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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무너지는 남천관(南天關)
낙헌지는 그 길로 거소인 초옥으로 되돌아갔다.
그는 지옥제일검이 독목수라와 함께 나눈 이야기를 뻔히 들었으면서도 여전히 웃는 표정이었다.
수중에 단약이 있기 때문이었다.
"헤헤… 이것만 있으니 아버님의 아픔이 훨씬 덜할 거야."
낙헌지는 사발을 맑은 물을 떠서 낙검엽 노인에게 남천신단(南天神丹)이라 불리는 영단을 복용시켰다.
"으음…!"
낙검엽 노인은 단약을 먹자 훨씬 편안함을 느끼는지 콧소리를 내며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행이야. 푹 자고 나면 아버지는 일어나실 거야."
낙헌지는 편안한 마음이 되어 침상 아래 앉아 도끼자루를 다듬는 일에 열중했다.
그가 초옥으로 돌아오고 대략 밥 한끼 먹을 시각이 지났다.
"허엄…!"
방 밖에서 낯익은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헌지 있느냐?"
석옥 앞에서 보았던 독목수라가 초옥 앞에 나타나 낙헌지를 불렀다.
"헤헤…둘째 도련님이시군요?"
낙헌지는 석옥 앞에서의 일을 까맣게 잊은 듯 웃는 얼굴을 하고 방밖으로 나가 땅에 꿇어앉았다.
'이 놈이 정말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체 하는 것일까?
둘 중 어느 하나이든 마찬가지이다. 후환을 없애는 것이 상책이다.'
독목수라는 비웃음을 흘리다가 점잖게 말했다.
"관주의 명이 계셨다.
"무엇인가요?"
"너의 부자를 하산시키라는 명이셨다."
"어디로요?"
독목수라는 뒷짐을 쥐며 제법 점잖게 말했다.
"여기서 십 리 떨어진 숲에 아름다운 누각이 있지 않느냐?
낙 노인이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하라는 관주의 명이시니
곧 짐을 싸 나를 따라 그곳으로 가자. 내 친히 너희 부자를 바래다 주겠다."
"헤헤…그곳은 아주 좋은 곳이지요.
아버님을 그곳으로 모실 수 있다면 아버님의 병환도 차도가 있을 것입니다."
낙헌지는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독목수라는 냉혹한 미소를 지으며 눈빛을 반짝였다.
'좋아할 것 없다. 그곳으로 가기 전 저승 구경을 하게 될 테니까.
흐흐…남천 늙은이가 나의 신분이 지옥제사검(地獄第四劍)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나를 제자로만 알고 있으니 말이다.'
독목수라는 조금 전 남천신군과 헤어지며 한 가지 명을 받았었다.
― 낙씨 부자를 하산시키도록 해라.
지옥제일검이 나타날 때 자칫 살신의 화를 부를 수도 있다.
미리 이 위험한 곳을 떠나게 하는 것이 무림인으로서의 도리이리라.
남천신군은 낙헌지와 낙검엽 부자의 안위를 걱정해 그런 명을 내리고 곧 자신의 거소로 돌아갔다.
독목수라는 낙헌지를 죽일 기회를 어떻게 찾을까 궁리하던 차에
그런 명을 받게 되자 연신 쾌재를 부르며 곧바로 낙헌지를 찾아온 것이다.
얼마 후, 낙헌지는 낙검엽 노인을 이불로 둘둘 싸 등에 업은 다음
독목수라를 따라 남천관 경내를 빠져나가게 되었다.
남천관 안에는 원래 백여 명이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이날 새벽부터 낯선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소림분원(少林分院), 개방( ), 그리고 근처 잠산파(潛山派)의 고수들이었다.
그들은 남천관에 지옥첩이 떨어졌다는 말에 놀라 급히 달려와
남천관 고수들과 경내를 지키는 중이었다.
그들의 옷자락에는 하나같이 명예로운 글귀가 수놓아져 있었다.
〈 正義武盟(정의무맹) 〉
십 년 전, 백의검제(白衣劍帝)를 맹주로 하여 결성된 무림맹의 맹도임을 밝히는 표식이었다.
무맹은 당금천하의 반 정도를 포함하고 있는 아주 거대한 조직이다.
소림(少林), 무당(武當), 화산(華山), 아미(峨嵋), 공동( )의 오대거파(五大巨派)가
검보를 중심으로 모임 맹방이 바로 무맹이었고,
남천관도 무맹에 든 지 오래였다.
무맹의 분타는 천하에 산재했고 그 연락은 개방이 맞고 있었다.
무맹이 조직된 데에는 놀랄 만한 사연이 있었다.
전설이 무너졌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 대무신국에 개미 새끼 한 마리 남지 않는 혈겁(血劫)이 벌어졌다.
그 흉수는 바로 서장의 칠마전이다!
머나먼 서역에서 들려온 소문이 바로 무림맹이 생겨나게 한 원동력이었다.
대무신국은 전설적인 곳인데 칠마전이란 흉마 집단에 의해 산산이 박살나 버렸다
하니 어찌 놀랍지 않겠는가?
