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강민숙
낭만적 사상가에게 외
-이안실 앞에서 4
남도의 땅 백산 고을에
지주의 아들이 무슨 자랑일까
서당 훈장 앞에 무릎 꿇고
소학 대학을 줄줄 외운다 하여
누가 나라를 찾아 준단 말인가
쇄국의 이름으로 빗장 걸고
우물 밖 세상 고개도
내밀지 못하던 그 시절에
현해탄 건너간 젊은 학도여
조국에 독립을 위해서라면
고려공산당이면 어떻고
사회혁명당이면 또 어떠랴
13년 옥고쯤 헛웃음으로 날려버리던
그 형극의 길, 얼마나 외로웠을까
독립이 아닌, 독립
해방이 아닌, 해방 앞에
분단의 철책 몇 번씩 오가며
이젠 이념을 버려야 할 때라고
뜨겁게 외치던 그 외침을
다시 기억 하며
두 무릎 꿇고 불러본다
그리운 그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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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호랑이
-이안실 앞에서 5
몰랐었다
소꼽 시절 허물어진 만석보 둑에 앉아
흙덩이 파 헤집으며
뛰놀던 그곳이 동학 농민들의 외침이
무너져 내린 곳이라는 것을
동학의 ‘동’자만 꺼내어도
삼족을 멸하겠다고 눈 부라리는
완장 찬 관리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가 사는 나라는 어디에 있는지
강과 산을 빼앗기고
성과 이름까지 빼앗기고
일본인으로 이름을 바꿔 달고
숨만 쉬라는 건가
이념의 노리개가 되어버린 조국 강토여
말해다오
혁명의 불씨는 무엇이고
제국은 무엇이며
공산은 무엇인지
왜 지운 선생이
하늘도 보지 않겠다고
창문도 없이
웅크리고 앉아 백두산 호랑이처럼
표호하다 떠나갔는지
말해다오
이념의 감기로 쿨럭거리는 강산이여
강민숙
전북 부안 출생으로 1992년 《문학과 의식》으로 등단했다. 시집 『노을 속에 당신을 묻고』, 『그대 바다에 섬으로 떠서』, 『꽃은 바람을 탓하지 않는다』, 『둥지는 없다』, 『채석강이 있다』 등이 있으며 현재 ‘아이클라문예창작원’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