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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조선사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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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게시판 한자발음을 못해서 영어 알파벳을 배우고, 한자수도 줄여쓰는 중국인들
fitfear 추천 1 조회 684 20.10.04 16:03 댓글 9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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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0.10.04 18:41

    첫댓글 대동운부군옥과 조선왕조실록에도 명확히 홍무정운은 우리가 만든 것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해석하기를 홍무정운역훈을 잘못쓴거라고 합니다. 자기는 똑똑해서 그런 실수 안 하는데, 우리 선조는 멍청해서 그런 실수를 했다 이리 됩니다. 참으로 황당한 일입니다. 또한 신숙주가 요동에 가서 음운에 대해 문답했다는 귀양와 있었다는 명학자는 그당시 존재하지도 않는 학자였다고 후세에 밝혀졌지요. 홍무정운 동국정운 모두 우리의 위대한 선조들의 뛰어난 음운서였음을 이제는 명확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 20.10.04 19:03

    조선이 잃어버린 역사는 고려의 실지에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듭니다. 고금운회거요 자체도 대송의 음운체계를 바탕으로 번역하였든 참조하였든 만든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조선이 고려를 이은 것이 분명하다면 당음이니 송나라 집운이니 정회니 하는 것들을 인정해서는 안되는 거 아닌가요? 홍무정운을 조선이 만든 것이라 한들 어디에도 신라나 고려의 정통을 이었다는 내용이 없습니다.명청과 더불어 신라와 고려의 고리를 아예 끊어버린 것이 조선이었지 않나요? 아마도 백두산 주변에 뿌리는 같았을지라도 군웅할거 하던 세력들이 동진하면서 무주공산과도 같은 중원에 깃발을 꽂으면서 야합을 한게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그 결정적인 원인은 원과 고려와의 관계로 인해 그들이 받은 유형 무형의 피해의식 때문이 아니었을까도 생각됩니다. 원의 몰락과 고려가 함께 망한 것이 대륙 역사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 놓은 계기가 되지 않았나 하는 겁니다.15세기 들어 조선과 명이 대륙에 등장하면서 어정쩡한 상태로 남아버린 동북 삼성과 반도에 대한 문제가 그 증거라 봅니다.

  • 20.10.04 19:44

    현 만주와 반도 열도의 문제는 참으로 풀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정수일 선생님의 북방초원로 교류고증에 의해 실마리가 잡혔으며, 열도에서 나온 고구려의 천상열차분야지도와 전방후원분과 같은 유적 등의 사실들이 반도와 열도는 동일세력(고구려, 발해)에 의해 통치되었엄을 추론하였으며, 다시 영국인 신부의 기록에 따라 이 반도가 청의 강역으로 넘어갔음을 알아낼수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현 천진인 조선의 원산에서 대동강을 따라 그어진 선을 기준으로 그 이북과 반도 열도가 발해의 강역이었기에 발해는 일본과 통교할수 있었음을, 그리고 말갈이 현 산동부근의 삼척을 침범할수 있었음을 알아낼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이후 나오는 서지적 증거들을 통해 보완되어야 하겠지만, 따라서 청의 북양함대란 현 발해만에 있었던 청나라의 군대였음을 또한 알아낼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또한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여순항 공격이란, 다름아닌 포트아서에 대한 공격을 후세사가들이 여순항공격으로 교열했음을 또한 확신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 20.10.04 19:13

    송계 선생의 추리대로 대륙을 세로로 2분해서 명청과 조선이 분할 거점했다면 현 동북삼성과 반도에 대한 조선이든 청이든 명확한 점유 관계가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당시의 산업 체계로 볼 때 별다른 물산이나 생산 거점이 없는,대륙에 비하면 계륵과 같은 땅에 조선이 역량을 집중할리도 없었고 어찌어찌하여 청이 현 북경 주변의 땅을 얻어 걸렸더라도 주력과 이원화된 상태에서 관리도 안되던 땅이 1875년 일본이 줏어 담으면서 용처를 찾은 셈이 아닌가 합니다.일제가 혼자 역사 왜곡을 한게 아니라 이미 씌어진 각본을 구체화 한 것,이것이 대륙 조선의 말살로 귀결된 것이 아닌가 의심됩니다.고조선부터 삼국과 고려와 조선을 이 좁은 땅덩어리에 밀어넣어도 당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없을 정도로 준비가 다 되었던게 아닌가요?