중원고수들은 그 일로 인해 관심을 서쪽으로 돌리게 되었고
그 결과 서장의 칠마전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급히 무림맹을 만들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아쉬운 것은 무림맹이 그 규모의 거대함에 비해 제 위력을 다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 이유는 맹주로 임명된 백의검제가 수년째 의문리에 실종된 탓이었다.
무림맹은 맹주가 공석인 사이 열여덟 명 장로들의 주관으로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그 바람에 일 처리가 아주 늦었다.
지옥제일검이 판을 치고 다닐 수 있는 것도 거대한 무맹에 그런 허점이 있어서였다.
무맹은 잠재력이 거대한 방파였다.
누구든 그 힘을 다 발휘하게 하는 날이면 지옥제일검이 이끄는 지옥궁 무리가
지금같이 판을 치지는 못할 것이다.
세 사람은 남천관의 삼엄한 경계 사이를 지나쳤다.
바보스럽기만 한 낙헌지는 독목수라가 무슨 꿍꿍이를 하고 있는지 눈치 채지 못하고
낙 노인을 업고 독목수라의 뒤를 따라갔다.
남천관의 경내를 벗어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암도(暗道)를 통하면 아주 쉽게 남천광을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독목수라는 주위를 슬슬 둘러보며 걷다가
주위가 아주 조용하고 지형이 험하다는 것을 둘러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흐흐…!"
그가 잔혹한 웃음을 흘리자 뒤쫓아오던 낙헌지가 갑자기 얼굴 근육을 굳혔다.
그의 웃음소리에 실려 있는 살기를 본능적으로 느껴서였다.
'피해야 한다!'
낙헌지가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몸을 멈칫하자 독목수라가 바로 곁에 다가섰다.
그의 눈알에서 흘러나오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헌지야, 네게 물을 것이 있다."
"무… 무엇이온지요?"
"아까 석옥 앞에서 대사형의 모습을 보았느냐? 보지 못하였느냐?"
"보… 보았습니다
. 석소관주(石小觀主)께서 둘째 도련님과 말하는 것을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낙헌지는 심중에 비밀이 없는 청년이었다.
그가 사실대로 말하자 독목수라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그것을 알고서도 관주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단 말이냐?"
"그… 그렇습니까? 그것이 이야기 해야 할 일이었습니까?"
낙헌지는 목을 움츠리며 다소 주눅 든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 이 멍청한 놈아!"
독목수라가 싸늘히 외치며 돌연 낙헌지의 앞가슴에 일장을 가했다.
펑―!
낙헌지의 몸뚱이가 실 끊어진 연같이 훌훌 날아올랐다.
그의 등에 업혀 있던 낙 노인이 땅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우하하… 정말 어리석은 놈이군."
독목수라는 낙헌지가 훌훌 날아가 숲속으로 자취를 감추자
득의의 대소를 터뜨리고는 낙 노인 곁으로 다가갔다.
"크으윽…!"
낙 노인은 땅으로 떨어지는 순간 정신을 잃고 있었다.
"흐흐… 늙은이를 공양해 줄 사람은 이제 하늘 아래 단 한 사람도 없네.
그러니 이대로 죽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일 것이네."
독목수라는 천천히 말하다가 낙 노인의 머리에 무형강기(無形 氣)를 발출해 냈다.
낙 노인은 두개골이 으스러져 뇌수를 뿌리며 한 마디 비명소리도 없이 저승으로 떠나야 했다.
그냥 두어도 앞으로 닷새를 넘기지 못하고 죽을 노인에게
그토록 악랄한 살수를 쓰는 독목수라는 가히 인면수심(人面獸心)이었다.
"으아아―!"
짐승의 부르짖음과 함께 독목수라를 향해 하나의 흑영이 무섭게 돌진해 왔다.
일 장을 맞고 안으로 숲으로 날아갔던 낙헌지가 죽지 않고 되살아나 미친 듯이 달려나오는 것이었다.
"이… 이 놈이?"
독목수라는 낙헌지의 광폭한 표정에 은근히 겁을 집어먹고 우수에 혼신 공력을 일으켰다.
"이 나쁜 놈―!"
낙헌지는 신법을 시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번개같이 허공을 갈라 그의 몸뚱이에 자신을 부딪혔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독목수라가 오공으로 피를 흘리며 뒤로 다섯 걸음 물러났다.
"으윽… 무… 무쇠 같은 놈이군."
독목수라는 크게 휘청이며 간신히 신형을 바로잡았다.
"죽어라!"
낙헌지는 발작적으로 외치며 그를 향해 쌍장을 휘둘렀다
. 두 주먹이 제멋대로 휘둘러지는 가운데 수천수만 개의 장영(掌影)이 만들어졌다.
그것은 독목수라가 흉내도 낼 수 없는 빠른 솜씨였다.
"허억―?"
독목수라는 기절초풍할 듯 놀라 피하려다가 앞가슴이 쪼개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되었다.
콰아앙―!
"크아악!"
