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p214~p223
하원은 유나를 향해 걸어갔다. 친구들과 떠들던 유나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하원을 쳐다봤다.
유나의 입술에 조소가 떠올랐던건 아주 잠시였다. 영현은 그 비릿한 미소를 보는 순간 깨달았다.
하원이 유나를 괴롭힌 게 아니었다. 괴롭힘을 당해왔던 쪽은 하원이었다.
"딱 한 번 말할께, 최유나."
하원은 유나의 옆에 멈췄다. 유나는 천천히 일어나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비릿한 미소는 사라지고 없었다. 더없이 슬픈 표정으로, 조금은 겁먹은 표정으로 하원을 쳐다보고 있었다.
"쟤, 뭐야?"
"하늘 집에 들어갔다고 너무 기세등등한 거 아냐?"
"그 게시판, 쟤가 한 짓이란 얘기도 있던데."
"쟤가 최유나를 그렇게 괴롭혔다며?"
진학반 학생들은 하원이 들으라는 듯 수군거렸다. 하지만 하원은 상관없다는 듯 유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또리, 내놔."
"그게... 뭐야?"
유나가 덜덜 떨기 시작했다. 애들은 동정이 가득한 눈으로 유나를 지켜봤다.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특급반 학생들을 줄줄이 데리고 와 횡포를 부리는 은하원.
그 앞에서 울먹러기며 덜덜 떠는 최유나. 누가 봐도 유나는 피해자였다.
"너랑 노닥거리려고 온 거 아냐. 두 번 말 안 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하원아.....? 나... 너한테 뭐 잘못한 거 있어? 또.....또 때리게?"
유나의 말에 하원이 씩 웃었다.
"내가 지금 이 순간 제일 후회되는 게 뭔지 아냐?"
"......뭐,뭔데?"
콰앙!
하원의 늘씬한 다리가 거침없이 긴 식탁을 내리쳤다. 치마가 흘러내려 매혹적인 허벅지가 드러났다.
"지금까지 널 죽자고 패준 적이 단 한번도 없다는 거다."
.
.
.
"네가 빌어먹을 짓을 해대도 꾹꾹 눌러 참고 봐줬던 게, 제일 후회스러워, 최유나."
"...그게....."
이번엔 유나도 당황했다. 하원이 이런 식으로 나올 줄 몰랐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내,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생각해 보니까, 사람이 후회만 하면서 살 수는 없더라구. 그래서 이제부턴 네가 나 건드릴 때마다 죽도록 패주려구."
"........"
말이 끝나자마자 하원은 옆에 있던 의자를 한 손으로 들어 바닥에 내리쳤다.
까앙! 시끄러운 타격 음.
"꺅!"
가까이 있던 학생들이 비명을 지르며 하원에게서 멀어졌다. 유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하원을 쳐다봤다.
"내가 뭘 어쨌는데?"
하원은 유나를, 그리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학생들을 돌아봤다.
"도대체 내가 니들한테 무슨 짓을 했는데?"
"은하원, 너 이게 뭐 하는 짓......!"
하원은 다시 유나를 노려봤다.
"내가 모르는 새에 니들한테 상처를 주기라도 했어? 아니면 내가 모르는 또 하나의 내가 등장해서 니들을 괴롭히기라도 했어?
도대체 내가 니들한테 무슨 짓을 했길래 니들을 날 비방하고 욕하고 가만 내버려두질 않는 거야?"
주위가 조용해졌다. 꿀꺽. 누군가가 침삼키는 소리조차 울릴 정도의 고요함.
"내가 바라는 게 뭔 줄 알아? 다녀왔어요, 하고 인사를 하면, 잘 다녀왔니, 하고 대답을 해주는 가족을 바랐어.
그런데 난 그걸 가질 수가 없더라. 그래서 다른 걸 바라기로 했어. 조용히, 열심히 공부를 해서 수의사가 되자.
그래서 이유 없이 남을 괴롭히지도 않고 비방하지도 않는 동물들이랑 같이 지내자.
