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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천하제일의 마공(魔功)을 얻다
무저갱에서의 세월은 아주 빠르게 흘러갔다.
낙헌지는 하루가 다르게 고강해질 수 있었다.
그는 칠 일만에 만독마의 일곱 가지 독공을 익혔고,
다음 열흘 간 잔도마(殘刀魔)의 잔도경(殘刀經)에 통달할 수 있었다.
무저갱에서 들어오고 이십 일이 지났다.
낙헌지는 파천음(破天吟)으로 자신을 쓰러뜨리려 했던 취마에게
음공과 보법을 배우게 되었다.
취마의 절기는 다른 삼마의 것과 아주 달랐다
. 이제껏의 무공은 초식의 변화를 위주로 하는 것인데 반해
취마의 무공은 순수하게 내공의 힘에 의지하는 것이었다.
거기서부터 난관이었다.
낙헌지는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취마가 전수해 주는 오묘한 절기를 몸에 터득치 못했다.
"으음…!"
낙헌지는 운공을 하다가 신음 소리를 내며 운공을 중단하곤 했다.
내공의 한계도 한계였고,
파천음에 의해 혈맥이 진탕당한 내상은 쉽게 쾌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쯧쯧… 내상이 아직 낫지 않았군. 내상을 갖고 있는 채 절기를 익힌다는 것은 무리다.
그러니 구결만 외우거라."
취마는 낙헌지가 겉보기와는 달리 중병을 앓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혀를 끌끌 찼다.
낙헌지는 파천음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음공과 소법(簫法),
그리고 보법을 구결로 터득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실질적인 시전은 막강한 공력을 보유할 때로 미루어야 했다.
마침내 오마의 우두머리이자 천하에서 가장 위대한 혈발마 앞으로 가게 되었다.
혈발마는 그제까지 코를 골고 자다가
낙헌지가 다가오자 눈을 뜨고 낙헌지를 향해 혁혁한 안광을 폭사해냈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네게 두 가지를 가르쳐 주겠다."
"……?"
"칠마전을 격파하는 대가로 가르쳐 주는 것임을 언제고 잊어서는 안 된다."
"명심하겠습니다."
혈발마는 두 손을 가슴 앞에 세웠다.
"혈발마공(血髮魔功)과 회선마강(廻旋魔 )을 전수하겠다.
그것을 위해서는 적어도 이백 년의 내공이 필요하다."
"이백 년 내공이오?"
"크흣…내 나이 이미 이 갑자를 넘어섰다.
나름대로 기연을 얻어 사갑자에 달하는 공력을 지니게 되었다.
네 나이로 보아서는 어마어마하나 행운이 따른다면 엄청난 내공을 얻을 수도 잇다.
아마 여기 나가기 전 그 정도는 될 것이니 낙담할 필요는 없다.
낙헌지는 그의 위로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되찾았다.
"고맙습니다."
"우선 구결을 다 외워라. 그 다음 운기를 시작해라.
뇌공문의 시시한 무공을 배울 때와 같이 허술히 생각해서는 하나도 이룰 수 없는 상승의 마공이니
성심성의를 다해 익혀야 한다."
"예."
"그럼 먼저 회선마강을 전수하겠다."
혈발마는 원래 중원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고향은 청해(靑海) 훨씬 너머였고 소국(小國)이지만 왕자(王子)라는 지고한 신분을 지녔다.
그는 부처가 수행을 위해 왕자 지위를 버렸듯 무공의 길을 택해 왕자의 지위를 버렸다.
그는 처음 도가(道家)의 절예를 익혔다.
그러나 그것은 살상을 멀리하는 무공이었기에 혈발마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혈발마는 손을 쓸 경우 상대를 살려 두지 않는 무공이야말로
진정한 무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도가 절기의 수련을 중단하고 극히 악랄한 수법을 지닌 무공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그 결과 얻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회선마강이었다.
회선마강은 부드러운 가운데 막강한 위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유형화된 내공의 힘을 자유자재로 발출해 낼 수 있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
바위를 부수지 않고 바위 뒤에 숨어 있는 적을 죽일 수 있던가,
아니면 나무를 박살내지 않고 나무 속에 있는 벌레를 가루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것이
회선마강의 위력이었다.
