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항산 답사기 - 크리스마스에 죽을 뻔한 이야기.
크리스마스 날, 정국장과 함께 무주 부남면에 있다는 조항산에 오르기로 했다.
지난 주(12월 19일)에 완주 고산면 안수산에 함께 가기로 했으면서 늦잠 자는 통에 그만 약속을 부도낸 일도 있고 하여 이번에는 늦지 않으려고 무척 긴장했다.
덕분에 약속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
부남면은 진안군과 북쪽에서 접경하고 있는 면 중의 하나다. 안천-용담을 빠져 나가면 바로 부남면인 것.
면사무소 앞을 지날 때마다 외양만 멋지고 아무 용도도 없게 되어 버린 천문대를 바라보며 한숨이 나곤 한다.
벌써 십여 년 되었나 보다. 아마추어 천문해설사(3급) 자격을 딴 직후였다.
천문대에서 천문관측 실습과 지도 등으로 경험을 쌓으면 2급 해설사로 승격할 수 있다는 조건에 따라 가장 가까이 있는 천문대에서 일하면서 내 스펙을 쌓고 싶었다.
부남면 사무소 공무원을 만나 나의 이런 뜻을 전하고 “보수를 주지 않아도 좋으니 일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이 제안은 여지없이 거절당하고 말았다.
그 후에도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일부러 차를 세우고 천문대에 올라가 보곤 했는데,
볼 때마다 건물이 삭아가는 것이 안타까웠다. 내부는 들여다볼 수 없어 보지 못했지만 외부가 썩어가는 만큼 내부의 기자재들은 더 볼 것도 없이 폐품화 했을 것이다.
왜 이렇게밖에 못 하는지.
작은 면소재지의 행정관서에 천문대를 지은 것도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이고 신선한 발상이었겠는데
그렇게 하드웨어만 해놓고 운영할 인력을 갖추지 않은 것도 잘못이고, 자원하여 운영하겠다는 사람이 있어도 받아들이지 않고 잠가만 두는 것은 또 뭐란 말인가.
천문대를 지었을 때는 청정한 무주 산골의 하늘과 그 하늘의 별을 자랑하고 함께 즐기며,
아이들에게는 우주를 향한 꿈을 키워갈 기회를 주면서 무주를 홍보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을까?
대소마을에서 차를 내렸다.
이곳은 무주가 자랑하는 자연자원의 하나인 금강벼룻길이 시작하는 지점이다.
3년 전에 JTV와 함께 이 길을 걸으며 촬영했던 기억이 새롭다.
조항산 등산로는 금강벼룻길이 진행하는 방향과는 반대쪽으로 돌아가서 시작된다.
등산로 입구에 선 안내판에 의하면 봉우리 셋이 연결되어 있고 첫 번째 만나는 봉우리가 옥녀봉, 두 번째가 신선봉, 마지막 봉우리가 조항산이라 되어 있다. 세 봉우리 모두 800미터 전후의 그만그만한 산이다.
날씨는 크게 춥지 않았다. 진안읍내를 출발할 때 눈이 얇게 깔려 있어 산에는 눈이 더 많이 쌓였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그렇지도 않았다.
그런데 초입부터 강한 급경사다.
잠시 그러다가 말겠거니 했더니 웬걸, 한참을 올라가도 이놈의 경사가 덜해지지 않는 것이다.
숨을 헐떡이며 “이것 봐라, 내가 그사이에 한참 더 늙어버렸구나...” 자탄하며 걸음을 옮겨간다.
오르막길 걷기의 ‘비장의 기술’을 다 동원해도 속도가 나지 않는 안타까움.
아침을 안 먹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일찌감치 간식을 먹고, 그러고도 힘들다.
등산로는 목책 계단을 설치하는 등 나름대로 관리를 한 흔적은 있었지만 오래되고 낡아 잘못 밟으면 부서지고 허물어져서 믿을 것은 못 되었다.
푹푹 깊이 쌓인 낙엽과, 낙엽 사이사이에 낀 엷은 눈가루 때문에 그러잖아도 급한 경사인데 미끄럽기까지 하니 도무지 발걸음이 가벼울 수 없다.
에라, 이럴 때 아이젠을 신어야지 언제 신나?
가져간 아이젠을 등산화 위에 덧신었다. 훨씬 낫다.
하지만 북쪽 사면을 타고 오르는 길이어서 햇볕을 보지 못하고, 거의 ‘네 발’로 기다시피 오르다 보니 얇은 고무장갑으로 물기가 스며들다가 얼어서 손이 다 시리다.
조금도 방심할 틈을 주지 않고 몸을 앞으로 기울여 올라가야 하는 산.
