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사경을 통해 붓끝에서 삼매에 들다
Flushing Town Hall Exhibition : Samadhi + Art = Sagyeong (10.12 – 12.30. 2012)
홍유경
<취재기자>
“한국사경연구회 회장, 외길 김경호 선생과 회원들 24명의 작품 50여 점이 10월 12일부터 12월 30일까지 뉴욕 플러싱 타운홀 갤러리에서 초대전을 갖고 있다. 플러싱 타운홀은 1862년 건립되어 올해로 준공 150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종합문화공간으로 플러싱 타운홀에서는 특별기획으로 심혈을 기울여 3개월에 걸쳐, 1700년의 역사를 지닌 고려사경의 전통을 잇고 작가들의 예술혼을 담은 한국사경을 전시하기 위해 세심한 준비를 해왔다. 특히 10월 12일 오프닝에 있었던 리셉션에서는 뉴욕시의 각계각층 인사들, 불교계 스님들과 불자들 그리고 뉴욕 시민이 자리를 함께해 이 드물고 귀한 전시를 감상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초가을의 쌀쌀함이 옷자락을 여미게 하는 금요일 가을 저녁, 몇몇 지인들과 플러싱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볍고 들떠있었다. 다름 아닌, 한국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불교 경전의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사경 전시 오프닝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전에 LA의 Getty Center에서 금속 활자 이전의 성경 사경을 보고 종교와 상관없이 느꼈던 경외심과 개인적으로 반했던 그 소박한 아름다움, 그리고 무엇 보다 작가들의 순박하고 우직한 노력과 신앙심에 감화되어 받았던 감동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이번 한국사경의 대가인 외길 김경호 선생과 그의 제자들의 불경 사경과 변상도를 많이 만날 수 있는 이번 전시에 기대하는 바가 남달랐다.
아름답고 역사적인 건물인 플러싱 타운홀을 들어가 갤러리에 들어서니 한복을 곱게 입으신 한국사경연구회 작가님들이 이번 전시의 팜플릿을 나누어주고 계시다. 전날 도착하셔서, 피곤하실듯해도 환한 미소로 눈인사를 해주신다. 뉴욕 한국문화재단의 소속 작가님들 또한 방명록에 사인을 권하시며 반갑게 전시장에서 반겨주었다.
이번 행사가 플러싱 타운홀과 한국사경연구회의 공동 주최에 한국문화재단,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일보와 다수의 뉴욕시 산하 문화단체들의 후원으로 이루어졌다고 들었다. 플러싱 타운홀이 이번 가을, 한국문화전시 특별기간을 기획하고 준비한 이번 전시에 많은 스태프들과 이사회가 오랜 시간을 공을 들였다고 한다. 특히 출품된 작품을 위해, 총 21억 상당의 보험을 들었다고 하니 이번 전시를 위해 얼마나 세심하게 배려를 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전시장은 꽤 널찍한 편이었고 그 공간을 한국사경 작품들이 가득 채워 전시되어있는 광경은 먼저 뿌듯함을 느끼게 했다. 하나하나의 사경 작품을 시간을 들여 감상하면서 작품마다 깃든 조금씩 다른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된다. 글자가 주는 아름다움은 그 뜻을 떠나서도 한자씩 쓰는 이의 숨결을 느끼기에 충분했고, 그 정갈하고 반듯함이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보고 겸손함을 갖게 다. 반야심경, 부모은중경, 만다라, 관세음보살도, 연꽃, 화엄경 보현행원품 변상도, 신장상 등 한국사경 연구회 작가 한 분 한 분이 많은 정성과 시간을 바쳐 연습했을 땀방울과 그 수행을 통해, 몸과 마음이 하나로 모이는 순간, 비로소 붓을 들어 내면의 진리를 한획에 담아냈을 그 감동이 마치 나에게도 전달되어 오는 것 같이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검은 먹, 붉은 먹 그리고 금니, 은니의 불교 경전이 쏟아내는 깊은 뜻은, 비록 내용을 모르는 나와 같은 불교 초심자에게도 수행을 향한 열망만은 마음속 한가득 갖게 하여 버린다. 그렇게 조용히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낯익은 대관음사의 보살님을 비롯하여 뉴욕의 많은 불자님을 다시 만났고, 반가운 해안정사의 연경 스님, 원적사의 회주 원명 스님, 묘적 스님, 그리고 원불교의 양상덕 미주동부 교구장과 교무님들도 뵙고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출품작들은 전통 불경 사경뿐만 아니라 한글, 영어 등 다양한 언어로도 쓰인 것도 있고, 여러 종교를 아우르는 창의적 시도의 현대 사경도 한 점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재료 면에서 보면, 종이의 색에 따라 흰색의 백지, 감색의 감지, 붉은색의 자지, 누런색의 황지 그리고 검은 흑지 등의 다양한 배경 색에, 비단, 면 등의 직물도 사용되었다. 또 서사 재료에 따라 금니(金泥)사경, 은니(銀泥)사경, 주묵(朱墨)사경, 묵서(墨書)사경, 석채 채색을 한 만다라 등을 고루 볼 수 있다. 전시장 초입에 마련된 사경 재료 디스플레이를 통해, 서예나 사경을 전혀 모르는 미국인들도 쉽게 사경의 기본적인 이해는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또 전시장 안쪽에 대형 화면으로 김경호 선생의 사경 작업을 클로즈업으로 촬영한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머리카락같이 가는 선으로 메워져 가는, 불과 1밀리미터도 안되는 공간 속에 피어나는 금색 선들의 향연에 이를 보는 이들은 숨조차 죽여가며, 마치 자신들이 사경을 하듯 경외 어린 눈으로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보고 있었다.
