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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는 정보의 비대칭성에 의해, 그 정보가 가장 알려지지 않고,
작은 범위에서 통용될 때,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다.
반대로, 모든 사람이 통용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과 같은 수준의 정보가 되면
–이전에는 강력한 힘을 가진 정보라고 할지라도 – 별로 이용가치가 없어지게 된다.
쉽게 생각해보면, 흔히 대학에서 배운 학문을 써 먹을때가 없다고 하는 이유는 이와 같은 것인데,
이미 시장을 지나, 늦게 반응하는 학문의 영역까지 들어온 정보는 그 자체로 유명세를 탔을 것이고,
그 원칙과 정보를 이용하여 이익을 본 사람이 이미 손을 털고 나간 상태일 테니,
그 자체로 학문적 가치는 있겠으나, 재무적 가치는 크게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관점을 놓고 지금의 세상을 바라보자.
며칠 전에 커피를 하루에 5-6잔 마시면 몸에 아주 좋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럼 이 기사를 제공한 기관은 어디이겠는가? 식품산업연구원이다.
그럼 서울 아파트 가격이 계속 상승할 것이고, 아직 주택이 부족하다는 기사는?
한국건설협회 산하의 연구원에서 제공한 조사를 기반으로 작성된 기사일 가능성이 아주 높을 것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각종 수치와 기사는 그 자체로 목적성을 띈다고 할 수 있을텐데, 결국,
사람들은 수치와 통계에 의해 아주 쉽게 진실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너머의 현실을 본인이 인지할 수 있는 것이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며,
이런 작업을 통해 나의 목적성과 부를 지킬수 있는 기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떻게 세상을 바라봐야 그들이 애기하지 않는 그 너머의 진실에 조금이라도 다가갈 수 있을 것인가?
1.법칙은 법칙이 되는 순간 원점이 된다
미국이 12월에는 정말 금리를 올릴 것 같이 액션을 취하고 있다. 그럼 어떤 현상이 일어나야 하는가?
우리가 경제학원론에서 배운 이론에 근거한다면, 이런 시기가 오면,
당연히 금리인상을 걱정하는 해외자본의 유출이 일어나야 하고, 한국을 포함한 개도국의 금융시장은 흔들려야 하며,
달러는 강해지고, 개도국 환율은 떨어져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큰 변화가 없다.
다른 경제학 법칙을 봐도 그러하다.
예전에는 유가가 내리면, 원자재 공급가가 줄어드니, 아주 경제에는 좋은 현상이 될 것이라 배웠다.
또한 물가가 안정이 되면 좋은 것이라 배웠다.
그런데, 지금은 슬그머니 말이 바뀌지 않는가? 유가가 낮아지니 우리 화학 수출품 수출이 안좋아지고,
미국의 경기가 좋고, 물가가 낮게 형성이 되면, 수입이 늘어나서,
개도국 경제에는 좋은 영향을 미쳐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럼 또 이건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결국, 학자들은, 분석가들은 항상 결론을 들고서 왜 그런가 원인을 찾아 분석하는,
계속적으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현상을 반복하는데,
이런 문제의 가장 큰 원칙이자 해결방법에 대해서 나는 답은 전쟁사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정의하면 <누구나 아는 전략은 더 이상 우수한 전략이 아니다> 라는 말을 상기하자.
누군가, 한 지략가에 의해 A지점에서는 이렇게 전략을 써서 승리를 했다.
그러면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대치를 한다면
동일하게 A지점에서는 이런 전략을 쓴다고 승리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인 가? 대체로 힘들 것이다.
한 사람이 쓴 대승적이고 대단한 전략은 학습이 되었을 것이고,
그럼 후세에는 그 전략을 또 뒤엎는 전략이 나온다는 것이다.
