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nostikos 그노스티코스 해제(3) 】 Evagrius Ponticus, (345-399)
「그노스티코스」해제(3)
5. 가르침의 방법
관상가는 오로지 자기 제자들의 구원을 위하여 가르칠 뿐이다. 따라서 그는 이 목적을 위해 필요한 것을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각 사람의 영적 진보 상태에 따라 다양하다. 모두에게 매번 모든 진리를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관상가 역시 각 사람의 수준에 맞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 그는 먼저 자기 청중의 상황과 삶의 종류를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써 각자에게 유익한 것을 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15장).
에바그리우스는 자기 스승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에게서 배운 바에 따라 관상가에게 고유한 덕들을 열거하면서 정의(正義)를 그 신분에 따라 각자에게 분배하는 역할을 지닌 덕으로 정의(定義)하고 있다. 이 때문에 관상가는 단순한 이, 즉 아직 영성생활 초기에 있는 사람에게 유익한 것은 명확하게 설명하지만, 충분히 진보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교의는 불명확한 방식으로 표현한다(44장). 영혼의 정화와 욕정에 대한 승리를 지향하는 윤리나 수행에 대한 가르침은 모두에게, 특히 세속인과 젊은 수도승에게 적합하다. 그러나 여기에도 역시 단계가 있다. 관상가는 젊은이에게는 영혼의 욕망부에서 오는 욕정을 극복하는 방법을, 그리고 보다 더 연로한 이에게는 영혼의 정념부에서 오는 욕정에 맞서 싸우는 방법을 가르친다(31장). 그러나 초심자들, 젊은이와 세속인에게는 자연학(피조물에 대한 인식)과 신학(하느님에 대한 인식)에 관해서 그들의 구원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을 말하는 것이 합당하다(12장, 13장). 이 역역에 대한 가르침은 욕정에서 충분히 자유로워져 그런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사람에게 유보된다. 신적 섭리와 심판의 이유와 관련된 교리, 즉 에바그리우스의 형이상학과 우주론과 종말론에 대한 주제들을 세속인과 젊은이에게 가르쳐서는 안 된다. 이는 그들이 단지 그것들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들이 잘못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영적 인식을 맛보지 않은 사람은 잘못 산 사람에게 있어 무지가 벌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없다(36장). 또한 관상가는 이 교리를 젊은이에게 설명하지 말아야 하며 또한 그들이 이에 대해 설명하는 책을 접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25장). 따라서 그는 자기 가르침 안에서 항상 청중의 수준에 머물러 있기 위해서 수준을 너무 쉽게 높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는 자신을 청중의 수준보다 약간 위에 두어 만일 청중이 요청할 경우 수준을 더 높여야 한다(29장). 만일 그가 대답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는 문제에 관해 질문을 받는다면, 이 경우 그것에 대해 모르는 체 해야 한다(23장). 관상가는 두 시기로 자기 가르침을 계획한다. 즉, 설명의 때와 토론의 때이다. 토론은 충분히 진보한 사람에게만 허락된다(26장).
그러므로 관상가는 자기 가르침 안에서 현명을 사용하여 영적 인식이라는 보다 고차원적 주제에 관해 침묵하거나 또는 그것을 능력 있는 사람에게 유보하고 성서 자체가 비유라는 베일 아래 보다 고차원적인 진리를 계시하는 것처럼 이 주제를 희미하고 불명확한 용어로 설명한다. 어떤 주제는 특정인에게 유보된다. 즉, 성체성사 거행의 상징적 의미는 원칙적으로 관상가인 사제들과 오로지 그들 가운데 더 나은 이에게만 유보된다(14장). 하느님에 대한 인식(신학)에 관해서는 자연학에 관해서 보다도 더 큰 주의가 요구된다. 만일 피조물에 대한 인식이 반드시 정의(定義)에 의지해야 한다면(17장), 그것이 하느님과 관계될 경우에는 그분을 정의하려고도 또 경솔하게 그분에 대해 말하려고도 해서는 안 된다((27장). 사실 피조물에게 적용되는 것이 그분께는 전혀 적합하지 않다. 형언할 수 없는 분에 관해서는 침묵이 요구된다(41장). 관상가 자신은 피조물에 대한 인식(자연학)을 뛰어 넘으면서 어느 정도로 제일 원인을 향해 시선을 돌리는 신학에 다가가야 한다(49장, 50장).
6. 작품의 구성
「그노스티코스」의 구성은 매우 자유로워 보이며,「프락티코스」의 장들 안에서 볼 수 있었던 어떤 순서나 진행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주의 깊게 읽어보면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50개의 장을 다음과 같이 주제별로 구분할 수 있다.
1-3장 : 이 장들은 도입부이다. 여기서는 관상가의 고유한 역할이 가르침임을 밝히고 있다.
4-11장 : 관상가가 스승으로서 자기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들과 그가 획득해야 하는 덕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12-15장 : 관상가가 자기 청중에게 적응할 필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16-21장 : 가르침의 내용, 주로 성서 해석에 대해 말하고 있다.
21-36장 : 관상가가 자기 가르침에서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37-43장 : 관상가가 빠질 수 있는 유혹과 죄에 대해 경계시키고 있다.
44-48장 : 이 책의 가르침에 유리한 증언이 되는 신학자들을 인용하고 있다.
49-50장 : 이 장들은 결론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