그것이 마공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 위력이 실로 대단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회선마강의 기초는 도가의 현문강기(玄門 氣)에 있었다.
낙헌지는 회선마강의 구결을 배운 후에야
혈발마가 뇌공문의 절기를 아주 우습게 여긴 이유를 알게 되었다.
혈발마는 사실 천하에서 도가 무공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다행히도 회선마강은 도가의 한 부류인 뇌공문의 뇌정신공과도 일맥상통하였다.
그랬기에 뇌정신공을 익힌 낙헌지는 훨씬 회선마강을 터득할 수 있었다.
모두 강기류( 氣流)의 무공이기에 낙헌지는 놀랍게도
단 하루만에 회선마강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혈발마를 경악시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으음… 네놈은 실로 기이하구나. 어려운 것일수록 오히려 더 쉽게 익히는 체질이다."
"하하…더 어려운 무공은 없습니까?"
혈발마의 입이 찢어져라 벌어졌다.
"카하하하…네녀석을 칠십 년 이전에 먼저 만날 수 있었다면
정의무성의 대무신공강기도 노부의 무공 아래 제압당했을지도 모르겠구나!"
혈발마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강호인들은 인간이라 여기지 않는 오마에게도 눈물은 있었던 것이다.
'이미 과거의 죄값을 치른 불행한 노인들이다.
이 분들의 마공을 익히게 되면 천하를 안정시켜 이 분들의 은혜에 보답하리라!'
낙헌지는 오마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마공이라는 것이 소문과는 달리 익히는 사람에 따라
마성(魔性)을 조절할 수 있음도 깨닫게 되었다.
낙헌지는 살기 어린 마공을 익히면서도 포악해지는 부작용이 없었다.
그것은 무저갱 안의 오마와 삼밀사가 누구도 알지 못할 신비로운 일이었다.
회선마강에 대한 수련은 끝났다.
마침내 낙헌지는 혈발마의 최고 절학인 동시에
과거 대무신공강기와 함께 천하쌍절기(天下雙絶技)라 불려졌던
혈발마공(血髮魔功)을 전수받게 되었다.
혈발마공 역시 강기 무공이었다.
그 위력은 지극히 강했고, 유순한 데라고는 단 한 곳도 없었다.
그리고 한번 펼쳐지면 거두기 힘든 절학이기도 했다.
"혈발마공은 천축국(天竺國)에서 비전되어 오던 적발공(赤髮功)의 비급에서 유래되었다."
혈발마가 자랑스러운 눈빛을 하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위력은 적발공의 열 배다.
오백 년 전 사도일인(邪道一人)으로 불려졌던 천마(天魔)의 천마경(天魔經)이
혈발마공의 또 다른 연원이기 때문이지."
적발공이나 천마경은 모두 전설 속의 기학(奇學)이었다.
혈발마공이 그 두 가지 마공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은 지금에서야 처음으로 밝혀진 비밀이었다.
"천마경의 주인이신 천마는 대무신국을 세운 정의무성이 얻은 비급의 원주인과 함께
정사이존(正邪二尊)이라 불려졌다."
"아…그렇습니까?"
낙헌지는 아득한 전설시대에서 비롯되는 무공의 원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절기라는 것은 누가 익히느냐에 따라 큰 차이를 나타낸다.
아무리 고강한 무예라도 자질이 부족한 자가 수련하면 하오문의 잡기로 전락하고 만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남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어려운 시련을 견뎌야만 한다."
"어떤 시련입니까?"
혈발마는 치렁치렁 늘어진 핏빛 모발을 어루만지며 내보였다.
"혈발마공을 몸에 지니는 데에는 극한 고통이 따른다.
중요한 것은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운공을 도중에서 중단할 경우 엄청난 부작용이 된다
. 혈발마공의 힘을 체내로 다 모으지 못하면
노부와 같이 머리가 핏빛으로 되고 눈이 새빨개지는 추물이 된다."
