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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8월10일(월)맑음
아침 먹고 지월거사와 큰 절 도량 거닐다.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미국인 토마스Thomas와 멜로디Melodie, 사반나Savanna를 만나 이야기 나누다. 영어를 가르치는 청년들인데 불교문화를 알고 싶어 법주사 템플스테이를 선택했단다. 점심 때 서울서 내려온 彌賢미현보살과 般若手반야수보살을 지월거사가 안내하여 공양을 마치고 선원객실에 기다리게 했다. 미현불자는 불교계 출판 일을 하는 보살로, 교계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을 소상히 알고 있다. 카페에 올렸던 칼라무드라에 대해 담소를 나누다. 교계 현실에 대한 비평과 대안을 이야기하다. 만남이 파하여 그들은 복천암으로, 나는 선방으로. 지월거사 대중공양금을 보시하다.
2015년8월11일(화)흐림
점심 먹고 지월거사와 석문까지 포행하다. 지월거사가 지은 시를 내가 칠언절구로 고쳐주다. 거사는 객실 청소해놓고 서울로 돌아가다.
落照淨刹休鐸聲, 낙조정찰휴택성
霞雲遲遲掛山頭; 하운지지괘산두
梵鐘盡時僧日了, 범종진시승일료
徒然客心平穩住. 도연객심평온주
산사에 낙조 내리니 목탁소리 끊겼고
놀빛구름 느릿느릿 산머리에 걸렸네,
범종소리 다함에 하루 일과 끝내니
하릴없는 나그네 마음 평온이 깃드네.
정안보살님이 부산 삼세한방병원(051-583-5400)에 입원했다는 소식 듣고 위문전화하다. 울산의 청신보살께 연락하여 위문가보라 하다.
2015년8월12일(수)맑음
새벽에 文雅문아보살에게서 문자가 왔다. 호주 Canberra캔버라 시에서 열리는 광복절 기념행사에 한국전통문화사절단의 일원으로 참가하게 되었단다. 문아에게 덕담이 깃든 시를 써서 보내다.
鳳凰圖南溟, 봉황도남명 봉황이 남쪽 나라로 날아감은
傳信故鄕情; 전신고향정 고향의 정이 담긴 소식 전하기 위함이라,
文雅一滴心, 문아일적심 문아의 마음 한 방울 감로수로
願消飢渴衆. 원소기갈중 수많은 갈증과 배고픔 씻어주소서.
우려내는 찻잔마다 마음 心자를 써서 대접하고,
얼굴에는 화할 和자를 쓰며, 움직임은 흐를 流를 쓰세요.
새벽 큰 절 도량을 거닐며 기도를 하는데 동남쪽 하늘에 붉은 기운이 피어난다. 하늘에 한 줄기 서광이 비쳐 수정봉 정상까지 이어진다. 상스러운 조짐.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고 믿는 대로 경험하리라. 오늘 오후에 일광스님이 수술을 받는다. 스님을 위해서 수술 쾌유를 기도했는데 상서가 나타난 것을 보니 결과가 좋으리라 확신한다. 스님들이 오늘은 말복이라면서 여유를 갖기 원한다. 입승스님이 대중의 의중을 읽고 오후에 울력할 것을 공포하다. 밤에 雪蓮華설연화보살에게 전화해보니 일광스님의 수술이 잘 되어 회복중이라 한다.
2015년8월13일(목)맑음
새벽꿈을 꾸다. 발목이 잠길만하게 흐르는 맑은 개울에 한 소녀가 뛰어다닌다. 개울 바닥은 황갈색 암반이다. 소녀는 처음에는 이마에 오돌토돌한 돌기가 돋아나있고, 병색이 완연하며 시무룩해 보였다. 그러다가 발목을 개울물에 담그고 서있는 나를 보더니 반기면서 물에 들어와 뛰어다닌다. 곧 얼굴이 환해지고 명랑해진다. 이윽고 개울을 건네주는 판자로 된 다리위에 서서 물을 바라본다. 그런데 소녀 곁에 같은 또래의 다른 소녀 한 사람도 서있다. 그 장면의 오른 쪽 위에서 하얀 면사포를 쓴 중년 부인이 두 소녀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들의 어머니인지 보호자인지. 이 꿈을 어떻게 해석할까?
