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막달레나 趙 Magdalene(1807-1839)】「하느님을 찬미하면서 옥사하였다」
성녀 조 막달레나(趙 Magdalena)는 기해박해 때 같이 순교한 성녀 이 가타리나(李 Catharina)의 맏딸로 1807년에 시골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천주교를 배워 입교하였다. 외교인이었던 아버지가 어머니의 정성으로 마지막에 대세를 받고 돌아가신 후 집안 식구들과 친척들이 천주교를 엄금했기 때문에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외가로 돌아와 살았다. 그녀의 외조모는 매우 열심하였기에 그들은 편안히 본분을 지키며 살 수 있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고분고분하게 듣고 열심히 배웠으며 천주와 이웃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빠르게 진보하였다. 매일 이른 새벽에 일어나 신공을 다 한 다음에야 집안일을 했고, 바느질과 길쌈으로 어머니와 가사를 돌보았다.
그녀의 나이 18세에 이르자 어머니는 딸을 교우에게 출가시키려고 하였다. 조 막달레나는 그때 비로소 어머니에게 동정을 지킬 결심을 말하였다. 어머니는 딸의 뜻을 이해할 만큼 신심이 깊었으나 그녀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집안 친척들과 또 여러 가지로 의심하는 외교인들의 눈을 피하고자 딸에게 서울로 올라가 어떤 교우 집의 하녀로 들어가 지내도록 했다. 그러나 쉴 새 없는 노동과 넉넉하지 못한 음식으로 인해 그만 병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되었다. 병에서 완쾌되자 조 막달레나는 조금은 덜 고된 교우 집으로 옮겨 가 여러 해를 살면서 자신을 위해서 필요한 것 약간 외에는 절약하여 시골에 있는 어머니와 동생들의 생활을 도왔다.
서른 살이 된 그녀는 이제 혼담을 이야기할 사람이 더는 없으리라 생각하고 어머니 곁으로 돌아와 효성과 열심함으로 모든 교우들의 모범이 되었다. 교리를 모르는 이에게는 가르쳐주고, 병자를 간호하고 위로하며, 죽어가는 어린아이들에게는 대세를 주었다. 그녀는 성품이 온화하고 겸손하며 또 너무나 헌신적이어서 쉬운 일은 남에게 시키고 힘든 일은 자기가 도맡아 하였다. 자신의 고생을 돌보지 아니하였고 박해로 인하여 당할 수 있는 위험을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1839년에 이르자 외교인들이 교우들을 못살게 굴고 또 박해의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위험이 임박했음을 느낀 조 막달레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 살기로 했다.
앵베르 라우렌시오(Imbert Laurentius, 范世亨) 주교는 조 막달레나와 이 가타리나 모녀가 서울로 왔다는 소식을 듣고 몇몇 회장에게 분부하여 교우 집에 살도록 주선하게 하였다. 모녀는 어느 회장이 주선한 조 바르바라(Barbara)의 집으로 갔다. 그런데 그 집에는 조 바르바라와 그녀의 두 딸로 기해박해 때 순교한 성녀 이영덕 막달레나(李榮德 Magdalena)와 성녀 이인덕 마리아(李仁德 Mary) 자매가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그들의 신세는 조 막달레나의 경우와 비슷하였다. 그런데 조 막달레나가 모면하려던 박해는 다른 어느 지방보다도 서울에서 더 심하였다. 그래서 함께 살던 신심 깊은 다섯 명의 여교우들은 서로 용기를 북돋워 주면서 박해를 받으면 잘 참자고 권면하며 지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시작되고 포졸들이 주교를 찾기 위해 사방으로 돌아다닌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은 함께 모여 “만일 주교님이 잡히시면 우리도 자수하도록 합시다.”라고 한 사람이 제의하자 조 막달레나는 힘찬 목소리로 “예, 자수하는 것이 관계없다면 우리 예수님과 우리 주교님의 뒤를 따르기 위하여 그렇게 합시다.” 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수할 틈도 없이 7월의 어느 날 포졸들이 갑자기 집으로 들이닥쳐 모두 붙잡히고 말았다.
조 막달레나는 동료들과 함께 포도청으로 끌려가 포장으로부터 신문을 받고 주리를 트는 등 고문을 받았으나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이 갇힌 옥은 매우 좁은 데다가 교우들로 가득 차 있었다. 게다가 아주 무더운 한여름이어서 모두 열병으로 고생하였다. 조 막달레나와 어머니 이 가타리나도 열병에 걸려 1839년 9월 하순 어느 날, 며칠 사이를 두고 차례로 천주님을 찬미하면서 옥사하였다. 이때 조 막달레나의 나이는 33세, 어머니 이 가타리나는 57세였다.
성녀 조 막달레나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성인품에 올랐다. 그녀는 9월의 어느 날 옥중에서 순교했으나 한국 교회에서는 1984년에 시성된 103위 한국 순교 성인 모두를 전례적으로 9월 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에 함께 기념하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9월 26일 목록에서 한국의 서울에서 이날 성 남이관 세바스티아노(南履灌 Sebastianus)와 8명의 동료가 그리스도교 신앙을 위해 잔혹한 고문을 당하고 참수당했다고 적었다. 그리고 과부 순교자인 성녀 김 루치아(金 Lucia)와 성녀 이 가타리나와 그녀의 딸인 동정 순교자 조 막달레나도 그리스도를 위해 감옥에 갇혀 고문을 받고 9월의 어느 날 옥중에서 순교했음을 함께 기념한다고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