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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적시는 명시(名詩) 산책
秀峯 鄭用眞 詩人
나는 시는 언어로 그리는 영혼의 그림이요, 직관의 눈으로 바라다 본 사물의 세계를 사유의 체로 걸러서 탄생시킨 생명의 언어인 동시에 영혼의 메아리라고 믿는 사람이다. 세상에 천언만어(天言萬語)의 어휘들이 만리장성 같이 길고 많이 쌓인 천연 대리석가운데서 핵심적 시의 언어를 찾아내기 위하여 시인은 칼과 (정釘) 그리고 망치를 손에 들고 땀을 쏟으면서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조각을 시작한다.
시인은 좋은 시상을 얻기 위하여 깊은 사고(思考)와 오랜 번민(煩悶)을 겪은 후에야 비로써 자신이 스스로 만족하고 타인들이 공감해주는 명작을 탄생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시인과 독자의 관계는 마치 과학에서 두 개의 유리컵을 가까이 놓고 한 컵을 두드리면 옆에 맞지 않은 컵도 같이 울리는 공명(共鳴)의 원리와 같은 것이다.
철인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행복은 지(知) 덕(德) 복(福)의 합일(合一)이라고 했다.
인간 자신이 나는 과연 누구인가? 스스로 자신을 향하여 물을 수 있는 지식 과, 자신의 수련으로 쌓은 덕을 이웃들을 향하여 베풀 수 있고,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경지를 말한다. 나는 내 자신과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시를 쓴다. 나는 이제 많은 독자들에게 감명을 준 한국 시인들의 명작(詩)을 여러분들과 함께 산책하려 한다.
꽃 김춘수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자연은 시상(詩想)의 보고요, 시제(詩題)의 원천이며. 시심(詩心)의 곳간이다.
그러므로 시인들은 자연을 보고 시상을 얻고 시제를 발견하며, 시심을 살찌운다.
그 대표적 예가 꽃이다. 명시 김춘수의 꽃을 비롯하여 여기에 올린 여러 시인들의 시 속에서 순수무잡(純粹無雜)한 자연의 세계를 발견하고 마음의 평안을 얻으시기 바란다.
진달래꽃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진달래꽃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놓인 그 꽃을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산유화 김소월산에는 꽃 피네꽃이 피네갈 봄 여름 없이꽃이 피네산에산에 피는 꽃은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산에는 꽃이 지네꽃이 지네갈 봄 여름 없이꽃이 지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꽃이 좋아산에서사노라
초혼(招魂) 김소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虛空中)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主人)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心中)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西山)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山)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그 날이 오면 심훈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漢江)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鐘路)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頭蓋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鼓]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行列)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모란이 피기 까지는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청포도(靑葡萄)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아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는 서정(抒情)시의 대가다.
우리 한국인들은 그의 서정시를 읽고 시의 진수를 찾았다. 마음이 착해 왜정시대 일본을 거든 것이 친일의 낙인으로 남아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그의 시를 버릴 수는 없다. 민족의 서정이 그의 시 속에 살아 있기 때문이다.
국화 옆에서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봄부터 소쩍새는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천둥은 먹구름 속에서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내 꽃잎이 피려고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동천(冬天) 서정주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산 너머 남촌에는 김동환
산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꽃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南風) 불 제 나는 좋대나.
산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빛깔이 저리 고울까.
금잔디 너른 벌엔 호랑나비 떼
버들밭 실개천엔 종달새 노래,
어느것 한 가진들 들려 안 오리
남촌서 남풍불 제 나는 좋데나.
산너머 남촌에는 배나무 있고
배나무꽃 아래엔 누가 섰다기,
그리운 생각에 재를 오르니
구름에 가리어 아니 보이네.
끊었다 이어 오는 가는 노래는
바람을 타고서 고이 들리네.
북청(北靑) 물장수 김동환
새벽마다 고요히 꿈길을 밟고 와서머리맡에 찬물을 쏴 퍼붓고는그만 가슴을 디디면서 멀리 사라지는북청 물장수.
물에 젖은 꿈이북청 물장수를 부르면그는 삐걱삐걱 소리를 치며온 자취도 없이 다시 사라져 버린다.