평소 제대로 펴지 못한 오른팔이 쭉 뻗어나가며 독목수라의 앞가슴에 혈인(血印) 하나를 찍은 것이다.
독목수라는 피분수를 뿜으며 나동그라졌다.
낙헌지는 눈물을 주르르 쏟으며 낙 노인 곁으로 다가갔다.
"아… 아버지!"
낙헌지의 우는 모습은 일곱 살 어린 아이처럼 애처로워 보였다.
그는 머리통이 산산이 으스러진 낙 노인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으흐흑…!"
낙헌지의 울음소리가 숲을 떠들썩하게 할 때였다.
'으으…죽일 놈! 박살내 버리겠다!'
낙헌지의 괴력에 피투성이가 되어 날아올랐던 독목수라가
발걸음 소리를 죽이며 낙헌지 뒤쪽으로 다가섰다.
낙헌지는 그가 다가서는 지도 모르고 낙 노인의 시체 곁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독목수라는 낙헌지에게서 뒤에 이르러 혼신 공력으로 낙헌지의 등판을 냅다 후려쳤다.
"뒈져라!"
우레소리와 함께 강력한 열류(熱流)가 낙헌지의 등판에 정확히 내리꽂혔다.
퍼엉―!
낙헌지는 몸이 불꽃에 타버리는 듯한 고통 속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그는 쓰러져 죽지 않았다.
"으으윽!"
낙헌지는 전신으로 불꽃으로 뒤덮이는 와중에도 벌떡 일어섰다.
독목수라는 부르르 치를 떨었다.
"으으… 태양수(太陽手) 아래 살아나는 놈이 있단 말인가?
이번에는 현음지(玄陰指)로 정말 숨통을 끊어 주겠다."
독목수라는 악을 쓰다가 낙헌지의 몸에 십지(十指)를 잇따라 쳐냈다.
슈슈슉―!
그리 크지 않은 파공성과 함께 한기(寒氣)가 일어났다.
근처 오장 이내가 빙판으로 화하고 설화(雪花)가 난무하는 가운데
낙헌지의 옷에 구멍 열 개가 뚫렸다.
"아악―!"
낙헌지가 피를 쏟으며 나뒹굴자 독목수라는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으… 정말 무서운 놈이다. 금강불괴지신에 버금갈 무쇠덩이였다."
독목수라는 다시 눈을 부릅떴다.
"뭐… 뭐야? 아직도 죽지 않았단 말인가?"
낙헌지는 다시 일어설 듯 몸을 꿈틀꿈틀거렸다.
"이… 이 놈이 사람인가? 귀신인가?"
독목수라는 이를 부득부득 갈고는 검을 뽑아 들었다.
검광이 일어나는 순간 숲 저쪽에서 파공성이 들려왔다.
금의인영 하나와 십여 개의 황의인영이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
'응, 저 계집은…?'
독목수라는 금의인영을 보자 등골이 오싹해져 그대로 검을 떨구며 땅으로 나뒹굴었다.
"크윽, 지… 지옥제일검이다―!"
독목수라의 부르짖음 소리가 여운을 맺기 전
금빛 경장 걸친 미소녀(美少女) 하나가 독목수라 곁으로 사뿐히 떨어져 내렸다.
진정 아름답게 생긴 여인이었다.
전신에 서린 미태는 우아하기 짝이 없고 요염하기도 천하를 기울일 정도였다.
"지옥제일검은 어디로 갔죠?"
금의소녀는 독목수라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자 부축해 일으키며 물었다.
독목수라는 짐짓 혼절한 체하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으음… 한 발 늦었군."
금의소녀는 독목수라가 지옥제일검에게 패해 쓰러진 직후라 여기며
발을 동동 구르며 분해했다.
"천후사에 가서는 시체나 잔뜩 구경하고 단 한 사람의 생존자 천후협(天候俠)만을 구했는데…
아…이곳 남천관도 천후사에서 전철을 밟는 것인가?
아버님이 전수하신 신검술로 지옥궁의 악도들을 벨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말겠다."
금의미소녀는 강호에 이름난 여협이었다.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劍)으로 불리는 백의검제(白衣劍帝) 이궁(李宮)의 둘째딸로
금의검선자(金衣劍仙子) 이약란(李諾蘭)이 바로 그녀였다.
이약란은 몸이 약해 무공을 익히지 못하는 그녀의 배 다른 언니
청의병선사(靑衣病仙子)와 함께 검보이선자(劍堡二仙子)로 불린다.
이약란은 검보백발검(劍堡百八劍)의 총수이기도 했다.
그녀의 무공은 백의검제가 친히 기른 검룡(劍龍)이라는 검보의 젊은 기린아보다
오히려 두 배 강하다고 했다.
미모 또한 빼어나 이복 언니 청의병선사와 독랑자(毒娘子)라는 악녀(惡女)와 함께
무림삼미(武林三美)의 하나였다.
게다가 지혜의 출중함은 여중제갈이기도 했다.
그녀에게 뛰어난 지혜를 가르친 사람은 백의검제도 아니었고,
정파의 이인도 아닌 그녀의 배 다른 언니 청의병선자였다.
