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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녹취 하늘녹취사무소 원문보기 글쓴이: ygtj913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마태복음 11장 28~30절) -김민철 목사님-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새생명축제를 맞이해서 모든 분들 다 환영하지만, 특별히 새로 나온 새가족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늘 이 만남이 여러분들의 삶에 멋진 만남으로 기억되게 하기 위해서 저와 우리 성도님들이 그동안 기도하면서 준비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평안과 기쁨이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에게 가득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의 축원합니다.
지난 2월부터 우리나라에 미투운동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미투운동으로 많은 사람들의 성적 범죄가 드러났는데요. 그로 인한 자살소식도 잇따랐습니다. 성추행 가해자가 검찰 소환조사를 앞에 놓고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소식을 들을 때 죄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알게 됩니다. 죄를 지을 때는 짜릿하고 달콤했을지 몰라도 훗날 죄가 드러나고 그 죄값을 치러야 할 때가 되었을 때 비로소 그 죄의 짐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죠. 그 엄청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서 극단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자살통계를 보면 하루 평균 40여명 정도가 자살한다고 합니다. 각각 사연은 다르겠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삶이 주는 고통의 무게를 견디기 어려웠다는 거예요. 자살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서 우울증환자, 불면증환자, 공황장애환자들도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세상이, 우리의 삶이 왜 이렇게 됐을까요?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처음 만드셨던 세상은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통도 없었고 죽음도 없는 그야말로 완전한 세상이었어요.
창세기 1장 31절 말씀 보시면 처음에 하나님이 창조하셨을 때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시고 그 세상을 봤을 때 심히 보기가 좋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아름답고 완벽한 멋진 세상이었다는 거예요. 죽음도 없었고 고통도 없었던 정말 아름다웠던 세상이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살기가 힘든 고통스러운 세상으로 변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면 그 원인을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는데요. 바로 죄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으면서부터,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죄를 지으면서부터 그렇게 죄가 우리 인류의 삶 가운데 들어오면서부터 그 죄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파괴했고 또 아담과 하와 사이, 다시 말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파괴했고, 그때부터 우리들의 삶 가운데 고통과 죽음이 생겨났다고 성경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죄의 시작은 방금 말씀드린 선악과 사건입니다. 창세기 2장에 보면 그 내용이 나오는데요. 16절 말씀 보시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신 장면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다른 나무의 열매들은 다 먹되 선악과만큼은 따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도대체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어떤 의미를 갖는 일이기에 그것을 따먹으면 죽는다고 하셨을까요? 선악과 사건은 단순히 과일 하나 따먹은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선악과 사건은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는 인간의 큰 교만이 드러난 사건이었어요.
아시다시피 에덴동산은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이 만드셨고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드신 창조주이기 때문에 조물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조물주 되신 하나님이 만드신 이 땅의 모든 것을 피조물이라고 하죠.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모든 피조물들의 대표로 세우시고 그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관리하고 다스리고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하나님 대행권한을 주셨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아담과 하와가 자기들이 하나님의 대행이 아니라 주인이라고 착각할까봐 그들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장치를 마련해놨으니 그것이 바로 선악과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유일하게 따먹을 수 없는 선악과는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당신이 에덴동산의 주인이 되심을 알리는 굉장히 중요한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교만은 결국 그것까지도 자기 마음대로 따먹음으로 자신이 주인행세를 하고 싶었던 거예요. 이것이 우리의 교만입니다. 뱀이 하와를 유혹했을 때 했던 말을 보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3장 5절 말씀 보시면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도록 뱀이 유혹하는 장면인데 무슨 말로 유혹하는지를 잘 보세요.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무슨 말로 유혹하냐면 ‘이 선악과를 따먹으면 너희들이 하나님과 같이 될 거야.’ 이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너희가 주인이 될 수 있어.’ 이런 말과도 같습니다. 우리 인간의 교만을 부추긴 거예요. 아담과 하와는 그 유혹에 넘어가서 선악과를 따먹었고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는 엄청난 교만의 죄가 된 것입니다.
