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하반기 대의원대회 특별결의문
희망은 언제나 가장 낮은 곳에서 싹튼다.
-비정규노동자 투쟁기금 사업을 시작하면서
1970년 오늘, 청년 노동자 전태일이 유혈적 노동통제에 항거하여 스스로의 몸을 불살랐다. 그러나 그의 외침이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을 두드려 마침내 거대한 노동자투쟁의 불꽃으로 되살아났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출구없는 시대의 암흑 속에서 노예와도 같은 노동의 절망을 집요하게 끌어안고, 그 불길 속에서 비로소 희망을 피워내는 놀라운 변증법을 그는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34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노예의 절망을 감내한 끝에 죽음을 선택하는 노동자들을 보아야 한다. 인간답게 살고자하는 꿈을 꾸었다는 죄로 전태일의 유서와 별다르지 않은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지는 노동자들을 보아야 한다. 노동의 권리는 부정되고 공공의 윤리는 간단히 무시되며 삶의 벼랑에 몰린 이들의 등을 다시 떠미는 자본의 질주는 냉혹하다. 차별과 해고가 자유로운 사회, 시장원리가 관철되다 못해 시장이 사회를 아예 삼켜버린, 경쟁과 약육강식의 야수적 상황. 바야흐로 자본의 천국이 건설되고 있다.
그리고 자본의 질주에 가속도가 붙을수록, 그 앞에서 파괴되고 말소되는 삶이 늘어날수록, 노동자들의 저항도 거세지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가장 낮은 곳에서, 자본의 공세에 맨 몸으로 맞서는 곳에서부터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은 싹트고 있다. 침묵을 강요받던 비정규노동자들이 스스로 노동조합을 만들고 정부의 비정규 개악법안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희망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그들은 스스로가 희망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싸움은 비정규노동자들만의 싸움이 아니다. 전체 민중의 권리를 방어하는 투쟁에 연대하는 것은 곧 자본의 공세 앞에서 자신의 삶을 방어하는 것이다.
거리에서, 의회에서, 그리고 투쟁하는 민중이 있는 곳 어디에서나 함께 투쟁해온 민주노동당의 역사에 비추어볼 때, 최근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에 당이 굳건히 연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당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앞장서서 비정규직 철폐운동에 적극 나서기를 촉구하면서, 은평지구당의 당원들은 오늘 비정규노동자 투쟁기금의 조성을 결의한다. 왼손이 오른손을 잡듯이 우리는 투쟁하는 비정규노동자들에게 우리의 손을 내민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모든 당원들에게 호소한다. 더 많은 예산과 인력이 비정규사업에 전진배치되어야 한다.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을 되찾기 위해서 민주노동당이 사활을 걸고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에 나서야 한다.
우리는 민주노동당을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은 가장 낮은 곳에서 싹터오를 것이다. 우리는 이 작은 사업을 시작으로 희망의 거름이 되고자 한다. 1970년의 어두운 밤에 재단사 전태일은 노동에 지친 손가락을 들어 이렇게 썼다. “사람들의 공통된 약점은 희망함이 적다는 것이다.”
2004. 11. 13
민주노동당 은평지역협의회 대의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