날마다 아침마다 기다려지는북청 물장수.
직녀에게 문병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길다.
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 버린
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그대 몇 번이고 감고 푼 실을
밤마다 그리움 수놓아 짠 베 다시 풀어야 했는가.
내가 먹인 암소는 몇 번이고 새끼를 쳤는데,
그대 짠 베는 몇 필이나 쌓였는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사방이 막혀 버린 죽음의 땅에 서서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유방도 빼앗기고 처녀막도 빼앗기고
마지막 머리털까지 빼앗길지라도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
우리들은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이별은 이별은 끝나야 한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을 노둣돌 놓아
슬픔은 슬픔은 끝나야 한다, 연인아.
장 미 정용진
새벽 안개
면사포로 드리우고
그리움 망울져
영롱한 이슬
방울 방울.
사랑이
가슴에 차오르면
비로서
아름아름 입을 여는
장미꽃 송이 송이들.
사납게 찌르던
가시의 아픔도
추억의 향기로 번지는
꽃그늘 언덕에서
뜨거운 혼 불로
타오르는 밀어여. *권길상 작곡가에 의하여 가곡으로 작곡되었음.
장미와 가시 김 승 희
눈먼 손으로
나는 삶을 만져 보았네.
건 가시투성이였어.
가시투성이 삶의 온 몸을 만지며
나는 미소 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 하고.
장미꽃이 피어난다 해서
어찌 가시의 고통을 잊을 수가 있을까
해도
장미꽃이 피기만 한다면
어찌 가시의 고통을 버리지 못하리요.
눈먼 손으로
삶을 어루만지며
나는 가시투성이를 지나
장미꽃을 기다렸네.
그의 몸에는 많은 가시가
돋아 있었지만, 그러나,
나는 한 송이의 장미꽃도 보지 못하였네.
그러니, 그대, 이제 말해주오.
삶은 가시장미인가, 장미가시인가
아니면 장미의 가시인가,
또는,
장미와 가시인가를.
풀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풀꽃 나태주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동국대학교 교수를 역임한 이형기 시인의 낙화는 자연의 풍광을 통하여 인간관계를 세심히 관찰하고 남녀의 사랑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절창으로 많은 젊은 남녀들의 사랑을 받은 명시다.
낙화(落花)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청록파(靑鹿派)는 1940년대 초 잡지 <<문장지>>의 추천으로 시단에 등장한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시인 세 명을 말한다.
같은 시기에 《문장》지의 추천으로 시단에 등장한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은 우연히 공통적인 시풍(詩風)을 가졌는바, 자연을 바탕으로 그 표현이 전통적인 율감에 의거하여 이룩되었다는 데서 자연파 또는 청록파로 불리는 특징 있는 시파를 이루었다.
승무(僧舞) -조지훈(趙芝薰: 1920-1968)-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梧桐)닢 잎 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낙화(落花) 조지훈
꽃이 지기로소니바람을 탓하랴.주렴 밖에 성긴 별이하나 둘 스러지고귀촉도 울음 뒤에머언 산이 다가서다.촛불을 꺼야 하리꽃이 지는데꽃 지는 그림자뜰에 어리어하이얀 미닫이가우련 붉어라.묻혀서 사는 이의고운 마음을아는 이 있을까저허하노니꽃 지는 아침은울고 싶어라.
해 박두진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너머 산 너머서 어둠을 살라먹고,
산 너머서 밤 새록 어둠을 살라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라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에 앉아
앳되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청노루 박목월머언 산 청운사(靑雲寺)낡은 기와집,산은 자하산(紫霞山)봄눈 녹으면,느름나무속ㅅ잎 피어 가는 열 두 구비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나그네 박목월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논개(論介) 변영로
거룩한 분노는종교보다도 깊고불붙는 정(情)열은사랑보다도 강하다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그 물결 위에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娥眉)높게 흔들리우며그 석류(石榴)속 같은 입술`죽음'을 입 맞추었네―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그 물결 위에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그 `마음' 흘러라.
식물이나 양식이 시의 주제가 되거나 제재가 되는 경우도 많다.
의식주는 인간 생존의 기본 요소요,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아래 시를 감상해 보면 그 이유가 분명해 질 것이다.
