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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불교인드라망 원문보기 글쓴이: 선견심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지난 11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제3대 군종특별교구장 정우스님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정우스님은 지난 6월18일 군종교구 상임위원회에서 신임 교구장 후보에 만장일치로 선출된 바 있다. 스님은 오는 25일 오후 6시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취임법회를 갖는다. 이에 앞서 지난 6일 구룡사에서 스님을 만나 군불교의 미래와 불자의 삶의 자세에 대해 물었다.
“<능엄경>에 ‘견견지시 견비시견(見見之時 見非是見)이란 말이 있습니다.’ 볼 것을 보는 것은 보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입니다. 눈으로 보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예를 들어 숙련된 운전자는 엔진상태를 눈으로 보지 않아도 감각으로 엔진오일을 언제 교체할지 압니다. 이 말은 즉, 자기의 도리와 근본을 벗어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이지요. 그런 마음으로 포교를 하고, 제 일을 하려고 합니다.”
2년 전, 영축총림 통도사 주지 소임을 내려놓은 정우스님은 인도로 갔다. 국제포교의 일환으로 룸비니에 마련한 한국 법당에 문제가 생겨서 였다.
“믿고 운영을 맡긴 사람이 땅값이 많이 오르자 욕심을 내서 그 땅을 불법으로 매매했어요. 아직도 여러 소송을 진행 중인데, 이런 일이 생길 때 가장 마음이 아픕니다. 불자들이 한푼 두푼 시주한 돈으로 마련된 소중한 삼보정재를 날려버릴 수 없는 일 아닙니까. 그런데 왜 이런 일들이 생길까. 왜 불자들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할까. 바로 인과(因果)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 인과법칙을 제대로 믿는다면, 어디에서든 베풀며 잘 살아갈 것입니다.”
정우스님은 일체중생이 연기(緣起)와 인연법으로 연결된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회복하는데서 불교의 가르침이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미생물, 무생물조차도 모두 공존하는 것이 세상의 원리다. ‘일체 중생이 인연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의미의 ‘일체만물 무비통(一切萬物 無非通)’은 정우스님이 평생 마음에 담고 사는 구절이다. 그 원리는 사회에도 적용되며, 그 마음의 구체적인 실천이 바로 자비심이고 보시행이다.
“텔레비전에서 아프리카 이야기들이 가끔 나오는데, 특히 이디오피아를 보면 가슴이 저려요. 이디오피아는 한국전쟁에 참가한 16개국의 하나인데, 구정물 한 항아리 얻으려고 뙤약볕을 몇 시간씩 걷는 아이들과 여인의 모습이 너무 마음 아파요.”
정우스님은 조계종에서 아프리카에 학교를 짓는다는 말에 최근 3000만원을 전달했다. “일을 꼭 내가 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통해 보시하면 된다”는 스님은 “물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우물을 파주는 지구촌공생회에도 조만간 마음을 열 생각이다”고 말했다. “원망과 미움을 모두 털어버리라”는 평소 법문처럼 마음을 열고 사는 스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에 한번은 보릿겨와 쑥을 버무려 만든 보리개떡이 대중공양으로 나왔다. 열 살도 안 된 어린 정우스님을 위해 다른 스님들은 먹는 척만 했다. 덕분에(?) 스님은 배부르게 보리개떡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만 배탈이 나서 몇 일간 심한 고생을 해야 했다.
“오십년이 지난 지금도 보리개떡 비슷한 음식에는 손도 안 가집니다. 음식도 한번 혼이 나면 몸에 응어리가 져 평생 기억에 남습니다. 그러니 마음속 응어리는 오죽할까요. 그것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까. 원망을 원망으로 갚으면 쉼이 없다고 했습니다. 마음을 쉬어야 합니다. 끓는 물을 식히려면 타는 불을 꺼야 하는 이치지요.”
정우스님은 1980년대 초반 황무지였던 도심포교를 일궈냈다. 그 과정에 대해 “한 삽 한 삽 뜨면서 포교했지, 포클레인은 없었다”고 표현했다. “만불원불 모시기를 하면서 불자 한분 한분을 정성껏 맞이했어요. 큰 시주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한 불사를 했습니다. 그 에너지가 모이는 것이 바로 포교입니다.”
