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칼럼] 박완서의 '마른꽃'에서 보는 노년의 사랑
민병식
박완서 작가는 경기도 개풍(현 황해북도 개풍군) 출생으로, 1950년 서울대학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전쟁으로 중퇴하였다.3 1970년 불혹의 나이가 되던 해에 여성동아 여류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그후 문학적으로 대중적으로 뛰어난 작품을 남긴 여류 작가로 작가가 인생 후반기에 주로 쓴 주로 노년인생의 삶과 내면에 관한 작품에 대해 묘사한 작품 중 한 편을 보기로 한다.
사진 네이버
이 작품은 박완석 작가가 남편과 사별 후 64세가 되던 1995년에 쓴 글이다. 주인공인 화자가 대구의 조카 결혼식에 참석한 후 붐비는 주말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던 중 옆자리에 앉은 한 중후한 노년의 남성을 만나 오랜만에 로맨스의 감정을 느낀다. 후에 우연한 인연으로 다시 만나게 두 사람은 실로 오랜만에 가슴 설레는 데이트를 이어가는데 남자는 지방대학 교수직에서 정년 퇴직한, 노년의 멋을 제대로 부릴 줄 아는 홀아비였다. 화자는 아이를 키우며 힘들게 살아온 지난날을 회상하며 마음에 드는 남성과 노년의 여유를 한껏 즐긴다. 그러던 중 두 사람의 관계를 알게 된 큰 딸은 처음에는 어머니의 남자 친구 소식에 거부감을 보이다가 남자의 집안 내막을 알고 나서 적극적으로 재혼을 부추기고 남자 측 며느리 역시 두 사람이 맺어지기를 고대한다. 그러나 이런 자식들의 생각은 온통 현실적인 조건과 이해타산
에서 나온 것임을 작품은 은근히 암시한다.
그러나 화자의 생각은 다르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렵사리 남편과 결혼에 돌입한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지금 자신에게 결핍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에 잠긴다.
‘연애감정은 젊었을 때아 조금도 다르지 않은데 정욕이 비어
있었다. 정서로 충족되는 연애는 겉 멋에 불과했다. 나는 그와 그럴듯한 겉 멋을 부려본데 지나지 않았나 보다. 정욕이 눈을 가리지 않으니까 너무도 빤히 모든 것이 보였다. 아무리 멋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닥칠 늙음의 속성이 그렇게 투명해 보일 수가 없었다. 내복을 갈아 입을 때마다 드러날 기름기 없이 처진 속살과 거기서 떨굴 비듬, 태산 준령을 넘는 것처럼 버겁고 자지러 지는 코 곪, 아무데서나 함부로 터는 담뱃재, 카악 기를 쓰듯이 목을 빼고 끌어올린 진한 가래, 일부러 엉덩이를 들고 뀌는 줄방귀, 제 아무리 거드름을 피워봤댔자 위액 냄새만 나는 트림, 제 입 밖에 모르는 게걸스러운 식욕, 의처증과 건망증이 범벅이 된 끝없는 잔소리, 백살도 넘어 살 것 같은 인색함, 그런 것 들이 너무 빠안히 보였다. 그런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견딘다는 것은 사랑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같이 아이를 만들고 기르는 그 짐승스러운 시간을 같이 한 사이가 안 되니라. 겉멋에 비해 정욕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이제야 알 것도 같다’
- 본문 중에서 -
그녀는 그 추억을 가슴깊이 간직하며 미국에 있는 아들 집에 간다는 핑계로 남자의 청혼을 완곡하게 거절한다. 두 번이나 과부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그녀는 사랑을 거절했을까. 바로 작품의 제목처럼 마른 꽃이기 때문이다. 향기도 나지 않고 싱그러움도 없는 이제는 시들어 버린 꽃으로의 생명을 다한 꽃잎 위에 앉게 할 멋진 호랑나비를 유혹할 그 정욕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로맨스 보다는 현실을 바라보게 되고 유통기한이 끝난 자신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상대에게도 늙음만 남은 추한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사랑의 형태란 처음엔 겉멋의 속성으로부터 반하기 시작해 정욕을 탐닉하는 과정을 겪고 인생의 산전수전을 다 겪으면서 살다가 노년이 되어 볼 꼴, 안 볼꼴 다보고 세상을 떠나는 것, 그 과정을 겪고 난후 다시 또 중년 혹은 노년이 되어 재혼을 했을 경우 가족 등의 주위 사람들과 미치는 영향과 자신이 책임져야할 것에 대해 감당할 수 있는가에 대해 지적함으로써 읽는 사람, 특히 중년, 노년의 사람들에게 사랑에 대한 감정과 이후 이어질 감정을 너무 사실적으로 와 닿게 만든다. 어디 사랑이 마음으로만 되는 것인가. 이 작품은 연애와 사랑은 마음만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 육체와 정신을 모두 결합한 정욕이 있어야 맹목적이 되고 그 맹목적인 것을 바탕으로한 끈이 이어질 때 현실을 이겨낸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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