일광스님 쾌유를 호념하다. 정안보살님, 換骨奪胎환골탈태, 福慧具足복혜구족을 염하다.
2015년8월14일(금)맑음
별일 없다. 오후에 풀 뽑는 울력하고 쉬다.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나가 아니다,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念염하라. 최상의 적실한 가르침이다. 선에서 말하는 一塵不立일진불립, 纖毫不容섬호불용이다. 한 티끌도 세우지 아니하고, 털끝만한 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皮膚脫落盡피부탈락진 有唯一眞實유유일진실이다. 몸이라는 게 모두 벗어져 떨어져 나가니 오직 진실만 드러났네! 이뿐이다. 속 창자까지 꺼내서 깨끗이 씻어버리는 것, 털끝 하나도 나의 것으로 가지지 않는 것. 만물을 있는 그대로 그 자리에 두고 바라보는 것. 오늘 이것으로 족하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2015년8월15일(토)맑음
오늘 정진이 좋다. 정진을 할 의지를 내면 들뜸이다. 그냥 순수한 정진, 다만 할뿐. 사랑하는 임께 아낌없이 바람 없이 기꺼이 다 바치는 마음으로 한다.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안하려고 해도 안 된다. 다만 할 뿐이다. 숨이 저절로 쉬어지듯, 때가 되면 때에 맞는 일을 듯, 앉아야할 때 앉고, 서야할 때 서고, 가야할 때 가고, 와야 할 때 오고, 다만 이럴 뿐. 별 다른 일이 아니다.
울산에서 청신보살이 부산에서 요양 중인 정안보살을 위문하러 가다. 두 사람이 만나 웃는 얼굴을 사진 찍어 카톡으로 보내왔다. 정안보살은 많이 회복된 듯. 두 사람은 서로 마음이 통하는 도반임을 느꼈을 것이다.
칠불사 운상선원에 정진 중인 道香도향스님과 통화했다. 인도 보드가야에서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가 언제인가? 우리 둘 다 티베트불교에 심취해서 그는 중국 사천성 成都성도로 티베트 말 배우러 떠나고, 나는 10만 배 오체투지를 하던 중 티베트 까규파와 연결이 되어 미국 뉴욕시 Woodstock우드스탁에 있는 Kagyu까규파 본산 KTD센터에서 3년 결사에 들어갔다가 이제야 소식을 통한다. 그는 티베트어를 배워서 인도 남부 Gelug겔룩파 사원에서 中觀중관학을 공부하였다. 헤어졌다 만나고, 만났다 헤어짐은 다반사이나, 해탈도로 향하는 정진의 열의는 오롯하여라.
2015년8월16일(일)흐림
선덕스님께서 오후 자유정진 너무 많이 한다고 지적하다. 해제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여 정진하자는 뜻이다. 점심시간에 선원장과 입승이 땡볕 아래서 풀 뽑는 울력을 한다. 대중 울력을 하지 않는 대신 소임자가 개인적으로 노동함으로써 대중에게 모범을 보인다.
숲속에 매미소리가 가득히 울린다. 참매미, 애매미, 말매미, 털매미, 저녁매미, 쓰르라미, 여러 종류의 매미가 합창을 한다. 가는 여름이 아쉬운 듯, 곧 떠날 사람처럼 운다. 夏蟬하선이 어찌 春秋춘추를 알랴 는 말이 있다. 매미는 여름 한 철만 살기에 봄과 가을이 있다는 것을 어찌 알겠느냐 는 말이다. 인간도 마찬가지. 縛地凡夫박지범부가 어찌 三生삼생을 알리오. 땅에 붙어사는 인간이 어찌 전생과 현생, 내생이 있음을 알리오. 인간도 여름매미이다. 지금 잘 나가는 사람아, 당신은 전생에 지은 복을 현생에 탈탈 털어 다 까먹고 있나니, 내생을 대비하는 준비가 전혀 없구나. 삶은 불확실하지만 죽음 가장 확실하다. 무엇으로 죽음을 맞을 것인가?