모든 죄에는 형벌이 따르는 법,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의 결과는 참 무서웠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3장 19절에 보시면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 잘 보세요.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이 말은 죽을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너 지금부터는 엄청 고생해야 먹고 살 수 있어.’ 이 말입니다.
우리는 이걸 보면서 왜 우리의 삶 가운데 고생이라는 것이 생겨났는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죄를 결과로 고생이 생겨난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너희들은 앞으로 고생해야 먹고 산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방금 봤던 말씀 끝부분에 보면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너는 이제부터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말이에요. 죽음이라는 게 그것 아닙니까? 흙으로 만들어진 육체가 다시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게 죽음입니다.
원래 우리 인간을 하나님이 처음 만드셨을 때는 죽음이 없는 영생하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육체의 한계인 죽음이 생겨난 거예요. 질병과 죽음이 생겨난 것입니다. 죄의 형벌은 죽음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창세기 3장 17절 말씀 보시면 죄의 다른 형벌이 나오는데요.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이 말씀에 보면 두 가지 형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가 뭐냐면 땅은 너로 말미암아, 너의 죄 때문에 땅도 저주를 받을 것이다 이 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반복해서 나오죠. 너는 평생에 수고하여야 먹고 살 수 있다는 거예요. 평생 수고해야 소산을 먹는 형벌, 이 형벌 때문에 세상은 오늘날 사람들이 그러죠. 참 먹고 살기 힘들다 그러죠. 왜 세상이 이렇게 됐느냐, 죄 때문에 이렇게 됐음을 성경은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고생을 피할 수 없는 세상이 된 거예요.
그리고 아담의 범죄 때문에 땅이 저주를 받는 벌이 주어졌는데요. 땅이 저주를 받았다는 것, 저는 사실 초신자 때 이해가 안 됐어요. 왜 죄는 사람이 지었는데 땅이 저주를 받아야 되나, 저는 처음에 이게 이해가 안 됐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아담의 죄 때문에 땅도 저주를 받았다는 것은 이런 말이에요.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들 중에서 대표가 아담이라고 했습니다. 피조물의 대표인 아담이 죄로 인해서 저주를 받자 대표에게 속한 모든 이 땅의 피조물들도 대표와 함께 저주 가운데 들어가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디즈니 만화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미녀와 야수입니다. 여러분 다 들어보셨을 거예요. 그 이야기가 혹시 어떻게 시작되는지 생각나세요? 한 요정이 거지 노파의 모습으로 젊은 왕자를 찾아가서 요청을 합니다. 추운 겨울밤에 이 성에서 하룻밤만 묵을 수 있게 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런데 왕자가 그 거지 노파의 외모를 보고 냉정하게 거절합니다. 그러자 노파는 정체를 밝히는 거죠. 요청으로 변해서 그 왕자를 저주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왕자를 저주하자 왕자만 야수로 바뀌는 게 아니라 왕자에게 속한 모든 것이 함께 저주를 받더라는 거예요. 대표가 저주 가운데 놓여지자 그 대표에게 속한 모든 것이 함께 저주로 들어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이 살고 있는 성도 저주를 받아서 음침하고 어두운 성으로 바뀌고 성 안에 있던 하인들, 강아지까지도 저주를 받아서 촛대가 되고 주전자가 되고 시계가 되고 찻잔이 되고, 보신 분들은 생각나죠? 왕자가 나중에 저주가 풀렸을 때 왕자만 풀리는 게 아닙니다. 대표가 저주가 풀리니까 나머지 모든 것들도 함께 저주가 풀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원리입니다. 피조물의 대표인 아담이 죄로 인해서 저주를 받자 아담에게 속한 모든 피조물들이 함께 저주 아래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이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이 함께 저주에 들어가면부터 동물들도 사나워져서 서로 물고 뜯고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이 시작됐습니다. 그때부터 세상은 오염되고 황폐해지기 시작한 거예요. 그 죄악의 역사가 계속 발전되어서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이렇게 무섭고 악하고 고통스럽고 황폐한 세상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마음을 가장 무섭게 억누르고 황폐하게 하는 것은 바로 죄라는 짐이에요. 히브리서 12장 1절에 보면 우리 인생을 경주로 비유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억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지금 인생을 기나긴 마라톤과 같은 경주로 비유하면서 이 기나긴 경주를 우리들이 잘하기 위해서는 무거운 것들을 벗어버려야 되는데 우리의 마음을 가장 무섭게 억누르고 얽매고 있는 게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고 합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을 가장 얽매는 것, 가장 무겁게 짓누르는 것이 다른 게 아니라 죄라고 정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죄의 짐의 문제, 사실 2천년 전에 이 땅에 오셨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이런 우리들의 연약함과 고통을 아셨어요. 