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석양은 어찌 그리도 아름다운지
생일이 나는 음력 5월, 막내 사위는 양력 6월이지만 올해 같은 날 생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유난히 가족행사와 연례행사를 잘 챙긴다.
올해는 막내 사위가 아빠가 된 기념으로 생일 축하금을 100% 인상해서 부쳤다. 잠시 후 우리가 보낸 축하금에 50%를 더 붙여서 내 통장으로 들어온다. 막내 사위는 오늘 좋은데 가셔서 맛있는 것 사드시라고 한다. 우리가 보낸 축하금 잘 쓰겠다고 고맙다는 말을 덧붙인다. 이런 것이 사는 정이고 행복이다.
남편은 오늘 영월 가서 내가 좋아하는 보리밥을 사준단다. 9시쯤에는 출발할테니 준비하라고 서두른다. 영월 가는데 무슨, 점심시간 가까이 가면되지...
암튼 영월에 갈 곳이 좋은 데가 있으니 여유롭게 구경을 하면서 가자고 한다. 해가 얼마나 긴데... 아무튼 간단하게 과일과 물 음료수를 챙겨서 9시 30분 집을 나섰다.
네비게이션에서 들려오는 음성이 아무래도 영월 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디 갈려고?" 아무리 반복해서 물어도 영월 간다는 말만 반복한다. 영월을 지나고, 아무래도 동해바다를 가고 있는 것 같다. 몇 번을 더 묻는다. "바다에 가는 거지?" 아니, 그냥 드라이브를 한단다.
가다가 보니 강원 랜드 근처엔 모텔도 많다. 남편은 오늘 생일 기념으로 조용한데 들어가서 운우의 정이나 나누고 갈까? 자기가 뭐 청춘인 줄 아나...ㅎㅎ 조용하기는 우리 집이 제일 조용하지...ㅋ 늙으면 양기가 입으로 올라와 망측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 밷는다.
동해, 삼척 이정표가 보인다. 네비 아가씨는 태백산 1000m 고지를 지나간다고 한다. 바다로 가는 게 틀림없다. 국도를 따라 산천 구경하면서 웃고 즐기다 보니 2시간 40분이나 걸려서 묵호항에 도착했다. 남편과 함께라서 그리 지루하지는 않았다. 나는 강릉 친구에게 절대 전화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우리가 회를 사주려고 불러내도 강릉에 왔으니 자기가 대접해야 된다고 번번이 신세를 지고 가는 친구다. 전화하지 말라고 하는데 강릉 사는 남자 동창 부부가 걸어온다. 잠시 후에 풍기에 사는 동창 권교장 선생님도 몇 시간을 달려서 당도했다. 제과점이 안보여 어렵사리 케이크를 샀다면서 들고 온다.
"이게 뭐야?" 남편은 풍기 동창 친구들과 스크린 골프를 하면서 내일이 소담 여사 생일이니 축하해주러 묵호항으로 오라고 했단다. 무슨 우연인지 며칠 간격으로 나와 동창 두 명이 음력 5월생이다. 그런데 내 생일이 제일 빠르다. 이번에 공동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남편의 배려다. 셋이 모이면 서로 돈 쓰려고 몸싸움도 마다않는 인정 많고 속 좋은 친구들이다.
남편이 나를 위한 깜짝이벤트를 해주려고 행선지를 끝까지 숨긴 것이다. 수산물 시장에서 회를 서로 눈치 안보고 먹을 만큼 넉넉하게 샀다. 사장님이 추천하는 해오름 식당엘 갔다. 우선 내부가 깔끔하고 주인장의 친절함이 돋보인다.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생일 축하노래를 불러준다.
자식들에게만 케이크를 선물 받아봤지 동창 남자 친구에게는 난생 처음 받는 케이크 선물이라 감정이 남달랐다.ㅎㅎ. 평생 처음 남자동창생들과 함께하는 생일 파티, 할 말도 많고 행복도 배가되었다. 살다 살다 이런 깜짝 이벤트까지 해주다니 살아 갈수록 남편이 고맙고 감동 그 자체다.
거한 점심을 먹고 전망 좋은 산중턱 등대카페에 갔다. 파란 바다가 보이는 확 트인 수평선 위로 간간히 작은 배들이 지나간다. 의자에 앉아 각자 취향에 따라 차를 시킨다. 코끝에 전해지는 바다 바람에 취한다.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자문해본다. 몇 시간을 달려와 준 풍기에 사는 권교장 선생님과 우리 어울림 상호부터 남편과 내 호를 지어준 강릉의 명리학 연구소장님 동창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이제 헤어질 시간, 아쉬운 작별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편에게 더 바랄게 없는 안정적인 노후를 살 수 있게 해 주어 고맙다는 말을 했다. 오늘 깜짝 이벤트해 준 것도 감사하다고. 남편도 나에게 "시집와서 고생 많이했지만 자식들 반듯하게 잘 키워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둘이 두런 두런 말을 주고 받는데 산허리에 걸린 석양은 어찌 그리도 아름다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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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모님~~ 늦었지만 생신축하드립니다!~~^^
두분 건강하세요~^^
잘 지내지?
축하 고마워!
나도 늦게나마 박사님 된 것 축하해..ㅎㅎ
네~~~덕분에 저희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