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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쨋날: 3월 18일]
둘 다 교원공제회 소속이란 점 덕분에 경주교육문화회관에서 1박을 했다. 9만원에 보문호수쪽 방향의 온돌방 하나와 아침 조식까지 포함된 패키지상품. 덕분에 느즈막히 일어나서 식당 뷔페로 내려가 마치 외국 여행이라도 온 듯 아침뷔페를 즐겼다. 기분 좋은 하루의 출발이다. 이곳 경주교육문화회관은 현재 '공사 중'이다. 시설이 좀 낡긴 낡았는데, 그래서 손님을 받으면서도 주로 낮 시간을 이용해 리노베이션 중이다. 그래서 손님들에게도 가능하면 10쯤 퇴실하는 것이 좋고, 더 있을 경우 소음을 양해해 달라고 한다. 공사 중이라 어쩔 수 없이 들리는 '쿵쿵' 거리는 소음으로부터 알아서 벗어나시라는 '배려'다. 우리도 그 말을 충실히 따르며 10시에 맞춰 문화회관을 나섰다.(사실은 9시도 안 돼서 쿵쿵거리는 울림이 시작되었다 ㅜ_ㅜ;)
오늘은 온통 경주 문화재의 보고(寶庫), 남산에 집중하기로 했다. 경주사람들에게는 남산은 동네산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등산로'라는 개념이 별로 없다. 동네 뒷산을 오르듯, 사방 팔방에서 오르기때문에, '어디로 올라요?'라고 물으면 오히려 당황해 한다. 그래서 우리는 '유홍준의 1박 2일'에 나온 코스를 충실히 따라가기로 했다. 예전에 왔을 때 칠불암쪽으로는 가 봤기때문에, '1박 2일'에 나온 코스는 우리에게는 오히려 새로운 길이어서 더 좋았다.
출발은 남산의 서쪽 한 복판인 '삼릉(三陵)'. 삼릉을 출발해 상선암을 거쳐 상사바위에서 남으로 방향을 바꾼 후 능선을 따라 가다가 금오봉까지 간다. 일반적으로 삼릉코스는 여기에서 다시 삼릉쪽으로 되돌아 내려오는데(대부분은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놨으니까 어쩔 수 없이.. ㅜ_ㅜ;), 우리는 거기에서 남산 순환도로를 잠시 거쳐서 방향을 다시 서쪽으로 잡아 집사람의 로망인 용장사지 3층석탑을 보고 용장리로 내려와서 버스를 타고 삼릉으로 오기로 했다. 버스로 세 정거장. 그것도 나름 재미 있겠다 싶다.
오늘의 남산 답사의 출발점인 삼릉(三陵)은 신라 초기의 아달라(阿達羅)왕, 신덕(神德)왕, 경명(景明)왕 등 세 왕의 왕릉이 있는 곳인데, 다른 여느 왕릉들처럼 주위는 온통 소나무 숲으로 둘러 싸여 있어, 안개가 낀 날 많은 사진작가들이 그 모습을 담기 위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아달라왕, 신덕왕, 경명왕 등 신라초기 세 왕의 릉이 있는 삼름. 남산 답사의 서쪽 출발점이다.]
[구불구불, 쭈~욱 쭉 울창한 계림의 솔 숲이 삼릉을 감싸고 있어 처음부터 답사객의 마음을 들뜨게 해 준다.]
이 코스를 따라 오르다 처음 보게 되는 것이 '머리없는 석조여래좌상'이다. 숭유억불책에서 나온 파불(破佛)의 아픔을 소리 없이 몸으로 당하신 부처시다. 그러나 비록 그 목을 잃었지만, 가사의 선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그 기품은 당당하기 이를데 없다.
[자연석을 연화대 기단 삼아 자리하고 있는 '머리없는 석조여래좌상'. 비록 머리는 없지만 그 기품이 당당하다.]
여기에서 조금 더 오르면 길을 선택해야 한다. 하나는 그냥 진진하는 것이고, 다른 길은 왼쪽의 경사지로 오르는 것. 물론 1박 2일 코스는 왼쪽의 경사지 코스다. 그래야 선각육존불을 알현할 수 있으니까.... 조금은 퍽퍽한 코스지만, 얼마든지 그런 수고를 감내할 만한 문화재들을 만날 수 있으므로, 당연히 여러분도 이 코스를 따라가시라고 추천한다.
[선각(線刻) 육존불. 사실은 유홍준 교수의 말대로 3존불 두 쌍이다.]
