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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 태극기 집회에 다녀왔다.
경남 창원인 집에서 아침 7시 일어나 준비하고 8시 출발하여
출발 후 총 17시간 10분 후인 밤 12시 10분에서야 창원시청에 도착,
집에 오니 12시 반이 되었다. 비용은 갹출해서 2만 원씩 내었다.
아침은 떡을 받고, 점심은 김밥 한 줄,
저녁은 다행히도 비가 거의 안와 휴게소 바깥에서 더운 밥과 국물, 김치와 수육,
누가 사온 소주 한 잔을 곁들여 끼니를 때웠다.
시간 비용 들여 배 곯아가며 갔다온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까지 해도해도 너무했고,
최순실이라는 악재에 지금까지 비판을 가했던 박 대통령을 피해자로 느끼게 한
고영태 테이프로 이 무리들의 작당, 언론의 천편일률적 보도,
검찰의 이상스러울 정도의 편향된 플레이 때문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의아스러울 뿐이었다.
촛불은 어느 정도 실체를 나름 알고 있었다.
나도 박통이 미웠으니까. 내가 찍어준 대통령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멍텅구리 대통령이었다고
떠드는데도 내 자신이 아니라고 말 할 근거가 없었다.
이상하게 어떻게 저렇게 꼬였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 의심하기 시작했다.
정말 텅빈 대통령일 수도 있다고. 한편으로는 꺼림칙한 면도 있었다.
내가 아는 사람이 대통령 보좌관을 지냈고,
아는 국회의원도 박 대통령의 카리스마나 힘이 있다는 것에 대해 누누히 들어왔건만,
다 허구인가? 너무 허탈한 2~3개월이었다.
아닐 수도 있다.
그 주위 보좌하는 사람들의 눈에 콩깎지가 끼이지 않고선 지금까지 그렇게 따랐을까?
그렇게 간절히 바라는, 아닐 것이라는 마음은 있었지만 언론, 검찰, 야당, 촛불은
너무나 강하게 밀어붙여 달리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가 계기가 마련이 되었다.
1980년대 학생운동을 한 친구로부터 소스가 생긴 것이다.
왕을 죽여보지 않고선 올바른 민주주의는 없다. 박통은 왕이다.
이번이 대한민국이 쇄신을 할 마지막 기회다.
프랑스를 보라! 단두대에 왕의 목이 날아가고, 수많은 국민들이 몰살하고 등….
기억도 안나는 프랑스 혁명이 나오니 훌륭한 청중 역할밖엔 할 게 없었다.
그래도 80년대 데모 세대에서는
가장 엘리트로서 지성인으로서 손꼽을 무리가 학생운동권이었다.
철학을 논하고, 막시즘을 얘기하고, 주체사상을 얘기할 정도로 이념 공부를 하지 않으면
똑똑한 축에 들지도 않았다.
평범한 생활로 데모 한 번 딱 해보고 졸업한 나로서는 그 친구의 주장이 대단한 그 이상이었다.
이제 환갑의 나이에서야 확인하기 시작하였다.
프랑스 혁명? 과연 현세의 사람들이 잘된 혁명이라 하는가?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자료를 찾다 보니, 가장 잘못된 혁명이라는 결론이 내렸다.
광장정치와 선동정치가 결국 내가 그 주인공이 되지 않고선 인정을 하지않는
끊임없는 투쟁과 피를 흘리게 하는 혁명 방식이 프랑스 혁명이다.
문재인이 탄핵이 기각되면 혁명밖에 없다고 하지 않았나?
내 친구도 혁명밖에 없다고 하였다. 너무나 닮았다. 둘 다 진보, 운동권 사람이다.
여기에 뭔가 공통점이 있었다. 빈부의 격차가 많다고 아우성대지만 이 두 사람은
매우 잘 사는 사람들이다. 하루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 마음을 전혀 알지 못하면서
입으로 빈부격차를 논하는 사람들이다. 노동자 계급을 책으로, 이론적으로 배운 사람들이다.
그 후 학생운동을 한 사람들의 분포를 알게 되었다.
50대의 사람들 중 운동권이면서 엘리트들이 사회 각층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세대가 지금 대한민국에 형성되어 있다. 이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많은 좌파에 대한 정보들이 극우 집단의 음해로만 알았는데,
내가 스스로 인정하기까지는 이렇게 수개월이 필요했다.
왜 언론사들이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우익인사들 중 자극적으로 직격탄을 날리는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과
합리적이고 이해가 너무나 쉽게 얘기하시는 홍성걸 교수를 무척 좋아했던 나는
방송개편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못 듣게 되자, 여기까지 좌파의 힘이 뻗쳤나 생각이 들었다.