청의병선자는 이약란이 따르지 못할 정도로 빼어난 재간을 갖고 있었으나
아쉽게도 오음절맥(五陰絶脈)을 타고나 단명할 운세였다.
무공을 익힌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고 연약해 검보 밖으로 나간 일이
평생에 몇 차례밖에 없을 정도였다.
그녀가 스무 살 나이까지 살아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의 아버지 백의검제가 어디선가 인형설삼(人形雪蔘) 한 뿌리를 구해다 먹혔기 때문이었다.
― 인형설삼을 먹으면 아주 좋아질 것이다.
아비는 더 좋은 영약을 찾아 강호로 나갈 것이다. 내가 돌아올 날을 기다리고 있거라.
백의검제는 이런 말을 한 후 강호에서 실종되었다
. 딸을 위한 지극한 정성이 그를 어떤 남모를 사지(死地)로 몰아넣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여간 금의검선자는 천하에서 가장 현명한 여인을 언니로 둔 덕에
지금은 무맹의 소맹주(小盟主)라는 실로 놀라운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이 사람도 남천관 사람인가?"
금의검선자가 고개를 갸우뚱할 때 그녀와 함께 천주봉 위로 오르던 황의무사들이
뒤늦게 속속 떨어져 내렸다.
그들은 검보 일백팔검에 속하고 있는 무림맹의 정예 고수들이었다.
하나같이 놀라운 고수들이고 의협심이 아주 강한 사람들이었다.
검보의 기둥 두 개 중 하나가 바로 일백팔검이었다.
나머지 기둥 하나는 흑의검웅(黑衣劍雄)이라는 오순 노인이 이끄는
서른세 명의 절세고수들이었다.
흑의검웅은 백의검제의 인격에 감동을 받아 휘하 부하들을 모두 이끌고
십 년 전 검보에 투신한 사람이었다
. 과거의 신분은 완벽한 비밀이었다.
그가 이끄는 삼십삼검의 무공은 검보 백팔웅보다도 오히려 막강했다.
이들은 검보를 떠나지 않는다는 전통을 갖고 있고
그 전통은 이제 단 한 번도 깨어 있지 않았다.
만일 그들이 명예를 취해 무림을 종횡했다면 금의검선자가 여인의 몸으로 부하들을 이끌고
강호의 대소사를 처리하러 뛰어다니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가씨, 지옥제일검의 짓입니까?"
검보 무사들은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한발 늦은 듯하다. 하지만 남천관 쪽에서 아무런 소란이 없는 것으로 보아
남천관은 무사한 것 같구나.
이들을 데리고 남천관으로 들어가자.
남천신군이 우리들을 학수고대하고 계실 것이다."
금의검선자는 여인보다는 소년다웠다.
씩씩하게 외치는 모습이 또 한편으로는 아주 아름답고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아버님은 어디 계시기에 나타나시지 않으실까?
만에 하나 남천관이 멸망한다면 다음 차례는 검보일 텐데…'
금의검선자는 얼굴을 희게 물들이며 한동안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독목수라는 황의무사 중 하나가 먹여 주는 영단을 먹고 겨우 정신을 차리는 시늉을 했다.
낙헌지는 한참을 괴로워하다가 언제부터인가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의 쓰러진 모습은 아주 참담했다.
피범벅이가 된 몸뚱이와 봉두난발한 머리,
그리고 원한을 이기지 못하고 으스러져라 쥐어져 있는 두 주먹이 그의 심중을 헤아리게 했다.
낙 노인이 죽은 데 대한 원한이 가슴 깊이 사무친 것이다.
낙헌지와 독목수라는 금의검선자와 부하들의 호위를 받으며
얼마 전 암도를 통해 빠져나왔던 남천관 안으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저 놈이 사흘 동안만 잠자코 있으며 된다. 그 이전에 깨어나면 만사가 틀어질 것이다.'
독목수라는 간간이 낙헌지 쪽을 바라보며 벌레 씹은 표정이 되었다.
'놈이 거사 후에야 정신을 차려야 할 텐데…!'
독목수라의 외눈에서 흘러나오는 사악한 빛은 다른 사람이 눈치 채기 힘든 신비를 지니고 있었다.
'빌어먹을… 하인 따위에게 두려움을 느껴야 하다니…
낙헌지란 놈 때문에 대사형의 노여움을 사게 되면 살아날 수 없다
. 놈이 사흘 내내 잠자야만 하는데…!'
독목수라가 가슴을 졸이는 사이 일행은 남천관 안으로 들게 되었다.
남천신군은 제자 독목수라가 피범벅이되어 돌아오자 까무러칠 듯 놀라 급히 캐물었다.
"어… 어인 일이냐?"
"사부님! 지옥제일검으로 보이는 놈이 나타났습니다
. 낙 노인이 놈의 일장에 머리가 박살나 죽고 낙헌지는 이 지경이 되었습니다.
제자는 놈을 쫓으려 했으나… 놈의 무공이 하도 강해 삼초를 받지 못하고…"
독목수라는 분한 듯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의 눈물이 가식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사람은 정신을 잃고 있는 낙헌지 하나뿐이었다.