여기서 유교수님의 조언대로 코스를 따르려면 불경스럽지만 우리는 육존불 왼쪽으로 해서 암벽 위로 올라야 한다. 그러면 암각불들을 조상들이 어떻게 보호하고 보존하려 했는지를 그 정성어린 노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또 그 길이 답사 코스이기도 해서 이다.
[집사람 앞에 직선은 빗물이 앞으로 흐르지 않도록 파 놓은 빗물홈통이고, 절벽 앞쪽에 보이는 움푹한 곳은 부처님이 비를 맞지 않도록 하기 위해 차양을 설치해 두었던 흔적이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와 같이 문화재는 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풍광을 공유해 보았을 때 진정한 의미를 지닌다. 선각육존불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비록 연무로 흐릿해 보이긴 하지만, 사진에서와 같이 툭~ 트인 전망이 나타난다.]
선각육존불을 뒤로 하고 그 위로 조금은 더 가파르게 나 있는 세로를 따라 가다보면 선각여래좌상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재미 있는 것은 선각육존불에 비해 이 선각여래좌상은 조금 더 그 양각의 느낌이 두드러지고, 여기서 더 올라가서 볼 수 있는 석조여래좌상에 가서는 완전한 환조의 모습으로 완성된다는 점이다. 마치 진화해 나가는 듯한 모습을 순차적으로 보는 거라고나 할까... 아무튼 이 선각여래좌상은 특히 코가 뭉툭하니 도드라지게 양각되어 있고, 나머지는 여전히 선각으로 되어 있다.
[선각여래좌상. 우리 머리 위에 앉아 계신 부처님은 특히 코가 뭉툭하니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파불(破佛)과 복원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석조여래좌상]
석조여래좌상을 보고 나면 길은 급경사로 아래로 내려가면서, 아까 갈림길에서 직진으로 올라온 그 길과 다시 합치게 된다. 여기부터는 길이 제법 경사를 보이게 된다. 그렇게 조금은 힘겹게 오르다 보면 상선암(上仙岩)에 닿는다. 물론 암자 자체는 정말 '별볼일' 없이 초라한 행색이지만, 그래도 이 암자에서 답사객들은 약수를 마실 수 있고, 또 상선암이 자랑하는 남산의 또 다른 보석 상선암마애대불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마애대불로 가는 그 길은 낙석이 심해 폐쇄되어 있다. 그래서 직접 그 앞으로 갈 수는 없고, 정상으로 가는 능선에서 조금 먼 곳에서 바라 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게 좀 떨어진 곳에서 보더라도 그 위엄을 가히 대단하다.
[상선암으로 가는 길은 꽤나 퍽퍽하다. 상선암 바로 직전 목계단에서 집사람이 잠시 숨을 고르며 쉬고 있다.]
[내려다 본 상선암의 모습. 겉으로는 초라해 보이지만, 답사객들에게는 더 없는 휴식의 공간을 제공한다.]
[낙석이 심해져 접근이 금지되어 있는 상선암마애대불. 금오봉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 바둑바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다.]
상선암부터는 말그대로 급경사의 등산로가 이어진다. 휴일이라, 더군다나 1박 2일의 영향으로, 이 코스에 몰린 답사객들의 행렬이 마치 군대개미들의 행렬같다. 그래도 쉬엄 쉬엄 길을 가면서,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는 불상들을 보는 재미가 너무 커서 짜증이 나지는 않는다.
[상선암을 지나 능선에 오르면, 거기부터는 이런 시원한 전망을 끼고 걷게 된다.]
[상사바위. 상사병에 걸린 이가 애를 낳는 모습을 한 바위 동쪽 틈 위에 돌을 던져 떨어지지 않으면 병이 낫는다고 한다.]
바둑바위에서 상사바위를 거쳐 정상인 금오봉(468m)에 이르는 길은 능선길이라 쉽게 갈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착각 하나. 남산을 깔보고(?) 어제 산 보리빵 6개에 물 2개만 달랑 가지고 온 우리는 정말 착각했다. 일반 등반객들은 우리를 놀리기라도 하듯 뭘 그렇게들 많이 싸와서 여기저기 모여 앉아 잘들도 먹어댄다. '가서 좀 달라고 할까?' 집사람이 농담 반 진담 반 웃으면서 말한다. '정말 가서 좀 달라고 할까?' 나도 웃으면서 대꾸한다. 그러나 말뿐. 그냥 보리빵만 생수에 삼키면서 길을 계속 간다.