  • 20.10.04 19:25

    명확한 서지적인 증거와 근거를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이 대륙에 있었다는 사실도 우리가 그간 연구하지 않아서 그렇지 너무나 많은 서지적 증거가 넘치고 있습니다. 하나씩 밝혀지는 구체적인 자료로 얼마든지 고증이 가능한 부분이 많다고 보여집니다. 강역을 확정해 지명이동을 밝혀내면 사서에서 말한 지명에 대한 정밀고증이 가능해지고 이를 통해 정밀한 나라의 여러가지 사실들을 알아낼수가 있을 것입니다. 수당의 대운하의 위치까지도 말입니다. 즉 이러한 강역이 도외시된채 역사의 계통을 말한들 누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계승할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정약용은 강역고를 저술한 것이고 단재선생은 조선상고사를 통해 그 강역을 논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만큼 역사에서 절대적인 것이라 생각합니다.이게 안되니 진한당 모두 우리 역사라거나, 당이 신라라거나 하는 오류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월남이 있고 그 위에 월이 있고, 다시 그 위에 오가 있고, 좌측에 촉이 있는것이 강역상 명확한데, 이는 다시 여러가지 부수적인 역사적 사건으로 고증해 내면, 고대역사부터의 오류를 잡아내는데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런지요. 역사는 강역을 밝혀가는 여정이라고도 합니다. 당이 서쪽으로

  • 20.10.04 19:31

    고구려를 공격했다는 기록은 현 카자흐지역까지 세력을 넓힌 고구려를 상정할수가 있을것이지만, 그전에 당나라가 현 감숙성에 위치하고 그 북쪽 신강북쪽에 고구려가 존재함이 실증되야 이 기록의 진위를 알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25년간 대륙조선에 대해 왈가왈부가 많았지만, 강역이 정확히 고증되지 않으니 아직도 설왕설래에 혼란을 겪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우리가 앞으로 강단과 싸우고 국민에 대한 계몽의 단계로 나아가려면 합리적 설득이 가능한 강역부분부터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 상해가 일본의 나가사키라고 스티븐 스필버그가 말하고, 다시 구한말 영국의 학자가 기록하고 있으니. 역사상의 상해는 반드시 다른곳에 있었을 것이고. 그 상해를 밝히면 조선과 당송명청의 경계가 나타나겠지요. 이러한 것을 통해 하나씩 접근하고 싸워나가야 비로소 대륙조선에 대한 일반적 이해의 문을 열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몇자 적어 올렸습니다. 생각이 다를수 있음을 혜량하시어 양해를 바랍니다.

  • 20.10.07 22:41

    반절음에 우리식 반절음이 있고 당나라의 반절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반절음은 한문의 두개의 자를 이어서 문자의 음을 만든 것입니다. 따라서
    지역마다 한자 음이 틀려지면 문자의 음도 틀려지게 되는 것이지
    반절표시가 같다고 음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닙니다. 위 분은 자료는 많이
    나열하여 그럴듯해 보이지만 반절음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로 연구를
    하는 분 같습니다. 동국정운은 음가를 훈민정음으로 표현하여 한자 음을 표현하였기에
    한자의 음을 틀리게 발음할 수 없고 후세에 와전될 가능성도 없기에 훌륭하다
    하는 것입니다. 또한 홍무정운은 현 서지상으로는 분명 우리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다만 서문등이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항상 있기 때문에 확정할 수 없을 뿐입니다.

  • 20.10.07 22:55

    홍무정운 역훈에 보면 훈민정음에 정식으로 쓰이지 않는 설두음등의
    표시가 따로 되어 있고 이를 이용하여 문자의 음가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설두음등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생소하고 이를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홍무정운 역훈외에 동국정운을 편찬한 것입니다. 이를 유추하면
    홍무정운의 원래 음은 우리가 쓰지 않는 설두음등을 썼으므로 우리가 편찬한 것이
    아니라는 유추해석을 해 볼 수는 있습니다. 서지는 와전될 수 있으나 발음등은 지역과
    풍토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에 홍무정운 역훈에 남아 있는 설두음등의 발음기호의 존재는
    홍무정운이 우리 것이 될 수 없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 20.10.08 11:15

    좋은 분석이십니다.하지만 홍무정운이 우리것이 아닐진대 조선왕조실록이나 대동운부군옥과 같은 서지가 거짓말한것이 되어야 합니나. 동국이란 이마우스의 동쪽 전체를 말하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당시 어떠한 연유에서 조선에서 설두음까지 표기를 했는지를 고찰하고 분석할 일이지 우리에게 없다고 우리 선조가 거짓말 했다라는 논리로 귀결되는 분석은 온당치 못하다는 소견입니다. 가령 태종이 8음도를 정비했다는 기록이 우리사서에 명확히 존재하는데 명나라에서 만들었다는 식으로 조작 교열된 상황과 맥이 통하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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