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오른쪽은 갈기산(685.4m), 매화산에서
날지 못하면, 뛰어라
뛰지 못하면, 걸어라
걷지 못하면, 기어라
무엇을 하던 간에 계속 전진해야 한다.
―――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1929~1968)
▶ 산행일시 : 2016년 2월 13일(토), 흐림, 안개, 비
▶ 산행인원 : 10명
▶ 산행시간 : 10시간
▶ 산행거리 : 도상 18.6km(1부 7.5km, 2부 11.1km)
▶ 교 통 편 : 두메 님 24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6 : 28 - 동서울터미널 출발
07 : 45 - 홍천군 북방면 상오안리 공골, 법흥사(경록사) 입구, 산행시작
08 : 35 - 570.7m봉, 헬기장
09 : 04 - 매화산(梅花山, △750.8m)
09 : 50 - 751.6m봉
10 : 28 - 공골재, ╋자 갈림길 안부
11 : 00 - 까끈봉(△641.5m)
11 : 54 - 376.3m봉
12 : 07 ~ 12 : 44 - 며느리고개(婦峙), 1부 산행종료, 점심
13 : 26 - 석장재, 능선마루 임도 합류
13 : 38 - 520m봉, 산불감시초소, 임도 종점
13 : 52 - △530.2m봉(영진지도에는 △531.3m), 벙커
15 : 07 - 498.9m봉
15 : 20 - 437.0m봉
16 : 06 - 임도, 안부
16 : 40 - 470.5m봉, 무인산불감시시스템
17 : 06 - 370m봉, ┣자 능선 분기봉, 오른쪽으로 감
17 : 45 - 홍천군 북방면 하오안리 여내골, 산행종료
18 : 02 ~ 19 : 43 - 홍천, 사우나, 저녁
21 : 00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매화산 정상에서
2. 멀리는 가리산
▶ 매화산(梅花山, △750.8m)
이번 주말에도 비가 온다고 여러 매스컴에서 며칠 전부터 예보해대서인지 여느 때와는 달리
동서울터미널에 등산객들이 확 줄었다. 우리 오지산행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관계하지 않고 간다. 여태 그래 왔다. 이게 내 아내에게는 불만이다. 나더러 천기(天氣)를 마
냥 거스르기만 하면 되겠느냐는 거다. 아내 기도발 믿고 간다.
이번에는 매화산 들머리를 상오안리 공골 마을로 잡았다(4년 전에는 시동리 점말 마을에서
올랐다). 법흥사와 도원사 방향 표지판이 엇갈려 있는 Y 갈림길에서 차에 내려 왼쪽 법흥사
쪽으로 간다. 임도 따라간다. 비는 아직 내리지 않지만 잔뜩 찌푸렸다. 대간거사 님이 그랬던
가? 오늘 오후 14시 17분에 비가 쏟아질 거라고 한다. 60mm 가량.
법흥사는 망했다. 넓고 너른 절터에 두 칸 기와집 한 채가 덩그러니 놓였고, 요사채 격으로
풀숲에 다 쓰러져가는 움막이 한 채 있다. 쓸쓸하다. 그래도 봄은 오나 보다. 개울 주변에 빗
물 머금은 버들강아지가 하얗게 피었다. 그런 법흥사 오른쪽 개울 건너 산자락에 달라붙는
다. 가파른 사면을 살금살금 트래버스 하여 능선 붙든다.
한 피치 애써 올랐더니 임도가 가로질러 가고 있다. 임도 절개지가 너무 높아 산모롱이로 돌
아가서 얕은 골짜기를 흩어져 기어오른다. 어제 내린 비로 낙엽이 축축하니 젖었다. 미끄럽
다. 수북한 낙엽을 쓸어가며 오른다. 가파름이 한결 수그러든 능선마루에 이르러 때 이르게
첫 휴식한다. 통상 1시간을 가다 쉬는데 오늘은 스틸영 님의 소개로 오지산행에 처음 나온
일타 님에 대한 배려(?)다.
비는 내리지 않고 그다지 풀숲 헤치지 않으니 굳이 스패츠를 맬 필요가 없다. 벗는다. 아예
겉옷도 벗어 반팔차림 한다. 맨 살갗에 차갑게 닿는 공기가 상쾌하다. 안개 속을 벗어난
570.7m봉은 헬기장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가경이 펼쳐진다. 운무의 예술을 본다. 망외의 선
물이다. 흔히 이런 날은 안개에 가려 원경 근경 따질 것 없이 막막하고 따라서 갑갑한 산행이
되기 일쑤인데(그러리라 예상했다) 오늘은 전혀 뜻밖이다.
나뭇가지 사이 연신 기웃거리며 가다 저 봉우리 오르면 더 나은 조망이 트일까 발걸음이 빨
라진다. 앞 사람의 느닷없는 환성에 합세한다. 벌목지대 위라서 멀리까지 조망이 트인다.
봉화산 그리고 대해 건너 공작산이 신세계로 보인다. 안개가 이제 그만 보시라 가리기에
발걸음을 옮긴다. 바위 섞인 가파른 오르막이 암릉으로 이어진다. 왼쪽 사면을 돌아 깊은
협곡을 건너서 능선을 갈아탄다.
