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와 입소문으로 어느새 서울에선 그럴싸한 입지를 구축한 희망식당은 전국구 진출을 시도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밥의 연대’기 때문에 전국구 진출도 순조롭다. 사람 사는 곳은 모두 똑같기 때문이다. 서울이든 청주든 어느 도시에서든 이 시대는 비정규직과 정리해고자를 양산해내고, 그들은 힘겹게 투쟁하고 있으며 그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선량한 시민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먹고살아야 한다. ‘먹고살다’는 한 단어다. 띄어 쓰지 않는다. 먹는 일과 사는 일이 서로 다르지 않은 일임을 보여주는 말이겠다. 가족이나 가장 가까운 이들을 ‘식구(食口)’라고 말한다. ‘같이 밥을 먹는 입’이란 뜻이다. 결국 사는 일은 곧 먹는 일이다. 2008년 촛불시위에 김밥과 생수를 나르던 네티즌들과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에 밥을 퍼 나르는 밥셔틀, 희망식당까지. 먹을 것을 함께 나누는 일이 여느 연대보다도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준 것은 그래서다. 밥을 나눠 먹는 연대. 그것은 곧 ‘식구’가 되는 연대다.
‘식구’가 돼가는 사람들
청주는 생각보다 멀었다.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 터미널에서 다시 택시를 타고 20여 분. 서울에서 아침나절에 출발했지만 희망식당 3호점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점심시간도 지날 무렵이었다. 한 여름 땡볕을 뚫은 장거리 이동에 땀은 비 오듯 했고, 벌써부터 지친 몸은 이곳이 ‘지방’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거리가 멀어지는 만큼 연대의 범위도 넓어지는 일이겠다. 그만큼 취재의 어려움은 배가되겠지만.
들어선 희망식당의 분위기가 서울과는 사뭇 다르다. SNS를 통해 희망식당을 찾은 시민들이 많았던 서울의 1, 2호점과는 달리 3호점은 호스트 김태종 목사의 지인들이 주로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다. 한창 바빴던 점심시간이 막 끝나고 막걸리 병을 쌓아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은 김태종 목사와 ‘도덕경 세미나’를 함께 하는 지인들이라고 한다.
막걸리 사발을 하나 들고 슬그머니 끼어들어 얘기를 들었다. 청주의 평범한 시민이라는 그들은 희망식당 3호점의 ‘대박’과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연대를 확장하기 위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희망식당 손님들을 대상으로 염가 미용 봉사(갑작스런 미용 봉사 이야기에 어리둥절했더니 그 분은 시내에서 미용실을 운영하신다고 했다)를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희망식당을 찾지 않겠냐는 이야기도, 희망식당 CMS 후원 이야기도 나왔다. 이 아이디어의 실현 가능성 여부나 그 효과의 문제는 젖혀두고 ‘운동권’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이 연대의 물꼬를 고민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결국 이들의 아이디어는 함께 돈을 모아서 로또를 사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당첨이 되면 모두 희망식당을 통해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투쟁기금으로 기부할 것이면서.)
희망식당엔 <참세상>말고도 또 다른 언론사가 들어와 있었다. KBS 청주총국이다. 얼마 전 파업을 마치고 현장으로 복귀한 KBS PD들은 “파업을 통해 노동현장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는 계기를 맞았다”고 말한다. “그동안 몰라서 혹은 관심을 두지 않아서 외면했던 곳에 더 많은 시선을 둘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란 말도 덧붙인다. 파업을 겪으며 해고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는 KBS PD들도 희망식당의 김 가루 밥을 먹었다. 이들도 ‘식구’가 된 것이다.
주말 오후임에도 청주의 거리는 북적거리지 않는다. 어느 골목 어느 거리에도 사람이 넘쳐나는 서울과 다르다. SNS의 위력도 그다지 크지 않다. 지방의 중소도시에서 만들어지는 네트워크는 이렇게 ‘알음알음’이 기본이다. 희망식당에서, 세미나에서 만난 이들은 서로를 알아가며 그렇게 연대를 구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그들도 ‘식구’가 되어갈 것이다.
‘식구’를 늘려가는 사람들
오픈 첫 날의 호스트를 맡은 김태종 목사는 충북지역의 민중단체,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를 총망라하는 14개 단체가 참여한 ‘비정규직 없는 충북 만들기’의 공동대표다. ‘비정규직 없는 충북 만들기’는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생활임금 공대위’, ‘청주시립노인전문병원 사태해결 공대위’, ‘학교비정규직 공동투쟁위원회’ 등을 통해 공동대응을 해 오던 단위들이 분산되고 부분적인 투쟁이 아니라 각 영역의 역량과 투쟁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만들어진 충북지역의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위한 네트워크다.