"아…혈겁의 조짐이 드디어 시작되는구나.
지옥제일검이 완산에 와 유유히 돌아다니다니 정녕 큰일이로다 큰일이야!"
도가제일고수 남천신군이 평생을 통해 지금같이 낙담해 보기는 단 한 번이었다.
삼 년 전 대무신국이 칠마전에 의해 멸망했다는 소문이
그를 암담하게 한 이후 가장 큰 절망이었다.
남천관은 곧 고요해졌다.
낙헌지는 남천신군의 품에 안겨 그의 거처 안으로 들어가 치료를 받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곧 습격할 지옥제일검에 대한 방비를 하기에 바빠 매복을 서둘렀다.
***
낙헌지는 괴이한 악몽(惡夢)을 꾸다가 정신을 되찾게 되었다.
"나… 나가서는 안 돼!"
낙헌지는 크게 외치며 갑자기 눈을 떴다.
낯선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낙헌지가 누워 있는 곳은 남천림(南天林) 안 남천신군의 처소였다.
"……?"
낙헌지는 몸이 뻐근함을 느끼다가
한순간 낙 노인이 머리가 으스러져 죽은 것을 기억하고 눈에 핏발을 일으켰다.
"독… 독목수라! 그… 그 놈이 아버지를 죽였다.
나… 나는 그 놈을 죽여야만 한다. 양아버지의 원수는 내 손으로 갚아야 한다."
낙헌지의 목소리는 이제 더듬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의 눈에서는 혜광(慧光)이 흘러나오고 얼굴 표정도 전과 같이 멍청하지 않았다.
낙헌지는 사 년 만에 가장 밝은 마음 상태에 이르러 있었다.
독목수라가 그의 등판을 강타하며 큰 충격을 입힌 것이 머리를 울리게 해
고질병이던 혼미스러움을 크게 감소시켰던 것이다.
독목수라는 화타도 하지 못할 일을 할 셈이었다.
낙헌지는 과거의 그와는 다른 총기 어린 눈빛을 흘리며 주위를 살피다가 침상 아래로 내려섰다.
배가 몹시 고팠다. 혼절한 지 수일이 지난 후임에 틀림없었다.
"독목수라를 찾아내 죽여야 한다."
낙헌지는 복수를 다짐하며 무작정 방 안을 걸어나갔다.
밖은 삼경(三更) 정도인 듯 아주 어두웠다
. 그러나 낙헌지는 그 어둠을 대낮보다 훤히 꿰뚫어볼 수 있었다.
"이곳은 남천림 안이군. 내가 왜 여기 누워 있었을까?
아, 쓰러진 나를 관주께서 구해주신 모양이구나."
낙헌지가 중얼거리며 걸음을 옮길 때였다.
파공성과 함께 그의 몸 앞으로 떨어져 내리는 남천관의 호위 무사 하나가 있었다.
"하하…역시 강한 근골이군.
열흘은 자야 정신을 차릴 것이라는 사람이 많았는데 사흘만에 완쾌되었으니 말이다."
반가이 말하는 사람은 남천추운(南天追雲)이라는 별호를 갖고 있는 남천관의 젊은 고수였다.
"하지만 더 쉬는 것이 좋네. 어서 안으로 들어가게."
남천추운이 웃으며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독목수라는 어디 있습니까!"
낙헌지가 굳은 얼굴로 갑자기 묻자 남천추운이 한동안 얼빠진 표정이 되었다.
낙헌지의 목소리가 너무나 또렷하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으음…정말 놀랍군. 죽다 살아나더니 더욱 총명해 보이는군. 이 녀석은 정말 모를 놈이다.'
남천추운은 고개를 휘휘 내두르다가 손을 쳐들었다.
"취의정 근처에 계실 것이네. 그 분을 찾는 이유가 무엇인가?"
"죽이려고요!"
낙헌지가 무뚝뚝하게 말하자 남천추운은 기가 막히다는 듯 입을 딱 벌렸다.
"죽… 죽이다니? 네… 네가 지금 맨 정신으로 하는 소리냐?
멍청해졌다 겨우 나아 총명해진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로구나."
남천추운은 그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듯 급히 다가서며 갑자기 손을 휘저었다.
우회금룡(迂廻擒龍)의 금나수(擒拿手)가 시전되며
낙헌지의 완맥이 남천추운의 손아귀 안에 쥐어졌다.
'한참 자게 해야겠다.'
남천추운은 낙헌지의 완맥을 잡은 직후 막강한 힘을
낙헌지의 심맥(心脈) 안으로 흘려 넣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으흑―!"
남천추운의 얼굴이 새까맣게 변했다.
낙헌지의 몸 안에다 진기를 흘려 넣는 순간
낙헌지의 몸 안에서 자신의 공력을 십 배나 능가하는 막강한 반탄력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크으으…!"
남천추운은 오장육부가 으스러지는 고통 속에 그대로 나뒹굴었다.
그는 큰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다가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죽… 죽었어!"
낙헌지가 부르르 떨며 몸을 휘청였다.