이런 내 바람이 너희들에게 피해를 주기라도 하는 거야?"
까앙! 하원은 다시 한 번 의자를 내리쳤다. 이번엔 아무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다들 조용히 하원을 응시했다.
"이제 그만 좀 하자. 뒤에서 수군수군, 가만히 있는 사람한테 욕해대기엔 에너지가 아깝지도 않아?"
.
.
.
"뭐, 뭐 하는 거야?"
"또리 내놔."
".......안 내놓으면, 그걸로 내리치기라도 하시게?"
"응."
"뭐?"
"내리칠 거라구."
"미쳤어, 너? 그걸로 때리면 나 죽어!"
"응. 알아."
"우, 웃기지도 않네, 이 기집애? 너, 살인범이라도 될 생각이야?"
생명을 위협받자 당황한 유나는 자신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하원은 피식 웃었다.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감성그룹이 내 뒤에 있잖아.
너 하나 사라진다고 해서 내가 어떻게 되겠어? 강 회장님께서 날 보호해 주실 텐데?"
"너......!"
"그래서 다들 감성, 감성거리고, 아무 노력도 없이 감성그룹 회장님 눈에 든 나를 비난했던 거 아니었어?
니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그 권력, 나도 이용 좀 해보자."
"너, 너 같은 애 때문에 강 회장님이 자기 이름 더럽히는 짓을 할 것 같아?"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대답은 하원의 뒤에서 들려왔다. 하원의 뒤에는 윤성이 서 있었다.
"아가씨가 하고 싶은 대로 하시라고 하셨습니다. 수습은 강 회장님께서 해주신다고 걱정 말라 하시더군요."
"할아버지가 안 해주면 우리가 해주려고 했는데."
서우와 현민, 그리고 지운이 하원의 양쪽에 섰다. 아림이 사뿐사뿐 걸어와 머리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고 웃었다.
"하원이 뒤엔 감성그룹만 있는 건 아니지. 우리 아빠 회사 무시하면 서운해."
유나는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말이 나오질 않는지 입만 뻐끔뻐끔.
"봤지?"
하원은 뻐기는 기색도 없이 말했다.
"나 의외로 권력이 있는 사람이었네. 그러니까 또리 내놔. 내리치기 전에."
"네..... 네가 나빠!"
유나가 비명처럼 외쳤다.
"네가 나쁜 거야, 은하원!"
"뭐?"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괴로웠는지 알아? 다들 너랑 날 비교하고.....넌 잘하는데 난 못한다고 무시하고!
우리 엄마 까지도 왜 널 이기지 못하냐고 날 닦달했어! 동네 아줌마들도 날 마주치기만 하면 너랑 비교해대고,
학교 선생님들 까지도 너랑 날 비교했어.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구!"
"하.......?"
하원은 어이 없다는듯 한숨을 내뱉었다.
"네가 못난게 내 탓이냐?"
"뭐?"
"네가 공부 못하는게 내 탓이냐고?"
"어, 어떻게 말을 그렇게 해?"
"어떻게 말을 이렇게 하느냐고?"
의자가 허공을 갈랐다. 유나는 자신을 내려치는 줄 알고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의자는 바닥에 떨어졌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최유나!"
하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넌 다 가졌잖아!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잖아. 네가 공부를 못해도 앞으로 더 잘하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잖아.
다녀왔다고 인사하면 인사를 받아주는 사람이 있고, 학부형 모실 때 나오는 사람이 있고,
용돈을 주는 사람이 있잖아! 네가 가진 아빠는 아빠라고 부른다고 해서 뺨을 때리진 않잖아!"
"......"
"얼굴 못 생긴 거? 그거 성형하면 돼. 공부 못 하는 거? 노력하면 성적 잘 나와.
그런데 가족은, 아무리 노력을 하고 아무리 돈을 줘도 가질 수가 없어,
그거 알아? 난 지금 이 얼굴이 엉망진창이 된다고 해도, 내 머리가 백치가 된다고 해도!"
