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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다해 8월27일 성녀 모니카 기념일(화요일)
[수원] 타성에서 벗어나라. -
수원 교구 오산 성당 전삼용 요셉 신부
† 제1독서 : 1테살 2, 1 - 8
† 복음 : 마태 23, 23 - 26
모니카 성녀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어머니로,
332년 북아프리카 누미디아의 타가스테(오늘의 알제리의 수크아라스)
에서 태어났다. 신심 깊은 그녀는 남편을 개종시키고, 방탕한 아들
아우구스티노의 회개를 위하여 정성을 다하였다. 마니교에 깊이 빠져
있던 아우구스티노가 회개하고 세례를 받게 된 데에는 어머니 모니카의
남다른 기도와 노력이 있었다. 그녀는 아들이 회개의 길로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은 387년 로마 근처의 오스티아에서 선종하였다. 모니카
성녀는 그리스도교의 훌륭한 어머니의 모범으로서 많은 공경을 받고
있다.
★ 모니카 성녀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어머니로, 332년 북아프리카
누미디아의 타가스테(오늘의 알제리의 수크아라스)에서 태어났다. 신심
깊은 그녀는 남편을 개종시키고, 방탕한 아들 아우구스티노의 회개를
위하여 정성을 다하였다. 마니교에 깊이 빠져 있던 아우구스티노가
회개하고 세례를 받게 된 데에는 어머니 모니카의 남다른 기도와 노력이
있었다. 그녀는 아들이 회개의 길로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은 387년
로마 근처의 오스티아에서 선종하였다. 모니카 성녀는 그리스도교의
훌륭한 어머니의 모범으로서 많은 공경을 받고 있다.
★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두고 불행하다고
선언하신다. 그들은 율법의 외적이고 형식적인 부분에만 치중할 뿐,
율법 안에 담긴 더 중요한 가치들을 무시하기 때문이다(복음).
◈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참된 정결’이란 무엇인지 묵상하게 합니다.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작은 벌레들은 걸러 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자들이다.” 실제로 바리사이들은 물이나 음료수에 죽은
벌레가 빠져 부정하게 될까 염려하였고, 물이나 음료수를 정결하게
보존하려고 작은 벌레가 빠져도 죽기 전에 건져 냈다고 합니다
(레위 11,32-34 참조).
그러니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당시의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자신의 정결함을 위하여 작은 벌레조차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정작 낙타는 잔에 남겨 둔 채 아무 일 없다는 듯 삼키고
있다고 비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정결함의 여부는 작은
벌레 한 마리에 달려 있습니다. 더 중요한 가치인 의로움과 자비,
신의 등은 그저 무시합니다.
정결에 대해 이렇게 형식적이고 외적인 부분에만 치중하는 그들의
태도는 예수님께서 뒤이어 하신 말씀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참된 정결은 무엇입니까? 유학 중에 만난 한 교수님은
레위기에 나오는 정결법(11─16장)에 대한 한 학기의 강의를
마치며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부정하다는 것은 하느님과
만나는 데 장애가 있는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해 정결한 상태는
하느님을 만나는 데 장애가 없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참된 정결’은
하느님을 만나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을 제거하는 데에서 옵니다.
그리고 이는 내면적인 성찰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기 쉬운 사람들과는
달리 마음을 보시기 때문입니다(1사무 16,7 참조).
- 매일 미사 -
◈ [청주] 마음이 깨끗하면 표정도 밝다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2013년 다해 8월27일 성녀 모니카 기념일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더 중요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한다.>
+ 마태오 23,23-26
마음이 깨끗하면 표정도 밝다.
매일 같이 이를 닦고 얼굴을 씻고 옷매무새를 고칩니다. 외출을
하려면 거울을 보고 다시 한 번 몸단장을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일상입니다. 어떤 이는 ‘아름다운 얼굴이 추천장’ 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형수술도 하고 외모를 가꾸려 많은 정성을 기울입니다.
그에 비하면 마음을 가꾸는 일에는 너무도 인색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마음이 깨끗하면 표정이 맑고, 얼굴이 빛납니다. 그 ‘아름다운 마음은
신용장’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똑바로 향해 있으면 행동 또한
바릅니다. 그리고 마음과 행동이 일치할 때 구원의 은혜를 입을
것입니다”(성 아우구스띠노).