'왜 죽었을까? 갑자기 왜 죽는단 말인가?'
낙헌지는 남천추운이 즉사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신지는 회복되었어도 아직 과거를 돌이킬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사악한 장소성을 듣게 되었다.
"우우우―!"
천주봉을 들썩이는 장소성은 남천관의 취의정 근처에 이루어져 있는
울창한 송백림(松柏林) 가운데에서 흘러나왔다.
장소성과 함께 남천관의 건물들이 뒤흔들렸고 나무에서 낙엽이 우수수 떨어졌다.
"지옥제일검이다…!"
"나타났다! 모두 지키고 있는 자리를 떠나지 마라…!"
남천관 안이 고함소리로 뒤흔들리는 가운데
사람들이 어둠을 뚫고 달리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
남천관의 취의정.
남천관주 남천신군이 도관(道冠)을 쓰고 은불진(銀拂塵)을 든 차림으로 태사의에 앉아 있었다.
그 뒤로 남천옥룡(南天玉龍) 석진영(石眞英)이 시립해 있고,
좌우로는 무림맹의 고수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그 중에 금의검선자를 비롯한 검보 고수들의 모습도 보였다.
취의정 안의 사람들은 장소성 소리가 나자 눈을 부릅뜨고 무엇이 나타나는가를 유심히 살폈다.
"드디어 왔군."
남천신군의 입술이 파리해졌다.
'천후존자는 빈도보다 고수였다.
그가 지옥제일검을 막지 못한 이상 빈도도 그를 막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놈이 노리는 것은 빈도의 목이 아닐 것이다.'
그의 표정이 납덩이처럼 무거워졌다.
'분명 선거헌 안에 숨겨져 있는 금패 한 조각이 놈의 진정한 목적일 것이다.
그것은 모두가 죽더라도 잃을 수 없는 물건이다.
그것을 잃을 경우…지옥제일검보다 열 배 무서운 마두들이 중원으로 나오게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금패를 잃을 수 없다.'
남천신군은 비장한 각오를 했다. 이 순간 숲속에서 악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흐흐…준비를 많이 해두었군."
어디서 들리는 목소리인지 분간되지 않는 신비스러운 음성이었다.
수십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으나 음성의 주인공은 찾을 수 없었다.
목소리만 들릴 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흐흐… 천후사가 제명당했듯이 이곳 남천관도 오늘 밤으로 무림계에서 제명당한다!"
"흥, 어림없는 소리 마라!"
냉소성과 함께 몸을 날려 취의정 아래로 뛰어 내리는 흑의미청년 하나가 있었다.
사 년 전, 남천신군의 문하생이 되어 지금은 남천옥룡이라 불리는 남천관의 소관주 석진영이었다.
그는 지면을 밟는 찰나 등 뒤에 메고 있던 삼척장검을 끌어내며
사방이 떠나가라 사자후로 외쳐다.
"어느 놈이기에 남천관을 모욕하고 있느냐?
나 남천옥룡이 너의 무공을 시험해 보고 싶으니 어서 나타나라!"
젊은 영웅의 목소리가 중인의 가슴을 시원하게 했다.
훤칠한 용모에 불의를 용납지 않고,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두렵게 여기지 않는 남천옥룡의 신위(神威)는
강호의 젊은이 중 최고였다.
"두렵지 않으면 나타나라!"
남천옥룡이 검을 쳐들고 외칠 때였다.
숲속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섬전같이 날아 나왔다.
"네 놈이 죽음을 자초하니 하는 수 없이 제일 먼저 지옥제일검 아래 죽는 영광을 안겨 주겠다."
흑의인영은 찰나지간 오 장을 가로 질러 남천옥룡 머리 바로 위로 이르렀다.
"어림없다. 뇌음검법(雷音劍法)―!"
남천옥룡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수중의 장검에 공력을 주입시켜 무수한 동그라미를 만들어냈다.
우르르― 릉―!
검망과 함께 뇌성(雷聲)이 일어났다.
뇌정삼절기(雷霆三絶技) 중 하나라 불리고 있는 뇌음검법의 위력은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지옥제일검은 그것을 피하지 못할 근접한 거리에 있었다.
장검이 검기를 일으켜 흑의인영을 수백 토막으로 쪼개버릴 듯 허공을 수놓았다.
"돌아가라!"
흑의인영이 차게 외치며 쌍장을 흔들어 대자 벼락치는 소리와 함께 근처가 검은 기류에 휩싸였다.
콰콰쾅―!
"크으윽―!"
남천옥룡이 장검을 떨어뜨리며 주르륵 열 걸음 물러나 엉덩방아를 찧으며 큰 대자로 드러누웠다.
"이럴 수가…?"
"강호삼영의 으뜸이 단 일장에 당하다니!"
"으음, 협공해야 막을 수 있는 강적이오!"
취의정 위에서 두 사람이 싸우는 것을 구경하던 무맹 고수들은
남천옥룡이 패하자 이를 악물며 속속 몸을 날렸다.
