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달은 폭파됐지만 우리는 장대비를 맞으며 남산을 달렸습니다.
저와 김병수 고문님과 유격대장 전갑선님.
우리 3인의 한마동 달림이는 남산 북측 산책로 3km구간을
7번 왕복하는 서울마라톤의 혹서기 대회(8월 14일 과천에서 열림)
대비 풀코스 모임에 참석해 빨간 유니폼을 자랑하며 정말 힘들지만
기쁘게 달렸습니다.
언덕훈련코스로 유명한 남산길을 풀코스로 만들어
대회(비록 비공식이지만)를 연 적은 없었던 것같습니다.
서울마라톤클럽이 작년에 `혹서기 대비 풀코스 모임'이라며 이런 대회를
처음 만들 때도 코스는 한강변이었습니다.
그러나 금년에는 장마철에 대한 선견지명이 있었는지
장소를 남산으로 옮겼고, 그래서 억수같이 퍼붓는 장대비와
곳곳의 교통통제 속에서도 악마의 레이스가 가능했습니다.
처음 레이스를 시작할 때는 가랑비 정도 내리는 날씨였습니다.
비가 많이 온다는 예보는 있었지만 이 정도라면 달리기에
최고라며 모두들 즐거워 했죠.
저는 남산코스에서 여러번 연습해본 적이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될수록 천천히...'를 되뇌며 페이스를 늦추는데
주력했습니다.
오버페이스하면 틀림없이 후반에는 걸을 수밖에 없는
코스이기 때문입니다.
평소 연습 때는 6km 한바퀴 랩타임이 30-32분이었지만
이번에는 35분 전후로 해서 4시간 15분 정도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속으로는 날씨도 도와주고 하니 두세바퀴 뛰어보고
괜찮으면 4시간을 넘기지 않도록 욕심을 내볼 수는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역시 남산의 언덕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첫바퀴(6km + 0.195)를 33분 24초, 두번째(이후 6km)를
32분 37초, 세번째를 33분 41초로 달리며 4시간을 넘기지
않도록 해보겠다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그러나 네번째 바퀴를 시작하자마자 쏟아진 장대비는
시야를 방해하더니 도로를 실개천으로 바꾸고
신발을 완전히 적시면서 페이스를 떨어뜨렸습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물이 튀어오르고 완전히 젖은 신발속에서는
발가락들이 아우성을 치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금방 발이 부르트기라도 하면 큰일이라는 생각에
보폭이 줄어들고 착지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습니다.
이후 레이스를 마칠 때까지 이런 비는 모두 세차례나
내렸습니다. 그것도 어떤 때는 10여분을 그렇게
쏟아졌습니다.
모자를 쓰지 않으면 머리가 아플 정도로 세게
내리붓는 빗줄기였습니다.
신발이 불편한 것을 빼면 사실 우중주의 쾌감을 맛보는데는
더없이 환상적인 소나기였습니다.
이런 빗속에 우중주를 할 수 있는 날이 과연 1년에
몇번이나 될까 따져보니 오히려 행운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100명 가까운 참가자들도 처음에는 몇명씩 그룹이 지어지는가
했으나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완전히 흩어져 왕복주로임에도 불구하고
드문드문 눈에 띄는 양상으로 변했습니다.
비가 쏟아지는 장마철이니 평소에는 많은 달림이나 산책하는 시민들도
거의 없어서 주로는 매우 한가했습니다.
거의 우리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다섯번째부터는 페이스가 뚝 떨어져 한바퀴에 37분 수준으로
늦어졌습니다.
언덕에서 `아무리 힘들어도 걷지는 말자'며 열심히 뛰는
포즈를 취했는데도 가끔 추월해가는 고수들을 만나면
정말 약이 올랐지만 별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뱁새가 황새를 따라갈 수도 없는 일이죠.
그냥 내 페이스를 유지하자며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열심히 언덕훈련을 해서 다시는 이런 가슴아픈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다짐도 해보고......