이 죄의 짐의 문제가 얼마만큼 심각한지를 아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말씀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초청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28절 말씀 보시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를 부르실 때 뭐라고 부르셨냐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라고 부르셨습니다. 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라는 말은 이런 말로 바꿔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고 있지 못한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그 죄의 짐을 무겁게 지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 죄 때문에 기쁨과 평안을 잃어버리고 황폐하게 사는 이들에게 진정한 자유와 쉼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전에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예수님이 탄생하실 것을 예언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 말씀 보시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도 알 수 있어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의 복지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게 아닙니다. 우리의 육체의 질병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게 아니에요. 예수님은 그 모든 문제의 뿌리에 뿌리를 찾아 내려가면 하나의 원인이 나오는데 그 근본원인인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말씀에 보시면 우리가 진정한 쉼을 얻는 방법을 말씀해 주고 계시는데요. 예수님이 우리를 진정한 쉼의 자리로 초대하시면서 어떻게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가 쉼을 얻을 수 있는지 말씀하시는데요. 29절 말씀 보시면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 말씀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쉼을 얻는 방법을 두 단계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첫 번째가 나의 멍에, 예수님의 멍에를 함께 메라는 거예요. 이게 첫 단추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내게 배우라는 거예요.
그러면 진정한 쉼을 얻게 된다는 말씀인데, 오늘 이 시간에는 그 첫 단추인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메는 것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단추인 예수님께 배우는 것은 다음 주일 이 시간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간관계상 두 개를 다 살펴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저는 두 개를 다 살펴볼 수도 있는데 여러분들에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아서 오늘 이 시간에는 첫 번째 단추인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메는 것만 살펴보고 다음 주에 두 번째 단계인 예수님께 배우는 게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메는 것인데, 멍에가 뭔지를 먼저 알아야 되겠죠. 오늘날은 농경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멍에가 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진을 한번 보겠습니다. (사진) 멍에는 보시다시피 연결고리역할을 하는 기구가 멍에입니다. 멍에는 소와 쟁기를 연결시켜주는 기구이기도 하고 또 소와 또 다른 소, 어미소와 새끼소를 연결시켜주는 기구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이 이 멍에가 뭔지를 보셨다면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가 돼야 돼요. 나의 멍에를 함께 메라, 이 말의 의미를 아시겠죠? 너희들이 쉼을 누리고 싶다면 나의 멍에를 함께 메라.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과 관계를 맺으라는 거예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멍에입니다. 두 마리를 절대 못 떼놓도록 붙여놓는 이 기구가 멍에인데 내 멍에를 너희들이 메야 된다는 것은 나와 관계를 맺어야 된다는 말이에요. 예수님과 하나로 연결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과 관계를 맺고 하나가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분과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 말씀 보니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을 믿게 되면 그 사람은 예수님과 바로 관계가 맺어진다는 거예요. 그리고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하고만 관계가 맺어지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또 하나의 관계가 맺어지는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맺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 뒷부분에 보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면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과 관계가 맺어짐과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통해서 예수님과 관계가 맺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그 순간부터 예수님이 하신 모든 일과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이 나의 일이 되고 나를 위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앞에 입양을 말씀드렸기 때문에 입양으로 비유를 하면 이해가 더 쉬울 것 같습니다.
