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 놀 것인가?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
이 노래를 이해하지 못했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산천을 주유하다 보면 사람들을 바라보며 실감한다.
젊은 시절의 눈으로 보는 것하고
나이 들어서 바라보는 것하고의 차이
그래서 젊은 시절에 잘 놀면서 일하고 일 잘하면서 놀아야지
나이가 들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일이면서 놀이이다.
어느 때 노는 것이 제일 좋은 때일까?
한악韓渥은 “사계절 중에 가장 좋은 때가 3월 이며
한 번 가면 돌아오지 않는 것은 오직 소년시절일세.“라는 시를 지었고,
이산보李山甫는 “늙음이 소년을 쫓아와서 마침내 놓아주지 아니하고,
욕됨이 영화 뒤를 따르니, 정定함은 반드시 균평均平한 것이다.“고 하였다.
“글을 통하게 읽는 사람은 천하天下에 적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은 세상에 많다.“ 라는 글이 있으며,
“젊을 때에는 이름을 위하여 억제하고 구속함이 많더니,
늙어지니 미친 듯이 놀려고 하여도 그럴만한 흥이 나질 않네.“ 라는 글도 있다.
아이들이 나에게 “무슨 일로 그리 슬퍼합니까?” 하고 물으면, “그 뜻은 다른 때에 네가 스스로 알게 되리라.” 라는 글이 있다.
누구의 글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글들이 모두 절실하여서
사람으로 하여금 슬퍼하고 탄식하고 만들기에 족하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실린 글이다.
아이들이 뭘 알겠는가. 세월이 저절로 알게 해 주는 것을,
노는 것과 일하는 것 두 가지를 잘하는 것이 결국 잘 사는 것이리라. 그런데
그렇게 사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싶지만 마음을 조금 바꿔서 욕심만 조금 줄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터인데,
버린다고 했는데도 남아 있는 그 욕심 때문에
노는 것도 일하는 것도 마냥 힘들기만 한 게 인생이다.
노는 것처럼 일하고 일하는 것처럼 놀 수 도 없는
이 어정쩡한 인생이여!
무자년 시월 삼십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