남천옥룡을 일장으로 물리친 흑의인영은 광소성과 함께 숲속으로 날아들었다.
"으하하…!"
그가 숲속으로 스며들자 낭랑한 외침과 함께 금의인영 하나가
중인 틈에서 섬전같이 폭사되어 숲속으로 날아들었다.
"서랏― 악적!"
백의검제의 진전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금의검선자 이약란이
답허능공(踏虛凌空) 신법으로 흑의인영을 뒤쫓아가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모습은 곧 취의정 멀리 사라져 버렸다.
너무나도 빠른 신법은 무림맹의 여타 고수들조차 흉내낼 수 없는 경이적인 경신술이었다.
"이 낭자가 단신으로 쫓아간다는 것은 위험하오."
남천신군이 발을 크게 구르다가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듣거라―!"
그의 사자후가 근처에 메아리쳤다.
"천라지망(天羅地網)을 쳐 남천관 안으로 들어오는 어떤 자이건 감히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라!"
남천신군이 크게 소리치자 사위(四圍)에서 호응하는 소리가 들렸다.
"와―!"
"기관(機關)과 기문진을 발동하라시는 관주의 명이시다."
"남천관의 영토 안으로 들어온 지옥궁 무리는 하나도 살아 나갈 수 없다!"
남천관 고수들이 용감무쌍히 외치는 소리가 지축을 흔들자
남천신군의 입가에 희미하게나마 웃음이 만들어졌다.
'목숨을 걸고 싸운다면 지옥궁보다 열세일지라도 끝까지 견딜 수도 있다.'
남천신군이 일단 안도의 숨을 내쉴 때였다.
꽝―!
폭발음과 함께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으악―!"
"어이쿠―!"
취의정이 시꺼먼 연기로 뒤덮인 채 불바다로 화했다.
순식간에 서른여섯 무맹 고수들이 고슴도치 같이 되어 우수수 나뒹굴었다.
머리카락은 불에 탔고, 몸은 수백 개의 독침(毒針)으로 관통되었다.
살아남은 사람은 남천신군 단 한 사람뿐이었다.
"이… 이럴 수가! 이게 어… 어인 일인가?"
남천신군이 시체 무더기를 보고 경악할 때 뒤쪽에서 사악한 음성이 들려왔다.
"크훗훗…지옥제일검의 솜씨이다.
지옥만화탄(地獄萬花彈)을 다섯 개나 썼으니 누구도 살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남천신군은 전신을 부르르 떨며 몸을 돌렸다.
방금 전 금의검선자에게 쫓겨 중인의 망막 안을 떠났던 흑의인영과 아주 똑같은 옷차림을 한 자였다.
〈 地獄第一劍(지옥제일검) 〉
복면인의 이마 부근에 다섯 글자가 금빛실로 수놓아져 있었다.
"지… 지옥제일검! 네… 네가 정녕 지옥제일검이란 말이냐?"
남천신군의 모발이 하늘로 삐죽 일어났다.
"흐흐…그래 바로 나다. 내가 천후존자를 죽인 진짜 지옥제일검이다."
"그렇다면…조금 전 떠난 자는 누구냐?"
"그 자는 나의 사제다. 지옥제사검(地獄第四劍)이지. 그 자는 너도 잘 아는 사람이다."
"잘 안다고?"
남천신군의 얼굴이 백짓장같이 희게 변했다.
"독목수라라고 불리고 있지. 그가 바로 지옥제사검이다."
지옥제일검이 천천히 말하며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린 검은 복면을 벗었다.
복면 안에서 나타나는 얼굴은 천하의 미남이라고 찬사를 보내도 아깝지 않을 준수한 얼굴이었다.
오만한 미소를 짓고 있는 준미한 모습이 확연히 드러났다.
"허억…?"
남천신군은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입을 딱 벌렸다.
복면 안에서 나타난 얼굴은 남천신군이 지난 사 년간 조석으로 대했던 수제자
남천옥룡 석진영의 얼굴이었던 것이다.
"네… 네… 네가 지옥제일검이란 말이냐?"
남천신군은 뒤통수에 철퇴를 맞는 기분이 되어
비틀비틀 서너 걸음이나 물러나서야 겨우 신형을 바로잡았다.
"크흐흐…나는 너의 제자이기 이전 지옥제일검이다.
너의 제자가 된 이유는 오늘 단 하루를 위해서였지.
너의 뇌정신공 정도는 절학이라고 불릴 수조차 없는 천박한 수법인데
어찌 내가 너의 전인이 되겠느냐?"
석진영이 비웃음을 흘리다가 손바닥을 슬쩍 내저었다.
"으음…!"
남천신군은 무시무시한 암경이 두 어깨를 짓누른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자신의 몸이 땅속으로 한 자는 빠져들었음을 알게 되었다.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었다.
석진영이 자신의 전인인 줄로만 알고 있던 남천신군이기에 그 놀라움은 더욱 컸다.
"네… 네가 대체 무슨 목적으로…?"
남천신군은 너무도 가공할 공력에 압도되었다.
"흐흐… 너는 쓸 만한 무공이 없는 대신 한 가지 훌륭한 재간을 지녔다.