고아원에 있는 한 아이가 입양을 통해서 새아빠 새엄마와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맺게 됐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러면 그 관계를 맺게 된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새아빠 새엄마가 그동안 했던 모든 일이 나의 일이 되는 것이고 나를 위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만일 그 새아빠가 3년 전에 아파트를 하나 구입했다면 그 아이는 입양되는 순간, 그래서 그 새아빠와 관계가 맺어지는 순간 3년 전에 아파트를 구입했던 일이 나를 위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나의 일이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까?
영적인 세계도 이와 똑같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믿어서 예수님과 관계가 맺어지는 순간부터 지난날 예수님이 하셨던 모든 일들은 전부 나의 일이 되고 나를 위한 일이 된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2천년 전에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최고의 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죄의 값을 지불하신 일입니다. 이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대표적인 일이에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요한복음 19장에 나오는데요. 30절 말씀 보니까 예수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다 이루었다.’입니다. 이 말씀이 헬라어 원어로 ‘테텔레스타이’라는 말인데요. 이 말을 직역하면, 우리 한글성경에는 직역이 아니라 의역된 내용이 ‘다 이루었다’이고, 원어를 그대로 직역하면 ‘다 지불했다’는 뜻입니다. 다 지불했다.
그러면 예수님이 죽으시면서 뭘 다 지불했다고 말씀하시는 걸까요? 앞으로 나와 믿음 안에서 관계를 맺게 될 그 영혼들을 위해서 그들의 죄값인 죽음을 죄 없으신 당신의 죽음을 통해서 다 지불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그 지은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게 됨을 믿으실 수 있기 바랍니다. 믿음 안에서 예수님과 관계를 맺게 되는 순간부터 그 예수님이 죄값을 지불하셨던 것이 나의 죄를 위한 지불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 앞에도 떳떳하게 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은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저주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셨어요.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보면 그 말씀이 나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저주를 받으셨대요. 저와 여러분이 죄 때문에 받아야 될 그 저주를 예수님이 대신 받아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로 말미암아 그 저주에서 해방되도록, 자유케 되도록, 그래서 진정한 쉼과 안식을 누리도록 대신 저주를 받으셨다고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이 나의 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인간의 의지와 우리의 노력으로 죄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다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필요가 없으세요. 안 오셨을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죄인인 우리가 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탄마귀는 우리를 자꾸 거짓으로 속여요. 어떻게 속이느냐,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속입니다. 우리의 의지와 행위로 죄 짓지 않고 살 수 있는 의인이 될 수 있다고 우리를 속이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과 관계를 못 맺게 만드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같은 자들이 꼭 그렇게 믿었고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율법이 613개나 된다고 해요. 성경에 나오는 율법이. 십계명만 율법이 아닙니다. 십계명은 613개의 율법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고 실제는 613개나 된다고 해요. 지금 무슨 말이냐면 마귀는 거짓으로 우리를 속이는데 어떻게 속이느냐, 너희들이 그 율법들을 다 퍼펙트하게 지켜서 의인이 될 수 있다고 속인다는 거예요.
당시 예수님이 이 땅에 살던 시대 당시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십계명 지키기도 어려운데 613개나 되는 율법을 사람이 어떻게 다 퍼펙트하게 지키겠습니까? 지킬 수도 없고 비슷하게 흉내를 내며 산다 할지라도 그 정도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원전한 의의 기준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613개 중에서 하나만 어겨도 죄인이에요. 613개를 다 어겨도 죄인이고 그중에서 612개 지키고 1개를 지키지 않아도 죄인입니다. 그리고 흉내내는 정도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완전한 의에 이를 수 없습니다.
