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0월 20일(성령강림절 후 스물두 번째 주일)
호세아 2:14~23
그날에, 우리 주님이 이루실 일
하늘사랑교회 주일오전예배 설교문
본문 접맥 적 주제설교 형식
김규태 목사
*설교 주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고 그들에게 응답하실 것이다.
*설교 목적: 우리는 회복하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when?
여러분은 ‘일식’을 아십니까? 일식은 지구와 태양 사이에 달이 자리를 잡아, 일시적으로 태양의 빛이 차단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잠시 어두움이 지속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만약 우리 눈에 태양이 사라졌다고 해서 태양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잠시 우리 눈에 사라져 보이지 않을 뿐, 여전히 태양은 존재하고 태양은 찬란한 빛을 온 우주에 비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달의 일식 현상에 착안해서, 마르틴 부버는 「신의 일식」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이 시대를 ‘신이 죽은’ 시대가 아니라, ‘신의 일식’ 시대라고 진단했습니다. 마치 달의 방해를 받아 태양 빛이 잠시 가려졌던 것처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무언가가 끼어 들어 잠시 우리 눈에 하나님의 빛이 비치지 않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빛을 차단할까요? 과연 우리가 하나님이 안 계신다고 인식하게 만드는 장애물은 무엇일까요? 과연 나와 하나님 사이의 그 무엇이 그분의 광휘(光輝)를 가리는 것일까요?
만일 우리 영혼의 창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세상의 풍진(風塵)으로 인해 투명하지 않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됩니다. 교만, 욕심, 음란, 방탕, 불신으로 먼지가 잔뜩 낀 영혼의 창은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출처: 이승우, 「사막은 샘을 품고 있다」(복있는 사람, 2017); 「생명의 삶」(두란노, 2024년 10월호), 33쪽에서 재인용.
여러분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눈에 하나님의 빛이 잘 비치십니까?
우리는 지난 주일에 호세아서 1장을 통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북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 때,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는 이스라엘이 영토를 확장하고, 활발한 무역을 펼쳐 경제적으로 매우 번영했던 시기였습니다. 다윗 왕 이후로 여로보암 왕 2세 때처럼 이스라엘에 번영이 찾아온 때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 왕 2세가 죽고, 그의 아들 스가랴가 왕이 되자 스가랴는 6개월 만에 살룸에게 암살당하고 말았습니다. 이후로 이스라엘에는 다섯 명의 왕들(스가랴, 살룸, 므나헴, 베가, 호세아)이 나라를 다스렸지만, 반복되는 쿠테타와 암살로 인해 다섯 명 중에서 오직 한 사람(므나헴)을 제외한 나머지 네 명의 왕들이 암살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정치는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웠고, 왕이 바뀔 때마다 친(親) 앗수르 정책과 반(反) 앗수르 정책 사이에서 혼란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더군다나 앗수르는 점점 북이스라엘을 조여왔습니다.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은 호세아(주전 732~722년)였습니다. 호세아 왕은 호세아 선지자와 동명이인(同名異人)이었습니다. 호세아 왕은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 3세가 죽자, 앗수르에 반역하고 애굽을 의지했습니다.
그러자 앗수르 왕 살만에셀 5세가 군대를 일으켜 북이스라엘을 침공해 이스라엘의 수도였던 사마리아 성을 함락시키고 말았습니다. 그때가 주전 722년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북이스라엘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오직 남 유다만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언약을 기억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참고: 「생명의 삶 플러스」, 두란노, 2024년 10월호, 18쪽).
자, 이것이 호세아 선지자가 살던 시대적 상황이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여로보암 왕 2세 때부터 예언을 시작해서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 당할 때까지 북이스라엘을 향해 예언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을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1:2).”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음란한 여인 고멜을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고멜을 통해 음란한 세 자녀를 낳았습니다. 첫째, 아들은 이스르엘이었고, 둘째 딸은 로루하마였습니다. 그리고 셋째 아들은 로암미였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의 세 자녀를 통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르엘을 통해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시고,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겠다고 예언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로루하마를 통해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다고 예언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로암미를 통해 “이스라엘은 내 백성이 아니다.”라고 예언하셨습니다.
