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향(廻向, 回向, 산스크리트어 parinamana)>
회향(廻向)은 회전취향(廻轉趣向)이란 뜻인데,
회향(回向)에서 회(回)는 ‘돌린다’ 는 뜻이고,
향(向)은 ‘지향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회향이란 ‘되돌려 나아간다’는 의미로서,
스스로 쌓은 선근(善根)과 공덕(功德)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어
자타(自他)가 함께 불과(佛果)의 성취를 기하려는 것을 말한다.
즉, 회향이란 한마디로 삶의 방향을 바르게 잡아 나간다는 뜻으로,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적 방향에서
남을 위한 이타적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러한 회향정신은 불교에서 매우 중요한 교의의 하나이다.
다른 종교나 초기불교에서도 볼 수 없던 대승불교의
거룩한 보살정신을 상징하는 말이고, 대승불교 최고의 정신이다.
대승불교에서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이 보살이고,
그 보살의 이념이 나와 남의 이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이라면,
자신이 열심히 노력해 쌓은 선업 또는 공덕을 법계와,
일체중생들에게 모두 돌려 이상적인 보살행을 실천하는 회향은
업보의 전환이며, 보살행의 완성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회향은 개인적인 이익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고도의 자기 헌신과 자기희생이 회향의 정신에 전제돼야 하는 것이며,
보살행의 완성을 회향이라고 보는 것이다.
대승불교의 보살사상 가운데는 말법 중생, 하근기 중생들의 해탈을 위해서
자신의 수행 공덕을 끊임없이 회향한다는 사상이 발전했다.
특히 지장보살(地藏菩薩)은 말법시대의 고통 받는 모든 중생들을 위해
자신이 쌓아 온 모든 공덕을 회향하는 대표적 보살이다.
이 같은 사상은 곧 재가불자들도 자신의 기복만을 위해 기도를 하고
공덕을 쌓을 것이 아니라 지장보살의 이 본원(本願) 정신을 닮아
스스로 지은 복을 남을 위해 회향할 줄 알아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오늘날처럼 천민자본주의가 만연해 오로지 자기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한 풍조는 일종의 사회악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탐욕이 치성해 갈등과 범죄가 끊일 사이 없다.
더구나 가진 자의 횡포는 날로 극심해 빈부 격차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이 큰 번뇌로 작용하고 있다.
이 어려운 시기를 부처님 가르침의 회향 정신으로 극복해 나가야 하겠다.
사홍서원(四弘誓願)에 “가없는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라는 것이 회향심의 표현이고,
대승불교의 기본정신인 자리이타(自利利他)나 요익중생(饒益衆生)
역시 회향과 같은 맥락의 말이다.
자리이타(自利利他)란 <화엄경> ‘보현행원품’에 나오는 말이다.
자리(自利)란 스스로를 이롭게 한다는 뜻으로, 노력하고 정진해
수행공덕을 자신이 누리는 것을 가리킨다.
이에 대해 이타(利他)란 다른 이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을 뜻하며,
자신의 이익뿐만 아니라 모든 중생구제를 위해 노력하는 공덕을 말한다.
따라서 자미득도선도타(自未得度先度他)라 했다.
자기 자신을 아직 제도하지 못했으면서도 자기를 구하기 전에
먼저 남을 구제하겠다는 대승적 원력을 말하는 보살 정신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요익중생(饒益衆生)은 중생을 넉넉하게 이익 되게 한다는 말로서,
남을 이익 되게 하면 나도 저절로 좋아진다는 말이다.
이는 자리이타(自利利他)와 같은 말이어서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로워야 하고,
남이 잘 되도록 도와주고, 남이 잘 돼야 나도 잘 된다는 뜻이어서,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정신과 같은 맥락이다.
나와 남이 따로 없고, 남의 고통마저도 공감하는 무한한 사랑을
나타내는 자타불이(自他不二) 정신에 근거하고 있다.
그리하여 대승 보살은 자신의 오도(悟道)는 뒤로 미루고
우선 중생을 구제한다는 사상과 실천을 이상으로 하고,
이러한 중생구제의 염원은 발심(發心)과 더불어 다짐하게 된다.
헌데 굳이 이런 거창한 회향정신 외에도 작게는 물질적으로 함께 하는 회향방법도 있다.
예컨대, 재를 지낸 후 그 음식을 나누는 것도
작은 회향의 한 방법이다. 그래서 사찰에서 음식을 나누는 것을
회향으로 표현한다. 다만 유념할 것은, 이처럼 회향을
불교행사를 끝낸 뒤 그 음식이나 공덕을 이웃에게 되돌리는 등의
작은 뜻으로만 해석하지 말자는 것이다.