이석기에 대한 얘기를 다시 확인하게 되자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100명이 넘는 주사파 점조직 멤버들이 민낯을 드러내고 회의를 했다 한다.
정권 전복을 위해 주요 시설을 파괴하고 접수하는 얘기들을 말이다.
그들의 판단은 이제 남한 정권을 혁명으로 접수할 시기가 다가왔다 판단했을 거라 한다.
점조직이 생명인데, 민낮으로 서로를 밝힐 정도로 남한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는 것이었다.
좌파로부터 전향한 두 분(이동호, 김철홍)의 얘기도 듣게 되었다.
학생운동의 리더들의 얘기 속에서 주사파와 PD, NR이 무었인지 개념이 잡혔다.
지금 사회 각 층에서 중요한 위치에서 활동하는 그들의 동지들이 있지만,
이 두 분은 전향해 버렸다.
아! 대한민국. 일제 36년간 암흑의 세계에서 자유를 맛본 이 한반도는
남북한 통일인가 남한만의 국가를 세우겠는가 이 논쟁이 계속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존경하는 김구 선생과 좌파 집단들은
남북통일, 비록 우리가 이룬 것은 아니지만,
한민족 한국가라는 구호로 신탁통지를 반대하였고,
이승만을 비롯한 우파들은
민족 통일보다 반공산주의인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워야 하기에
남한만이라도 독립국가로 가기 위해서 친탁을 주장하며 대한민국을 세웠다.
작금의 사태는
친탁/반탁 속의 이념싸움과 어느정도 일맥 상통하는 것도 있다고 생각이 든다.
좌빨이라면 손사래치는 진보 측이 아닌가.
좋게 보면 한민족 민족통일을 우선시하는 집단이라 볼 수가 있다.
우파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 같은 인민민주주의는 아니고
자유민주주의가 더 나은 세상을 열 것으로 믿고 주창한 집단이다.
지금에 와서는 답이 나왔다.
자유민주주의가 인민민주주의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북한과 남한을 비교해보는 것이 객관적인 답이다.
결국 좌파들의 주장 중 좋게 보면 하나의 민족은 한나라로 통일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러자면 사회주의가 답이라고 귀결되는 것이다. 지금도 그 구호를 쓰는 것이다.
흔히들 그럼 북으로 가라 하면 갈 사람은 없다 한다.
자유민주공화국을 부정하는,
태어나서는 안되는 대한민국이 무슨 말인지
이런 식으로 공부하다가 알게 되자,
정치인, 언론인, 전교조, 민노총, 촛불 등은
모두가 내 취향에는 맞지 않는 그런 집단으로 보였다.
이것은 아니다란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해서 나는 무지한 침묵은 결코 나를 후회하게 만드는 것이고,
현장에서 행동하는 밀알이 되더라도 행동하는 보수, 공부하는 보수,
주장할 수 있는 보수가 되겠다고 태극기 집회에 가기로 하였던 것이다.
이게 바로 태극기 집회이다. 이게 도를 넘었다고?
그럼 지금까지 좌파, 진보성향의 작태는 도를 지키며 했다는 것인가 묻고 싶다.
해도 해도 너무 하니, 구국을 위해서라도 태극기를 들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행히도 이구동성으로 차 안에서는 침묵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얘기한다.
소통이 따로 필요가 없다. 다 한 마음이었다.
침묵의 보수가 움직였기에, 겸허한 마음으로 보수를 다시 결집해 주기를 바라면서
한 몸 태극기를 드는데 앞장선 것이다.
먼저 지금까지 태극기 집회를 다녀온 분들에게 마음 깊이 존경을 표하고 싶다.
좌파나 진보는 숫자적으로는 더도 덜도 그 자체이다.
이제 침묵의 보수가 드디어 움직였다.
이번 선동정치, 광장정치에 한때 마음을 떠났다가,
하나하나 그 허위가 벗겨지면서 보수가 보수답게 다시 돌아왔다.
공부 많이 하고 돌아왔다. 다 최순실 덕분이고 고마울 뿐이다.
나쁜 짓은 벌을 받아야겠지만,
보수 결집에는 공로상을 받아야 할 것이다.
정치하는 분들에게 고하노니,
구국의 명을 받들고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나서지 않으면
정치생명 보장되기 힘들 것이라는 것을 얘기하고 싶다.
보수적 국민들이
이제는 침묵을 하지 않고
행동하는 보수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을 몸으로 느끼시기 바란다.
국민 우롱하지 말고 진솔하게,
겸허한 자세로 행동하라.
왜냐고? 국민이 깨어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