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의 그래도] 세상 좇다 지친 삶, 예수의 길에서 진정한 웰빙 찾아야
이명희2026. 9. 30. 03:11
<29> 삶의 동력을 잃었을 때
게티이미지뱅크
몇 달 전 유명한 한 전직 언론인이 삶의 동력을 잃었다며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현장을 누비고 칼럼을 쓰며 분주하게 살았던 그를 무엇이 막다른 골목으로 몰았을까. 사회와 갑자기 단절될 때, 수십 년 다닌 회사를 퇴직할 때,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앞으로 돌진했던 삶이 ‘끼익’ 소리를 내며 급정거할 때, 의지했던 가족마저 남아있지 않게 될 때, 주변을 돌아보니 망망대해에 혼자라는 고독이 밀려올 때 삶에 대한 의지가 시들해지기도 한다. 회사나 조직을 위해 살았던 수십 년 삶이 허망하게 느껴질 때, 자식 교육을 위해 맹모삼천지교 못지않게 공을 들이다 자식이 품을 떠나가게 될 때, 평생을 의지했던 반려자나 자식을 잃었을 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나 막막해지기도 한다.
어디서 새로운 삶의 동력을 찾을까
대부분의 한국인은 일 중독으로 살아 왔기 때문에 막상 일을 내려놓게 되면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은퇴 후 3개월은 견딜 만하다고 한다. 꿀맛 같은 자유와 느긋한 잠을 즐기는 것은 잠시다. 매일 아침 잠을 깨우는 알람과 인파로 붐비는 출근길 지옥철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지난 삶을 부정하는 것 같은 나태하고 느긋한 새로운 삶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생산적인 일을 해야만, 돈벌이가 있어야만 살아있다고 활력을 느끼는 게 상당수 직장인일 터다.
제임스 미치너는 여든 넘은 나이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쓴 회고록 ‘세상은 나의 집(The World Is My Home: A Memoir, 1992)’에서 “인생은 꿈이 서서히 줄어들고 꿈을 서서히 포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삶에 대한 깊은 허무주의나 염세주의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는 비관이 아니라 인간 삶의 ‘자연스러운 수용과 성숙’을 뜻하는 대목이다.
청년기에는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말처럼 무한한 야망을 갖고 꿈에 도전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현실을 마주하면서 우리는 점차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미치너는 모든 꿈을 거창하게 이뤄내는 것만이 성공이 아니라 이루지 못할 꿈들을 하나씩 내려놓으며 비로소 나에게 남은 진짜 삶에 집중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했다. 미치너는 고아로 태어나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자랐고 40세가 넘어 뒤늦게 소설가로 데뷔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후 대기만성형 작가로 엄청난 성공과 부를 이뤘지만 나이가 들면서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 육체적 노화, 한계를 피할 수 없었다. 그는 무수한 집착과 야망을 비워내는 통찰을 통해 꿈을 포기한다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과도한 욕망에서 벗어나 삶과 화해하는 담담한 성숙임을 말하려 했다.
시들해진 인생도 의미 있다
젊었을 때의 생기나 활력, 패기가 사라지고 노화가 빨라지고 무료한 일상이 지속된다 할지라도, 그래도 인생은 충분히 소중하고 아름답다. 거창한 꿈을 이루지 못해도 그저 하루하루를 견뎌낸 삶, 화분에 말라가는 화초일지라도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즐거움을 찾고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불치병에 걸려 죽음을 기다리는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살고 싶어했던 오늘일 수 있다. 세상의 성공 기준을 좇느라 분주했던 멍에를 내려놓고 나무늘보처럼 게으르고 굼뜨게 사는 것도 소소한 행복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세상에 무가치한 일은 없다. 나만의 잣대로, 하나님 기준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인생을 진정으로 값지게 만드는 것이다.