그럼에도 마음을 가꾸는 것에 정성을 기울인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12,2)라고 권고합니다.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정결 예식에 대한 법을 지키고
가르치는 데 신중을 기했습니다. 그러나 ‘위선자’소리를 듣는 것은
중요한 것은 외적인 의식(컵을 닦고 그릇을 닦는 것)이 아니라
속마음이라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겉을 깨끗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닦아야 할 속을 버려두고 겉만 닦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잔이 아무리 좋은 잔이고 화려해도 속이 더러우면
쓸 수가 없습니다. 속이 깨끗하면 다른 것은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더럽히는 것은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마태15,11).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바로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살인 간음, 불륜, 도둑질, 거짓증언, 중상이
나온다”(마태15,19-20). 그러므로 마음을 깨끗이 하고 하느님과
스스로에게 정직할 수만 있다면 외적 행동 또한 빛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가꾸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신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홀로 있어도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실
우리는 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언제나 하느님 앞에 있습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얼굴이 밝아지고 마음이 괴로우면 기가 꺾인다”
(잠언 15,13). 따라서 “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켜라. 거기에서
생명의 샘이 흘러나온다”(잠언 4,23).“주님, 당신께 찬미 노래
부르오리다. 흠 없는 길에 뜻을 두리니 언제 저에게 오시렵니까?
저의 집 안에서 온전한 마음으로 걷고 불의한 일을 저의 눈앞에
두지 않으오리다.,,,그릇된 마음 제게서 멀리 떨어지고 악한 것을
제가 알지 않으리이다”(시편101,2. 4). 사랑합니다.
- 청주 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 [인천] 바로 당신의 목숨까지도 내어 주면서
예전에 신학생이었을 때 무서웠던 선배 한 명이 생각납니다.
이 선배님은 신학교 전례부장이었는데, 후배들의 다른 것은 잘
보지 않아도 너무나도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이 미사를 봉헌할 때
신는 구두였습니다. 즉, 구두에 먼지가 묻어 있거나 광이 나지
않고 더러우면 미사 후에 끌려가 혼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마도
미사를 봉헌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로 구두부터 깨끗하게 닦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였겠지만, 구두만 깨끗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언제나 다른 것보다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이
구두 닦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미사 복장에 이상이 있는 것은
상관없이 오직 구두만 깨끗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다보니 미사에 충실한 것이 아니라, 항상 구두닦이에 충실하게
되더군요. 미사가 중요하기 때문에 구두를 깨끗이 닦으라는 의도가
오히려 거꾸로 미사보다도 구두 닦는 것이 더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우를 주객이 전도되었다고 하지요. 그런데 우리 일상 삶
안에서는 이렇게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너무나도 많은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강조하신 사랑의 계명이 가장 중요한데 오히려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도구들인 물질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들이 더 중요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한 하느님의 영광을
이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노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영광이
더 중요한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주님의 따뜻한
사랑을 받고 있음을 알고 있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주님께 불평불만만 가득합니다.
이러한 모습을 과거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가지고 있었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도 나오듯이 그들을 향한 강한
경고의 말씀을 던지십니다. 구약의 율법을 보면 농산물이나 과일의
소출 중 십분의 일을 하느님께 바치도록 규정되어 있지요. 그런데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이 규정을 더욱 더 세분화합니다. 그래서
목록에도 없는 것들, 박하, 시라, 소회향 등의 십일조를 내어야 한다고
하지요. 이렇게 하찮은 채소에 관해서까지 십일조를 엄격히 주장하면서
정작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더 중요한 것들을 실천하지 않는 모습을
엄중히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겉만 깨끗하고 속이 더러운 모습을
간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앞서 미사보다 구두 닦는 것이 더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는 것처럼,
또한 십일조의 정신보다 십일조의 목록이 더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면서,
정작 주님께서 중요하다고 강조하신 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우리는
주님의 곁에서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당신의 목숨까지도 내어 주면서 보여주셨던 사랑입니다. 이
사랑만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내 주변의 이웃들에게 그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주님께 저주가 아닌 축복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누군가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면 누군가를 얼마나 많이
생각하는지 깨닫는다. 있다와 없다는 공생한다. 부재는 존재를
증명한다(황경신).
성녀 모니카와 그의 아들 성 아우구스티노. 오늘 모니카 축일을
맞이하신 분들 축하합니다.
복권과 꽃
금방 시들어 버릴 꽃을 왜 사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복권 구입하는데 있어서는 상당히 관대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술 한 잔 하시고 나서 친구들과 “우리 심심풀이로 복권 한 번 사볼까?”
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구입하시지요. 그러나 복권과 꽃 중에서 어떤
것이 더 필요 없는 것일까요?
일확천금을 노리면서 복권을 구입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그리고 내 자신을 위해서 꽃 두세 송이라도 식탁에 놓아 보십시오.
