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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말을 놀랍게 여겨(2월 2일 주일 오전 예배 설교)
성경 : 누가복음 4:16-30(신약 94)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 위에 임하셨고,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침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광야로 가셔서 40일간 금식하셨고 금식이 끝난 다음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지만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금식하시고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시고 사역을 시작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모든 과정을 공생애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약 33년을 사신 것으로 보고 30세부터 3년 6개월 정도 공생애를 사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3대 사역은 고치시고,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선포하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가장 중요한 핵심을 마귀의 권세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신 것으로 병자를 고치신 것과 축귀 사역은 마귀에게 억눌려 고통당하는 인생들을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 시키신 것입니다.
요한 사도는 요한일서에서 예수님이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증거했습니다.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말씀을 가르치고 제자를 삼으셨습니다. 3년 6개월의 공생애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많은 일들을 하셨지만 그 모든 과정을 통해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제자 삼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제자를 양육해야 합니다. 나 혼자 잘 믿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전도하고 가르쳐서 주님의 제자가 되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침례 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했고 예수님께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전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사역 초기에 예수님의 고향인 나사렛에 가셔서 회당에서 사역하신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나사렛에서의 이야기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이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선입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선입관을 가지고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아무리 뛰어난 능력의 사람이라도 잘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사람은 관상이란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첫 인상이 좋더라, 첫 인상이 안 좋았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사람을 보면서 그 사람의 인상을 보면서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외모를 사람들에게 좋게 보이고 호감을 얻기 위해서 압구정동의 아버지가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을 보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고대에도 그리고 현대에서도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고향을 가지고 사람들 판단하거나 성씨를 가지고 판단하거나 특히 심한 것은 무슨 띠인지를 가지고 판단하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서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띠를 가지고 무슨 띠는 어떻다고 하더라 하는 식을 판단을 하려고 합니다.
띠를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무속신앙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고향과 성씨와 띠를 가지고 판단하거나 선입관을 같은 것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렛에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어린 시절부터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까지 사신 곳입니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았지만 그 은혜의 말을 놀랍게 여기면서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은혜의 말을 듣고 은혜를 받고도 마음으로 깊이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있는데 나사렛 사람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의 말을 놀랍게 여겼지만 예수님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은혜의 말을 놀랍게 여겨”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이 글이 너희에게 응하였느니라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헤롯을 피해서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헤롯이 죽은 뒤에 돌아왔지만 헤롯의 아들 아켈라오가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갈릴리 지방으로 가셔서 나사렛에서 사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은 공생애 초기에 나사렛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16-17절을 보면
4: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4: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예수님은 나사렛에 가셨는데 마침 안식일이었습니다. 안식일은 평소처럼 회당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유대인들은 5세가 되면 회당에 가는 것이 허락되고 13세가 되면 회당에 출석하는 것이 유대인 율법 생활의 일부분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회당의식은 유대 전통에 따르는데 그들은 회당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개인 기도를 합니다. 그 다음 ‘쉐마’(신 6:4-9, 11:13-21)를 고백하고 열 여덟개의 간구로 이루어진 소위 18기도문을 낭송한다고 합니다.
그 후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성경을 낭독하게 되는데 보통 모세오경이 중심된 고정된 성구집(lectionary)의 구절을 읽게 됩니다. 성경은 몇 사람이 교대로 읽는데 아람어로 돌아가면서 읽는 경우도 있고 성경 낭독 후 기도를 하고 설교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설교할 만한 사람이 있을 경우에만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행 13:15).
한편 성경을 낭독할 사람은 미리 정하거나 당일에 원하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기도 하곤 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셔서 회당장이 지정해서 성경을 읽게 된 것인지, 자진해서 성경을 낭독하였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서 안식일에 성경을 낭독하셨습니다.
나사렛 회당은 예수님께서 어릴 때부터 예배를 드린 곳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곳에 모여서 안식일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잘 아는 분들이었고 그들도 예수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려 하심이라. 18-19절을 보면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4: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예수님께서 성경을 봉독하려고 할 때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렸다고 기록하는데 아마도 그날 이사야서를 낭독하는 날이거나 아니면 예수님께서 이사야서를 달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이사야서를 받으신 예수님은 이렇게 즉 18-19절의 말씀이 기록된 대를 찾으셨습니다.
이 구절은 이사야 61:1-2절 입니다.
61: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61: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예수님께서 낭독하신 사 61:1, 2의 말씀은 예수님의 두 가지 사역 곧 선지자적 사역과 메시아적 사역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신18:15, 18에 예언된 바로 ‘그 선지자’로서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이심을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메시아로서 영적으로 눈멀고 포로 된 자들을 죄악에서 건져내어 자유케 하시기 위해오신 분임을 증거 한 것입니다.
본문의 ‘임하셨으니’ 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기름 붓다’, ‘기름 바르다’ 는 뜻이고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 성령이 임했다는 것과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같은 의미로서 제사장, 선지자, 왕들이 기름 부음을 받았듯이 예수님께서도 기름 부음 받으신 분으로서 이러한 직분을 모두 수행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사야 예언의 주인공이신 예수께서는 (1) 성령을 받은 자이며 (2) 복음의 선포자이며 (3) 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메시아의 사명을 감당하는 분이라는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한편 ‘가난한 자’란 순수한 은혜와 자비만을 얻기 위하여 마음을 열어 놓은 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예수님께서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하늘나라를 소유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3)
그리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이란 일차적으로 유대 백성이 바벨론에서 귀환 할 것을 의미하지만 궁극적으로 메시아께서 온 인류를 죄와 사망의 그늘에서 해방시킬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라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눈먼 자의 눈을 밝혀 주실 것을 의미한 것이고, ‘눌린 자에게 자유를’ 이란 표현은 죄의 사망의 노예가 되어 세상의 근심과 걱정에 얽매이며 고통받는 자에게 예수님께서 영혼의 평안과 자유를 주실 것임을 예언한 것입니다.