기관학에 정통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석진영이 손을 천천히 벌렸다.
"남천암(南天岩)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내게 다오.
나는 그것을 얻기 위해 사 년 간 너를 사부로 모셨다."
"열쇠라니?"
"정검수(正劍手)들이 지키고 있는 남천암 내에 고동(古洞) 하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안에 금패 한 조각이 있고, 그것을 만든 기관에 의해 보호되고 있다는 것도 말이다."
남천신군은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으으… 안 된다! 그것만은 안 돼!"
"흐흐…열쇠를 갖지 못하면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지. 어서 열쇠를 내놓아라!"
"설마…네가 칠마전과 관련이 있단 말이냐?"
"흐흐… 그것은 염라대왕에게 물어보면 알 것이다."
석진영이 손을 앞으로 내밀며 재촉했다.
남천신군은 암경을 이기지 못하고 칠공으로 피를 흘렸다.
"어… 어떻게 칠마령(七魔令)이 있는 세 군데를 다 아느냐?
그것이 어디 숨겨져 있는지 어떻게 알았느냐?"
"칠마령 위에는 독특한 향(香)이 발라져 있다.
그것은 마공(魔功)을 익힌 사람만이 맡을 수 있는 냄새이다.
나는 사 년 전 냄새를 따라왔다가 여기 이르러 너의 전인이 되었던 것이다. 이제 알았느냐?"
말이 끝나는 순간 그의 손이 뒤집어졌다.
꽈르르― 릉―!
지옥의 불기둥 같이 뜨거운 기류가 일어나 남천신군의 가슴을 뒤덮었다.
남천신군은 호신강기를 일으켜 막아보려 했으나 속수무책이었다.
석진영이 일으킨 태양수는 남천신군의 호신강기를 파괴하며 그의 앞가슴을 시커멓게 태웠다.
"크어억―!"
남천신군이 쓰러지며 검은 피를 토하자 석진영이 다가가 그의 품안을 뒤졌다.
"이것이군."
석진영의 손에 황금열쇠 하나가 쥐어졌다.
남천신군은 주먹을 불끈 쥐고 저주스럽다는 듯 처절히 외쳤다.
"마… 마의 힘은 유한(有限)하다. 너는… 너는 언제고 쓰러진다!"
"흥, 과연 그럴까?"
"네… 네놈은 선거헌을 뚫을 수 없다. 삼십삼정검수(三十三正劍手)들이라면,
너… 너를 막을 수 있다."
석진영은 비릿한 혈소를 머금었다.
"크흐흐…정검수는 물론 강하다
. 그들은 대무신국(大武神國)의 정예들로 중원의 누구보다도 강하지.
그들 개개인의 무공은 각대문파의 장문인보다 높다.
그들 열다섯이라면 나도 어쩌지 못한다. 하지만 열넷까지라면 나를 막을 수 없다."
"다행이군. 선… 선거헌에 삼십삼 인이 있으니 말이다."
남천신군은 죽어 가면서도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석진영은 그런 그를 내려다보며 아주 잔혹하게 웃었다.
"크흐흐…하지만 그들 중 반이 곧 여기 올 것이다."
"뭐… 뭐라고?"
"내가 가서 그들을 불러올 작정이다.
가장 강한 청삼서생을 잠시 여기로 불러내는 것이다.
그가 여기까지 왔다가 선거헌으로 되돌아 갈 정도의 여유만 있으면 나는 성공할 수 있다."
"으…이 비열한 놈!"
석진영은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카하하…너는 내가 혼자인 줄 아느냐?
남천관 근처에는 이미 나의 자랑스러운 부하들 구십여 명이 와 있단 말이다."
"부… 부하들까지…?"
"하늘을 봐라!"
석진영이 손을 들어 검은 하늘을 가리켰다.
언제부터인가 남천관의 하늘을 낮게 나는 수십 마리의 검은 매가 있었다.
아주 거대한 매는 등에 사람을 태우고 있었다.
"내가 물건을 취하는 순간 나의 부하들이 내려와 이곳을 피로 씻을 것이다
. 하나도 살 수 없는 인간지옥이 벌어지는 것이지."
"천… 천벌을 받을 놈!"
남천신군은 너무도 분한지 피를 뿜어내며 눈을 까뒤집었다.
석진영은 그의 머리통을 박살내려 하다가 나름대로 생각을 굴리며 손을 거두었다.
'청삼서생이 여기 왔을 때 이 늙은 놈이 숨을 약간 부치고 있어야 내가 행동하기 훨씬 편하다.
청삼서생이 태양수 아래 다 죽게 된 이 늙은이를 살리기 위해 땀을 빼야만
남천암 안에서 두 번째 영부를 꺼낼 수 있으리라.'
석진영은 사악한 웃음을 흘리다가 선거헌 쪽으로 몸을 날렸다.
첫댓글 이런 반전이~~
감사합니다~~~~^~
ㅈㄷㄳ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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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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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독했습니다~~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즐독요
즐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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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무서운적은 항상 가장 가까운곳에 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