원래의 의미는 그 무엇을 지향하는 목적의식을 회향이라 했듯이
회향의 작은 의미보다는 자리이타하고 요익중생하는 큰 틀에서
대승불교 정신을 실현하는 목적의식을 분명히 해야 하겠다.
그래서 중국 수(隋)나라 혜원(慧遠)이 지은
<대승의장(大乘義章)>에서는 세 가지 문제 해결을 위해 지향되고
귀착돼야 한다고 했는데, 그것을 삼처회향(三處廻向) 혹은 회향삼처(廻向三處)라 했다.
즉, 중생회향ㆍ보리회향ㆍ실제회향의 세 가지이다.
• 중생회향(衆生廻向)은 자기가 지은 선근 공덕을 모든 중생에게
회향해 베푸는 것을 뜻한다. 자비심을 베풀기 위한 지향의식이다.
즉, 나에게 돌아오는 모든 좋은 일을 불행하고 가엾은 사람에게
돌려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면 그것을 나의 행복과 안일만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위해 쓰는 것이 중생회향이다.
• 보리회향(菩提廻向)은 자신이 지은 모든 선근을 회향해
보리의 과덕(果德)을 얻으려는 것으로, 올바른 깨달음(시각)을
얻기 위한 지향의식이다. 즉, 나에게 어떤 공능(功能)이 있다면
그것을 자유와 정의와 진리를 구현하는 데 쓰겠다는 것이다.
• 실제회향(實際廻向)은 자기가 닦은 선근 공덕으로, 부처님 자리,
곧 무위적정(無爲寂靜)한 열반을 얻으려고 하는 지향의식이다.
즉, 이상과 같은 일을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김으로써
자신은 완전한 인격을 갖추고 자신이 사는 세계는 정토(淨土)가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수행하지 않는 합리주의자들은 자기의 노력에 대한 대가를
혼자 소유하려 하고, 수행 정진하는 자는 모든 중생을 위해
보시하며 살아간다. 우리 모두 수행 정진해 회향하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 불교적 행원(行願)이다.
그리고 삼처회향(三處廻向)을 이루는 방법에 대해
중국 정토종(淨土宗)의 담란(曇鸞, 476~542)은
왕상회향(往相廻向)과 환상희향(還相廻向)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 왕상회향(往相廻向)이란 자신의 공덕을 중생에 회시(廻施)해
함께 아미타불의 정토에 왕생하려는 원을 말한다.
즉, 자기가 지은 모든 공덕을 삼처에 회향함으로써
중생들과 함께 무상의 행복을 성취하는 것, -
정토에 왕생하는 것이다.
• 환상회향(還相廻向)이란 일단 정토에 태어난 후
다시 이 세상으로 되돌아와서 중생을 교화해, 정토로 향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즉, 대비심의 보살은 정토의 즐거움에 안주할 수 없다.
따라서 다시 고통의 예토(穢土)로 돌아와 중생을 교화하게 되는데
이를 환상회향이라 한다.
그리고 보살 회향의 대표적인 것으로 십회향(十廻向)이 있다.
보살 수행에서 10회향은 모든 공덕을 부처님과 중생들에게
돌려주는 지위로서, <화엄경>에서 설해지는 보살의
수행계위 52위(位) 중 제31위부터 40위까지에 해당한다.
보살의 수행계위 제21위에서 제30위까지 10행위(行位)를 마치고,
지금까지 수행해 오던 것을 방향을 돌려 궁극적으로 지향해
나아가야 할 수행의 방향 열 가지를 제시하고,
이에 따라 집중적으로 노력을 기울여 지금까지 쌓은 선근과 공덕을
중생에게 돌리는 단계이다.
즉, 지금까지 닦은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여러 가지 행을
일체중생을 위해 돌려주는 동시에, 이 공덕으로 불과를 향해 나아가
오경(悟境)에 도달하려는 것이다. 십회향은 보살이 행하는 회향이므로
일반 불자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① 구호일체중생리중생상회향 (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廻向)
- 구호일체중생회향 (救護一切衆生廻向)이라고도 한다.
공덕을 중생에게 돌려 모든 중생을 차별하지 않고
구제하고 보호함을 말한다.
일체중생을 구호하면서도 중생이라는 생각을 떠난 회향이요,
원친(怨親)이 평등하게 하는 회향이다.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는 것은 중생이 번뇌하는 모습을 보고 측은히 여겨
구제를 하지만 참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은 중생의 번뇌를
자기의 번뇌로 여겨서 교화하려는 보살과 중생이 하나가 될 때에
가능한 단계이다.……
이러한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회향은 과거, 미래, 현재의 부처님들이
이미 말씀하셨고, 앞으로도 말씀하실 것이고 지금도 말씀하신다.