가끔 마주치는 소위 sub-3 주자들의 달리는 모습을
유심히 보았더니 이들도 페이스가 많이 떨어진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왕복주로가 아니면 제가 어떻게 sub-3 주자들을
여섯번이나 일곱번씩 주로에서 마주칠 수 있겠습니까.
기껏 내 시야에서 벗어나는 그들의 등짝이나 한번 보는게 전부지요.
그래서 그들의 폼을 정말 유심히 보았습니다.
그냥 탁 봐도 `저렇게 달리니 3시간 안에 들어오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자세가 웬만해서 흐트러지지 않을 것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발걸음도 그렇게 가벼워 보이는게 참 신기했습니다.
하여튼 다섯바퀴를 돌고나니 선두그룹과 꼭 1바퀴 차이가 났습니다.
아프리카 출신인 듯한 흑인1명(런조이 훈련에 자주 동참하며
하프 기록이 1시간 5분대라고 함)과 `남산마라톤클럽' 유니폼을 입은
주자가 계속 함께 선두로 달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도 3시간내에 골인하기는 힘든 시간대였습니다.
코스가 코스인 때문인지 얼굴이 익은 다른 sub-3주자들도
3시간 20분 전후가 돼야 골인할 것같은 페이스입니다.
반환점 근처에서 `한마동 홧팅!!!' `힘!!!'을 외치며
서로를 격려해온 김 고문님과 전 대장님도 지친
모습이었으나 열심히 달리고 있었습니다.
6바퀴를 마치고 마지막 한바퀴를 위해 출발점을 돌며 본
시간은 3시간 29분.
지치지 않은 상태라면 몰라도 31분만에 한바퀴를 돌기는
도저히 어려운 상황이라는 판단을 하고 대신 4시간 5분을
넘기지 말자는 목표를 정했습니다.
언덕은 이를 악물고 달리고, 내리막은 무릎이 부서져라고
스피드를 올리기로 했습니다.
장대비가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지만 발이 부르터도
한바퀴면 끝이니까 겁낼 것이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마의 언덕에서는 저절로 허리가 굽어지고 가쁜 숨을
몰아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골인 지점을 1km쯤 남겼을까?
배번을 달지 않은 한 남자가 맞은 편에서 달려오면서
힘들어 하는 저를 보고 `화이팅'을 외치고 지나갔습니다.
흰 탱크탑을 입고 헬스클럽용 반바지를 입은 유인촌씨였습니다.
제가 한때 그 사람 연극을 많이 본 팬이었는데......
몸이 많이 불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뛰어야 할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뒤를 한번 돌아보니 뛰는 모습은 가벼워 보였습니다.
(오늘 아침 신문에 그의 기사가 났더군요.
2개월전부터 남산과 한강을 달린다고......)
결국 마지막은 35분 43초에 돌았고, 그래서 최종 기록은
4시간 5분 37초로 나왔습니다.
제 능력대로 나온 기록이지요.
만족했습니다.
옷을 갈아입고 즉석 기록증을 받아든 뒤 김 고문님, 전 대장님과
막걸리 한잔씩 마시며 서로 격려했습니다.
제가 얼마전 게시판에 혹시 같이 가실 분 안계시냐고 글을
올린 것을 보고 제 꼬임에 빠져셔 참가하신 분들입니다.
그렇지만 혼자 달리지 않고 한마동 셋이 함께 달리니 얼마나 좋습니까?
게다가 참가비도 싸고, 또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서울마라톤 클럽의 먹거리와 자봉은 정말 환상입니다.
소위 달림이 세계에서는 최고로 손꼽힙니다.
이날도 급식대 앞에만 서면 무얼 마시고 먹을지
고르느라고 시간을 `허비'(?)할 정도였습니다.
마치 어린애가 과자가게 앞에서 무엇을 고를지
망설이는 것과 똑같았습니다.
