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위에서 며칠 전 태어난 새끼고양이가 마당 아래를 한참 내려다보는 날이면 장미넝쿨도 새잎을 틔우고 무섭게 자라나기 시작한다 비가 이틀쯤 고즈넉이 내리면 한 사나흘 비가 내리면 그 다음날이면 그 전날 밤이면 나도 내가 외로워져서 계단 위에 며칠 그대로인 고양이 밥그릇을 한 번 더 바라보게 된다 목덜미가 젖어서 처마가 짧은 계단에 서서는 소년에게서 받은 장미를 들고 그 소년의 묘지에 찾아가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를 읽는다 누런 줄무늬 고양이가 골목을 지켜보다 간 자리에 장미넝쿨이 지붕으로 뻗어 오르는 그 사이에 뭔가 있다
시인은 우리를 봄의 혼몽한 골목으로 안내한다. 그곳은 비가 내리고 있고 장미가 있고 고양이가 있다. 평범하다. 그러나 이 시를 읽으면 무섭도록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그 다음 날이면" 심지어 "그 전날 밤" 조차도 외로우며, "처마가 짧은 계단에"서서 시를 읽는다는 디테일이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마지막엔 "고양이가 있던 자리와 장미넝쿨 사이에 뭔가 있다"고 천기누설을 해 버린다. 장미처럼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