과연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왜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에 철저한 심판을 예언하셔야만 했을까요?
what’s problem?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 단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를 문제 삼으셨습니다.
16절과 17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날에 네가 나를 네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 숭배의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하나님 대신에 우상을 섬겼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의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2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를 영적 음란으로 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에게 제물로 드린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것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과 금을 바알을 위하여 드렸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셨고, 곡식이 익을 계절에 그것을 도로 찾으며, 새 포도주가 맛들 시기에 그것을 도로 찾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절기와 안식일을 폐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이 바알들을 섬긴 시일대로 그들에게 벌을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8~13절).
둘째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영적 무지를 문제 삼으셨습니다.
20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영적 무지를 여러 번 지적했습니다. 호세아 4장 1~2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영적 무지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내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호세아 4장 6절에서, 하나님은 영적 지도자인 제사장의 영적 무지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셨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습니까? 물론 이 가운데 교회 생활을 오랫동안 하신 분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을 것입니다. 혹 어떤 분은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혹 어떤 분은 인간의 원죄와 자범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죄로 인해 이 세상이 얼마나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지를 알 수도 있습니다. 혹 어떤 분은 교회가 무엇이며, 이 세상 마지막 날에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를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단순한 지식 이상의 것을 의미합니다.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20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신 지식은 체험적인 앎이요, 나의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지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남녀 사이의 결혼 관계로 묘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치 낯선 두 남녀가 결혼 관계를 통하여 온전히 연합하고, 서로를 알아가듯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러한 지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더욱 새롭게 알아가는 깊은 은혜의 체험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에 순종하고, 결국에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숙의 단계에 이르기를 요청받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습니까?
what?
저는 호세아서를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의 메시지가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행동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와 영적 무지를 문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앗수르의 손에 넘겨 심판하셔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소망에 관한 예언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 소망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소망입니다. 그러나 이 소망은 이스라엘 민족을 뛰어넘어 온 인류가 기대해도 될 만큼 충분히 종말론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6절과 18절에 기록된 “그날에”는 이 세상 마지막 때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실 일을 듣고 새로운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서 우상 숭배를 끊어버리실 것입니다.
16절과 17절에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고 일컫지 아니하리라.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장차 하나님은 우리가 의지하던 우상을 끊어버리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상을 끊어버리시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큰 고통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우리가 겪는 고통을 낭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겪는 고통을 아름답게 사용하셔서 우리가 의지하던 우상을 끊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실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와 언약을 맺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장차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고, 이 땅에 평화를 선사하실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장가들어 영원히 그들과 함께하실 것입니다.
한때 동물들은 하나님 심판의 도구였습니다(12절). 그러나 장차 하나님께서 인간과 언약을 맺으실 때, 동물들은 관객의 자리를 차지해 함께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응답하실 것입니다.
21절에서, 하나님은 “그날에 내가 응답하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표현이 있습니다.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하리라.”라는 표현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응답이 순차 적으로 일어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하늘이 땅에 응답하고, 그다음, 땅이 농산물에 응답하고, 마지막으로, 농산물이 호세아의 첫째 아들인 이스르엘에게 응답할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응답이 곧장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과 농산물을 거쳐 인간에게 주어집니다.
이것이 과연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인간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과 농산물에도 미치겠다는 약속이 아니겠습니까? 또 우리 인간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바알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응답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회복되었음을 나타내는 하나의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what’s then?
우리들교회에 출석하던 한 자매의 간증이 있습니다. 그녀의 간증은 “날마다 두레박을 내리는 여자”라는 제목으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요의(尿意)를 느낄 때마다 제 몸 깊숙이 두레박을 내리면서 살아가는 여자 그게 바로 제 모습입니다. 일찍 받아놓은 퇴원 날짜를 하루 이틀 미루면서 배워야 했던 소변 빼내는 연습, 같은 여자인 간호사에게 받는 교육이었지만 너무도 부끄럽고 수치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그 시간만 되면 마치 제가 고통 속에 나 뒹구는 벌레가 된 심정이었습니다. 결코, 드러내놓고 싶지 않은 인체의 가장 깊은 곳을 동네북이 되어 이 간호사 저 간호사에게 내보여 주며 맡길 수밖에 없었던 처절함.