나뭇가지가 수렴(繡簾)으로 드리운 봉화산을 다시 들여다보고 매화산 정상에 오른다. 헬기
장이다. 삼각점은 2등 삼각점이다. 21 재설, 1978.8 건설부. 예전에 있던 (춘천깨비산악회가
만든) 정상 표지판이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매화산 남봉인 751.6m봉을 매화산 정상으로 대
접하는지 모르겠다. 『강원도 땅이름』에 의하면 홍천 남면 시동리에는 ‘시동팔경’이 있는데
매화산의 설경이 그 하나이다.
『한국지명유래집』은『강원도 땅이름』을 인용하여 ‘시동팔경’으로 매화산의 설경 외에 금
물산의 가을 단물, 금계천의 고기잡이 횃불, 소리개뜰의 풍년 경치, 농부들의 논매는 소리 등
을 열거하고 있다.
3. 이슬 꽃
3-1. 버들강아지
4. 봉화산(670m), 매화산 오르는 도중에
5. 공작산(882m), 매화산 오르는 도중에
6. 멀리는 공작산 오른쪽 자락
7. 앞 오른쪽은 봉화산
8. 오른쪽은 봉화산, 왼쪽 멀리는 공작산
9. 봉화산
▶ 까끈봉(△741.5m)
헬기장인 매화산 정상은 나무숲 둘러 아무 조망이 없고 남쪽으로 약간 벗어난 아름드리 노송
이 줄 이은 바위지대가 경점이다. 갈기산(685.4m)이 우뚝하고 운무가 감싼 산 첩첩이 진경
이다. 갈기산 왼쪽으로는 낮은 산들이 올망졸망한데 반해 그 오른쪽은 대해다. 시동팔경(詩
洞八景)에 ‘매화산 운해’를 넣지 않은 것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일이다.
매화산에서 남봉(751.6m)으로 곧장 가지 않고 식생상태 조사차 대간거사 님과 스틸영 님,
일타 님과 함께 사면을 누벼 내린다. 나는 여기에서 데미지가 컸다. 그야말로 골로 갔다가
751.6m봉을 그 서릉 타고 올랐다. 골로 가는 길은 매우 험했다. 땅이 거죽만 녹았을 뿐 꽁꽁
얼어 있어 쭉쭉 미끄러지고 가파른 너덜 사면을 트래버스 하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대간거사 님은 그런 지능선을 몇 개 더 넘어 공골재 가까운 매화산 주릉을 향하여 가고, 나는
751.6m봉 서릉을 오른다. 숨차면 뒤돌아서서 운무의 유희를 구경한다. 매화산 주릉은 길 좋
다. 탄탄대로다. 줄달음한다. 607.3m봉을 대깍 넘어 일행과 합류하고 ╋자 갈림길 안부인 공
골재를 지난다. 까끈봉 품에 든다. 안개 속을 들락날락한다. 안개비 내린다.
이 산을 오르는 누구라도 ‘까끈봉’이란 이름의 유래를 대번에 알 것 같다. 까끈봉(깎은봉).
산봉우리가 깎아 세운 듯 높다랗게 솟아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그렇게 깎아지른 산을 두 피
치로 오른다. 한번 미끄러져 엎어지고 나면 힘이 몇 배나 더 든다. 땅바닥이 드러나게 갈잎
낙엽을 쓸어 가며 오른다. 눈 못 뜨게 비지땀 쏟는다.
까끈봉 정상. 삼각점은 홍천 442, 1988 재설. 정상 표지목을 부천메아리산악회에서 세웠다.
까끈봉 정상도 사방 나무숲이 둘러싸여 아무 조망이 없다. 며느리고개는 까끈봉에서 북서진
하여 간다. 지도 정치하지 않고 방심하다가는 정반대 방향인 새벽대기산(553.3m)을 넘어 유
목정리 쪽으로 가기 쉽다. 그쪽으로도 길이 아주 잘 났다.
쭉쭉 미끄러진다. 앞 사람이 미끄러진 자국을 십분 경계하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지
대를 피하려다가 미끄러진다. 너 나 할 것 없이 엉덩이마다 흙투성이다. 헬기장에서 잠시 주
춤했다 내리쏟고, 376.3m봉에서 멈칫했다 다시 온몸으로 한참동안 곡예를 부려 며느리고개
다. 도로 갓길 비켜 너른 공터에 점심자리 편다. (군대생활 내내 라면을 상식했다는) 대포 님
의 라면 끓이는 솜씨가 일품이고, 모닥불 님이 준비한 사골우거지국도 일미다.