한니발이 로마를 공격할 때 알프스 산맥을 넘어 코끼리 부대를 출동 시켰을 때,
이전까지 한번도 보지 못한 전략이었기 때문에 로마군은 맥없이 유린당했지만,
결국 한니발을 굴복시킨 스피키오 아프리카누스의 전략은 그가 즐겨쓰던 전략을 역이용한 전략이었으며,
그의 실패 또한 코끼리 부대에서부터 나온다.
경제학 이론이나 책에서 말하는 사상과 원칙은 그 자체로 충분히 학습할 가치가 있고, 알아야 하는 것이나,
이를 기반으로 꼬아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져야 하지,
단순히 그 법칙에 의해 앞으로 공식적으로 이렇게 될 것이니,
내 투자는 이런 방향으로 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굉장히 무모한 짓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은 변화하고, 상황은 언제나 변수에 의해 꼬이기 때문에,
내가 읽고 배운 그 공식대로 세상의 일이 돌아갈 것이라는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어떤 변수에도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을 키워야 할 것이다.
이런 사고/ 행동의 유연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내 결정과 투자에 조급함이 없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상황을 만들려면, 기다릴 수 있는,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변수에 대처가능한 수준으로 보수적인 투자를 설계했을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조급함에 무리하게 투자를 설계해서 지금 내 월급을 거의 대출금 상환에 넣고 있는 무리수를 둔 사람이
금리인상에 어떻게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을까?
재테크의 어떤 고수가 와도 첫단추가 잘못 끼워진 설계도를 풀수는 없을것이다.
언제나 지지않는 투자는 내가 감당하고 기다릴 수 있는 구조에서 나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며,
교과서적인 발상은 배제해야 할 것이다.
2.사람들의 <망각>에 투자하라
프랑스의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현 세대의 새로움은 다음 세대의 전통이 된다>
사람들은 아니라고 애기하지만, 우리가 전통이라 생각하는 그런 것들은 알고 보면 오래 전의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한식 중에 한식이라 생각하는 배추김치도, 알고보면, 100년이 되지 않았다고 하지 않는가?
다들 주식이 안 오른다 안오른다 애기하지만, 불과 10년전에는 1000포인트선에 있던 주가가
지금은 항상 1800-2000선을 유지하고 있지 않는가?
인지를 하던 하지 못하던 , 세상은 조금씩 계속 변화하는데, 사람들은 예전의 것들을 망각한다.
그래서 성공하는 투자가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항상 경제 라디오를 들어보면, 현 시점에 대해서 비판하고, 또 예상하고 토론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데,
TV에서 라디오에서 지금 가장 나쁘다고 하는 것을 투자하라.
경제라는 것은 돌고 도는 것이다.
활황도 불황도 한 사이클이고, 망하는 것이 아니라면 불황 뒤에 활황이 오고, 활황 뒤에 불황이 오는 법…….
불황은 나쁘고, 활황이 좋은 것이 아니라, 활황은 좋고, 불황은 더욱 좋은 것이다.
올해 상반기를 생각해보면, 브라질 채권에 투자했다 날렸다는 사람이 엄청 많았는데,
2년전에는 동일하게 베트남 펀드에 투자했다가 실패했다는 사람이 그 보다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
베트남 정부의 비즈니스프렌들리 정책의 효과에 힘입어 베트남 펀드는 룰루랄라하고 있다.
지금 다들 사지말라, 난리다 라고 애기하는 브라질 펀드/채권을 사서 3-4년 들고 있겠다고 생각해보면 어떻겠는가?
투자라는 것은 그렇게 내가 주도적으로 결정하고 움직일 수 있는 범위내에서 감당할 수 있고, 버틸 수 있다면,
결국 큰 수익이 되는 법이다.
내가 움직이고 싶을 때 움직일 수 있고, 아니다 싶을 때 버틸 수 있는,
즉 때를 기다릴 수 있는 방법으로 시스템을 짜놓으면, 사람들이 바로 그 타이밍을 <망각>할 때
나는 움직일 수 있음으로 더욱 큰 수익을 낼 수 있고,
이런 경험들이 하나 둘 쌓여 당신의 투자가로서의 경험이 되어갈 것이다.
