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스트로메리아는 가장 화려한 꽃 중의 꽃이다. 모든 꽃이 흐드러지는 봄부터 가을까지의 시기를 마다하고, 겨울 초입에 꽃을 피운다는 사실 자체가 신비한 자연의 법칙이라면, 특히 알스트로메리아의 아름다운 자태는 꽃이 오로지 생존을 위해서 아름답게 진화했다는 설을 믿게끔 한다.
주 자생지가 남아메리카인 알스트로메리아는 언뜻 백합이나 수선화와 빼닮아 ‘잉카의 백합’ 혹은 ‘페루 백합’이라고 알려지기도 했다. 야리야리한 여인을 닮은 형태에 꽃잎의 끝 부분이 수채화의 붓 터치처럼 낭만적이기도 하지만, 의외로 생육이 강해서 땅의 에너지가 강한 곳이라야 알스트로메리아를 제대로 꽃 피울 수 있다고 한다. 때문에 습지, 사막, 열대우림, 고지대까지, 일반 꽃이 자라기 힘든 척박한 곳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되곤 했다.
남아메리카에서 피던 꽃이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 받게 된 사연은 여러 가지가 알려져 있다. 18세기 남미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한 스웨덴 선교사가 타향 생활의 외로움과 고단함을 알스트로메리아를 보면서 이겨냈고, 귀국할 때 가지고 나온 알스트로메리아가 유럽을 시작으로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나갔다는 것이다. 이 선교사의 이름이 바로 ‘알스트로메리아’였다. 한편, 식물의 학명을 라틴어 속명과 종명, 그리고 명명자로 표시하는 이명법(binomial nomenclature)을 최초로 제창한 칼 폰 린네의 친구이자 탐험가였던 스웨덴 남작 클라우스 본 알스트로에메르를 기념하기 위해 명명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그가 1753년 스페인으로 여행을 가면서 가져간 이 씨앗이 퍼져나갔다는 설이다.
선교사든 남작이든, 어쨌든 알스트로메리아의 이름은 스웨덴 사람의 그것이지만, 이 꽃은 유독 네덜란드에서 사랑을 받았다. 예로부터 네덜란드 사람들은 꽃에 남다른 애착을 보였다. 알스트로메리아가 유입되기 전인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튤립 한 뿌리가 집 세 채의 가격으로 거래할 정도로 튤립의 가격이 폭등한 적이 있었다. 물론 ‘튤립 파동’이라는 제목으로 역사에 길이 남은 이 사건은 가격 폭락으로 마무리되었으나, 이후 때아닌 튤립 열풍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이 눈여겨 본 꽃이 바로 알스트로메리아였다. 화훼 산업의 최강국인 네덜란드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전남과 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알스트로메리아를 재배하고 있다.
몇 년 전,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촌진흥원은 11월의 꽃으로 알스트로메리아를 선정한 바 있다. 화이트스마일, 화이트크라운, 해피알스, 씨엔알스호프, 하늬바람 등 다섯 개의 품종이 개발, 생산되었다는 소식도 함께 전했다. 그러나 아무리 공식적으로 알스트로메리아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알린다고 해도, 결국은 꽃을 꽃이라 불러 주고 곁에 두는 건 사람들의 몫이다. 어떤 훌륭한 정책도 정작 국민들이 외면하면 무용지물이듯 말이다. 보도 이후 알스트로메리아가 얼마나 생산되고 있는지, 판매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아 궁금했던 차, 얼마 전 예식장에서 이 꽃을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알스트로메리아의 꽃말은 새로운 만남, 헌신, 배려, 그리고 우정이다. 남남이었던 남녀가 서로를 배려하고 헌신하는, 우정과 같은 기나긴 사랑을 약속하는 공식적인 자리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꽃이다. 이 꽃말은 다름 아닌 꽃의 생김새에서 비롯되었다. 알스트로메리아의 잎은 태생적으로 뒤틀려서 자라기 때문에 잎의 뒷면이 위쪽을 향하고 있다. 이 독특한 잎은 왜곡과 뒤틀림의 과정을 필연적으로 겪어야만 성장할 수 있고, 비로소 우정이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의미의 꽃말로 발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