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은,
2010년 12월 29일 수요일. 저희교회 카페 "수요 목사칼럼" 란에 올린 것을,
그대로 복사해서 카페주인의 허락도 없이 이곳으로 옮긴 글입니다.
--- 아 래 ---
2010년도 이틀이 남았습니다. 나이가 든 사람은 나이를 헤아리며 한 숨을
쉽니다. 또한 지난 1년동안의 열매(성과)를 헤아리며 희비(喜悲)를 갖습니다.
정작 셈 해야할 것은 그냥두고, 엉뚱한 헤아림으로 교만(열등감)을 갖습니다.
최근, 기독교대한감리회 홈페이지(http://www.kmc.or.kr/) → 소식과 나눔→
자유게시판 “3015번 글”(*김진국 專門醫의사 글)을 읽으며, 감동받았습니다.
김진국醫師는 부산 부일교회 김무송목사 아들입니다. 그날은 아버지가 목사
은퇴식을 하는 날인데 아버지의 명으로 식에 참석치 못하고, 대신 일터에서
그 글을 올린 것입니다. 그 글을 옮겨봅니다. -<<아버지는 무능한 목사였다.
그러니 우리가정은 늘 가난했다. 아버지 엄마 아들3형제가 누우면 몸부림도
칠수 없는 단칸방에서 살았다. 반찬은 김치 대신, 고구마 줄기가 더 많았다.
유창한 설교로 교인이 많기를 원했지만, 평범한 설교로 인해 교회는 작았다.
내가 고등학교 졸업때까지, 가족 삽겹살 외식을 한번도 못시켜 주신 무능한
목사 아버지였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때 심한 급성 간염으로 입원시키라는
의사의 말에도 집에 데리고 있었고, 동생도 영양부족으로 소아 결핵이 결렸
지만 역시 집에 있어야만 했다. 휴가 한번 없었던 무능한 목사 아버지였다.
교회와 화장실 청소를 전담하며, 설교목회 전문이 아닌 미화 전문가 이셨다.
어머니도 아버지와 장단 맞춘다고 교회 부엌 일을 전담하셨다. 30년전 운전
면허를 따놓고 경(輕)차도 한번 운전 못해보셨다. 평생 목회에 퇴임하면서도
빈 손으로 교회를 나오는 가난 전문 목사이다. 아들 한명은 목회를 원했지만,
아버지같은 무능한 목사가 싫어서, 목회를 거절했던 삼형제가 부끄러워진다.
아버지께 복 주면 몽땅 헌금하고 가난하게 되실 것같아, 하나님이 아버지의
세 아들을 축복하셨다. 형은 세계 1위기업인 삼성전자 책임연구원이고 나는
전문 의사가 되어 병원을 개업했고, 동생은 한의사가 되었다. 평생 가난하게
목회하신 부모를 잘 모시라는 주님의 뜻인 것같다. 평범한 아버지의 설교는
가장 위대한 설교였다. 그걸 마흔이 돼서야 알게 되니, 아버지가 은퇴하신다.
우리가족은 가난의 긴 터널을 지나며, 많은 은혜의 단비를 경험했다. 무능한
목사며 자랑스런 아버지의 은퇴를 찬하(攢賀)한다.>>라고~. 김무송목사님은
처음 사랑을 지켰습니다. *목사 퇴임식(*열매)도 숨기지만, 아들은 병원에서
아버지의 위대한 목회를 셈(찬하)했습니다. *위대함과 열매는 영광도 되지만,
사단의 무기도 됩니다. 예수님을 유혹할 때도 천하의 영광을 보여 줬습니다.
그저께, 대구 침산사거리 SEA HOUSE(부페식당)에서 우리교단 대구지방회(
회장 박태원목사) 송년모임을 가졌고, 내가 예배 설교했습니다. 우리는 각각
일이 있는데, 일의 시작때 가졌던 처음 사랑을 회복하자고 했습니다. 가정과
목회와 신앙에는 더 그러합니다. 곧 2011년을 맞이함에 열매를 위한 다짐도
중요하지만, 보이지않는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 그 크기를 헤아려야 합니다.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요한계시록.2:4,5)
◆.사진- 기하성 대구지방회(회장 박태원목사)에서 송년(送年)모임을 가졌다.
*대구순복음교회에 모여 SEA HOUSE(대구)로 이동~.(*2010.12.27)
첫댓글 이제 읽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깊으신 사랑에 대해 또 한 번 놀랍니다. 나를 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