이런 면에서는 청개구리식의 투자를 해야 보다 성공할 수 있다.
3.이면을 보라
어제, 오늘 인터넷 뉴스를 보면, 서울 – 세종 간 고속도로가 확정되었다는 뉴스가 큰 이슈가 되었다.
그 뉴스를 보면, 안성이 가장 수혜를 받을 것이라는 둥, 어디로 어떻게 길이 날것이다 라는 식의 뉴스가
계속 나오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되는데,
하나의 사실로 어디까지 유추할 수 있는가가 투자 성공 시나리오의 재료가 됨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아직 고속도로가 난다는 계획만 있을뿐 어디 JC가 생기고, 어떤 연결 포인트가 난다는 것도 없는데,
그럼 안성에 가서 땅을 사는 것이 좋은 투자 방법이겠는가?
아니면, 광주/이천쪽의 아파트를 사는 것이, 아니면 광교 2지구 아파트를 사는 것이 정말 성공하는 투자방법일까?
예를 하나 더 들어서 이천에서 분당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생긴다는 뉴스를 보고,
야 그럼 이천에 뭘 사야겠다라는 생각을 한다면 그건 올바른 판단인가?
결론은 목적성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내가 이천에 있는 사람이라면, 도로가 빵 뚫려서 접근성이 좋아지면, 같은 돈을 내고 영화를 본다고 하면
아무래도 깔끔한 분당쪽에서 보려고 할까? 아니면 이천 옛도시에서 보려고 할까?
당연히 분당으로 나오려 할 것이다. 그럼 상가를 사려한다면, 분당이 낫지, 이천이 낫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아파트라면 어떻게 되겠는가? 반대로 비싼 분당보다야 길이 좋아졌으니, 이천쪽에 주택수요는 몰릴 것이다.
그럼 복선화 전철이 연결되면? 정부의 구상은 어떨까? 이미 개발이 많이 진행된 서현이나 정자, 판교에
또 전철을 연결해서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올바른 선택인가? 당연히 아닐것이다.
그럼 어딜까? 제일 개발이 덜 된 역 중 하나인 이매역으로 연결하자. 그럼 이매쪽 라인과 야탑역사이에
연결 포인트도 생길것이고 개발이 확장 될것이다 라는 상식적인 선에서의 가정이 가능할 것이다.
앞의 애기로 돌아가면, 서울 – 세종의 고속도로가 뚫린다면 어떤 가정이 가능하겠는가? 확정선을 보라.
동쪽으로 왜 나가겠는가? 결국, 기존의 경부축에서 이어지는 개발 축을 제외하고,
구리시에서 분당 동쪽 끝, 안성으로 떨어지는 축을 개발하겠다는 정부의 의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JC는 어디에 생길까? 밑도 끝도 없이 생기지는 않으니, 기존 면/읍 단위의 연결 포인트를 만들 것이고,
그 연결점, 즉 지금 존재하고 있는 읍 단위 도심 축으로 멀지 않으면서 도로가 만나는 토지 정도라면
나중에 충분히 물류창고 / 작은 규모 단위 공장으로 쓸 수 있는 용도가 많을 것이라는 가정이 가능할 것이니,
이런 개발이 가능한 토지를 찾자 하는 결론을 도달 할 수 있을 것이다.
투자라는 것은 그렇게 어렵거나, 엄청난 머리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하게 사실을 대입하고, 상상력을 덧입혀 나의 가설을 세운다음에 남들이 움직이지 않을 때
열심히 발품을 팔면서 내 가설을 입증하고 확신이 들 때,
내가 준비한 자금으로 감당할 수 있을만큼 투입하여 버티면서
그 가설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우리는 <투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정보는 전파되고 유통된다.