옥녀봉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이 험난함.
“옥녀를 만나기가 그리 쉬운 일인 줄 알았더냐”, 일갈하는 듯하다.
작년에(금년인가?) 열심히 탐사하러 다녔던 무주 설천-무풍 간의 사선암 능선까지의 급경사에 견줄 만했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길었다.
헐떡이느라 뭘 보았는지도 모르고 오로지 앞과 위만 보며 발을 옮겨 놓았을 뿐.
그런데 정상을 1백여 미터(고도로) 남겨둔 곳에서 그만 다리에 쥐가 나기 시작한다.
아차. 이건 큰일인데.
쥐가 난다는 것은 근육의 힘이 한계를 넘어 경련한다는 뜻이다. 한번 쥐가 나면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쩔쩔매게 된다.
주저앉아 손으로 열심히 풀고 다시 몇 걸음 옮겨 보지만 또 다시 푹 주저앉게 된다.
장딴지 근육부터 시작하여 앞 종아리, 허벅지 뒤쪽 햄스트링... 줄줄이 쥐가 나며 무너져갔다.
정국장, 한참을 내가 따라가지 않으니까 걱정이 되어 비교적 양지바른 한 바위 위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
내 표정을 보고 사태를 알아차린 듯.
근육에 쥐가 나기는 지난 여름 진도여행 때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그 때는 워낙 더운 여름날이었고 초장부터 뜨거운 아스팔트길을 몇 시간이나 걷고 난 후의 일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더위까지 먹어 숲길이 시작되는 곳에 이르자 그만 더 걷지 못하고 그늘에 길게 누워 기절해버렸다.
<코리아 둘레길 모니터링>이라는 용역을 수행하던 중이었다.
이런 사례를 놓고 보더라도 올레길·둘레길·마실길 등의 도보여행 노선은 단순히 아스팔트 도로를 걷도록 안일하게 설계해서는 될 일이 아니다. 아무리 ‘안전우선’이라는 이유를 앞세우더라도 말이다.
그늘 있는 숲길, 발바닥과 무릎에 충격을 덜 주는 흙길·풀길·언덕길... 그런 인체친화적인 구간을 최대한 많이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이야기가 옆길로 갔다.
정작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하반신 근육경련이라는 이 비상사태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그 이야기를 이어가자.
옥녀봉 정상까지 여러 차례 쉬면서 내 손으로 근육 마사지를 해서 풀어가며 무리하지 않고 오르기를 계속.
다행히 등산로는 거의 한 줄로만 이어져 있어 처음 가보는 사람도 길을 잃고 헤맬 일은 없었으므로 정국장을 먼저 가라고 보내고 천천히 뒤따랐다.
이 봉우리가 참으로 험한 것은 밧줄을 붙잡고 오르도록 해 놓은 구간이 여러 군데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이 산이 이제 보니 팽이산이로구나. 나무로 팽이를 깎아 거꾸로 세워놓은 듯한 산.
그런 소리를 중얼거리며 겨우 정상에 도착했다.
널찍한 곳에 앉아 커피도 마시고, 에너지 보충한다며 배낭에서 달콤한 것은 있는 대로 뒤져내어 먹는다.
아침에 고구마를 쪄서 몇 개 넣고 나왔는데 이미 싸늘하게 다 식은 것은 물론이고 살짝 얼기까지 했다.
하도 정신없이 오르는 데 급급한 나머지 옥녀봉 정상에서는 뭘 봤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여기부터는 비교적 평평한 능선길이다. ‘칼등’ 능선이 아주 잠깐 있는 것 외에는 아주 걷기에 좋은 길이 쭉 이어진다. 걷는 여행자들이 좋아하는 길이 바로 이런 곳인데...
아깝게도 이 숲길만 따로 떼내어 가지고 갈 방법은 없는 것이다.
쥐 났던 다리도 다소 편해져서 흥얼거리며 다음 봉우리까지 그럭저럭 즐겁게 걸을 수 있었다.
이 능선의 반대 측면, 즉 남쪽사면은 ‘선경공원 묘원’이 차지하고 있다.
옛 지도(1917년판)에 ‘深栗水谷(심율수곡)’이라 표기되어 있는 골짜기.
‘짚은 밤나뭇골’로 불렸을 이 골에 이제는 마을이 없고 공동묘지로 바뀌었다.
지명을 한자화 하는 과정에서 '나무 木'으로 써야 할 자리에 '물 水'를 쓴 것도 우습다.
그 공원묘원의 관리인 숙소(?)인 듯한 예쁘장한 건물이 있고 이 지점까지 임도가 뚫려 있다.