2015년8월17일(월)맑음
삭발일이다. 입승과 등산하다. 9am 출발, 세심정, 비로산장, 석문, 관음암, 점심 11:30am,신선대, 문수봉, 문장대, 하산, 큰절 귀가, 4:30pm. 총7시간30분 소요.
비로산장에서 돌계단을 오르고 오르면 큰 바위가 한 가운데로 쩍 갈라진 틈(이른 洗心門세심문이라 한다)을 통과하면 관음암이 나온다. 암자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바위가 慶業臺경업대이다. 임경업장군이 獨步독보대사에게 무술을 배웠던 곳이라 전해온다. 관음암 마당 귀퉁이에 세워진 부도의 비문을 읽어보니 仙巖선암대사라는 분이 독립운동 하다가 이곳에 숨어들어 평생을 수도하면서 지냈다고 써져있다. 신선대 휴게소에서 당귀차 한 잔 얻어 마시고 잠시 앉았다가 문수봉을 지나는데 소나기를 만났으나 괘의치 않고 계속 걸었다. 입승은 뒤쳐져 오는데 나는 재빨리 내달려 문장대에 올랐다가 하산 길에 들어 냉천골 휴게소에서 잠시 쉬다. 신발을 벗어 발가락에 바람을 쐬며 벌렁 누워 푸른 하늘을 우러러 보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여기 있구나! 감탄이 절로 나온다. 시 한 수 떠오르다.
一飛獨步踏群峯, 일비독보답군봉
一目瞭然平天下; 일목요연평천하
通石門外登神仙, 통석문외등신선
霽風光裏還禪社. 제풍광리환선사
한 걸음에 날아서
서너 봉우리를 답파하고
한 눈으로 천하를 보아
밝게 평정하였다,
석문지나 뒤로 돌아 신선대 오르고
비개인 풍광 속
큰절로 돌아오네.
입승이 뒤따라와 합류하고 세심정 출발지점까지 터덜터덜 걸어오다. 큰 절에 돌아와 씻고 저녁 먹다. 방문을 닫고 누웠는데 난데없는 빗소리에 얼른 문 열고 앉으니, 반가운 임 오시는 듯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 정답고. 비안개에 젖은 앞산을 그윽이 바라보니. 넉넉하고 아늑하다. 이만하면 됐지, 더 무얼 바라랴. 천하를 다 가진 넉넉한 마음이다. 홀연히 들려오는 범종소리 비에 젖지 아니하고 마음에 와 닿는다. 천하가 비에 젖어도 빗소리는 젖지 않네. 감사한 일이라. 여기 욕계에 살짝 걸쳐 살지만 욕에 젖지 않는 한 사람 있네.
2015년8월18일(화)맑음
새벽엔 선선한 바람이 분다. 가을기운이다. 문득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나왔던 안톤 슈낙(Anton Schnach, 1892~1973)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수필이 한 대목 생각난다. ‘정원의 한 편 구석에서 발견된 小鳥소조의 시체위에 初秋초추의 陽光양광에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런데 검색을 해보니까 1982년 교과서 개편할 때 빠졌다고 한다. 그리고 안톤 슈낙이 나치에 협력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니 비루한 그 인생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 글과 삶이 일치하는 문학을 해야지. 나도 그러해야한다. 글과 스님 생활이 일치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몽땅 거짓말, 사기이다.
오전 정진에 희열, 경안이 충만하였다. 사대가 조화로워 심신이 날아갈 듯하다. 이대로 몇 시간동안 앉았으면 좋으련만 총지선원 규칙은 50분 좌선에 10분 포행으로 죽비소리에 맞춰 앉고 일어나야 한다. 삼매에 드는 경우에 대한 배려가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간화선 수행은 삼매에 드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편이다. 화두에 몰입하여 일상을 살아가는 것을 一相일상삼매, 一行일행삼매라 하면서 부처님이 가르친 四禪八定사선팔정사을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뭔가 석연찮다. 붓다의 가르침과 선사의 가르침사이에는 연속과 불연속, 오해와 사견이 얽혀있다.