긍정적인 밥 함민복
시(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밥풀 권영상
밥상을 들고 나간 자리에
밥풀 하나가 오도마니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바깥을 나가려든 참에 다시 되돌아보아도밥풀은 흰 성자의 모습으로 그 자리에 앉았다바쁜 발걸음 아래에서도 발길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밟히면 그 순간 으깨어지고 마는 두려움,그런 두려움도 없이이아침, 분주한 방바닥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나이 어린 성자의 얼굴로
*방바닥에 떨어진 밥풀 한 알에서 성자의 모습을 발견한 시인의 예리한 감성과 통찰에 감탄하면서 이 시를 읽으면 내 마음이 따뜻하고 차분해진다. 이 시를 지은 이의 동시집 표제작이기도 한 시 ‘밥풀’을 나는 더러 강의 중에 인용하고 많은 친지들에게 적어 보내기도 했다. 내가 사는 수녀원에서는 8개의 밥상에 10명씩 앉아서 밥을 먹는데 어느 땐 서열 순으로 어느 땐 또 다른 방식으로 섞여서 앉기도 한다. 나는 요즘 5번 밥상의 큰언니인데 어느 날 내 축일을 축하해 주는 카드에 어느 아우수녀가 ‘수녀님과 한 식탁임을 기뻐하는 밥알들 올림’이라고 적어 준 게 인상적이었다. 사실 큰 공동체 안에 함께 살다보면 밥알들끼리 서로 좋아해서 붙어 있기도 하지만 다름에서 오는 사소한 갈등과 아픔을 못 견뎌 갈라지고 싶은 유혹을 받기도 한다. 우리가 같은 집안에서 밥을 먹고 산다는 것은 그만큼의 인내와 희생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에 더욱 귀한 인연일 것이다. 하루 세끼 밥을 먹을 적마다 내 그릇에 담긴 밥알과 내 옆자리에 앉은 수녀밥알들을 감사와 사랑 가득한 눈길로 바라보며 새삼 행복한 나날들이다.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고 마칠 때 이 시를 한 번씩 읽어보며 새해를 보내고 싶다. 다른 이의 모습에서 ‘성자’를 볼 수 있는 사랑의 넓고 밝은 지혜를 구하고 바쁨 속에서도 마음의 고요를 즐길 수 있는 수행자의 마음을 새롭게 해 준다.‘밥풀’이란 이 시는. 이해인 수녀
가을사랑 정용진
앞뜰에는
붉은
석류 두알
뒤뜰에는
노을빛으로 타는
홍시.
이 모두
사랑스러운
너의 젖가슴이련만
터질까봐, 차마
만질 수가 없구나.
아!
이는 내가
이 가을에
너에게 보내는
순수
나의 첫사랑.
훈장(勳章) 정용진
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들에 나가
밭을 갈고 씨를 뿌렸다.
석양
황금 양탄자를 밟고
문을 들어서니
땀에 젖어
이마에 붙은
진흙 반점을 보고
여보, 얼굴에
그게 뭐요
아내가 묻는다.
시인은
이렇게 적었다.
이것은
농민의 훈장이외다.
대추 한 알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내 마음은 金東鳴내 마음은 호수요.그대 저어 오오.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내 마음은 이오.그대 저 문을 닫어주오.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최후의 한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내 마음은 나그네요.그대 피리를 불어 주오.나는 달 아래 귀를 귀울이며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내 마음은 낙엽이요.잠깐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같이, 외로이그대를 떠나오리다.
파초(芭蕉) 김동명
조국(祖國)을 언제 떠났노,파초(芭蕉)의 꿈은 가련하다.
남국(南國)을 향한 불타는 향수(鄕愁),너의 넋은 수녀(修女)보다도 더욱 외롭구나.
소낙비를 그리는 너는 정열(情熱)의 여인(女人),나는 샘물을 길어 네 발등에 붓는다.
이제 밤이 차다,나는 또 너를 내 머리맡에 있게 하마
나는 즐겨 너를 위해 종이 되리니,너의 그 드리운 치마 자락으로 우리의 겨울을 가리우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시란 생명체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고 무생물이나 고체 또는 생활용품이나 가구 등에도 시제로 사용되어 시상으로 살아난다.