하지만 저는 퇴원하기 위해서 열심히 배워야 했습니다. 하루빨리 어떻게 든 스스로 해 봐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고 그것만이 이 지옥에서 해방되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수술 후 인공 장루를 참아내지 못해 구토하며 ‘차라리 죽었더라면’ 하는 탄식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중에도 홀로 울면 울었지 결코 사람이 보는 앞에서 입 밖으로 그 울음소리를 토해내지 않았던 저였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서를 묵상할 때 눈물이 제 가슴에서 쏟아져 나왔습니다. 지난 3개월 동안 병원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가슴으로 통곡하면 울었던 건 정말 처음 있는 일이었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 같습니다.
에스겔이 듣고 보았던 하나님. 그분의 영광이 거하는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험난하고 좁았던 것처럼 저 역시 제 몸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보고 찾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인 육체를 내 맘대로 다스리며 지낼 때는 한번도 수치스럽다거나 부끄럽게 여긴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하체를 드러내며 음행한 자처럼 스스로 더럽히는 일을 즐겨 했지요. 그런 지난날의 제 모습에 비교한다면 지금 제게 임한 이 사건은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거칠 것이 없는 일이란 생각에 조금은 의연할 수도 있으련만.
범죄 안에 거할 때 온통 육의 영으로 가득 차, 죄가 죄인 줄도 모르고 은의 찌끼처럼 자신을 땅에 떨어뜨리기를 주저하지 않던 저를 하나님은 엎드러뜨리고, 또 엎드러뜨리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천사가 에스겔을 이끌고 갔듯이 하나님이 육신의 가장 깊은 곳으로 저를 이렇게 이끌어 가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데리고 성소에 이르러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던 내부 깊숙한 곳의 치부를 들여다보게 하십니다. 두레박을 들어 올리는 지금의 제 모습이 더러운 것이 아니고 수치가 아님을 보게 하십니다.
항문을 막고 소변 줄을 막으신 하나님이 '말씀하시매' 한마디 대꾸도 없이 그저 따라 들어갈 수밖에 연약한 저의 모습을 보게 하십니다. 성소와 지성소를 드나들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았던 에스겔처럼 저 또한 허물어진 성전의 돌무더기들을 끌어안으며 다시 새롭게, 새롭게,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는 성전으로 회복되기를 소망합니다.
두레박을 내리는 일, 고단하고 힘들지만, 그날이 이를 때까지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하리라 굳게 다짐해 봅니다. 나의 수치를 바라보게 하신 하나님 감사가 무엇인지 알게 하신 하나님, 평안이 넘치도록 인도하신 하나님, 당신을 감히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출처: http://blog.naver.com/now9191/60019275801
우리들교회 김양재 목사님의 말에 의하면, 이 글의 주인공 혜옥 자매는 서른일곱의 꽃 같은 나이에 직장암 말기 판정이라는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혜옥 자매는 사형선고를 받고도 전혀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 같지 않게 행동했다고 합니다. 수술 후에는 배에 인공항문을 달고 소변을 받아내는 훈련을 받으면서도 자신을 ‘날마다 두레박을 내리는 여자’라고 소개하며 밝게 생활했다고 합니다.
항암 치료 후에 결국 암이 온몸에 전이되어 현대의술로서는 더는 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을 때도, 그녀는 하나님의 성전인 육체를 자기 마음대로 다스리면서도 그것이 부끄러운 죄인 줄도 모르고 살았노라고 고백하며, 날마다 회개의 두레박을 퍼 올리며,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의 샘물을 나누다 천국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출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5&aid=0000225860
사랑하는 여러분, 그날에 우리 주님이 이루실 일을 기대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잠시 고통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고통 후에 우리를 정금과 같이 정결케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의지하던 바알과 같은 우상을 끊어버리게 하실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와 언약을 맺으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알도록 하실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날에 내가 응답하리라.”라고 우리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 회복을 전제로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응답하실 때, 하늘과 땅과 농산물은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될 것이고, 우리는 그것들의 열매를 누리에 될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풍성한 은혜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회복하시고 우리에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어떠한 어려움이 여러분에게 찾아오더라도 여러분이 더욱 하나님을 바라고 의지하십시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도움이 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