‘주의 은혜의 해’ 는 ‘희년’을 상징하는 것으로 매 50년 마다 빚진 자들의 빚이 탕감되고 노예들이 해방되고 땅의 경작을 쉬게 하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정하신 해방의 해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 해방(은혜)의 해는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은혜로 죄와 죄의 결과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는 역사의 때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열어주실 하나님 나라의 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구절을 읽으신 다음에 이 글이 너희 귀에 응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0-21절을 보면
4: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4: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을 통해서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것으로 너희는 지금 나를 통해서 이 모든 예언이 성취된 것을 듣고 보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전하시고 고치시고, 자유케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를 얻게 되었고, 질병이 고침을 받고, 모든 억눌림에서 해방되어 하늘의 평강을 누리는 것입니다.
2. 은혜의 말을 놀랍게 여겼습니다.
나사렛 회당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가 놀랐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은혜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은혜의 말씀을 듣고 그들이 놀랍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은혜의 말을 놀랍게 여긴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22절을 보면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회당에서 말씀을 들은 청중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처음에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로운 말’에 대한 청중들의 이러한 반응은 이후로도 예수님이 말씀을 증거 하는 곳에서 계속해서 나타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20:26). 나사렛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긴 것은 예수님의 외모나 행동을 통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은혜로운 말씀’로 인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처음에 긍정적 반응을 보인 청중들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라는 부분에서 적대적인 태도로 돌변한다는 점입니다. 말씀에 은혜를 받았음에도 예수님이 같은 동네 나사렛에 같이 살고 있는 목수 요셉의 아들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갑자기 생각이 바뀐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알고 있고 예수님의 가정 환경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데 예수님이 갑자기 이렇게 놀라운 은혜의 말씀을 전하니까 사람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던 예수님이 목수의 아들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 예수님에 대해서 이상한 시선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목수 요셉의 아들이잖아 이렇게 생각하면서 예수님께 들은 말씀을 금방 잊고 예수님에 대해서 비아냥 거리는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선입관을 버리지 않으면 우리도 사람을 이렇게 대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지금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인지는 생각하지 않고 과거에 내가 알던 사람으로 생각하고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네 고향에서도 행하라(여기서도 해봐라) 23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용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가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예수님께서 메시아 되심을 입증하기 위해 가버나움과 다른 곳에서 행하신 이적들을 여기 나사렛에서도 해보라고 사람들이 요청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다른 지역에서 기적을 행하신 것처럼 지금 우리 앞에서도 기적을 보여달라고 말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은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정관념으로 가난한 목수 요셉 집안에 대한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예수님에 대해서도 자신들과 다를 것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 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서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4절을 보면 “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지만 사람들은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고향에서 선지자들이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큰 일을 성취한 사람이 자기 고향에서는 오히려 냉대받는다는 의미로 쓰여진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성공한 것을 못 마땅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자라난 고향에서 큰 일을 성취한 사람들은 오히려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 사람을 어릴 때부터 잘 알고 있는데 로 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해서든 깍아 내리려고 하는 경향이 있고 예수님에 대해서도 그런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3. 은혜를 받은 사람과 거부한 사람
나사렛 사람들의 반응을 보신 예수님은 은혜와 축복을 받을 사람과 은혜와 축복을 스스로 거부한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은혜와 축복을 받은 사람으로 먼저 엘리야 시대에 사렙다 과부를 들었습니다. 25-26절을 보면
4: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4:26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예수님은 먼저 엘리야 시대에 엘리야가 비가 오지 않기를 구하고 아합을 피해 숨어지낼 때 하나님께서 시돈 땅 사렙다 과부에게 보내셨고 그는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엘리야의 말에 순종함으로 밀과 기름이 마르지 않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 시대 수많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백성들 중에서 엘리야를 자기 집에 모신 사람은 없었고 이방인지만 엘리야를 영접하고 순종한 사렙다 여인이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고, 믿음으로 받아 들일 때 은혜와 복을 받습니다.
계속해서 엘리사 시대에 나아만을 들었습니다. 27절을 보면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
예수님은 엘리야 시대의 사렙다 여인을 이야기 하고 곧 바로 엘리사 시대에 한센씨 병 환자였던 나아만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는 수리아(아람) 사람으로 아람 왕의 군대 장관이었는데 한센씨 병에 걸렸습니다.
나아만은 자기 집에 있는 이스라엘에서 잡아온 하녀의 말을 듣고 엘리사에게 갔습니다. 엘리사가 나아만을 만나보지도 않고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을 씻으라고 했을 때 화가 나서 가려고 했지만 나아만의 하인들의 말을 듣고 가서 씻으매 나았습니다. 엘리사의 말에 순종함으로 고침을 받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사렛 사람들은 은혜를 거부했습니다. 28-30절 까지를 보면
4:28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
4:29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4:30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예수님께서 사렙다 여인과 나아만의 이야기를 하자 그들은 다 크게 화를 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동네 밖으로 쫓아내고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려고 했습니다. 분명히 은혜의 말을 들었지만 그 말씀으로 은혜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우리는 은혜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 은혜를 받기 위해 마음을 열고, 귀를 열고, 편견을 버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서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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