하원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엄마가...... 살아있으면 좋겠어...."
"..........."
"딱 하루만이라도......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
유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원이 울고 있다. 하원이 우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모질게 대해도, 왕따를 시켜도 하원은 울지 않았다. 약간은 씁쓸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을 뿐이다.
하원이 우는 걸 보고 싶어서 더 괴롭혔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하원이, 모두가 자신을 옹호해주는 이 상황에서 울다니.
어째서일까? 이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건데, 가슴이 아파졌다. 날카로운 조각돌 몇 개가 심장 속을 헤집었다.
하원은 손등으로 눈물을 쓱 닦아내고 말했다.
"또리가 내 가족이야."
"..........."
"또리, 어디에 있어?"
"집..... 창고에...."
하원이 돌아섰다. 유나는 하원에게 무슨 말이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도 알 수 없었다. 두 걸음 걸어간 하원히 멈춰서 뒤를 돌아봤다.
"내가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던 건......"
하원의 고양이 같은 눈, 유나가 그토록 부러워했던 매혹적인 눈이 유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새로 생긴 언니한테 자랑스런 동생이 되고 싶어서였어. 언니가 생겨서 기뻤었거든."
"........!"
하원이 서민식당을 나간 후, 유나는 주르륵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유나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유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중얼거렸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지?"
여기까지
유나가 또리를 데려간걸 알게된 하원이 받으러 간다고 해야하나요?
하여튼 그런 장면입니다.
책을 구매해서 어제 왔는데 어제 다 봐버렸어요.
그만큼 재밌다는 얘기죠.
위에 부분이 가장 재밌었고 흥미로웠다고 말하고 싶네요.
그리고 긴 글을 읽어주신분들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역시 은하원이다 하고 감동받아서 기도하듯손을 모으다가 동생이 미쳤냐고..-ㅅ-;; 욕설을 들었어요..ㅠㅠ
사고 싶다... 또리가 뭔지 모르지만, 그래도 슬프다 ㅜㅜ
왠지... 유나의 방법은 잘못되긴 했지만, 유나의 마음을 알 수 있어요... 우리 집도 내가 동생인데 언니는 친구도 많고, 공부도 잘하고 더 잘났거든요.
또리는 하원이가 기르는 강아지예요~
그랬구나... 그럴 것 같았지만. ㅎㅎ
눈치가 빠르신데요?ㅋㅋ
ㅎㅎㅎ 그저께에 서점에 가서 알레프랑 새벽 거리에서. 라는 책을 사러 서점에 갔더니 있길래 사버렸어요 ㅠㅠ 하루만에 뚝딱. 마지막 동화같은 얘기가 더 재밌더라구요 ㅎㅎ 백묘님은 동화를 쓰셔도 될 것 같지 않나요? 사랑을 묘약의 올바른 사용방법도 인어공주 뒷 얘기를 지어내셨잖아요. 그거 정말 재밌었는데...
저도 그 얘기 좋아해요~ 제가 사랑의 묘약의 올바른 사용방법 책 있거든요? 그 동화 내용만 따로 해서 올려볼까요?ㅋㅋ
올리면 좋겠지만, 못 본 사람들 어쩐답니까... 많이 궁금하겄네요 ㅋㅋ
오~ 그럼 빠른 시일 내에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내용만 따로 해서요. 재밌을것 같네요ㅋㅋㅋ
네에~ ㅎㅎ
악!
부럽다.. 신데렐라 어느세월에 돈 모아 사냐...ㅠㅠ
저도 돈 모으느라 너무 힘들었어요ㅠ 님 화이팅!
소설 드디어 샀어요!
주인공 성격이 마음에 쏙 들어요 ㅋㅋ
오~ 드디어 사셨군요! 축하드려요~ㅋㅋ
아저도사고싶다ㅠㅠㅠㅠ
돈이 없으신가 보네요;
넹ㅠㅠㅠㅠㅠ
모으실수 있습니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