제가 15년 전쯤으로 기억하는데요. 그때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숙소로 사용했던 호텔에서 이상한 모습을 하나 목격했어요. 그날이 토요일이었는데요.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각 층마다 다 멈춰서 문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거예요. 그런데 문이 열렸다 닫혔다 하면 내리든지 타든지 하는 사람이 있어야 될 거 아니에요. 그런데 각 층마다 문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데 내리는 사람도 없고 타는 사람도 없는 거예요.
10 몇 층에서부터 1층까지 내려가는데 생각해 보세요. 매 층마다 열렸다 닫혔다 하는데 엘리베이터 안에 타고 있던 우리 동료들끼리 서로 의심했어요. 뭐하러 각 층마다 버튼을 눌러가지고 이렇게 시간 끌게 만드나. 처음에는 서로를 의심했는데 나중에 알고 봤는데 우리가 누른 게 아니었어요. 우리는 사실 1층만 눌렀어요. 그런데 왜 매 층마다 문이 열리고 닫혔느냐, 그날이 토요일이었다고 말씀드렸죠.
토요일이 구약의 개념으로 안식일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율법 중에서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그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수칙을 만들어놨는데 그중 하나가 엘리베이터 버튼 하나 누르는 것도 일로 간주하는 거예요. 그래서 토요일이 되면 매 층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닫히도록 세팅을 해둔 것입니다. 제가 그 모습 하나만 보더라도 숨이 턱 막히더라고요. 여러분 같으면 그런 것 다 지키고 사시겠어요?
저는 단 하나의 예를 소개드렸을 뿐입니다. 613개의 율법을 이런 식으로 지켜야 의인이 될 수 있고 구원이 될 수 있다고 믿으니 얼마나 그들의 삶이 무겁고 힘들겠습니까? 이게 바로 사탄마귀가 하는 짓입니다. 거짓으로 속여서 우리 인생을 점점 더 무겁게 만드는 거예요. 이단들 있죠. 신천지, 여호와증인, 대순진리교, 하나님의 교회, 이런 이단들에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종류는 다르고 약간씩 모양새만 다르지 죄인인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사람이 뭔가를 열심히 해야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신천지라는 이단에 끌려가면 교리시험을 쳐서 몇 점 이상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교리시험을 쳤는데 시험점수가 안 나오면 구원 못 받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14만 4천명 안에 못 들어가요. 대순진리교 아시죠? 요즘에는 좀 뜸한데 길거리 가다 보면 도를 아십니까? 하고 찾아오는, 당신에게서 좋은 기가 느껴집니다 이러면서 접근하는 대순진리교. 이 대순진리교 같은 경우는 가정의 저주를 풀고 죄 사함을 얻으려면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 심지어는 수천만원짜리 제사상을 차려야 된다고 요구합니다.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으려면 뭘 해야 된다고 자꾸 요구하는 거예요.
이단들이 대부분 다 그렇습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을 받으려면 뭐 전도를 많이 해야 된다, 헌금을 많이 해야 된다, 봉사를 많이 해야 된다, 과거 마틴루터가 살던 중세시대 때는 면죄부를 사야 된다. 다 이런 식이에요. 여기 앞에 디큐브 백화점 앞에 보면 책들을 진열해놓고 365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서 있는 사람들 있습니다. 여호와증인들이에요. 그 사람들이 여러분이 지나가면서 책을 한권 가지고 가느냐 두권 가지고 가느냐 관심 없습니다. 그냥 지키고 서 있어요. 왜 서 있겠습니까? 그쪽에서 요구하는 봉사의 시간, 전도의 시간을 채워야 구원을 얻는다고 믿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게 가르쳐요.
