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나 완도를 가려고 버스를 타고 달리다보면 매번 높다랗게 솟구친 커다랗고 하얀 바위들이 눈길을 사로잡아 오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그러나 높은 바위산은 등산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생각을 많이 할 수 밖에 없다. 그래 큰마음을 먹고 관광버스에 올라 영암으로 달려갈 무렵 밖은 애석하게도 늦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주차장에서 빛나는 월출산은 웅장한 바위들이 칸칸이 자리 잡아 멋과 위용을 과시하고 있으나 세찬 비가 쏟아지는 바위산은 등산이 너무 위험하다고 해서 눈물을 머금고 포기한 뒤 대신 둘레 길을 걷기로 하였다.
길옆으로는 파아란 대나무가 우거져 비바람에 싱싱하게 나부끼고 계곡에는 물이 불어나 세차게 흐르고 있다. 곳곳에 솟아있는 푸른 소나무들은 빗물에 머리를 곱게 씻다가 반갑게 맞아주고 길에는 떨어진 낙엽들이 굴러다녔다. 개울을 지나 작은 야산을 넘어서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축제용 국화들이 잘 정돈되어 자연에서 노랑노랑 피어나고 있다. 평평한 산자락에 길이가 수십 미터나 널브러져 국화들이 노릇노릇, 알록달록, 울긋불긋 각각의 모양과 온갖 색깔을 달리한 채 예술가의 바람대로 멋지게 자라나서 그 오묘한 향취가 바람이 몰려올 때마다 야산을 촉촉하게 적시며 향긋하게 자연으로 퍼져 나아간다. 이 세상에 태어나 여러 국화 축제를 돌아보았지만 영암축제 전시국화의 분량과 멋드러지게 가꾼 국화 모습들이 이처럼 아름답게 전시된 곳은 처음이라 연신 탄성을 지르며 빗속에서도 스마트폰에 그 고운 모습을 차곡차곡 담느라 시간의 흐름도 채 느끼지 못했다. 곁에서는 우산을 타고 주룩주룩 내리는 빗물이 낙엽을 흘려보내고 야산 밑으로는 집집마다 대봉감이 빠알갛게 익으며 울긋불긋 하늘을 수놓고 있다.
한 달 후 겨울이 막 시작될 무렵 해가 이글이글 솟아오를 때 지난 번 미완성 산행이 아쉬워 배낭을 메고 회원들과 월출산으로 간다. 그런데 아기자기 잘 꾸며진 영암읍(바위를 맞이하는 읍)은 가까이에 남쪽으로 우뚝우뚝 웅장하고 멋있게 솟아오른 바위산을 품은 신이 내린 축복의 보물 덩어리처럼 보였다. 산기슭을 지나자 길에는 커다란 바위들이 나타나고 경사가 급해지자 호흡이 가빠지고 다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큰 바위가 나타나면 준비된 밧줄을 잡고 조금씩 당기며 조심조심 위로 올라간다. 바위를 타고 숨 가쁘게 오를 때마다 가파른 벼랑길이 아찔할 정도로 널려있다. 12월 초라 땀이 조금 날 때마다 세찬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 시원함에 콧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온다. 아마 조금 더운 날 에 이 산을 왔다면 비탈길이 많아 땀을 너무 흘려 등산을 포기하고 도로 내려갔을 것 같다. 산 중턱에서 잠시 쉬며 산 밑을 내려다본다. 산 전체가 온통 거대한 바위들로 울퉁불퉁 놓여있어 마치 전국의 바위들이 커다란 집합체를 이루고 모여 든 것 같다. 작은 금강산이나 설악산이 만나 아기자기 수를 놓은 듯 바위가 만들어낸 자연의 경치가 너무 예쁘다. 산 밑의 벼랑길은 왜 그리 가파른지 바라만 볼수록 두려움에 몸이 오싹오싹 떨려오고 소나무 사이로 머얼리 비쳐오는 영암시내가 그림책을 펼쳐 놓은 듯 가물가물 모습을 드러낸다. 스마트폰을 살짝 꺼내 자연의 오묘한 바위며 알록달록 등산객들의 멋스러운 얼굴과 천길 낭떠러지 아래에 위치한 시내를 탐스럽게 화면에 담자 따스한 햇살이 포근하게 안겨온다. 산 건너편에는 붉은 다리가 출렁출렁 계곡 사이에 가로놓여 사람들이 조심조심 건너기 바쁘고 멀리서 높다란 계곡을 타고 오르는 사람들은 개미처럼 작은 모습으로 밧줄을 잡고 바위를 건너느라 살금살금 운치가 있다.