"그럼… 본래 머리 빛이 아니었습니까?"
낙헌지는 새삼 그의 머리카락을 다시 보았다.
"크허허…연공을 잘못한 결과이지."
"아…그럼 나도 자칫 하다가는 머리카락이 새빨개질 수 있겠군요?"
"그렇다."
낙헌지는 짐짓 고민스런 표정을 지었다.
"크허허… 그렇게 겁이 나면 익히지 않아도 된다.
천하의 미남이라 불릴 만한 용모를 훼손시킨다는 것은 사실 애석한 일이지."
혈발마가 조롱하자 낙헌지는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제가 우려한 것은 머리가 붉어지기 때문이 아닙니다.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收支父母)라 불감훼손(不敢毁損)이기에
, 머리 모양이 바뀌면 그 도리를 저버리게 될까 두려워서입니다."
그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정했습니다."
"어떻게 할 생각이냐?"
"하하… 당연히 익혀야지요."
"역시 노부의 눈이 정확하군.
네놈은 머리가 붉어질 뿐 아니라 피부가 시뻘개진다 해도 혈발마공을 익힐 것이다."
"어찌 그리 생각하십니까?"
혈발마는 붉은 정광을 발했다.
"흐흐…네가 담담한 체하나 노부는 너의 눈에 철천지 한이 담겨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 그 원한을 풀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고 할 녀석이다
. 너는 겉보기 유순하나 사실은 아주 지독한 놈이라는 것을 노부는 다 알고 있다."
"하하, 과연 예리한 안목이십니다."
낙헌지가 웃자 모두 따라 웃었다.
낙헌지가 들어온 이후 무저갱의 분위기는 아주 화기애애하게 바뀌었다.
낙헌지는 모든 사람의 전인이었고 모든 사람에게 귀여움을 받는 존재였다.
모두들 낙헌지가 강호로 나가 자신들이 다 하지 못한 일을 풀어주리라 생각했고,
낙헌지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사흘 후, 낙헌지는 혈발마공의 구결을 다 외운 후 혈발마와 두 손바닥을 마주 하게 되었다.
콰류류류―!
혈발마의 몸은 핏빛 기류로 뒤덮여 있었다.
그 기류는 상당히 넓은 지역을 휘감아 낙헌지의 몸도 붉은 기류에 잠겨
바깥에서는 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마공을 성취하는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네게 노부가 지니고 있는 혈발마공 중 칠성을 전하겠다."
"노인, 하지만 그렇게 되면…"
혈발마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다그쳤다.
"잠자코 듣거라! 그것을 너의 것으로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네가 고통을 얼마나 참느냐에 달려 있다."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구결을 외우기 시작해라."
낙헌지가 눈을 감고 구결을 외우기 시작하자
혈발마와 그를 휘감고 있던 붉은 기류가 점점 짙어졌다.
그리고 한 줄기 소용돌이로 화해 두 사람 몸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아주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낙헌지의 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에 비한다면 아주 사소한 변화였다.
낙헌지는 두 손바닥이 타는 고통을 느꼈다.
강력한 혈발마공이 몸 안으로 들어오는 찰나 오장육부가 끓는 기름에 튀겨지는 듯 고통스러웠다
. 웬만한 사람이었다면 그 순간 정신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낙헌지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으며 전수되는 혈발마공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낙헌지의 몸 안 삼십육개 대혈 하나 하나가 불에 달구어진 듯 달아올랐고
사지백해가 화끈화끈 거렸다.
순간, 혈발마가 무거운 침음성을 발했다.
"으윽…!"
그는 엄청난 놀라움에 휩싸였다.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이 녀석의 몸 안에 나의 내공보다 강한 반탄력(反彈力)이 잠재돼 있다.
이 반탄력을 막지 못하면 노부는 물론 헌지도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지고 만다.'
혈발마의 얼굴빛이 갑자기 희어졌다.
그리고 붉은 기류가 여지없이 흐트러지며 두 사람의 모습이 중인의 눈에 들어왔다.
혈발마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진 채 혈광을 폭사해 냈다.
