도록 청하는 의식입니다.
의식은 대령(對靈)부터 시작하였습니다. 모든 의식은 제가 엮은 <우리말 왕생의례집>에 의거했습니다.
대령이란 영가에 대하여 설하는 법문의식을 뜻합니다.
나무 극락도사 아미타불 나무 좌우보처 양대보살 나무 접인망령 대성인로왕보살 마하살 .................................................
보소청진언(普召請眞言) 나무 보보제리 가리다리 다타 아다야
20여 분의 대령의식을 끝내고, 다음으로는 관욕의식(灌浴儀式)을 봉행했습니다.
관욕단(灌浴壇)
관욕단은 영가께서 목욕하는 곳입니다. 병풍이 없어 흰 천과 문을 이용하여 관욕단을 마련했습니다.
관욕(灌浴)은 영가(靈駕)의 다겁(多劫) 생(生)의 죄구(罪垢)를 씻어주는 절차를 말합니다.
관욕단 내부
향탕ㆍ비누ㆍ칫솔ㆍ치약ㆍ수건과 목욕 후 갈아입을 옷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관욕단을 향해서 관욕의식을 집전 중입니다.
목욕진언이 끝나고 작양지진언(嚼楊枝眞言)을 하는 모습입니다.
작양지진언(嚼楊枝眞言)은 양치질하는 진언입니다. "옴 바아라하 사바하"
관욕의식은 약 30분 정도 이어졌습니다.
관욕의식이 끝나고 신중작법을 하였습니다. 다음은 지장헌공(地藏獻供)의식을 봉행했습 니다.
나무 유명교주 지장보살 마하살
지장헌공의식은 염라대왕 업경대 앞에서 어느 때나 계시면서 남염부제 중생들의 지은 공덕을 증명하는 자비와 원력이 크신 지장보살님을 청하여 공양을 베풀어 영가의 왕생 극락을 발원하는 의식입니다.
지장헌공 의식 중입니다.
차를 올리고 있는 비니초님
지장헌공 축원시에 향불교 법우님들의 축원도 아울러 올렸습니다.
다음은 관음시식(觀音施食) 차례입니다. 이 의식은 영가를 위하여 재(齋)를 베풀고 아미 타불과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 양대보살과 영가를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인로왕보살님께 권공(勸供)하는 한편, 영가에게 음식을 베풀고 법문을 들려 주어 집착과 번뇌를 벗어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의식입니다. 의식 중 가장 깁니다.
상단에 올려진 공양물을 영단으로 옮깁니다.
영단에 공양물이 올려진 모습입니다.
나무 극락도사 아미타불 나무 관음세지 양대보살 나무 접인망령 대성인로왕보살 마하살
사바세계 사천하 남섬부주 동양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영동...... 백우당 청정도량에서 행효자 백우덕산과 자부 비니초연화심이 지극한 정성으로 망엄부 의령후인 남복성영가의 49재를 맞아 부처님의 가피로 왕생극락의 공덕을 닦고자 법의 자리를 마련하고 영가의 왕림을 청하옵니다.
의식에 따라 요령과 목탁으로 영가법문 등 여러 의식을 치른 다음 차를 올리는 차례에서 차를 한 잔 올렸습니다.
제가 선친께 차를 따르고...
차를 올립니다.
절 받으십시요. 모든 집착 번뇌를 내려놓고 부디 왕생극락하시기를 바랍니다.
백 가지 풀잎 중에 새로운 진미로다 百草林中一味新 조주스님 늘 몇 천의 사람에게 권하였네 趙州常勸幾千人 돌솥에 강심수 고이 다려 올리오니 烹將石鼎江心水 원컨대 망령이여 윤회고를 쉴지어다 願使亡靈歇苦輪 원컨대 고혼이여 윤회고를 쉴지어다 願使孤魂歇苦輪 원컨대 제령이여 윤회고를 쉴지어다 願使諸靈歇苦輪
비니초님도 차를 올리고 노잣돈도 드리고 절을 올렸습니다.
차를 올리고 나서 회심곡(回心曲)을 합송하여 들려 드렸습니다.
세상천지 만물 중에 사람밖에 또 있는가? 여보시요 시주님네 이내 말씀 들어보소. 이 세상에 나온 사람 뉘덕으로 나왔는가? 석가여래 공덕으로 아버님 전 뼈를 빌고 어머님 전 살을 빌어 칠성님 전 명을 빌고 제석님 전 복을 빌어 이내 일신 탄생하니 한두 살에 철을 몰라 부모은덕 알을 손가!
.......................... 중 략 ...........................
