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열사를 찾아서/靑石 전성훈
2023 계묘년 첫 번째 인문학 기행지는 충청남도 천안天安이다. 봄이 오는 3월 중순에 떠나는 인문학 기행, 집을 나설 때 하늘을 쳐다보니 시커먼 먹구름이 가득하고 약간 쌀쌀하다. 버스에 올라 의자에 앉아서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천안은 초행길인 것 같다.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제법 다녀보았지만, 천안에서 볼일을 보거나 구경했던 기억이 안 난다. 천안을 떠올리면 막연히 천안삼거리와 호두과자가 생각날 뿐이다. 천안에 대하여 아는 게 거의 없는 백지라서 이번 인문학 기행에 호기심도 생기고 기대가 크다. 도봉문화원 자료를 보니, 천안 지역이 고대 삼한 시대에 마한의 맹주격인 목지국의 터전으로 추정되며, 천안이라는 지명이 우리 역사에 처음 등장한 시점은 고려 태조 왕건 때라고 한다.
오전 7시 도봉문화원을 정각에 출발한 관광버스는 시내를 거쳐 거의 한 시간을 달려 남산1호터널에 도착한다. 출근길과 겹쳐 길이 많이 막힌 탓이다. 경부고속도로에 들어선 자동차는 신나게 달리고 하늘도 개면서 찬란한 아침 햇빛이 쏟아진다. 봄은 틀림없이 오고 있는데 차창 밖에 보이는 강산의 모습은 아직도 겨울의 잔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9시경 망향휴게소에 들려서 잠시 쉰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 휴게소 앞뜰, 살짝 움츠러든 몸을 녹이려고 음식점에서 따끈한 어묵을 주문한다.
10시가 조금 못 되어 첫 번째 목적지인 ‘유관순 누나’가 아닌 ‘유관순 열사’ 사적지에 도착한다. 사적지는 기념관, 생가, 봉화대, 추모각, 초혼묘, 열사의 거리 등으로 조성되어 있다. 사적지 안내문을 읽어보니 천안 출신 애국선열을 알려준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전투의 김시민 장군, 암행어사 박문수, 유관순 열사, 일제 침략기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신 이동녕 선생, 정치인 조병옥 박사 등 이름이 보인다. 매년 3월 마지막 날에 봉화를 올려 만세 운동을 하던 그 날을 기념하고, 열사가 순국하신 9월 28일에는 추모제 행사를 거행하고 있다고 한다. 현지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기념관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기념관에는 유관순 열사의 활동상과 일생을 알려주는 영상, 그림, 책자 등 전시되어있다. 열사가 갇혔던 서대문형무소 여옥사女獄舍 8호 모형도 있고, 수인囚人의 모습을 한 관람객의 사진을 찍는 곳도 있다. 죄수복을 입고 용수를 쓰고 끌려가는 독립운동가의 빛바랜 사진도 보인다. 싸리나 대쪽으로 만든 용수는 수감된 독립운동가가 이동할 때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머리에 씌우는 갓으로, 수감자에게는 수치심과 공포를, 보는 이에게는 혐오감을 주기 위해서 사용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의 훈장증 모형도 있다. 기념관을 둘러보다가 뜻밖의 포스터 한 장을 발견하고 나 홀로 웃음 짓는다. 1960년대 시민회관에서 상영한 영화 ‘유관순’ 포스터이다. 유관순 열사역은 당대 최고의 인기 배우인 엄앵란이다. 시민회관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최소한 나와 비슷한 나이이거나 그 위 연배의 사람일 것 같다. 세종문화회관이 바로 그 옛날의 시민회관 자리이다.
열사烈士, 의사義士, 지사志士의 구분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여 찾아보니, 국가보훈처에서는 일제강점기 열사, 의사, 지사를 구분하지 않고 ‘독립유공자’로 통칭하지만, 학계에서는 의미를 구분하여 사용한다고 한다. 烈士는 나라를 위해 절의를 굳게 지키면서 의로운 죽음을 통해 굳은 의지를 내보인 사람들을 뜻하는 개념으로,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반대하며 자결한 민영환, 1907년 헤이그 밀사로 독립 의지를 표명하며 자결한 이준, 1910년 경술국치에 항거해 자결한 황현 열사 등이 있다. 義士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성패에 관계없이 목숨을 걸고 무력적인 행동으로 항거하며 죽은 사람을 뜻하며,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1932년 일왕에게 폭탄을 투척한 이봉창, 1932년 중국 훙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투척해 일본 제국의 주요 인사들을 사상자로 만든 윤봉길 의사 등, 志士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제 몸을 바쳐 일하려는 뜻을 품은 사람이란 뜻으로, 의사와 열사는 순국한 뒤 붙일 수 있는 칭호이지만 지사는 살아 있는 사람에게도 쓸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
유관순 열사를 추모하는 추모각에서 묵념을 드리고 나서, 등을 돌려서 앞산인 매봉산을 바라보니 하늘에는 흰 구름이 유유히 흐르고 바람도 잔잔하다. 잔잔한 바람에 휘날리는 태극기는 그지없이 평안한 모습이다. 이름 모르는 벌거벗은 나무의 높은 가지에는 홀로 고독을 즐기는 듯한 까치 한 마리가 미동도 없이 가느다란 가지에 앉아 있다. 추모각을 벗어나 찾아간 유관순 열사 생가터에는 국가보훈처에서 재현해 놓은 생가가 있다. 생가 입구에는 커다란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멋진 위용을 자랑하고 있고, 시간이 11시를 넘어가니 햇볕이 따사롭다. 유관순 열사를 비롯하여 많은 조선의 백성이 기미년 독립 만세를 부르던 아우내 장터, 아우내는 순수한 우리말로 아우러지다, 여러 개가 모인다는 의미로 두 물이 모여 흐른다는 뜻으로 한자로 표시하면 병천竝川이다. 점심은 이곳의 명물 병천 순대국밥을 맛본다. 사람마다 입맛이 제각각이듯이 병천순대국밥이나 여느 동네에서 먹는 순대국밥이나 그 맛이 그 맛처럼 느껴진다. 모름지기 음식이란 배가 고플 때 먹으면 맛있기 마련이다. 맛집을 찾아서 술래잡기하듯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라와 겨레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분들을 기리는 곳을 찾으면 늘 머리가 무겁고 가습이 답답하다. 그분들은 어떠한 꿈과 사명감으로 하나뿐인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릴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그분들처럼 그러한 열정도 사명감도 꿈도 가지지 못한, 무지렁이 같은 그저 그러한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다간 분들의 고귀한 희생에 잠시나마 고개를 숙이고 그분들의 명복을 빈다. (2023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