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여태껏 이른바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엉거주춤하게(아니면 후다닥) 번역된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l'heure entre chien et loup)”이라는 프랑스 관용구(慣用句)는 “어스름(거미; 이내), 저물녘(황혼녘; 해질녘; 해거름; 이른저녁)이나 새벽녘(동틀녘; 해뜰녘; 늦은새벽)”을 뜻한다.
프랑스 역사학자 뒤 캉주(Du Cange, 1610~1688)의 《중세 및 근세 라티움어(라틴어) 용어해설집(Glossarium mediae et infimae Latinitatis)》(1678)에 인용된 프랑스 신학자 윌리암 브리통(William Briton; 빌켈무스 브리토Vilkelmus Brito; 기욤 브르통Guillaume Breton, ?~1356)의 시구(詩句)를 구성하는 라틴움어절(Latium語節; 라틴어절語節)에서 어스름(레우코포스Leukophos; 뤼코포스Lykophos)은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니며 ‘밤낮’도 아닌 시간(Tempore quo neque nox neque lux sed utrumque videtur)”이라고 설명되면서 “개의 시간과 늑대의 시간 사이(Interque canem distare lupumque)”라고 정의된다.
고대 로마 자연철학자 플리니우스(Gaius Plinius Secundus; 플리니 디 엘더Pliny the Elder, 23~79)와 문법학자 솔리누스(Gaius Julius Solinus, 3세기중엽)는 어스름에는 “하이에나의 그림자가 개의 주둥이를 막는다,” “밤이 황혼을 내쫓는다,” “달이 희미해진다”고 묘사했다.
프랑스에서 2세기에 작성되었다가 18세기에 발견된 어느 문서에는 “사람이 개를 늑대와 분간할 수 없는 때(quand l’homme ne peut distinguer le chien du loup)”라는 문구가 기록되었다고 구전되기도 한다.
1885년 프랑스 북부 누아용(Noyon)의 가스통 앙드리외(Gaston Andrieux) 출판사에서 편찬된 《고양이와 개를 제재로 삼은 속담들(Proverbes, dictons & locutions diverses à propos de chats et de chiens)》에서도 어스름은 “개와 늑대가 쉽게 분간될 수 없는 어둑한 시간(L’heure où la lumière décline car on confond alors facilement entre chien et loup)”이라고 설명된다.
이런 맥락에서 저물녘이나 새벽녘 같은 어스름은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엉거주춤하게(아니면 후루룩 뚝딱) 번역될 수도 있었겠지만, 더 까탈스럽게는, “개의 시간과 늑대의 시간 사이의 시간,” “개-시간과 늑대-시간의 사잇시간,” “견시(犬時)와 랑시(낭시狼時) 사이의 시간,” “견시와 랑시의 사잇시간,” “견랑간시(犬狼間時),” “개와 늑대의 교대시간(교체시간)”이라고 번역될 수 있다.
(2020.12.31.23:01.)
아래왼쪽에 인시(引示)된 석조견상(石造犬像)은 대체로 “제닝스의 개(Jennings Dog),” “던컴의 개(Duncombe Dog),” “알키비아데스의 개(Dog of Alcibiades)”라고 통칭된다.
브리튼 박물관에 전시된 이 석조견상은 2세기경 로마에서 제작된 모사품(模寫品)인데, 이것의 원본은 서기전2세기경 고대 그리스에서 제작된 청동견상(靑銅犬像)이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18세기중엽 이탈리아 로마 근교에서 발견된 이 석조견상의 최초소유자는 이탈리아 조각가 바르톨로메오 카바체피(Bartolomeo Cavaceppi, 1716~1799)였다.
1753~1756년 어느날 카바체티의 작업장에 방치된 이 견상의 가치를 알아본 잉글랜드 골동품상 겸 고미술품수집가 겸 도박꾼 헨리 콘스턴타인 제닝스(Henry Constantine Jennings, 1731~1819)는 은화400스쿠도를 카바체티에게 주고 이 견상을 구입하여 브리튼으로 가져갔다.
1788년에는 브리튼 의회하원의원 찰스 던컴(Charles Duncombe, 1764~1841)이 제닝스에게 1,000파운드를 주고 이 견상을 구입했다.
알키비아데스(Alcibiades, 서기전450~404)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 서기전470~399)의 제자 겸 애인으로서 유명한 아테네 정치인 겸 장군이다.
아래오른쪽에 인시된 "불(火)피우는 원주민의 주위에 둘러앉은 늑대들"을 묘사한 삽화는 미국 삽화가 찰스 리빙스턴 불(Charles Livingston Bull, 1874~1932)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