남자 죄인 잡아들여 형벌하며 묻는 말이 이놈들아 들어보라 선심하랴 발원하고 인세간에 나아가서 무슨 선심 하였는가? 바른대로 아뢰어라 용방비간 뽄을 받아 임금님께 극간하여 나라에 충성하며, 부모님께 효도하여 가범을 세웠으며, 배고픈 이 밥을 주어 아사구제 하였는가? 헐벗은 이 옷을 주어 구난공덕 하였는가? 좋은 곳에 집을 지어 행인공덕 하였는가? 깊은 물에 다리 놓아 월천공덕 하였는가? 목마른 이 물을 주어 급수공덕 하였는가? 병든 사람 약을 주어 활인공덕 하였는가? 높은 산에 불당 지어 중생공덕 하였는가? 좋은 밭에 원두 심어 행인해갈 하였는가? 부처님께 공양 드려 마음 닦고 선심하여 염불공덕 하였는가? 어진 사람 모해하고 불의행사 많이 하며 탐재함이 극심하니 너의 죄목 어찌하리. 죄악이 심중하니 풍도옥에 가두리라.
.......................... 중 략 ...........................
회심곡을 업신여겨 선심공덕 아니하면 우마형상 못 면하고 구렁 배암 못 면하네. 조심하여 수신하라! 수신제가 능히 하면 치국안민 하오리니 아무쪼록 힘을 쓰오. 적덕을 아니 하면 신후사가 참혹하니 바라나니 우리형제 자선사업 많이 하여 내생 길을 잘 닦아서 극락으로 나아가세.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회심곡이 끝나고 변식진언(變食眞言) 등과 칭양성호(稱揚聖號)가 이어졌고 계속하여 시귀식진언, 무차법식진언, 보공양진언, 보회향진언 등과 영가를 깨우치는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모든 법은 근본 좇아 오는 것이니 諸法從本來 언제나 스스로 적멸함이라 常自寂滅相 불자가 이 진리를 모두 행하면 佛子行道已 오는 세상 반드시 성불하리라 來世得作佛
모든 법은 항상함이 없는 법이니 諸行無常 이것은 일어났다 사라지는 법 是生滅法 생멸하는 분별마음 사라진다면 生滅滅已 열반의 고요함이 낙이 된다네 寂滅爲樂
장엄염불 중입니다.
원하오니 이 생명이 다할 때까지 願我盡生 부질없는 다른 생각 아니하리다 無別念 아미타불 부처님만 따르오리다 阿彌陀佛獨常隨 마음속에 옥호광이 항상 머물러 心心常係玉毫光 생각마다 금색상을 여의지 않고 念念不離金色相 일심으로 염주 들고 법계 관하니 我執念珠法界觀 이 세상의 무엇에도 걸림이 없네 虛空爲繩無不貫 시방국토 곳곳마다 부처님 뵙고 平等舍那無何處 안락정도 극락세계 원하옵니다 觀求西方阿彌陀 나무서방대교주 南無西方大敎主 무량수여래불 無量壽如來佛 나무아미타불 南無阿彌陀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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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불 부처님은 어느 곳에 계시올까 阿彌陀佛在何方 마음속에 새겨 두고 한 순간도 잊지 마세 着得心頭切莫忘 생각하고 생각하며 무념처에 이른다면 念到念窮無念處 여섯 문은 항상 열려 찬란하게 빛나리라 六門常放紫金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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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오니 시방법계 한량없는 모든 중생 願共法界諸衆生 아미타불 원력바다 모두 함께 들어가서 同入彌陀大願海 미래세가 다하도록 모든 중생 제도하고 盡未來際度衆生 너도 나도 한날 한때 불도를 이루리라 自他一時成佛道
장엄염불이 끝나면 영가를 봉송(奉送)할 차례입니다.
이때 상주는 위패를 부처님 전에 서게 되는데 비니초님이 영정과 위패를 들고 섰습니다. 삼보님께 예를 드리고 소대(燒臺)로 가게 되는데 이때 법당을 오른쪽으로 세 바퀴 돌게 됩니다. 저는 요령을 들고 <법성게>를 염하며 세 바퀴 돌고 거실을 한 바퀴 돈 다음 소대로 향했습니다. 소대는 따로 만들 수 없어 싱크대를 이용했습니다.
소대에 이르러 전송(餞送)의식을 봉행했습니다.
지금 이제 문밖에서 전송받는 영가시여! 함께 와서 천도받는 망령 고혼 제령이여! 시식하고 송경하고 염불해 온 공덕으로 진실없는 인연들을 여의고서 떠나는가? 부질없는 인연들을 못 버리고 떠나는가?
망연들을 버린 자는 극락세계 소요하고 망연들을 못 여읜 자 다시 한번 들으시라.
지수화풍 흩어지면 꿈속처럼 흔적 없고 四大各離如夢中 육진경계 심식자리 본래부터 공하다네 六塵心識本來空 부처님과 조사님의 회광처를 알려 하면 欲識佛祖回光處 서산에는 해가 지고 동녘에는 달 뜬다오 日落西山月出東
원왕생 원왕생 願往生 願往生 극락국에 태어나서 아미타불 뵈온 후에 往生極樂見彌陀 부처님의 마정수기 받자옵기 원합니다 獲蒙摩頂授記別
원왕생 원왕생 願往生 願往生 아미타불 그 곁에서 큰 설법을 들으면서 願在彌陀會中座 언제나 꽃과 향을 공양하기 원입니다 手執香花常供養
원왕생 원왕생 願往生 願往生 아미타불 극락세계 연화장에 태어나서 往生華藏蓮華界 너나 없이 모두 함께 성불하기 원입니다 自他一時成佛道
전송(餞送)과 풍송가지(諷誦加持)가 끝나면 소전진언(燒錢眞言)을 하게 되는데 이때 위 패를 사르게 됩니다. 또 가시는 길 평안하시라고 노잣돈인 지전(紙錢)을 사르게 됩니다. 그동안 선친을 위해 향불법우님들이 정성으로 주신 부의금과 그동안 재를 봉행하며 올 린 노잣돈을 모두 지전으로 바꾸어 선친의 가시는 길에 지전을 불살라 드렸습니다.