2015년8월19일(수)맑음
아침 먹고 보보스님과 석문까지 포행가다. 불교가 바닥을 쳐야 다시 살아날 가망이라도 있지, 이대로는 안 된다고 공감하다. 普保보보스님(53세, 승납14, 해인사가 본사이고, 지리산 영원암 大日스님 앞으로 출가함)은 작년 겨울 <禪선>이란 잡지에 실린 나의 글<최전방에서 초발심을 되새긴다.>를 읽고 느낀 바가 있다. 점심 먹고 난 후 선원장과 입승이 도량의 풀을 제거하는 작업을 한다. 대중울력을 하면 그걸 빌미로 자유정진을 요구하니까 소임자들이 개인적으로 노동을 한다. 나도 가래와 갈퀴를 들고 그들을 도와 일을 했다. 삽과 가래로 땅을 긁는 소리가 울려나는 데도 누구 하나 방에서 나와 ‘어이구, 구참스님들께서 왠 일로 수고를 하십니까, 저도 동참하겠습니다.’라는 놈이 하나 없다. 개인주의,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지만 개인주의이다. 굳이 안 해도 될 일을 제가 자청해서 하니 뭐 내가 나설 일 있겠느냐는 것이다. 모두 제 좋을 대로 사는 것이다. 뭔가 석연찮다. 우리가 함께 모여 도를 닦으며 살아가는 공동체라면 서로 위해주고, 서로 도우는 의리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모두 개인주의로 살면서 제 필요한 것만 싹 빼먹고 달아나면 ‘먹튀’가 아닌가? 요즘 수행자들은 먹튀다. 3개월 잘 얻어먹고 해제하면 튄다. 콩 튀듯이 튀어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리고 또 다른 선방에 모였다가 얻어먹고 튄다. 먹튀의 연속이 수좌의 일생이다. 그러니 남을 위한다든지, 배려한다든지, 의리를 지킨다든지, 동고동락한다는 정신은 찾아볼 수 없다. 한마디로 各自圖生각자도생, 콩가루 집안이다.
저녁에 진주에는 수요명상시간이다. 결석하는 학생이 많다. 수피아에게 전화하니, 병원에서 링거 맞는 중이란다. 공부 게을리 한다고 잔소리 좀 할라했는데 아프다니까 위문인사만 했다. ‘진흙 밭에서 피어난 연꽃처럼 청정하게 건강하게’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현정보살도 아팠다고 한다. 여름이 아프게 했구나. 여름도 아팠겠지.
첫댓글 스님~~감사 드립니다~()()()
스님. 정진 중인데도 저희들을 챙겨주시니 감사합니다.()()()
입승의 뜻이 아들이 없는 왕이 왕족중의 한사람을 아들로 삼는것이라 되어있던데 그 의미는 아닌것 같고 좀 궁금합니다
잘못 읽어신 듯. 내용중에 그런 것 없는데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08.22 12:53
수행일기 잘 보았습니다. 시간을 낼 수 없는 재가의 삶입니다. 국민휴가기간 중에 2박3일 집중수행에 참여 하였습니다. 가평설악에 위치한 한국명상원 수행처 입니다. 콘테이너 수련원에서 2박 3일 행복 했습니다. 좌선과 경행을 반복하며 때 되면 밥먹는 수행처, 이 보다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재가의 삶은 힘겹습니다. 짊어진 짐이 너무 무겁습니다. 2박3일의 짧은 기간 동안 이었지만 출가의 삶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였습니다. 수행일기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 잘 나가는 사람아, 당신은 전생에 지은 복을 현생에 탈탈 털어 다 까먹고 있나니, 내생을 대비하는 준비가 전혀 없구나. (8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