금오산은 경주 남산의 주봉인 고위봉(494m)과 마주한 경주 남산의 제2봉이다. 생육신 중 한명인 김시습은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모든 것을 버리고 여기에 내려와 금오산실을 짓고 기거했다. 시습은 머리를 깎고 설잠(雪岑)이라는 법명으로 불교에 귀의해 생활하기도 했다한다. 그의 나이 31세에서 37세까지 6년의 세월이 그가 이 금오산에서 머문 기간이다. 그는 금오산 정상 남쪽에 있는 용장사에서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썼다고 전해진다. 다들 아다시피 금오신화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로, 현재는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의 다섯 편만 전해지고 있다. 어제 기림사에서도 우리는 매월당을 모신 사당을 보고 왔다. 경주의 이곳 저곳에서 매월당의 발자취를 볼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도 이번 여행에서 얻은 또 하나의 소득이다.
[금오산 정상을 알리는 입석. 구미의 금오산은 까마귀 '오(烏)'자고, 여기는 자라 '오(鰲)'자를 쓴다.]
이 곳 금오봉에서 사람들은 하나의 선택을 하게 된다. 일반적인 가이드북에서와 같이 다시 삼릉쪽으로 되돌아 가는 것과, 남쪽으로 난 길을 따라 용장사지쪽으로 가는 것. 일반적으로는 금오봉 정상에서 화장실을 이용한 후 다시 차를 세워두고 온 삼릉으로 되돌아 나간다. 그러나 우리는 용장사지가 또 하나의 목표였기에 길을 계속 가기로 하고 올라온 터라 망설일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금오봉에서 용장사지로 가는 길은 등산로가 아닌, 자동차길 수준의 남산순환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좁고 가파르고 암벽이던 길이 허탈하게도 넓은 비포장도로와 턱하니 만나고, 그 길을 터덜터덜 10분쯤 걸어내려가야 다시 용장사지로 가는 등산로가 나타난다. 그러니까 이 순환도로가 삼릉코스와 용장사지코스를 연결해주는 연결통로라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좋은 것은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삼릉으로 되돌아 가기 때문에 이후부터는 훠~얼씬 여유롭고 한가롭게 산을 탈 수 있다는 점.
[삼릉코스와 용장사지코스를 연결해 주는 남산순환도로. 길 저 끝에 용장사지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다시 좁은 등산로로 접어 들어 비탈진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느닷없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표지 모델이던 용장사지 3층석탑과 마주하게 된다. 유교수의 말에 의하면, 이 탑은 남산의 바위 전체를 자신의 기단으로 삼고 있는 탑이라 한다. 그래서 기단이 하나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 세상의 어느 탑보다 더 크고 웅장한 기단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까마득한 절벽 위에 서 있는 탑은 위험해 보이기보다는 너무도 당당해 보인다. 설악의 봉정암에 있는 사리탑에서도 느끼지 못한 어떤 특별한 느낌을 주는 영묘한 탑이다. 이 탑을 보고 쓰다듬어 보는 것이 집사람의 남산등정 제1목표였으니, 집사람 입장에서는 제대로 소원풀이를 한 셈이다. 봉정암 사리탑에 가서 탑돌이를 하려는 일념으로 그 험하디 험한 설악의 산길을 오르던 할머니들에 비하면, 집사람은 젊어서, 그것도 남편을 대동하고 놀이 삼아 왔으니 얼마나 행운인가 ^___^;.
[집사람의 로망, 용장사지 3층석탑(慶州南山茸長寺谷三層石塔). 보물 186호이다.]
[집사람은 한참 동안이나 탑 주위를 머물었다. 자신의 로망을 만났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아쉽지만 용장사지 3층석탑을 뒤로 하고 한참을 내려오다 보면 정말 특이한 불상과 마주하게 된다. 일반 불상들처럼 좌대위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탑의 정상에 올라 앉아 계신 듯한 그런 불상이다. 둥그런 떡탑과 같은 좌대 위에 역시 파불의 아품을 겪은 부처님이 앉아 계신다.
[시루떡을 겹쳐놓은 탑 같은 연화대 위에 올라 앉아 있는 특이한 형태의 여래좌상. 파불의 영향으로 역시 머리는 없다.]
아참, 이 불상을 보려고 내려 올 때 놓치면 안 돼는 또 하나의 보물이 숨겨져 있다. 바로 그 뒤 바위에 새겨져 있는 마애불. 많은 사람들이 이게 있는 줄도 모르고, 그냥 석탑만 바라보고 내려가 버린다. 놓치지 말고 꼭 보자...