박이도의 ‘명함, 정재호의 ’못, 김성용의 ‘의자’ 등이 그 좋은 예에 속한다.
박이도의 ‘죽어가는 즐거움’과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정현종의 ‘견딜 수 없네’ 도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고뇌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기도는 나의 옴악 가슴 한복판에 꽂아 놓은 사랑은 단 하나의聖스러운 깃발
太初부터 나의 領±는좁은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眞珠를 캐며 내가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바람이 스쳐가며 노래를 하면푸른 하늘에게 피리를 불었지
태양에 쫓기어활활 타다 남은 저녁 노을에저렇게 긴 江이 흐른다
당신의 맑은 눈물내 땅에 떨어지면 바람에 날려 보낼기쁨의 꽃씨
흐려오는 세월의 눈시울에原色의 아픔을 씹는 내 조용한 숨소리 보고 싶은 얼굴이여
극장에 사무실에 학교에 어디에 어디에 있는 의자란 의자는
모두 네 발 달린 짐승이다 얼굴은 없고 아가리에 발만 달린 의자는
의자는 필시 맹수의 조건을 두루 갖춘 네 발 달린 짐승이다
눈 내리는 만경들 건너가네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가네
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녹두꽃 자지러지게 피면 돌아올거나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그 누가 알기나 하리처음에는 우리 모두 이름 없는 들꽃이었더니들꽃 중에서도 저 하늘 보기 두려워그늘 깊은 땅 속으로 젖은 발 내리고 싶어하던잔뿌리였더니
그 누가 알기나 하리겨울이라 꽁꽁 숨어 우는 우리나라 풀뿌리들이입춘 경칩 지나 수군거리며 봄바람 찾아오면
수천 개의 푸른 기상나팔을 불어제낄 것을지금은 손발 묶인 저 얼음장 강줄기가옥빛 대님을 홀연 풀어헤치고서해로 출렁거리며 쳐들어갈 것을
우리 성상(聖上) 계옵신 곳 가까이 가서녹두알 같은 눈물 흘리며 한 목숨 타오르겠네봉준이 이 사람아그대 갈 때 누군가 찍은 한 장 사진 속에서기억하라고 타는 눈빛으로 건네던 말
들꽃들아그날이 오면 닭 울 때흰 무명띠 머리에 두르고 동진강 어귀에 모여척왜척화 척왜척화 물결소리에귀를 기울이라
견딜 수 없네 정현종갈수록, 일월(日月)이여, 내 마음 더 여리어져
*Editor's Award. by The International Library Of Poetry(03)
you who fill up the depth of my mind
while I keep sitting alone in silence.
Like the breeze moving along an alley
as the starlight shining in the wind,
By The International Society of Poetry
In her a great depth of longing,
wearing her lily-white monk’s robe,
she has been waiting for countless years.
a wave flowing around the mountain.
skirted the base of the Alps, your home,
While preserving your chastity,
you survived for so many years.
O, the Virgin’s hair has gone white!
To see you, I climb 3,454-meters.
drop a foggy veil of exhausted anger
from the long wait for this man
The cold sound of rain hits the car window,
and I believe it is your footsteps!
left perpetual snow in your heart.
Jungfrau. (Translate by James Chong)
*Jungfrau means 'A Virgin'. The highest peak of this sacred mountain
of the Alps is 4,158-meters high, which is the highest in Europe.
철인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인간 최대의 목표는 행복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시인이 시를 쓰고, 독자들이 좋은 시를 즐겨 암송하는 것도 자신
행복은 만인의 원이요. 인간 궁극의 목표다. 모두들 행복하시기를 기원한다. (끝)
Pen USA. The International Society of Poets VIP회원.
Outstanding Achievement Award.(07.08)
(The International Society of Poetry)수상.
The Best Poems & Poets (05.07) 선정됨.(미국. 국제시협)
시집 : 강마을. 장미 밭에서. 빈 가슴은 고요로 채워두고. 금강산.
너를 향해 사랑의 연을 띄운다(한영). 설중매. (미래문화사)
에세이 : 마음 밭에 삶의 뜻을 심으며. 시인과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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