김태종 목사는 “학교 비정규직이나 시립노인전문 병원들의 투쟁을 지나면서 충북지역의 노동운동이나 사회적 연대는 다른 지역들에 비교해도 활발한 편”이라고 자평했다. 희망식당의 첫 지방 지점이 충북지역에 열리게 된 까닭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희망식당 3호점의 김풍년 셰프는 유성기업의 해고노동자다. 김풍년 셰프가 첫 날 내놓은 메뉴는 ‘김 가루 밥’이다. 지난 해 비닐하우스 농성 당시 주로 먹던 음식이다. “메뉴라고 해봤자 별거 없어요. 밥에 김 가루 뿌리고 고추장 얹어서 비벼 먹는 건데요. 하우스 농성 때 매일같이 먹던 밥이죠. 하지만 이게 우리한테는 의미 있는 음식이에요. 그 때를 떠올리게 해주는 밥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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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자전 반죽에 열중하는 김풍년 셰프 |
그 김 가루 밥만으로 메뉴를 구성할 순 없기에 제육볶음이며 쌈 채소며 여러 반찬들이 곁들여졌지만 그래도 희망식당 3호점 첫 메뉴는 ‘김 가루 밥’이다. 김 가루 밥을 먹는 동안 희망식당은 다시 비닐하우스가 된다. 계절이, 사람이 그 때와 같아서는 아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맛없고 볼품없는 밥을 맛있게 나눠 먹을 수 있게 하는 힘. 그것 때문이다. 아마 그것을 연대라거나 희망이라거나 하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
식당을 차리는데 드는 돈은 생각보다 많다. 먼저 공간을 확보해야한다. 재료비를 들여야 하고 인건비도 만만치 않다. 뿐인가. 공공요금 인상에 따른 수도세, 전기세, 가스요금 등등. 그러나 희망식당은 이 모든 것을 함께 하는 힘으로 해결한다. 재료도 공간도 모두 후원이다. 희망식당 3호점이 차려진 청주 탁주막의 사장님은 기꺼이 일요일 하루 가게를 내어줬다. 가게 임대료도 받지 않겠다고 하셨단다. (가스, 수도, 전기 요금까지 식당을 하루 운영하면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다. 사장님은 괜찮다고 했다지만 희망식당은 할 수 있는 감사 표현의 비용을 반드시 지불할 것이라고 했다.) 재료도 후원으로 충당됐다. 돼지고기며 감자가 주변 지인들과 가족들의 후원으로 모아졌다. 서빙이며 주방을 맡은 인력들도 김태종 목사의 지인들과 충북지역 활동가들, 학생들로 구성됐다. 이 날 서빙을 맡은 정재현 학생은 충주에서부터 한 시간이 넘는 길을 왔다. 오직 희망식당에 한 손을 거들고 싶은 마음이었다.
“집에서 먹는 것 같은 밥을 내놓고 싶습니다”
이 날 희망식당 3호점은 준비한 재료가 모두 떨어져 예상보다 일찍 문을 닫아야 했다. 영업 개시 첫 날임을 감안하더라도 ‘대박’의 조짐이 보인다. 김풍년 셰프는 희망식당 3호점이 1, 2호점에 뒤지지 않는 대박을 위한 비장의 한 수가 있냐고 묻자 손사래를 치면서도 한 마디를 꺼내놓는다. “결국 가장 맛있는 것은 집 밥이잖아요. 특별히 대단한 요리 재주를 갖지 않았지만, 집에서 먹는 것 같은 밥을 내어놓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요” 집에서 먹는 것 같은 밥을 내놓는 식당. 그건 곧 함께 밥을 먹는 이들을 모두 ‘식구’로 삼을 수 있는 식당일 것이다.
덧붙임,
당분간 격주로 열리는 희망식당 3호점은 서울에서 ‘일부러’ 찾아갈 만큼 음식이 맛있다. 맛있는 음식이라면 두메산골 오지마을도 찾아다니는 식도락가도 있는데 서울서 한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 청주쯤이야. 다만 희망식당 3호점 약도에 그려져 있는 ‘청주방송’에 주의해야 한다. 청주에는 청주방송이 두 군데 있다. CJB 청주방송과 CBS 청주방송. 희망식당 3호점은 CBS 청주방송 바로 옆에 있다. 기자가 굳이 길을 헤매가며 얻은 소중한 정보이므로 이 기사를 읽는 독자들은 길을 잃거나 헤매는 불상사 없이 희망식당, ‘탁주막’을 쉬이 찾을 수 있길 바란다. (심지어 터미널에서 CBS 청주방송이 CJB 방송국보다 더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