이제 하늘을 바로 이고 따스한 햇살을 받으면서 사뭇 흥얼흥얼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걸음을 옮긴다.
조금 전까지 죽을 고생 하던 것은 다 잊고.
며칠 누렇던 하늘도 제 색깔로 돌아와 청명하기 그지없다.
신선봉.
안내판에서 보았던 두 번째 봉우리다.
이곳에 서니 360도 뱅 둘러 부남면의 도소·율소마을, 무주읍, 덕유산, 삼도봉, 석기봉, 민주지산, 적상산... 등이 거의 다 보인다.
그뿐인가, 왼쪽 끝으로는 마이산의 뾰족한 두 봉우리까지 볼 수 있었다.
그만큼 시계(視界)가 맑고 훤히 트인 날씨였던 것. 또 그만큼 높고 가파른 봉우리였던 것.
이 봉우리가 신선봉이라는 사실에는 그냥 수긍해 주기로 했다.
원래 옥녀와 신선은 처녀·총각처럼 마주 보고 있거나 나란히 있거나 하는 거니까.
아까 본 등산로 입구의 공식 안내판에는 신선봉의 위치가 다른 곳으로 표기되어 있었지만,
‘백하사’라는 닉네임을 가진 어떤 전문산악인이 나무에다 묶어 놓은 봉우리 이름 표기에 ‘신선봉 794미터’라는 태그를 그냥 인정.
이 ‘백하사’ 말고도 여러 전문여행자들이 묶어놓은 태그가 많이 나부끼고 있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1만5천 군데의 봉우리를 답파하여 ‘세상에 이런 일이’에도 출연했다”고 밝히는 어떤 사람의 리본.
이제는 ‘무슨무슨 산악회’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아 특이한 선전문구로 자신을 홍보하는 시대가 되었음을 절감한다.
신선봉 정상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의 능선길 도중에 ‘말발굽바위’ 또는 병암(屛岩; 병풍바위)이라 불리는 바위가 있다.
옥녀봉을 오르는 도중 다소 떨어진 거리에서도 보였는데 우뚝 선 것이 사선암 정도의 위용을 가진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런데 가까이 와서 보니 그 정도는 아니다.
능선길을 다소 벗어나 병암으로 건너갈 수 있는 길이 나 있었지만, 한 발 내려서자마자 다시 근육경련이 일어나 비명을 지르며 멈춰섰다. 내 손수 건너가 보기를 포기한다.
그 대신 정국장이 말발굽바위를 밟고 올라선 모양을 사진 찍어 주었다.
바람이 무척 세고 발아래가 무시무시하더라고 전한다.
“바위가 말발굽처럼 둥근 모양이더냐, 병풍처럼 옆으로 길게 늘어서 있더냐...” 꼬치꼬치 캐물었다.
어느 쪽의 이름과도 걸맞지 않더라는 대답이다.
사선암은 산림문화자산으로 최근에 지정되었다.
나는 올라가보지 못했지만 넓적한 바위 꼭대기에는 바둑판이 새겨져 있어 “높은 기둥 같은 바위 위에서 네 명의 신선이 바둑을 두고 놀았다”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또 걸음을 옮긴다. 능선길은 여전히 양지 바르고 따뜻하고 간혹 바람이 불지만 생각보다 춥지 않다. 가끔 오르막을 만나고 또 내리막도 만나지만 그럭저럭 걷는 데 지장이 없다.
조항산. 새목산.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세 번째 봉우리이자 목적지다.
정상에는 헬리포트가 만들어져 있을 뿐, 달리 어떤 유적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신선봉에서의 조망만 못하지만 대신 금강의 굽이치는 물길이 좀 더 가까이 와 있어서 잠두마을과 벚나무 가로수길 따위 금강벼룻길의 본선이 눈아래로 보였다.
시간도 꽤 지났다. 예상보다 훨씬 가파른 경사를 올라야 했기 때문에 그랬고 더구나 내가 잘 걷지 못해서 더 그랬다.
내려오는 길은 쉬울 줄 알았더니 천만의 말씀.
급경사가 오를 때보다 더 심한 것 같다. 근육경련은 더욱 심해지고 빈도를 더해간다.
근육이 지탱해주지 못하니 관절로 지탱해야 하고 무릎은 비명을 질러댄다.
저만큼 앞서 가는 정국장도 힘들어 한다.
가끔 멈춰 서서 걱정스럽게 나를 되돌아 보기도 해야 하니 속도가 더딘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다가!
결국 일을 내고야 말았다.
