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종우 야고보 신부님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에제키엘 2,8─3,4 마태오 18,1-5.10.12-14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초보자들
+ 찬미예수님
이탈리아에서 박사과정에 들어간 뒤, 처음으로 수동 운전을 했던 날을 기억합니다.
가성비와 실리를 중시하는 유럽은 한국과 달리 승용차조차 수동이 대부분이며
제가 새롭게 머물게 된 한인 신학원에는 운전 봉사자가 필요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1종 면허증을 땄기 때문에 이태리에서도 당연히 수동 면허증을 취득할 수 있었고,
그 때문에 선배 신부님들은 제가 하루 빨리 운전에 익숙해지길 원했습니다.
면허를 딴 이래 수동 운전을 해 본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저는 그래도 금방 적응해
운전을 잘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저의 운전 연습에 동승한 선배 역시 운전은 차를 몰고 나가면 금방 익숙해진다는 주의였고
그러므로 저희는 아무런 준비 없이 봉고차를 끌고 외곽의 도로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러한 생각이 커다란 착오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에 배운 운전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고 어느 타이밍에 클러치를 떼야 할지
속도를 줄일 때 어떻게 자연스럽게 기어를 바꿔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외곽에 커브길은 얼마나 많은지 속도를 줄일 때 마다 시동이 꺼졌고
다시 속도를 올릴 때는 엔진 소리로 차가 터져나갈 듯 했습니다.
그렇게 식은 땀을 흘리며 수십 번을 길에서 가다가 멈춰서다를 반복한 뒤,
한 참 후에야 가까스로 기숙사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이러한 경험을 하곤 합니다.
아무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무언가를 행하다가 실수를 거듭한 뒤,
생각보다 내가 미숙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하고 조금 더 겸손하지 못했음을
후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누구든지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린이와 어른의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겸손함에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자신의 미숙함을 알고 있으므로 언제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어른들에게 의지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빈칸을 채워나갈 수 있는
여백이 있고 배우고자 하는 열정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어려움에 부딪히게 되더라도 혼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에
고집을 부리다 결국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곤 합니다.
그들에게는 누군가가 개입할 여지가 없으며 배우고자 하는 열의도 부족합니다.
오늘의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 앞에서 취해야 할 우리의 올바른 태도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전능하고 지혜로우신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아이들과 같이
여백을 지닌 채 겸손해야 하며 하느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고자 하는 의지도 갖춰야 합니다.
만약 이러한 열정이 없이 하느님께 바라는 것을 청하기만 한다면
운전에 미숙한 초보자가 도로 위의 다른 운전자들이 나를 이해해줄 것이라 믿으며
자기 마음대로 운전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실제로 이러한 실수를 우리는 종종 범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느님 앞에서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하고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여깁니다.
그리하여 바라는 바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하느님을 원망하고,
왜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느냐며 한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코 하느님 앞에서 완전한 사람은 없고 그보다 지혜로운 사람도 없습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어린이와 같은 겸손함을 갖추는 것,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되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곱씹으며
그 와중에 일어나는 주님의 뜻과 위로가 무엇인지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 미사 중에 특별히 오늘 복음 환호송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우리의 스승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아멘.
서울대교구 방종우 야고보 신부님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
첫댓글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