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지금은 건기, 별빛 휘장을 두르고 갈증의 등뼈로 기둥을 세우는 곳, 호흡조차 쩍쩍 갈라진 사각동굴 바닥에는 광기가 깡통으로 뒹굴고 있다 당신들이 새끼 잃은 승냥이 속울음을 어둠 속에 풀어놓으면 한 폭의 그림이 되고 시가 노래를 하고 당신들은 피 한 방울만으로도 황홀경을 창조하는 예술가, 위대한 뱀파이어들
어서 목을 내놔
휴식을 줄게
내겐 빛이 곧 죽음이야
어둠, 아으 어둠은 신선한 프로포플*
어둠은 독수리 날개로 머리를 헤쳐 풀고 어디든 데려다 주지 언제부턴가 쉽사리 목을 내놓지 않는 인간들,의 배신으로 며칠째 피맛을 보지 못한 당신들의 핏발 선 눈빛에 고요조차도 숨을 죽이고 피와 담배와 술의 제전이 절정에 이른 26시, 환도뼈에서 쏟아지는 붉은 충동들 모가지 잘린 닭대가리처럼 퍼덕이는 푸른 치욕들 살바도르 달리라면 환도뼈로 서랍 달린 가슴을, 닭대가리로 이지러진 시간을 그렸을 테지
송곳니가 썩고 있어
내 동굴에 쐐기풀을 깔아줘
그곳에서 볼록 부풀고 오목 꺼지며
굴절되고 싶어
불온한 광기로 열정의 온도를 가늠하는 일은 위험하지 견갑골을 통과하지 못하는 광기가 집단 자살하는 고래처럼 당신들의 심장 위에 널브러진 밤 광기도 안식이 필요한 법 뱀파이어들은 습관적으로 우울의 정글을 키운다지 발톱을 세우고 몸을 더듬는 우울이라는 양서류 한 마리
목이 말라
치사량의 우울로 내 혀를 축여 줘
길고 가는 위는 더 이상 피를 빨 수가 없어
앞선 발걸음은 믿을 게 못 돼
따스한 손과는 악수하기가 겁나
검붉은 피는 이과수 〈악마의 목구멍〉에 던질 때 무감의 기미를 발칵 뒤집어야 할 때 검은 피는 상실을 가져오고 붉은 피는 만용을 부르지 피비린내 나는 거리를 걸을 때면 나트륨빛에도 날선 살의를 느끼는 당신들 광기와 우울로는 그 어떤 감흥도 줄 수 없는 오늘이 왔어 녹색의 피는 승냥이 울음을 헤아릴 줄 알지
지금은 피를 바꾸어야 할 녹색의 시대,
멀리서 자귀나무가 붉은 꽃잎을 접고 돌이끼가 꽃으로 피어난다
그 시간과 공간을 ‘광기와 우울의 오독’이라 부르겠다
뱀파이어들이여 저 나무들의 뼛가루를 받아먹고 푸르게 재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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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면마취제의 일종.
—《시산맥》2011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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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 전남 함평 출생. 전남대 국문학과 졸업. 2006년 《작가세계》등단. 에세이집 『내 몸 속에는 서랍이 달그락거린다』, 시집 『랭보는 오줌발이 짧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