봉송진언(奉送眞言) 옴 바아라 사다 목차목 (3번)
상품상생진언(上品上生眞言) 옴 마리다리 훔훔 바탁 사바하 (3번)
다시 삼보님께 인사드리고 완전히 봉송하였습니다.
불길솟고 바람불어 하늘 땅 무너져도 火蕩風搖天地壞 고요로운 한 마음은 백운간에 길이 있네 廖廖長在白雲間 한 소리에 금성벽을 깨뜨려서 없앴으니 一聲揮破金城壁 이제 다만 부처님전 칠보산을 향하시라 但向佛前七寶山
나무환희장마니보적불 南無歡喜藏摩尼寶積佛 나무원만장보살마하살 南無나무원만藏菩薩摩訶薩 나무회향장보살마하살 南無廻向藏菩薩摩訶薩
끝으로 <불설소재길상다라니(佛說消災吉祥陀羅尼)>로 말끔히 정리했습니다.
나모 사만다 못다남 아바라지 하다사 사다남 다냐타 옴 카카 카혜 카혜 훔훔 아바라 아바라 바라 아바라 바라 아바라 지따 지따 지리 지리 빠다 빠다 선지가 시리예 사바하 (3번)
다시 <광명진언(光明眞言)>을 열 번 염송하여 49재를 모두 마쳤습니다.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 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릍타야 훔 (10번)
이것으로 49재를 모두 마치니 어느덧 아침 9시가 되었습니다. 49재를 봉행하고 돌아서 니 '사바일생이 한바탕 꿈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를 둘이서만 보내드 리고 나니 온가족이 모여 합심하여 봉행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마음이 일었다가 사라 졌습니다.
그리고 49재를 통해 모아진 노잣돈은 비록 적지만 선친의 내생길을 닦고자 비가 추적추 적 내리는 지난 5월 3일 치악산 상원사에 올라가 석불조성 불사금으로 회향하고 돌아왔 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감사합니다. 백우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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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다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
그 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어르신 떠나신지도 벌써 2달이 넘었네요.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세월이 참 빠르네요. 49재를 지낸 지 3주가 되었으니 오늘이 69일째가 되네요.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
그 동안 두분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그동안 꿈같은 일이 꿈같이 지나갔네요.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
장례식장에서도 안 나오는 눈물이 이 글을 읽고 눈물이 나네요.
백우님과 비니초님의 사랑을 받으신 선고장께서는 시간동안 참 행복하셨을 것 같습니다.
여느 절에서 하는 49재와 비교를 할 수 있을까요?
감탄 또 감탄입니다.
두 분 꼭 복 받으실 겁니다. _()_
바쁘신데도 보셨군요. 저 법복은 화광님께서 선물해 주셨는데 제일 먼저 저 옷을 입고 의식을 봉행하기는
정수님 선고장 시다림 때였지요. 우리들의 향불교 인연으로 해서 두 분 영가께서 극락세계 왕생의 기연이
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나무아미타불 ()()()
樹欲靜而風不止요 子欲養而親不待라 하였으니
생전에 못한 일이 자꾸 떠오르네요. 살아계실 때 잘 할 일입니다.
朱子十悔의 으뜸은 '不孝父母 死後悔'라 일렀음을 상기해 봅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최선을 다할 일입니다. 나무아미타불 ()()()
나무아미타불 _()()()_
사십구재 공양 준비하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덕분에 단출하지만 정성이 듬뿍 담긴 공양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많은 생각에 눈물이 나네요. 고생 많으셨습니다._()_
화광님께서 주신 법복을 입고 선친의 사십구재를 지내면서 감사한 마음 가득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근래에 향불법우님은 천붕지통(天崩之痛)과 단장지애(斷腸之哀)를
겪은 분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두가 고통없는 극락세계에서 편히 쉬시길 합장해 봅니다.
나무아미타불 ()()()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
영가님 생전에 선업 그리고 비니초님 백우님 지극 정성 보필,
아미타 부처님 영접 받으셨으니 왕생 극락 하셨으리라 확신 합니다....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생전에 가족은 못 알아보는 수가 있어도 묘법님은 알아보셨지요.
그만큼 가족들보다 많이 찾아 뵌 때문이죠. 감사드립니다.
만약 적절한 장소가 있었다면 묘법님과 더욱 신나게 의식을 했을 터입니다. 나무아미타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