급한 경사의 옆구리를 겨우겨우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몸이 한쪽으로 기우는 것을 겨우겨우 면하면서 거의 기듯이 내려가다가 그만 앞으로 팍! 고꾸라진 것이다.
창피한 것은 고사하고, 옆으로 넘어져 경사면을 줄줄 흘러내려가지 않은 것만 다행이다 싶다.
일어나 앉아서 보니, 이게 웬일인가?
왼발에 찬 아이젠의 사슬이 오른발 등산화 뒤축에 붙은 고리에 끼여서 내 발걸음을 붙잡았던 것.
풀어내려고 안간힘을 써보는데 쉽게 풀리지 않는다.
결국 정국장이 걸음을 되짚어 돌아와서 도와주어서야 겨우 풀렸는데, “거참, 기술적으로 잘도 묶으셨네요.”
이 와중에 농담도 나온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나중에 산을 다 내려온 다음 아이젠을 벗겨내어 자세히 들여다보았는데, 일부러 그렇게 묶으려 해도 묶기 힘든 어려운 ‘작업’이 어찌 그렇게 정교하게 기술적으로 잘 묶였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신 차리고 둘러보니 눈앞 경사 바로 아래에 두 덩어리의 커다란 바위가 마치 지옥문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서 있다.
‘멋진 대문바위’라는 느낌보다는 음흉한 지옥 입구 같은 느낌이다.
자칫했으면 저 지옥문으로 빨려 들어갔을 운수였던 것.
더욱 다행한 것은, 엎어지면서 온몸 전체가 거의 동시에 땅에 닿아, 마치 유도에서 낙법(落法)을 쓰듯이, 아무 데도 다친 곳도 없고 아픈 곳도 없었다. 심지어 손바닥에 찰과상 하나도 입지 않은 것.
중학교 때 두어 번, 낙법을 제대로 쳤던 기억이 새롭게 나면서 역시 몸이 유연한 것은 강건한 것에 우선한다는 ‘유능제강(柔能制剛)을 되새긴다.
아무튼, 예수님 생일날에 나는 죽을 뻔하다 되살아났으니 결국 내 제2의 생일이 예수님과 같아진 셈이다.
그뿐인가, 엎어지면서 순간적으로 최대의 스트레칭을 한 셈이 되었는지 경련을 일으키던 근육들이 모두 정상을 되찾았다! 잠시 동안이긴 했지만...
우습다. 재미도 있다.
그러나 잠시 후부터는 다시 어마어마한 급경사길이 이어지며, ‘순간 최대 스트레칭’의 덕을 보았던 근육들이 잠깐의 치유효과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거의 엉덩이를 깔고 앉아 기어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정국장이 튼실한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주며 짚고 내려갈 것을 권했지만, 스틱을 쓰는 것은 걸리적거릴 뿐 아니라 어깨와 팔에 또 다른 부담을 주는 일이어서 나는 별로 즐기지 않는다.
몇 걸음 걸어보다가 그마저도 내버리고 말았다.
도무지, 길기만 한 급경사의 내리막길. 끝도 없을 것 같이 이어지는 산길이 겨우 끝난 것은 출발로부터 다섯 시간 20분이나 지난 후였다.
‘전체거리 9킬로미터, 예상소요시간 4시간’. 그 객관적인 수치를 보면서 험한 구간일 줄 예상은 했지만 그보다 훨씬 초과한 시간은 나의 체력 때문이었다.
고원길 함께 걷는 친구들의 힘들어 하는 사정을 다소나마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아울러, 앞으로 얼마나 더 체력단련을 하며 살아야 할지도 가늠하게 된 산행이었다.
나 때문에 지체되고 노심초사한 정국장, 수고했습니다~!
사족 :
①전체 코스는 세 봉우리를 휘돌아 출발지 대소마을로 되돌아오는 말발굽처럼 생긴 코스.
②마지막 구간의 일부는 가파른 측사면을 1미터 폭으로 깎아 오솔길을 낸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계곡 쪽(낮은 쪽)으로는 나무공이를 박아 축대를 만들고 아주 위태로운 구간에는 난간을 세우는 등...
면소재지 가까운 구역이며 마을 사람들의 체육공원으로도 활용될 수 있는 구간인 만큼 그에 걸맞는 꼼꼼한 손질과 함께, 원래의 상태를 크게 훼손하지 않는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우리 진안고원길 코스 중에도 너무나 좁고 위태로운 측사면구간은 이렇게 손질하면 좋을 것 같다.
(최태영)
첫댓글 두 산사나이의 산행 잘 읽었습니다. 제가 마치 산행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지네요. 고산 안수산에서 이어지는 위봉산성까지 하루걸이입니다. 좋은 날만 있기를 기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