다만, 그것을 조금 꼬아서, 튀틀어서 바라보며, 내가 내 것으로 온전히 소화하고 가공하여, 만들어 낼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투자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투자가로 살 수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가 결정이 된다.
성공하는 투자에 대단한 이론이나 공식, 방법이나 왕도가 있다는 착각은 버려라.
열심히 움직이고,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나만의 공식을 만들어, 이를 입증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샌가 당신은 남들이 말하는
부자가 되어있을 것이다.
<정중동(靜中動) 님이 쓴글 http://cafe.daum.net/10in10/sA3/54756 >
좋은글이긴 한데...
많은 시간을 인문학적가치와 정의라는 공동체가치를 논하며 살고있는 야권지지자들과
자신들이 배운 인문학적 지식을 오로지 개인의 경제적 목표달성과 안락을위해
인문학의 존재이유인 이타정신을 제거하고 유용한 기계적 수단으로만 이용하는 새누리지지자들
이들은 우리가하는 말을 못알아들어서 ,또는 동감이 자지않아서
새누리 편에 서는것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보다 훨씬 많이알고 지혜로울수도 있다.
이들이 가장 인간의근본적인문제를 외면하는 이유는
그것이 아주 불편하기 때문이다.
--무기수 진단--
※ 회원간에 의견이 다르다고 상대를 욕하고 비난하거나 알바몰이 하지 말아주세요
※ 회원 상호간에 품격있는 예의를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제20대 국회의원총선거 당선자 명단. 정책 공약 보기+ 평가하기
첫댓글 양심은 우리를 이타적인 사람으로 이끌고, 사소하든 중대하든 자각적인 행동을 하도록 만든다.(중략)
양심은 스스로의 목숨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 양심과 탁월한 도덕적 용기를 겸비하면, 그들이 곧
마더 테레사,마하트마 간디,넬슨 만델라,아웅산 수치다.
참된 양심은 세상에 크고 작은 변화들을 가져온다. 감정적인 유대에
근거한 양심은 평화를 가르치고 증오에 반대하고 어린이들을 구한다. (중략)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문제는 양심을 지니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올리신 글을 보면서 <당신 옆의 소시오패스> 떠올라 발췌했습니다. 꾸 우 벅^^
이치를 이해하는 좋은 글입니다.
사실 누구나 완전히 정의로운 인격체는 없죠
내가 지금 아주 정의로워서 정의를 주장하는게 아니라
정의를 실천하고싶은 양심 때문이겟지요...
@무 기 수 네.^^
실제로 전체 인구의 4%는 양심을 지니고 있지 않다고 작가는 말하더군요.
@설해목 4% 울나라는 어떨까요?
거의 30% 정도는 되지 않을까요? ㅎ
@스트라테고스 4%도 놀랍고 끔찍한데 30%면 ㅠ.ㅠ
행동하는 양심
사람사는 세상
양심이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며 살아가고 싶네요.
@설해목 근데 저리살아도 결국 갈때는 빈손인데...
4%라도 이 4%의 영향력은 엄청 넓고 깊게 작용하는게 문제고
또하나 문제는 양심을 가진사람들이 항상 귀감이되는 삶을 유지하느냐 하는
문제도 있어요
우리도 때로는 상황에 따라서 양심을 저버리는 이중성이 있으니.
저들이 보기엔 내욕심채울거 채우고 종교기부니머니해서 가끔
찝찝한 양심도 세탁하고 , 자신에게 정당성부여하고
머그런거 아닐까요 ?
@무 기 수 네. 공감합니다.
아내, 지인들과 사회현상을 이야기할 때면 농담처럼 적성에 맞으니 저리 사는 것은 아닐까?
라는 표현을 하는데 가랑비에 옷 젖듯이 타성에 익숙해지는 저를 볼 때면 노짱의 동영상을 찾아보는데
<부끄러운줄 알아야지> 제겐 큰 울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