세상 일에 뒷전으로 밀렸던 가족, 가까운 지인들과 맛난 음식을 즐기며 담소를 나누는 것, 눈부신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푸른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것 모두가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일이다. 인생에서 거창한 목표들이 하나씩 사그라드는 것은 슬픈 일만은 아니다. 그 빈자리에 소박한 일상과 진짜 나 자신이 들어설 공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리치 빌로다스 미국 뉴욕 뉴라이프펠로십교회 목사는 “잘 사는 것은 묵상, 세밀한 사고, 느긋한 대화, 긴 낮잠, 그리고 좋은 포도주에서 나온다”고 했다. 철학자 니콜라이 베르자예프는 “선한 삶을 사는 것은 따분하고 맥 빠지고 평범한 일일 때가 많다. 우리의 가장 큰 숙제는 이 삶이 맹렬히 불타오르게 하고 창조적이고 영적 싸움이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앨런 카스텔은 ‘나이듦의 이로움’에서 나이가 들면서 치열한 경쟁과 타인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지며 삶의 진짜 중요한 가치를 분별하는 지혜를 얻게 된다고 했다. 조급함이 줄어들고 감정적 조절 능력이 높아져 내면의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의 길을 따라 걷는 삶
따분하고 무료한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설렘으로 맞았던 달력의 숫자 하나하나가 산더미같이 쌓인 숙제처럼 지겹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서 빨리 죽음에 이르러 육체적·정신적 고통과 처절한 고독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잘 사는 것은 성취나 소유, 안락함에 있지 않다. 목회자들의 목회자로 불렸던 세계적인 영성 신학자 유진 피터슨은 ‘잘 산다는 것’(On Living Well)에서 “무기력하게 살도록 창조된 사람은 없다. 지루한 운명을 타고 난 사람은 없다”며 “하나님은 우리를 놀라운 피조물로 설계하시고 영원한 허기와 갈증을 주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예수는 비유와 본을 통해 삶의 중심이 되는 활력과 치열함과 참여와 헌신을 일깨우는 현실에 우리를 눈뜨게 한다”며 “그분을 따라가면 열정적이고 의미심장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잘 산다는 것’은 그가 교인들에게 20년 넘게 매주 전한 목회서신과 설교, 목회 현장에서 썼던 미출간 원고를 모아 엮은 책이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평소 그의 강연이나 인터뷰 등의 발언을 모은 ‘우물을 파는 사람’에서 자신이 세례를 받은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명예 달라면서 글을 썼더니 명예가 생기더라, 돈 벌려고 애쓰니까 되더라, 또 병 때문에 병원에 다니니까 나아지더라. 그런데 어느 날 너무도 외로워서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봐도, 내가 좋아하는 글을 봐도 마음은 채워지지 않고, ‘이 세상에 나 혼자구나’라고 느껴졌다. 절대고독을 느낄 때, 즉 영혼이 갈구할 때, 목마를 때 수돗물이든 1급수든 2급수든 보통 물로는 채울 수 없는 갈증을 느낄 때 어디로 가는가. 물론 그런 영혼의 아픔과 갈증이 교회에 간다고 다 해결되진 않는다. 하지만 식당에 가면 만날 맛있는 음식, 입에 맞는 음식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배가 고프면 식당에 갈 수밖에 없다.” 그는 또 “숨쉴 때마다 그 호흡 속에 그분은 계신다. 까닭 없이 눈물이 흐를 때 그분은 그곳에 계신다. 다만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이라며 위로를 건넨다.
성경 속 허무와 동력
성경에는 번아웃과 좌절을 겪는 인물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위대한 선지자나 영적 지도자라 할지라도 육체의 한계, 정신적 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언제든 무너지고 시들해질 수 있는 약한 존재임을 숨기지 않고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맞서 승리를 거둔 엘리야는 왕비 이세벨이 자신을 죽이겠다는 위협을 보내자 육체적·정신적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된 상태에서 두려움과 허탈감이 밀려왔다. 그는 광야로 도망쳐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 죽기를 청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왕상 19:4)
광야에서 백성을 이끌던 모세도 백성들이 고기를 달라고 울며 불평하자 과도한 중압감을 느끼며 좌절한 모습을 보인다. 모세는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민 11:11~15)라며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다.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적국 니느웨를 찾아 심판을 선포했다.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자 하나님이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않았다. 그러자 요나는 분노와 무력감에 빠졌다.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욘 4:3)라며 사역의 동력을 잃고 성읍 동쪽에 앉아 불평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의 좌절과 ‘죽여달라’는 절규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천사를 보내 먹이고 재우거나 세밀한 대화를 하고 새로운 동역자를 붙여주며 다시 일어설 동력을 회복시켜 주셨다.
이명희 논설위원·종교전문기자 mheel@kmib.co.kr
자료출처 : https://v.daum.net/v/20260930031113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