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보고
堂井 김장수
전부터 이산가족 하면 북한과 남한에 흩어진 이산가족을 연상하게 한다.
하지만 최근에 KBS에서 방영한 ‘1983년 연속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유튜브에서 많이 보며 마음이 아팠다.
1945년 광복과 1950년 6·25 사변, 38선, 남북 갈등이 빚은 이 슬픈 사연은 나중에 외국에까지 알려지게 된다.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자 전국에서 눈물의 상봉과 전화와 사연 이름표가 빗발쳤고,
분단의 아픔과 골육 간의 이별 뒤의 슬픈 해후, 자유를 찾아 월남한 이산가족들, 친척간의 단절과 만남 후의 희열의 눈물….
나도 동생과 부모님을 하루라도 안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걱정되어 견딜 수 없는데,
휴대폰이 없던 시절에 KBS 방송국에서 이산가족을 찾아주어서 그들에게 나도 마음속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그리웠던 30년 세월’은
이산가족의 얼굴에 깊이 팬 주름살만큼이나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보고 싶은 친척, 가족, 부모님, 형, 동생, 누나, 언니, 오빠 등 깊은 그리움만큼이나 깊은 상흔과 슬픔,
전쟁의 무서움과 김일성에 대한 분노와 증오, 의지할 곳 없는 서러운 신세에 마음속의 상처와 흉터만 남아
이산가족의 30여년 이산의 슬픔을 더 깊고 슬프게 했다.
돌이켜 보면, 해방 이후 한국의 역사는 역경의 연속이었다. 한국 전쟁과 그 후의 사회혼란, 4·19와 5·16, 유신체제를 돌이켜보며
휴전 협정 후 30년 동안 고향에 가지 못한 서러움, 보고 싶은 친척들을 만나지 못하는 슬픔과 보고 싶도록 사무친 그리움,
부모님과 가족들이 돌아가신 것도 모른 채 막연한 그리움과, TV 카메라에 번호표와 사연을 적은 종이를 카메라 앞에 들이대며
제발 가족들이 이 장면을 보기를 학수고대하며 가족들을 애타게 찾던 장면이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북한에서 자유를 찾아 남하한 이산가족과 그 과정에서 길을 잃어 고아원이나 양자, 양녀로 가 헤어진 사람들….
그들에게 남은 건 그리움과 마음의 상처뿐, 무슨 말로 위로를 전해 드려야 한단 말인가.
가족을 애타게 찾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들과 기다리다 지쳐서 가족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
가족을 찾아보니 부모님이 돌아가신 분들,
살아만 달라고 외쳐도 대답 없는 메아리여서 슬픔을 삭여야 하는 분들에게 무슨 말로 위로를 해 드릴 수 있을까.
나는 그 장면을 보고 남북 전쟁의 결과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나도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의 무서움을 모르지만, 우리 증조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 시대에는 –
전쟁을 겪어 보셨기에 그 무서움을 알 것이다 – 전쟁의 무서움을 겪느라 가족의 소중함도 망각한 채
얼마나 살기 위해 뛰어다니셨을까.
그렇게 살기 위해 아등바등 하다 보니 어느덧 30여년. 그렇게 KBS에서는 큰일을 해냈다.
이산가족과 가족을 찾기 위해 이런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해후의 꽃’과 만남과 상봉이라는 놀라운 열매를 맺고,
보는 사람들도 찾은 사람들도 눈물바다가 되었다 하니, KBS는 ‘신의 한 수’를 둔 셈이고,
전국에 흩어진 이산가족들은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아서 만나고, 정말이지 고마운 프로그램이었다.
나도 전부터 KBS ‘아침마당’에서 ‘그 사람이 보고 싶다’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가슴이 찡했다.
몇 십 년 동안 만나지 못한 가족들, 그리고 해외로 입양 간 사람들이 부모님과 가족을 찾는다고 하다가,
결국 찾았을 때 희열과 슬픔의 꽃이 활짝 피었다. 그것을 보는 나도 가슴이 아팠다.
정말이지 가족들과 얼마나 같이 얘기하고 만나고 싶었을지 짐작이 간다.
분단 70여년. 얼마나 보고 싶었던 혈육이건만, 38선 분단 이후 여태까지 가족들이 만나지 못했다니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보고 싶은 가족을 찾은 사람들은 좋겠지만, 못 만난 사람들은 얼마나 한이 맺혔을까.
남의 양자로 간 사람들도 가족이 보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다가,
이제야 가족을 찾은 분들은 얼마나 친부모님이 보고 싶었을지 가슴이 아팠다.
가족이라는 단어는 참 소중한 단어다.
태초부터 오늘까지 참 소중하고 조금만 부재해도 가슴이 애틋한 것이 가족이라는 개념인가 보다.
나도 35살이 되기까지 가족이라는 단어를 오늘에야 알았다. 가족이라는 개념은 같이 있어도 보고 싶은,
무슨 일이 생길 때 마음이 아픈 그런 존재인가 하는 걸 이제야 알았다.
평소에는 아무런 느낌이 없다가 어떤 존재의 부재를 보면 그리워지는 것이 가족이라고 한다.