분명히 당첨 확률 백 퍼센트의 며칠간의 잔잔한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맞을 확률이 거의 없는 복권보다 당첨 확률이 엄청 높은 꽃 두세 송이가
더 중요한 것처럼, 쓸데없는 곳에 관심을 갖기보다 진정한 행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곳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 인천 교구 성소 국장 조명연 마테오 신부 -
◈ [기타]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할 지 걱정하지 말라.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신앙인에게 기도란 호흡과 같아야 합니다.'
2013년8월27일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복음묵상
성녀 모니카 기념일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마태오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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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과 내일 복음이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기에, 오늘의
내용은 내일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다른 묵상을 올리고자 한다.)
기도라는 말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기도를 할 줄 안다고 자신하는 이들은 드물다.
가끔 우리의 삶을 보면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기도의 필요성에 대해 수없이 많이
들었건만, 사실 기도를 위해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두 가지의 구분이 필요할 듯 하다. 하나는 기도에 별로 관심을
가져보지 못한 사람들과, 또 다른 하나는 기도를 하고는 싶은데,
하는 방법을 몰라 잠시라도 기도를 위해 앉아있는 것이 무척
부담되는 사람들이다.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간단히 말해서,
기도 없이는 신앙 안에서 어느 것도 제대로 된 모습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하느님께 시간을 드리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 만약 여러분이 이 부류에
속한다면 여러분의 어떠한 봉사도 자기만족일 가능성이 높고,
하느님의 이름을 빌린 자기 과시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어떤 이는 구체적인 삶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면 그것이 곧 기도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기도의 체험
없이는 올바른 사랑 실천이 신앙인에게는 불가능하다는데 있다.
신앙인이라면 기도 안에서 식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해야 한다.
식별할 수 있는 지혜란 곧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는
지혜이다. 그렇게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각이나 행동에 자신이 있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적으로 기도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만 한다. 루카 복음은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예수의 소문은 더욱더 널리 퍼져서 예수의 말씀을 듣거나 병을
고치려고 사람들이 사방에서 떼 지어 왔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때때로 한적한 곳으로 물러 가셔서 기도를 그렇다. 교회의 오랜
전통은 기도는 신앙인에게 있어서 숨을 쉬는 것과 마찬가지라
하였다.
이는 기도 없이는 그 어떤 신앙생활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기도를 어떻게 할 수 있냐는 방법론적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그 이유는 각자가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방법이기에 그렇다. 단, 모든 방법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이야기 한가지만을 나누고자 한다.
그것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시간을 들여라!’라는 부탁이다.
시간을 들이지 않고 기도는 이루어질 수 없다.
맛을 들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루 24시간 중 여러분이 그분을 위해 드리는 시간은 과연 몇 분이나
되는가를 생각해보라. 더욱이 마음을 모아 집중해서 드렸던 기도의
체험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몇 분 정도가 되는가를 생각해보라.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해본 적이 있는가?
간절히 기도 드린 다음에 하느님의 뜻을 기다린 적이 있는가?
모르기는 해도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이들이 대부분이 아닐까?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할 지 걱정하지 말라.
그저 그분 앞에 머무르겠다는 마음으로 시간을 가져야 한다.
분심이 들던 근심이 들던 좀이 쑤시든 상관하지 말고 그분께 시간을
드려야 한다. 여러분이 그러한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일 때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믿는다. 기도해야 한다.
가장 귀한 시간임을 인식하고 기도해야 한다.
구하라는 말씀도 찾으라는 말씀도 문을 두들기라는 말씀도
결국 기도하라는 말씀임을 깨닫고 기도를 생활화해야 한다.
우리 모두, 각자에게 주어진 삶 안에서 가능하면 많은 진실 된 기도의
체험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 체험이 이루어질 때 여러분은 행복해질
것이라는 확신을 전하고 싶다
- 사이타마 교구 오타(太田)본당 주임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
https://www.facebook.com/WithfatherPinetree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타성에서 벗어나라.
2013년 다해 8월27일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성녀 모니카 기념일
<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복음 : 마태 23,23-26
<타성에서 벗어나라.>
에스키모들이 늑대를 사냥하는 전통적인 방법을 소개해 드립니다.
아시다시피 이곳은 굉장히 춥습니다. 수은주가 영하 40도,
50도까지 내려갑니다. 그들은 칼 한 자루와 짐승의 피만으로
늑대를 잡습니다.
먼저 예리한 칼날에 짐승의 피를 발라 그것이 얼 때까지
놓아둡니다. 그리곤 또 다시 그 위에 피를 발라서 얼리고, 또
피를 발라서 얼리는 작업을 반복합니다. 한참을 그렇게 하고
나면 칼날은 얼어붙은 피로 완전히 덮이게 되겠지요. 그런 다음
칼날을 위쪽으로 향하게 하여 칼자루를 땅에 단단히 묻습니다.