따라서 회향에 대해 <화엄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모두 다 회향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모든 공덕을 온 누리에 있는 모든 중생에게 돌려,
중생들로 하여금 항상 편안하고 즐겁고 병고가 없게 하는 것이며,
나쁜 일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고 착한 일은 모두 이루어지며,
온갖 나쁜 일의 문은 닫아버리고 열반에 이르는 바른 길은
활짝 열어 보임이다.
그리하여 중생들이 쌓아 온 나쁜 업으로 말미암아 받게 되는
무거운 고통의 여러 가지 과보를 내가 대신 받으며,
그 중생들이 모두 다 해탈을 얻고 마침내는 더 없이
훌륭한 깨달음을 성취하도록 힘씀이다.
따라서 보살은 대자비를 완성해 중생의 마음을 깨달음으로 돌려,
중생을 위해 활동하길 조금도 쉬는 일이 없다.
그리하여 보살은 깨달음의 마음으로써 온갖 선을 닦고,
모든 중생을 위해 지도자가 돼 지혜의 길을 제시하고,
모든 중생을 위해 진리의 태양이 돼 온 누리를 비춤으로써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선을 행하게 하길 조금도 쉬는 일이 없다.
또한 보살은 부처님이 설한 최상의 진리를 듣고 마음 속 깊이 새길 뿐 아니라,
나아가 그것을 중생에게 설법해 다음과 같이 회향한다.
“저는 오로지 한 마음으로 무수하고 끝없는 세계 속의
모든 부처님들을 바르게 생각해 보살의 의무를 다하겠습니다.
저는 하나의 세계에 있어서 한 사람의 중생을 위해 영원토록 보살의 의무를 다 하겠습니다.
저는 모든 세계에 있어서 모든 중생을 위해 마찬가지로
영원토록 보살의 의무를 다 하겠습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함이 바로 보현보살의 보개회향(普皆廻向)이다.
보개회향, 지금까지 배우고 익히며 쌓은 모든 공덕을 모두에게 아낌없이
다 나누겠다는 것이다.
기도 중에 정근을 마치고 나면,
「원이차공덕 보급어일체 아등여중생 개공성불도
(願以此功德 普及於一切 我等與衆生 皆共成佛道)」라 한다.
“저희들이 지은 바 이 공덕이 일체 중생들의 공덕이 돼 빠짐없이
성불하옵고 위없는 불국토를 이루어지이다.”하는 회향이다.
이것이 보현보살님의 보개회향이다.
그 어떤 공양보다 더 귀한 공덕을 아낌없이
일체 모든 이들에게 공양하고 함께 공유한다는 것이 진정한 회향이다.
공유하고 있으니 주고 나서 아깝다는 생각으로 흔들리지 않고,
모두 다 행복하니 즐거운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삶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이 보현보살과 삼세제불이 다 함께 걸었던 길이니
우리가 이 길에 동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보현보살이 부처님 앞에서 큰 서원과 청정한 게송을 읊자
선재동자와 여러 보살들은 기뻐 어쩔 줄 몰라 했고, 부처님은 “그렇다. 그렇다”고 찬탄하셨다.
‘모든 공덕과 복덕을 중생에게 회향하리라’ 보개회향원(普皆廻向願)으로
마무리하는 보현보살 10대원의 게송 일부분을 소개한다.
“지혜와 행 널리 닦은 공덕의 힘
위신으로 덮어주는 자비의 힘
깨끗하게 장엄한 복덕의 힘
집착 없고 의지 없는 지혜의 힘
원만하게 쌓아 모은 보리의 힘
보현행을 원만하게 닦은 힘으로 한량없는 이웃들을 해탈케 하며,
그지없는 법문을 분별 잘하여 지혜바다 깊이깊이 들어가리라.
오래잖아 보리수 아래 앉아서 여러 가지 마군들을 항복받나니
정각을 성취하고 법을 설해 끝없는 이웃들에 이익 주리라.
바라건대 보현보살 거룩한 행 그지없이 훌륭한 복 다 돌려주어
삼계 고해 빠져있는 모든 이웃들 평화로운 정토에 어서 가소서”
이처럼 표현된 회향의 정신은 남의 잘못한 대가를 내가 받겠다는 것이며,
내가 잘한 일의 대가를 남에게 돌리겠다는 자비심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회향은 곧 업보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불교의 모든 수련회가 회향식으로 끝을 맺는 것도
우리의 마음에서 회향의 마음을 다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대승불교 최고의 목표가 회향임을 알 수 있다.
[출처] 블로그 아미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