그리고 3km 반환점에 있던 3명의 아줌마 자봉들은
아마 목이 쉬었을 겁니다.
10m쯤 앞에서부터 유니폼의 글씨를 보고 `한마동 이광복
홧팅!!!'을 목이 터져라고 외치는데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였습니다.
제가 반환점을 돌아 한참을 갈 때까지 계속 외쳐줍니다.
이거 정말 `대단해요~~~'입니다.
마지막 바퀴를 돌면서 특별히 감사의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남산을 내려오는 길에 비는 그쳐 있었습니다.
우리 셋은 서로의 얼굴에서 또하나의 성취감을 확인하면서
다음다음주 토요일 밤 양수리에서 출발하는
북한강 100km 울트라 마라톤대회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한마동 홧팅!!!
역시 울트라맨 답게 거침없이 그 어려운 언덕을 가볍게 달리면서 "한마동"의 명성을 비가 내리는 남산골에 울려 퍼지게 함을!!!! 우리 다 함께 박수를ㅉㅉㅉ 너무 즐거운 달림이 날을 만나게 해주심 감사 합니다.힘은들었지만 성취감에 도취된 나의 자신감은 바로 울트라로갈수있는 원동력이 되였습니다.기록 4:14:44
첫댓글 매번 선배님의 글을 대하며 느끼는 막연한 두려움이 동감할수 있는 수준으로 갈수 있도록 노력해보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대단해요~~~"...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부럽네요...저도 언젠가는 그렇게 뛸 날이 있겠지요!
상상하기 어렵지만 장문의 글을 읽어 보니 약간은 머리속에서 그려집니다. 선배님, 고생하셨습니다.
거리에 대한 두려움으로 신청을 못했는데 후기를 보니 후회가 됩니다. 얼른 얼른 실력을 키워서 동참하도록 하겠읍니다. 완주 축하드립니다.
폭우 뚫고 우중주, 남산 풀코스 완주! 또하나의 기록을 남기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이광복선배님, 토달이 폭파되었는데... 몇 분들이 다시 살렸거든요. 아래글(윤진규님)도 봐주세요오~~.
이광복 선배님의 글을 읽고 나면 힘이 쪽 빠짐니다.나는 언제 저렇게 뛰어보나 하고요... 반만 따라가도 좋을텐데^^이광복선배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이광복선배님 화이팅!!!
한마동의 대단한 빨간 옷의 세분 울트라 주자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비 오는 날의 우중주가 너무 환상적으로 마치 제가 달리는 것 처럼 느껴집니다. 그 성취감을 느껴보고 싶어 몸살이 납니다.
역시 울트라맨 답게 거침없이 그 어려운 언덕을 가볍게 달리면서 "한마동"의 명성을 비가 내리는 남산골에 울려 퍼지게 함을!!!! 우리 다 함께 박수를ㅉㅉㅉ 너무 즐거운 달림이 날을 만나게 해주심 감사 합니다.힘은들었지만 성취감에 도취된 나의 자신감은 바로 울트라로갈수있는 원동력이 되였습니다.기록 4:14:44
과연 울~~ 동호회의 자랑이십니다. 대단들 하셔요 남산의 우중주 또한 토달두 ^^요 참 저 유인촌씨 좋아하는데...... 이제 남산에 켐프를 쳐야겠군
또한번 해내셨군요. 세분 축하합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그 날 강마는 양재천 주로에 물이 넘쳐 대회 순연됨.....
한마동 폭풍속으로, 정말 멋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장대비속에서 한마동 기치 높이신 세분 정말 감사하고 수고하셨다는 말씀 올립니다. 휘리릭~~~~~
한마동 선배님께 우려려 존경하고 ,향상 배우려는 후배들에게 가르처 주신 선배님께 감사드립니다.더욱더 노력하여 선배님 못지 않는 후배가 되도록 열심히 해 보겠읍니다.그럼 이달말 북한강에서 뵙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