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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어 두었던 붉은 마음 번진다/오랜 시간 발효된 그리움/머뭇거림도 없이/눈물에 스며 나오는/떫고 달콤하고 아릿한 정(情)/말로 다 하지 못하니/차라리 속울음을 삼켰다/풀어낼 사연이 따로 있으랴/우러나오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세상사 모든 이치가/차 한잔 마시는 도(道)/마음주어도 그만/아니주어도 그만/스스로 조절하는 농도로/떫거나, 시거나/달콤하거나. (노연화 作 '홍차')
녹차와 홍차는 같은 찻잎으로 만들지만 서로 다른 색과 향을 지닌다. 녹차는 우리에게 익숙한 일부이지만 홍차는 조금 낯설다. 동양에서 시작돼 서양으로 퍼져나간 차 문화이지만 홍차를 마시는 것은 남의 옷 걸친 것처럼 조금은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찻잎을 발효시킨 것을 홍차, 발효시키지 않은 것을 녹차라고 부를 뿐 효능 면에서는 둘은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에는 일부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홍차에 대한 관심이 급상승하고 있다. 대구지역에서도 홍차 전문점을 표방하는 카페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또 일부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들마저도 홍차 메뉴를 개발해 선보이는가 하면, 시내 곳곳의 커피숍들을 찾아도 아삼이나 다즐링 등의 홍차 메뉴 한 두 가지는 꼭 들어있을 정도다.
홍차는 향과 분위기와 쌉쌀한 맛을 즐기는 음료다. 붉게 빛나는 빛깔을 보기 위해 잔은 가급적 속이 흰 색이면서 입구가 넓고 납작한 것을 사용하고, 종류마다 제각각 다른 향을 품고 있어 입으로 맛을 보기 전에 코로 먼저 맛을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차를 좋아하기 힘든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홍차의 떫은 맛 때문이라고 하지만, 일단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오기 힘든 비결도 바로 이 떫은 맛에 있다. 떫은 맛을 내는 것은 바로 탄닌 성분. 탄닌은 피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 하루에 한번 홍차를 마시면 심장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기도 하다. 이 쌉쌀한 맛 자체를 즐겨도 좋고, 달콤한 쿠키나 케익을 곁들이면 단맛을 배가시켜면서 입안이 개운해지는 맛을 느낄수 있다.
△차의 종류와 특징 홍차는 찻잎의 배합에 따라 스트레이트(straight), 블랜드(blanded), 플레이버(flaver)로 크게 나뉜다. 스트레이트는 한 가지 찻잎을 쓴 것. 보통 재배된 지방의 명칭을 따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세계 3대 홍차가 바로 다즐링, 아삼, 우바. 다즐링(Darjeeling)은 인도 북동부의 히말라야 기슭 고지대인 다즐링 지방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밤낮의 기온차가 심하고 안개가 자주 끼는 기후상의 특징으로 인해 생겨난 독특한 맛과 향기를 지니고 있다. 오렌지색을 띄며, 주로 스트레이트로 마신다.
인도 북동부의 정글지방으로 세계 최대의 차 생산지로 손꼽히는 아삼지방에서 생산되는 아삼(Assam)은 햇볕이 강렬하고 비가 자주 내리는 기후에서 나오는 차 답게 뚜렷하고 강한 맛과 몰트(malt)의 향기, 맑고 진한 홍색 빛깔이 조화된 차이다. 주로 밀크티나 잉글리시블랙퍼스트 스타일로 마신다.
우바(Uva)는 스리랑카 실론 섬 방동부 고원지대에서 생산되는 차로 주로 밀크티의 형태로 마신다. 색깔은 밝은 홍색으로 약한 편이지만 맛과 향이 강한 대표적인 '실론티'이다. 블랜드는 여러가지 차를 섞은 '블렌드(blended)'가 아니라 상표명에 따른 차의 분류다. 대표적인 것으로 잉글리시 브렉퍼스트(English Breakfast), 오렌지 페코( Orange Pekoe) 등이 있다. 플레이버는 가미된 향과 맛에 따른 이름이다. 취향에 따라 꽃이나 과일 열매를 말려 찻잎과 섞거나 각종 첨가물을 넣으면 전혀 다른 맛과 향을 낼 수 있어 그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차에 절대로 설탕을 넣지 말라."고 했던 작가 조지 오웰처럼 홍차 본래의 맛을 즐기는 것은 스트레이트,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산딸기 시럽을 넣어 '러시안티' 스타일로 마실수도 있다. 널리 알려진 '얼그레이'(Earl Grey)는 베르가못을 추가해 만든 대표적인 가향차이다.
△세계인의 홍차 중국의 음료였던 차가 영국에 처음 전해진 것은 16세기 무렵이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의해 중국의 차가 처음 유럽으로 전해졌고, 1662년 찰스 2세가 포르투갈에서 온 캐서린 왕비와 결혼하면서 영국에도 차 문화가 전해졌다. 처음에는 상류 귀족들만 마시는 고급음료였지만 점차 대중화되면서 18세기 초에는 영국이 차의 최대 소비국가가 됐다.