시간이 한참 흘러 천황봉 가까이 다가오자 산길이 두 갈래로 나뉘며 바람이 거세지고 싸늘한 추위가 봉우리에 숨었다 갑자기 몰려온다. 간밤에 내린 하얀 눈은 철 계단에 차곡차곡 쌓여 미끄럽게 발목을 잡아당겨 조심조심 발을 움직인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난간을 꼭 잡고 계단을 오를 때마다 종아리가 야금야금 아파오며 숨결이 높아지고 발이 자꾸만 미끄러진다. 작은 굴을 지날 때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걸음을 옮길 때마다 고드름이 알알이 매달려 한 개를 따서 깨물자 입안이 싸늘해진다. 뒤로 돌자 정상인 천황봉이 금세 손에 잡힐 듯 다가왔고 등산객들이 다수 모여 사진 찍느라 바쁘다. 온갖 아름다운 자태가 연출되고 여기저기서 어여쁜 모습으로 모락모락 피어난다. 훈훈한 이야기는 봉우리 곳곳에서 샘물처럼 솟아나 맴돌다 연기처럼 조용히 사라진다. 근처 나무들마다 눈꽃이 새하얗게 피어나 산마루를 곱게곱게 물들이고 있다.
귀로는 사잇길로 돌아 급한 벼랑길을 천천히 내려 갈 때 갑자기 식욕을 느껴 좁지만 평탄한 땅에 회원들과 자리를 잡는다. 저마다 가져온 밥과 반찬을 든든하게 나누어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자 그동안 급한 바위산을 오르느라 너무 힘들었던 몸과 추위는 눈 녹듯 사라지고 하산길이 추억의 녹색길로 힘차게 변한다. 내려오다 철 계단을 몇 번 지나고 산모퉁이를 돌며 즐겁게 시간을 보낼 때 참나무는 잎을 흔들며 우리를 축하해 맞아주는 듯 하고 잣나무는 싱싱한 가지를 쭉쭉 뻗으며 건강미를 과시하고 있다. 그래서 이젠 쉬운 곳만 남은 줄 알고 비탈 아래로 내려가려고 할 때 갑자기 일직선 급경사가 나타나 150m를 헐떡거리며 한번 쉬고 힘들게 올라가야 했다. 그런데 고개를 막 넘어 섰을 때 힘든 보상을 해주려는 듯 탄성과 함께 미소가 피어올랐다. 고개 너머로는 신천지가 펼쳐지려는 듯 계곡 건너편에 바위산들이 여러 겹 줄줄이 나타나며 바람이 불때마다 작은 금강산이 산들산들 자태를 뽐내고 있다. 아! 이 멋진 모습을 군민들이 등산객에게 꼬옥 보여주려고 고통을 잠시 주었다고 생각을 하니 그 고마움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밑으로는 산허리에 커다란 바위와 바위 사이에 길게 놓여 진 붉은 흔들다리를 회원들과 아슬아슬 조마조마 애태우며 건너려니 절벽 낭떠러지의 절경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좁다란 산을 천천히 내려가며 일직선으로 된 수백 미터의 급경사 벼랑길에 놀라고, 밑에서 헐떡거리며 올라오는 사람들의 힘든 표정을 보노라면 고통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바위틈 사이로 흐르는 맑은 골짜기 물을 페트병에 담아 홀짝홀짝 마시자 산행 길에서의 어려움이 싹 가시며 마음이 상쾌해져 즐거운 트로트 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산을 거의 내려왔을 때 그루터기에는 영암 출신 유명한 가수 ‘하 춘화’의 ‘영암 아리랑’ 노랫말 비석이 반짝반짝 빛나며 눈길을 끈다.
주차장에는 태양이 서쪽 하늘에 높이 떠 남녘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춘다. 많은 회원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왁자지껄 떠들어대고, 언제나 씩씩하고 듬직한 버스는 넉넉한 품으로 우리들을 반갑게 맞아준다. 잠시 후 등산객들은 관광버스에 올라 아담하고 깨끗한 영암시내를 물 흐르듯 천천히 빠져나오며 달이 뜨면 더 잘 보인다는 월출산에 작별의 두 손을 계속 흔듭니다.
첫댓글 함께 월출산 여행 잘했습니다.
글만 읽어도 힘이 듭니다.
잘 놀다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