살아계실 때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면 보고 싶어지는 게 가족이라고 한다니,
나도 평소 부모님에게 아무렇지 않게 대하다가 부모님이 그 자리에서 없어지면 보고 싶어진다.
우리 모두 부모님께 효도하자. ‘효자 집안에 효자가 난다’는 말은 나의 정신을 번쩍 차리게 했다.
자식이 여럿 있어도 부모님이 조부모님께 효도를 하지 않으면 자식들도 부모님께 효도를 다하지 않는다.
동방예의지국을 빛내기 위해서라도 가족이라는 개념은 잊어서는 안 되겠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고, 사라진 예의를 바로 살려 바른 예절을 함양해야 하겠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충효 사상을 기본 근간으로 삼아 왔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이르러 충효 사상은 찾기 힘든 사례가 된 지 오래다.
옛말에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라는 말이 있듯이 부모가 발라야 자식들도 바르다.
우리가 아무리 새 시대를 맞았다 해도 예로부터 지켜 온 충효 사상만큼은 버려서는 안 된다.
충효가 없는 이념은 짐승의 폭력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충, 효, 예, 의라는 개념을 바로 세워 예부터 선조들이 지켜 오신 아름다운 풍속을 우리 후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후손들의 흥망성쇠를 좌우한다. 아이들이 보고 있다. 요즈음 고독사라는 것이 늘고 있다.
고령화 시대에서도 지켜야 할 것은 충, 효, 예, 의라는 기본 개념이다. 한민족의 살 길은 이것뿐이다.
요즘 독거노인이 늘고 있는데, 그 자신이 효도를 하지 않으니 자식이 어찌 효도를 하겠는가.
효도를 해야 나중에 효도를 받고, 난중에 자식들이 효도를 하러 온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효도를 남의 집 일처럼 생각하며 살아간다.
자기 자식을 힘들게 키우시느라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신 부모님이건만,
그런 부모님을 나 몰라라 하며 이기적인 자식들이 있는데,
그런 자식들이 늙을 때 어떤 꼴이 될지 상상하기 어렵다.
정녕 노인들이 행복한 삶을 사는 건 누릴 수조차 없는 사치인지 궁금하다.
독거노인의 사진을 보며 나 자신이 부모님께 잘 해 드리는지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효도라는 소중한 가치를 돌아보면서 늙어서 외로운 사람들을 보면 너무도 안타까워 견딜 수 없다.
나도 부모님께 소홀한 점이 없었나 돌아보면서, 부모님께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지혜로운 자식은 아버지의 영광이요 미련한 자식은 어머니의 근심이라’라는 성경 잠언의 말씀에도 있으니 말이다.
누군가 그러더라. ‘아이들 시대를 실망시키면 어른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나 또한 용서받지 못할 어른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X세대에서 방탄소년단까지, H.O.T.라는 아이돌 가수를 접한 6학년 초등학생은 어느덧 30대 중반의 어른이 되었다.
‘강산도 10년 변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상전벽해가 어느덧 3번. 친구 한 명도 없는 외로운 어른.
이미 잊혀진 어른이 되어버린 나이기에, 나는 외로움에 많이 익숙해졌다.
하지만, 부모님과 동생마저 내 곁에 없었다면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외롭고 힘들었던 지난 시절, 서울 올림픽에서 2002 월드컵,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온갖 평지풍파를 겪어서 어른이 되었다.
부모님도 많이 늙으셨다. 나도 친구가 하나도 없다. 동생은 어느덧 군대를 제대했다.
나는 방송통신대학교를 2016년 8월 24일에 졸업하고 부모님께 용돈을 어느 정도 드릴 정도로 많이 자랐다.
나도 동생도 부모가 되면 자식에게 어떤 부모가 될까?
내가 부모가 되면 자식을 잘 키우고 부모님께 효도를 해드리는 착한 아들이 되어야겠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으로 사라지는 사상을 되살려 동방예의지국, 금수강산, 옥토낙원에 어울리는 한국인으로서
부끄럽지 않는 어른이 되어야겠다. 그것이 한국이 살 길이기에.
30여 년 동안 헤어진 가족들이 긴 세월을 마음 졸이며 기다리다 만난 것처럼,
아무리 악한 세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 것이기에,
어떤 부모가 자식한테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주고, 달걀 대신 전갈을 주겠는가.
악한 아버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을 것이고,
멀리 떨어진 자식이라도 좋은 것을 해드리고 싶어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우리 모두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어
충, 효, 예, 의의 충효사상을 널리 빛내는 우리가 되자. 결코 포기하지 말자. 절대로. 후손들이 보고 있다.
지금부터 후손들이 보고 있음을 명심하고 절대로 교만해지지 말자. 그리고 함부로 자만하지 말자.
그것이 대한민국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이며, 후손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바른 길이 될 것이니까.
효자 집안에서는 하느님이 복을 주시지만, 불효자 집안에는 저주뿐이다.
우리 모두 자신을 되돌아보고, 부모님을 슬프게 해 다려서는 안 되겠다.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그런 자식이 되도록 하자.
첫댓글 감사합니다 ᆢ
저야말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