영국인들의 하루 일과는 차로 시작해 차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early tea', 아침식사 때는 'breakfast tea', 오전 일과중에는 'elevenses', 오후에는 'afternoon tea', 저녁식사 때는 'high tea', 늦은 저녁에는 'after dinner tea',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night tea'를 마신다. 세계 최대의 차 생산지로 유명한 인도에서는 '차이(chai)'라고 불리는 전통식 홍차가 있다. 홍차에 생강, 시나몬, 카더멈 등 전통 향신료와 우유를 섞어 마시는 것이다. 보통의 홍차가 달콤함에서 시작해 쌉싸름한 뒷맛으로 끝난다면, 인도식 홍차 '차이(chai)'는 그 반대다. 쌉싸름한 향신료가 먼저 입맛을 자극하고 뒤이어 우유의 달콤함이 입안 전체로 퍼져나간다. 영국의 밀크티와도 비슷하지만 차이가 좀 더 진하고 향이 강하다. 이들은 친목 도모보다는 주로 하루 노동의 피로를 푸는 목적으로 마신다. 길거리에서 냄비에 끓여서 파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으며 누구나 쉽게 만들어 마실 수 있는 대중적인 차다.
△맛있는 홍차를 우리려면 1. 무엇보다 맛있는 홍차를 구하는 것은 필수다. 홍차에도 워낙 종류가 많으니 자신의 입맛에 알맞은 차를 꼼꼼하게 골라야한다. 2. 물은 연수(물속에 칼슘이온이나 마그네슘이온의 함유량이 적은 물)이 좋다. 3. 포트(주전자)는 2개를 준비한다. 하나는 홍차를 우려내는 용도이고, 다른 하나는 우려낸 홍차를 담아 서빙하는데 쓰인다. 그리고 잔과 스트레이너(Strainer:거름망), 티코지(Tea Cozy:보온을 위한 티포트 덮개), 티 타이머 등을 준비한다. 4. 찻잎을 넣을 티포트와 잔을 미리 예열해 둔다. 5. 물을 100℃이상으로 팔팔 끓인다. 기포가 500원 동전크기로 올라올 정도면 적당하다. 너무 오래 끓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6. 미리 예열된 티포트에 홍차 4g을 넣고, 물 300cc를 붓는다. 7. 타이머를 5분에 맞추고 기다린다. 8. 시간이 되면 스트레이너를 이용해 걸러서 서빙할 티포트로 옮겨 담는다. 9. 티코지를 이용해 주전자를 따뜻하게 유지하면서 즐기면 된다. 기호에 따라 우유나 꿀, 설탕을 섞어도 좋고 쿠키나 곁들여도 좋다.
◆'나무 아저씨'의 행복한 찻집 경북대 북문에서 '티플라워'(Tea Flower)라는 홍차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창호(35) 씨. 그는 사실 원두커피 전문점 '커피나무'의 '나무아저씨'로 더 유명하다. 하지만 그의 '로망'은 바로 홍차. 커피로 번 돈을 고스란히 쏟아부은 것은 물론이고, 그의 꿈까지 모두 담아 만든 가게가 바로 '티플라워'다. 벽지와 가구, 인테리어 소품 하나까지도 전국을 떠돌며 직접 골라가면서 정성을 기울여 만든 공간이다. "처음에는 아내와 마찰도 좀 있었죠. 커피 가게를 운영하면서 굳이 홍차 전문점을 낼 필요가 있겠냐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대구에는 아직 '홍차'를 마시는 문화가 낯설은 때였지요. 하지만 결국은 아내가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홍차를 향한 저의 애정을 꺾을 수 없었거든요."
그가 홍차와 인연을 맺은 것은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홍차의 본고장인 인도에서 불교 공부를 하는 동안 완전히 홍차에 매료되고 만 것이다. 홍차를 통해 친구들도 꽤나 많이 사귀었다. 지금도 그에게 홍차를 공급해 주고 있는 친구 중 한 사람은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홍차 권위자이기도 하다. 지역에서는 이제 커피`홍차 전문가로 알려지면서 찾아오는 이들도 꽤나 많다. 하지만 이들 중에는 차를 돈벌이로만 접근하는 이들도 많아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고 한다. "차를 즐기지도 않는 사람이 창업을 하겠다며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할 때나, 대뜸 자본금은 얼마나 필요하며, 얼마나 벌 수 있는 가를 물어오는 사람들을 보면 참 답답합니다. 차의 매력에 빠져본 뒤 사업을 시작해도 늦지 않을텐데 말입니다."
차는 커피나 다른 음료에 비해 참 번거로운 음료다. 그래서 차를 즐기는데 대해 부담스러워 하지만 그는 "마음먹기에 따라 따뜻한 물과 잔 하나만 있으면 쉽게 즐길 수 있다."고 했다. "간단한 차통 하나를 휴대해도 좋고, 집이나 사무실 책상머리에 컵이나 작은 대접 하나만 올려둔다면 언제라도 찻잎을 넣고 물을 부어 차를 즐길 수 있습니다. 잎을 꼭 건져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지요. 잎을 후후 불어가면서 마시다보면 '빨리빨리' 만을 외치는 일상을 한 템포 느리게 갈 수 있는 덤까지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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