정우스님이 군종교구장을 수락한 것도 같은 이유라고 밝혔다. 군법사들과 군불교를 돕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청년포교를 일구고 싶어서다. 스님은 군포교의 주체인 군법사들이 일을 하도록 자양분이면서, 울타리와 그늘의 역할을 자청했다. 군법사들과 자주 시간을 갖고 당면과제를 두루 살펴볼 생각이라는 정우스님은 “일면스님과 자광스님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척박한 군종교구를 일구기 위해 혼신의 힘을 아끼지 않았던 분들”이라며 “외형 불사보다는 좋은 법회 프로그램과 청년포교를 위해 필요한 부분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당장의 지원보다 지역 불교계와 군법당간 연계를 통해 지속적인 포교역량을 갖추도록 이끌겠다”고 말했다.
“크로버가 있는 곳에 가면 사람들은 저마다 네 잎 크로버를 찾습니다. 네 잎의 크로버는 행운을 뜻한다지요? 그런데 세 잎 크로버는 행복을 뜻한다고 합니다. 우리 주변에 행복이 널려 있는데, 우리는 거기에 더해 행운을 찾아 헤매고 있어요. 행복하면 됐지, 무엇을 더 바라는 것인가 한번 우리 삶을 돌아봤으면 합니다. 행복을 느끼고, 볼 줄 아는 불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정우스님은 …
정우스님은 1968년 통도사에서 홍법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1971년 통도사에서 월하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했으며, 조계종 9~12대 중앙종회의원을 역임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과 영축총림 통도사 주지, 불교방송 이사 등을 지냈다. 서울 강남 구룡사와 경기도 고양 여래사를 창건하는 등 도심포교의 선구자로도 이름이 높다.
군불교와 인연
군단 법당밖에 없어
교회가야 했던 사병시절
빈 막사 개조해
대대.사단법당 창건
동진출가해 통도사에서 지내던 정우스님이 군에 입대했을 당시는 군승제도가 생긴 지 얼마 안 된 시기였다. 교회는 곳곳에 설립됐지만, 군법당은 군단에만 겨우 설립돼 있었다. 스님은 “군에 가서보니 산소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고, 맑은 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았다”고 그 때를 회고했다. 절에서 스님과 부처님을 매일 보고 살다보니, 그 소중함을 몰랐다가 군에 가서 보니 “너무도 부처님이 그리웠다”는 것. 스님은 당시 매일 저녁 30분간 교회 예배에 참여해야 했다.
하루는 중대장과 면담을 통해 법당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그리고 중대원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니 절반이 넘는 숫자가 불자거나 불교를 선호했다. 중대장에게 군종으로 활동할 것을 허락받은 정우스님은 틈나는 대로 해인사, 통도사와 조계사를 찾아 불교서적을 보시 받아 군대로 날랐다. 그리고 빈 막사를 개조해 ‘호국 황룡사’를 창건했다.
“특히 석주스님과 운경스님은 간식거리를 가득 들고 자주 군법당을 찾아 주셨어요. 특히 석주 노스님은 틈틈이 먹거리를 모아서 보내주셨어요. 한번은 부대서 태권도를 해야 하는 데 도복〈사진〉을 마련하지 못해, 스님들의 보시를 받아 전 중대원에게 나눠주기도 했어요.” 스님의 이런 활동을 본 사단장이 사단에 법당을 마련할 뜻을 비쳤다. 정우스님은 즐거운 마음으로 모연을 해 ‘호국 일월사’를 창건했다. 한번은 사단 최초로 1000명의 사병을 위해 수계법회를 열기도 했다. 군포교의 중요성을 잘 알기에 스님은 통도사 주지로 재임할 때 인근 군부대 두 곳에 법당을 지어주기도 했다.
오는 7월25일 제3대 군종교구장으로 취임하는 정우스님은 “군포교는 불교의 미래를 이끌 청년을 포교하는 중요한 일”이라며 “많은 사부대중의 관심과 동참을 기대한다”고 전했다.
[불교신문2929호/2013년7월17일자]
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 , 인도에갔을때 가이드가 한말이 현실이였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