[삼릉쪽 마애불들에 비해 이 마애불은 예술적으로 볼 때 훨씬 더 세련되고 안정된 모습을 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말 그대로 급경사지역이다. 때로는 밧줄을 빌어 내려와아야만 할 정도의 급경사도 3, 4군데나 된다. 그렇지만 그 다음부터는 편안한 일반 등산로가 마을 끝까지 이어진다. 더군다나 길의 대부분이 용장마을 사람들의 식수로 쓰인다는 계곡을 계속 끼고 내려가게 되어 있어 눈과 귀 모두가 상큼하다.
[내려오던 중 만난 계곡 가운데 소원탑 떼밭에서 집사람도 돌 하나를 정성껏 올리고 있다.]
[용장사지코스는 이렇게 물과 계곡을 더불어 즐기는 호사가 보너스다.]
[용장사코스 초입 계곡을 가로지르는 예쁜 설잠교(雪岑橋). 여기서 매월당 김시습의 법명이 설잠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용장마을 입구에서는 갓 피어난 매화를 만나는 호사도 누렸다.]
4시간에 걸친 남산 답사는 이렇게 끝났다(일반적으로 걸리는 시간은 아님. 보통 3시간~3시간 30분이면 된다).
지난 번에도 좋았지만, 이번에는 그 감동이 훨씬 더 컸다는 느낌이다. 날씨가 좀 더 맑고 깨끗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너무 한꺼번에 많은 것을 바라는 건 욕심일터.
버스 정거장에 가서 버스를 기다리느라 가게 앞 허수룩한 의자에 앉아 있는데, 주인아저씨가 방금 버스가 떠나서 20분쯤 기다려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시간을 줄이자고 택시를 잡았다. 삼릉까지 가면서 줄곧 창으로 남산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헐.. 여기는 시외 지역이라 '할증'요금을 내라고 한다. 뭐, 내지요, 까짓거. 기분 좋은데요, 뭐.
이제 경주 여행을 마무리할 시간. 택시 운전사가 추천한 순두부로 늦은 점심을 하기로 했다. 황남초등학교와 경주남부교회 길 바로 건너에 위치한 '황남맷돌순두부'집. 아저씨는 이 집은 두부를 직접 만들어 음식을 하는 집이라며 강추해 주었다. 다른 순두부와는 달리 작지만 자연송이 하나 썰어 넣고, 대하 몇 마리와 낙지 한마리, 팽이버섯 등 정갈하게 재료를 써서 만들었고 쓰잘데기 없이 맵지 않게 단백한 순두부를 만드는 집이다. 경상도에서 다 그렇지만 반찬은 조금 짜다는 느낌이었지만, 순두부는 나름 맛이 있었다. 물론 나는 양수리 기와집순두부처럼 맑게 끓여내는 순두부를 더 좋아하지만 말이다. 일반 가게에서 주는 그 시~뻘건 고추기름 둥둥뜨고 조개 몇 마리 달랑 넣은 것은 순두부로 여기고 싶지도 않다.
[자연송이의 알싸한 맛이 살아 있는 독특한 황남맷돌순두부. 새콤한 봄돔얼갈이 무침도 너무 맛있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황남빵'. 여기와서 처음 안 건데, 경주빵은 일반명사지만 '황남빵'은 고유명사, 등록상표라는 거. 대릉원 옆에 있는 황남빵집은 말이 빵집이지 커다란 '대기' 주차장까지 갖추고 있는 큰 기업체란 느낌이다. 차를 주차장에 어렵게 대 놓고 내가 기다리면서 잠시 눈을 붙인 동안, 집사람은 대기표를 받고 30분 이상을 기다려서야 겨우 황남빵 3박스를 사올 수 있었다. 하나는 애들 줄 거. 하나는 각자 학교에 가져가 선생님들에게 풀 거. 어쨌든 황남빵집을 끝으로 우리의 1박 2일 경주여행은 끝이 났다.
비록 1박 2일, 그것도 집사람학교 애기들 수학여행 답사 목적으로 온 여행이었지만, 남들 다 가는 관광지가 되버린 '유적지'가 아닌,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경주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너무도 좋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이제는 너무 식상하게 들리게끔 되어버린 그 말처럼, 이제 경주는 우리에게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경주의 속 살을 한 겹 더 들여다 본 기분이랄까...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경주의 더 깊은 속모습을 더 자세히 들여다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