전시장 안으로 더 들어가면, 외길 김경호 선생의 작품들이 중앙에 전시되어 있다. 그 중 가장 최근에 완성했다고 알려진 '묘법연화경 견보탑품'은 장장 8개월에 걸쳐 완성하였다고 한다. 짙은 감지에 아교를 발라 말려 준비한 뒤 매번 금가루를 아교수에 세 번 이상 정제하고,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사경 작업을 한 이 작품은, 그 길이가 5미터에 이른다. 약 7센티미터의7층 탑을 450개 그리면서, 그 안의 탑 몸체 안의 각층 단마다 법화경의 경문 한 글자씩을 써넣은 작품이다. 그 외에도 정밀함과 화면 구성의 완벽함을 보여주는 ‘화엄경 보현행원품 변상도’에서는 순한 우리의 얼굴을 한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이 있어 그 정교함 속에서도 살아 숨 쉬는 따뜻함을 담고 있다. 앞과 뒤로 태극기의 문양을 넣은 ‘약찬계’, ‘아미타경’, 그리고 불경, 성경, 코란 그리고 만다라의 조화를 통해 소통하고자 한 ‘A Conversation I’ 등도 감지에 금니와 은니를 이용한 사경이다. 아무리 보아도 신기하고, 그 매력에 눈을 뗄 수가 없다. 붉은 종이 위에 석채를 사용한 천부경도 한 점도 강렬하면서도 조형적으로 완벽하고 다양한 색감에 매료되는 인상을 주었다. 전시실을 한번 다 둘러 볼 때 즈음, 공식 리셉션이 곧 있다고 공지했다.
7시에 시작한 약 30분간의 공식 리셉션에서는 뉴욕시와 연방정부의 정치인들, 문화계 관계자들이 참석했는데, 타운홀의 엘렌 코다덱 이사가 사회를 보았으며 순서에 따라, 플러싱 타운홀 대표이사 마이클 마이어가 축사를 통해 ‘오늘과 같은 다민족 행사를 통해 플러싱 타운홀이 지역 사회의 보물이 된다.’고 하고, 뉴욕시 감사원장 존 리우는 축사와 함께 김경호 선생에게 감사장을 전달했다. 뉴욕주 여성 상원의원인 토비 앤 스타비스키는 ‘타운홀의 역사는 법원에서 감옥으로, 그러다가 지금과 같은 문화 공간이 되었다’고 소개하면서 김 선생에게 인증서(Certificate of Recognition)를 수여했다. 뒤이어 미셸 미아오가 마이클 블룸버그의 감사 편지를 대독했다. 또한, 뉴욕 시의원 피터 구가 상장(Commendation)을, 연방 하원의원 후보로 이번 대선에 도전하는 민주당의 그레이스 맹을 대신해서 보좌관인 조앤 최가 감사패를, 상대방인 공화당 의원 후보 댄 할로랜을 대신해 보좌관인 댄 조가 참석해 표창장을 각각 전달했다. 또 한국문화원의 이우성 원장 그리고 김지영 뉴욕한국문화재단 이사장이 각각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에서 온 한국사경연구회 회원들과 김경호 회장에게 감사의 말과 전시를 하기까지 애쓴 타운홀 관계자들에게도 노고를 치하했다. 이어진 김경호 선생이 답사를 통해 “타운홀의 여러 스태프들과 한국문화재단을 비롯하여 많은 후원 단체에 감사하다”고 했고, 함께 한국에서 온 23명의 작가를 소개하며 단체 사진을 찍었다. 행사를 마무리하며 전날이 김경호 선생의 생일이었다고 소개하자 모두가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이어진 사경 강연과 시연이 타운홀 2층의 극장에서 이어졌다. 약 한 시간 동안 계속된 강연과 시연은 약 300명이 늦은 시간임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참석해, 이번 전시를 통해 많은 사람이 감동하고 관심을 두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강연은 고려사경의 역사적 발달 과정과 인쇄술에 미친 세계사적 의의 그리고 선생의 한국사경 작업 과정을 순서대로 슬라이드 사진을 보면서 자세하게 설명하였는데, 김경호 선생이 강의하면 곧이어 김지영 한국문화재단 이사장이 영어로 통역해서 한인 불자뿐만 아니라, 사경에 관심이 있는 많은 이들이 차근차근하고 깊이 있는 설명을 듣고 이해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시연하는 동안은 초대형 스크린을 통해 김 선생이 사경 시연을 위해 일부러 남겨 놓은 사방 약 1센티미터 안의 선을 채우는 장면을 클로우즈 업으로 보여주었는데, 그가 집중하는 동안 그리고 약 10 여분의 작업 시간 동안 극장 안에는 모든 청중이 숨소리조차 내지 않으며 집중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원래 작업 공간은 섭씨 약 35도 이상의 습도 90% 이상이 되어야 하는데, 극장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짧게 시연을 마치면서 김 선생은 ‘사경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붓을 놓을 때 놓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작업 공간에서도 붓끝의 아교가 마르는 데 약 3초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마음을 집중하고 사경을 할 수 있는 신체의 최상의 상태를 기다리는 것이 중요 하다고 했다. 이어진 문답 시간에 만약 중간에 실수로 선을 잘못 그으면 어떻게 고치는가를 물었고, 선생은 ‘사경을 함에 실수는 있을 수 없다.’고 답했다.
12월 30일까지 계속되는 이 특별한 전시에 많은 불자가 참여해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예술인 사경에 대해 자세히 배우고, 그 예술적 아름다움을 볼 뿐만 아니라 불심을 깊게 하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