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미가 외다리로 서 있는 이유
임병식
우리 집 거실 벽에는 초등학교 3학년 손녀가 그려 놓고 간 두루미 한 마리가 붙어 있다.
액자에 넣은 것은 아니다. 3년 전 세상을 떠난 아내의 사진 아래에 살짝 붙여 두었다. 하늘을 나는 두루미처럼 아내도 그곳에서 편히 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나는 그 그림을 자주 바라본다. 손녀는 날개를 활짝 펼친 두루미가 한쪽 다리를 짚고 다른 다리를 내리려는 순간을 그려 놓았다. 언뜻 보면 외다리로 서 있는 모습이다. 실물을 보고 그린 것도 아닐 텐데 순간의 동작을 포착한 눈썰미가 제법 놀랍다.
지금은 시골에서도 보기 어렵지만 내가 어릴 적에는 두루미를 흔히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황새라고도 불렀다. 모내기가 끝난 논에는 몇 마리씩 어슬렁거리며 먹이를 찾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무렵 논에는 우렁이와 미꾸라지가 많아 먹이도 넉넉했다.
먹이 활동을 마친 두루미는 논둑에 서서 쉬곤 했다. 그때마다 한쪽 다리를 접고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 마음에는 그것이 늘 궁금했다. 두 발로 서 있어도 될 텐데 왜 굳이 한 발만 내리고 있을까. 균형 잡기도 쉽지 않을 텐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훗날 두루미가 외다리로 서 있는 이유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차가운 물속에 오래 있으면 체온이 빠져나가기 쉬워 한쪽 다리를 몸 안으로 접어 열 손실을 줄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나는 그 모습에서 다른 의미를 보게 되었다.
물론 두루미가 외다리로 서 있는 것은 생존을 위한 본능일 뿐이다. 그러나 사람은 그 모습에서 삶을 읽는다.
사람도 살아가며 무엇인가 하나쯤은 접어 두고 산다. 욕심을 접고, 말을 접고, 때로는 서두름을 접는다. 그래야 정말 지켜야 할 것을 잃지 않는다.
두루미는 한쪽 다리를 접어 체온을 지킨다. 사람은 욕심 하나를 접어 삶의 온기를 지킨다.
손녀가 그려 놓은 두루미는 오늘도 아내의 사진 아래에서 한쪽 다리로 서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무엇을 더 가지려 애쓰기보다 무엇을 접어 두어야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는지를.
(2026)
첫댓글 글을 쓰는 것도 유사한 맥락에서 살펴봐야 한다 싶습니다 하고싶은 이야기를 남김없이 쏟아내지 않고 행간에 은은한 향기를 묻어두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전에는 두루미를 예사로 보았는데 외다리로 서 있는 것은 생리적으로 과도한 형액순환을 줄이는 이외,
'여차'하면 대응을 위한 준비자세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울러서 두루미가 다리를 접듯 욕심도 접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무언가를 더 채우고 가지려는 현대인들에게, 오히려 욕심과 말, 서두름을 '접어둠'으로써
인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와 온기를 지킬 수 있다는 메시지는 깊은 여운과 성찰을 안겨줍니다.
어린 손녀의 예리한 눈썰미를 기특해하는 할아버지의 자애로운 시선과, 삶의 무게를 묵묵히 다스려온
연륜이 담긴 문장들이 읽는 이의 마음을 맑고 차분하게 만들어 주는 聽石님의 秀作입니다.
두루미가 메시지를 주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