작업을 끝낸 에스키모는 집으로 돌아가 잠을 잡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피 냄새를 맡은 늑대가 다가와 칼날을 핥기
시작합니다. 늑대의 혀는 얼어붙은 칼날에 쩍쩍 달라붙고 혀는
감각을 잃게 됩니다. 늑대의 혀는 칼날에 베어 피가 흐르게 되고,
늑대는 짐승의 피인지 자기의 혀에서 흐르는 피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신나게 피를 핥아먹습니다.
아마 곁에서 다른 누군가가 “야, 네 혀에서 피가 흐르고 있어!”
라고 말해 주면, 그 늑대는 오히려 역정을 내며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시끄럽다! 맛만 좋구만...”
그리곤 허겁지겁 먹는 데만 신경을 쓰겠죠. 이제 이 사건의 결말은
뻔해졌습니다. 늑대는 결국 과다 출혈로 인해 장렬하게 쓰러지고야
맙니다. 에스키모는 다음날 아침 느긋하게 일어나 이 전리품을
챙기기만 하면 됩니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 짱, My Life, 에스키모의 늑대 사냥법]
‘타성’이란 주변에 새로운 사물이나 자극이 생기면 처음에는 그것을
강하게 인식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져 버린다는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새 손목시계를 차면 처음에는 손목시계의 존재를 느끼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손목시계를 찼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합니다.
새집으로 이사를 가면, 사름들은 고쳐야 하거나 개조할 것들의 목록을
작성합니다. 그런 것들이 눈에 띄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5년쯤 지나면,
여전히 그 목록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고쳐야 할 부분들이 더 이상 눈에
거슬리지 않습니다.
혹시 우리들도 ‘영적 타성’에 젖어, 그저 ‘나는 큰 죄에 빠져 있지
않고, 구원을 잃을 만한 일을 한 적도 없어. 나는 그럭저럭 잘 살고
있어.’라는 마음으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타성이라는 뜻은,
아마도 늑대의 혀가 마비되어 자신이 하는 일이 자신을 죽이고
있는 것임을 느끼지 못했던 것처럼, 내가 하는 일의 결과에 대해
무감각 해진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로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영적 타성에 젖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해 오던 십일조와 많은 율법을 지키는
것들은 열심히 지키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타성은 행위에 집중하여 그 결과를 깊이 분석하지 않는
데서 오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타성에 젖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나의 처지를 깊이 성찰하고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를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외적인 행위가 아니라 내적인 결과에 집중해야
합니다. 아무리 행위를 잘 해도 마음이 불편하면 그 행위는 타성에
젖어 의미 없이 한 행위일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먼저 잔속을 깨끗이 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라 합니다. 먼저 내 마음에 성령의 열매가 맺히고
있는지 살펴야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내 행위가 아무리 좋더라도
분명 잘못된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타성에 젖지 않으려면 내적으로
진정 행복한지 매순간 살피고 그렇지 못하다면 지금까지 해 오던
삶의 방식을 조금씩 바꾸어 나가야합니다.
빌 게이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힘이 센 강자도 아니고, 두뇌가 뛰어난 천재도 아니다. 날마다
새롭게 변했을 뿐이다. 그것이 나의 성공비결이다.”
그러나 변하기 위해서는 그 동인, 혹인 동기가 있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완전히 행복해지기를 원한다든가, 그리스도와 완전히 하나
되기를 열망하는 등의 바람이 있어야합니다. 그래야 부족함을 깨닫고
스스로 변화해 나가며 타성에 젖지 않게 해 줍니다.
살아있는 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킵니다. 변화가 멈추어가는
것이 곧 죽음입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처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계명을 지키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접고, 하느님처럼 완전해지기
까지 절대 만족하지 맙시다. 그 길을 가라고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시간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오산 성당 홈페이지: http://cafe.daum.net/ca-osan
- 수원 교구 오산 성당 전삼용 요셉 신부 -
◈ [서울] 빈 달구지가 요란하듯
2013년 다해 8월27일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성녀 모니카 기념일
빈 달구지가 요란하듯
옷이 날개라고 한 말처럼 정형수술 안 한 사람 별로 많지 않습니다.
명품 좋아하고 큰 집 좋아하고 외제 차 좋아하는 사람 참 많습니다.
이런 모든 게 다 돈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라 세상은 참 험해집니다.
헌 누더기 옷 입었어도 알고 보면 존경스러운 성철스님도 계셨습니다.
실은 사람을 겉보기로만 판단해서는 오판할 때가 참 많습니다.
빈 달구지가 요란하듯 속이 빈 사람이 겉을 요란하게 꾸미겠지요.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마태오 23,25)”
- 이기정 사도 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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