그러니 삶이 얼마나 무겁겠습니까. 사탄마귀는 그런 거짓을 통해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우리의 인생을 더 무겁게 만든다는 거예요. 구원을 받으려면 자꾸 뭘 해야 된다고 가르치는 거죠. 이걸 하면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고 그러고 저것도 해야 된다 그러고. 그러나 예수님은 단 한 번도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죄 없는 당신이 죄 있는 우리를 대신해 죽으시면서 딱 한마디 하셨습니다. 내가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어요. 구원은 너희가 뭘 열심히 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죄 없는 내가 십자가에서 대신 저주를 받고 피 흘려 죽음으로 내가 다 이루었다는 거예요. 너희는 그 사실을 믿고 그 믿음 안에서 나와 관계를 맺으면 그때부터 진정한 쉼이 있는 삶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게 바로 오늘 본문이 말하고 있는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메는 삶이에요. 우리가 믿음 안에서 예수님과 관계를 맺으면 우리는 나중에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자유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3장 17절 보시면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절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함으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방금 말씀을 보신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가 구원 받기 위해서 뭘 많이 해야 된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전도를 1년에 몇 명 이상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기도와 금식을 한 주에 몇 시간 이상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 헌금을 얼마 이상 해야 된다, 성경시험을 쳐서 점수가 몇 점 이상 나와야 된다,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사탄마귀가 만들어낸 다 거짓이에요. 예수님께서는 딱 하나 말씀하셨어요. 죄인인 너희가 구원 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너희의 죄값을 다 치르기 위해서 이 땅에 내려와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과 믿음 안에서 관계를 맺으면 된다는 거예요. 그게 바로 오늘 본문이 만하고 있는 나의 멍에를 함께 메는 것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예수님의 이 위대한 초청을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세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분과 관계를 맺으면 그때부터 예수님이 하신 모든 일이 나를 위한 일이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준비해놓으신 미래의 모든 일들도 전부 나를 위한 일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 안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쉼이 있는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향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우리의 삶에 고생이 생겨났을까요? 무엇 때문에 우리의 삶이 이렇게 무거워졌을까요? 그에 대한 성경의 답은 바로 죄입니다. 죄 때문에 그렇게 아름다웠던 세상은 여기까지 파괴되고 황폐해졌습니다.
오늘도 사탄마귀는 수많은 사람들을 죄로 유혹해서 범죄하게 만들고 나쁜 것에 중독되게 해서 시간과 소중한 물질과 모든 것들을 다 빼앗아가고 있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가정이 깨지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가 깨지게 만들고 그 죄에 대한 죄책감과 형벌로 우리 인생을 버티기 힘들 정도로 무겁게 만듭니다. 그 무거움이 우리를 끊임없이 근심하게 하고 걱정하게 만들고 우울증과 불면증에 걸리게 만들고, 결국 우리 인생을 마지막 자살까지 몰고 가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그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끙끙거리고 있는 너희들아, 나에게 오라는 거죠. 믿음 안에서 예수님과 관계를 맺어서 그 죄 문제를 해결해서 구원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구원 받은 자녀로써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다 쉼을 누리는 것도 아닙니다. 아까 제가 말씀드렸죠. 진정한 쉼을 누리기 위해서는 두 단계가 필요합니다. 첫 번째는 믿음 안에서 예수님과 관계를 맺는 것, 멍에를 메는 게 필요가 이게 끝이 아니에요. 예수님을 믿지만 진정한 쉼을 누리고 살지 못하는 성도들 많습니다. 왜요? 두 번째 단계까지 못 나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내게 배우는 단계입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가 쉼을 얻으리니.
내게 배운다는 것은 우리가 구원 받은 자녀로써 이 주님의 말씀을 배우며 그 말씀대로 우리의 인생을 하나씩 하나씩 뜯어고쳐가는 그 인생의 리모델링을 통해서 진정한 쉼과 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두 번째 부분에 해당되는 것은 다음 주일에 구체적으로 설명드릴 텐데요.
핵심은 이것입니다. 진심으로 바라기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셨던 진정한 쉼과 자유를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늘 이 시간부터 평안과 쉼과 진리 안에서의 자유를 하나씩 하나씩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