11. 갈기산, 매화산에서
12. 갈기산, 매화산에서
13. 다도해, 매화산에서
14. 다도해, 매화산에서
15. 다도해, 까끈봉 가는 길에
16. 까끈봉 가는 길
17. 까끈봉 가는 길, 소나무 숲길 지나 굴참나무 숲길이다
18. 까끈봉 급사면
19. 까끈봉 오르는 길
▶ △580.2m봉, 벙커
2부 산행. 메아리 대장님은 감기가 너무 심하여 2부 산행을 포기한다. 며느리고개. 이런 이름
에는 전설이 있기 마련이다. 메느리고개, 부치(婦峙), 부현치라고도 한다. 옛날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나귀에 짐을 싣고 사돈집으로 가던 중 고갯마루 성황당에 이르렀을 때 짚신 꾸러미
가 보이지 않아 며느리를 기다리게 하고 시아버지가 찾으러 갔다. 돌아왔을 때는 며느리는
보이지 않고 나귀만 있었다. 시어버지는 끝내 며느리를 찾지 못하고 이 일이 있은 후부터 사
돈집 신행길에는 이 고개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며느리고개는 우리나라 임도가 처음 뚫린 곳이라고 커다란 안내석을 세웠다. 이 임도는 여내
골까지 이어진다. 이 임도는 산 굽이굽이 돌다가 석장재 근처에서 능선마루에 닿기에 거기까
지 임도 따라 걷기로 한다. 우리나라의 임도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니만큼 걸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대의를 고려해서다.
안개 속을 지난다. 임도 아래 크게 사태 난 골짜기를 들여다보고 임도 위 산릉의 안개 자욱한
풍경을 감상한다. 절개지 낙석지대는 멀찍이 피해 얼른 통과한다. 눈으로 △446.7m봉을 넘
는다. 석장재 가기 전 490m봉 밑 임도에서 두 팀으로 나눈다. 버들 님, 일타 님과 나는 주릉
따라 계속 가기로 하고 나머지는 490m봉 그 가파른 사면을 올라 북서진하여 455.7m봉에서
골로 내렸다가 △530.2m봉을 그 서릉 타고 오르기로 한다. 물론 식생상태 조사를 위해서다.
임도는 석장재를 넘어 왼쪽 골짜기로 향하고 우리는 주릉 쫓는다. 주릉 임도는 산불감시망루
가 있는 520m봉에서 끝난다. 길 좋다. 촉촉한 굴참나무 숲 오솔길이다. 나뭇가지 사이 원경
의 운무를 감상하며 느릿느릿 걷는다. 그러다가 한 피치 바짝 오른 △530.2m봉(영진지도에
는 △531.3m)에는 벙커시설이 있다. 여기에서 일행과 만나기로 했다.
우리라고 팔짱만 끼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주변을 예의 살핀다. 적어도 △530.2m봉 반경
200m 안쪽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빈손 빈눈이다. 아니 할 말로 천하의 잡산이 아닌가!
일행을 더 기다리기 무료하여(50분을 기다렸다) 먼저 출발한다. 봉봉을 넘고 넘는다. 인적이
점점 뜸해지고 팔뚝은 난자를 당한 듯 산초나무 가시에 긁혀 영 볼썽사납다.
422.3m봉에서 일행과 합류하여 임도에 내린다. 임도는 산골짝 가까운 산자락 돌고 돌아 여
내골로 가고, 우리는 직등한다. 스퍼트 낸다. 470.5m봉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너무 일찍 오
른쪽으로 방향 틀었다. 떼알바 한다. 우르르 쏟다보니 건너편 능선이 반공을 질러 나 있다.
저기다. 골이 워낙 깊어 트래버스도 못하겠다.
뒤돌아 오른다. 470.5m봉은 멀었었다. 470.5m봉 정상에는 철조망 둘러 친 무인산불감시시
스템과 높은 망루가 있다. 망루에 오르면 사방 조망이 훤할 것 같은데 감히 거기 오를 엄두를
내지 못하겠다. 아쉽다. 동쪽으로 방향 틀어 내린다. 급전직하. 수직사면이다. 그 중에도 왼
쪽 사면이 간벌하여 가리산 쪽으로 조망이 훤히 트인다.
370m봉에서 남진한다. 지도에 매끈한 능선이 실지에서도 그렇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갑
자기 쏴아 하고 내리는 모양으로 보아 소낙비일까? 시계 들여다보니 17시 20분이다. 황혼녘
산중 소낙비가 소리로도 빗물로도 시원하다. 얼굴 들어 맞는다. 이 오붓한 정취를 오래 느끼
려고 비옷 꺼내 입지 않고 그냥 비 맞으며 간다.
산자락 내려 개울 건너고 도로에 올라선다. 여내골이다. 길가 정자에 들어 비 피하며 두메 님
부른다. 알바 덕에(꼭 그만큼 하산시간이 늦어졌다) 봄비 맞는 호사를 누렸다. 힘찬 하이파
이브 나눈다.
20. 멀리 나뭇가지에 가린 산은 매화산
21. 며느리고개 고갯마루
22. 임도 지나며 바라본 주릉
23. 공작산
24. 공작산, 앞은 홍천 시내
25. 멀리 가운데는 가리산
26. 멀리는 가리산
27. 가운데가 구절산(?), 그 뒤 왼쪽은 연엽산(?), 또 그 뒤 왼쪽은 대룡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