"크으윽―!"
그의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신음소리는 심상치 않았다.
취마가 가장 먼저 변괴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앗, 운기행공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
혈발마 큰형님의 내공은 수백 년에 달하는데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취마는 혈발마 다음으로 강한 내공의 소유자였다.
취마는 혈발마의 이마 위로 지렁이같이 굵은 핏줄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놀라 급히 우장을 내밀었다
. 그의 손바닥이 부풀어오르더니 손바닥 가운데에서 희디흰 기류가
혈발마의 등판 배심혈(背心穴)에 가 닿았다.
"으음…!"
혈발마는 그제서야 진정되는지 한결 좋아진 표정이 되었다.
그러나 혈발마의 배심혈에 진기를 주입하기 시작한 취마는
혈발마의 배심혈에서부터 막강한 반탄력을 느끼며 앙연히 놀랐다.
'으음… 이게 어찌된 일인가?'
진기주입이 잘되지 않고 손바닥이 으스러지는 듯했다.
그 막강한 반탄력은 혈발마가 아니라 낙헌지 때문이었다.
낙헌지의 몸에는 아주 엄청난 잠재력이 있었다.
그것은 아주 단단히 뭉쳐 있어 조금도 움직이지 않다가
혈발마의 혈발마공 덕에 활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 움직임은 마공과 극성이 되는 것이었다.
혈발마가 고통을 느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낙헌지의 몸 안에서 나타나는 반탄력은 혈발마의 막강한 내공력을 갖고도
도저히 억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취마의 도움이 조금만 늦었다면 혈발마는 낙헌지의 몸 안에서 일어난 반탄력 아래
전신이 으스러져 죽었으리라.
다행히도 혈발마와 취마가 내공을 합하자
낙헌지의 반탄력도 더 이상 분출되지 못하고 원래 있었던 자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때까지의 과정은 지극한 고통을 수반했다.
낙헌지는 몸이 세 조각으로 나뉘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껴야 했고,
혈발마와 취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으윽…!"
삼인은 생사(生死)에 있어 한 몸이라 할 수 있는 상태였다.
낙헌지와 두 손바닥을 맞대고 있는 혈발마, 그리고 혈발마에게 진원지기를 불어넣고 있는 취마는
진기에 엮여 있는 한 목숨 줄에 걸려 있는 셈이었다.
셋 중 한 사람이 잘못되는 날이면 그 화가
나머지 두 사람에게 전가되어 결국 셋 다 쓰러지게 된다.
그로부터 두 시진 동안 혈발마와 취마는 허탈감을 느낄 때까지
일신의 진원지기를 낙헌지의 몸 안에 불어넣었다.
낙헌지는 망아지경(忘我之境)에 들어가 몸 주위로 붉은 기류를 일으킨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휴우… 이제 됐군."
혈발마가 한숨을 내쉬며 낙헌지와 마주했던 두 손바닥을 내려뜨리며
눈을 스르르 감고 잠에 빠져들었다.
취마는 흐르는 땀을 닦으며 겨우 안도했다.
"후아… 칠십 년 만에 이런 고생은 처음이었다."
잔도마와 만독마, 그리고 백절마는 일의 자초지종을 몰라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 삼밀사도 마찬가지는 매한가지였다.
취마는 몸서리를 치며 낙헌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아이는 몸 안에 신비를 갖고 있네.
저 아이의 몸 안에는 혈발마 형님의 내공을 능가하는 잠재력이 있단 말일세.
바로 그것 때문에 혈발마 형님이 진기 주입을 하다가 그렇게 된 것이지."
만독마는 낙헌지를 응시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취마 형님, 잠재력이라니요?"
"저 아이는 몸 안에 막강한 내공의 힘을 갖고 있네.
그 힘은 우리 다섯 중 둘의 내공을 합한 것보다도 오히려 강한 것이네."
"오, 그럴 수가!"
"그야말로 천하제일의 공력이 아닙니까?"
모두 놀라워하자 취마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아쉬운 것은 그 막강한 힘이 어떤 사람의 도움으로도 풀지 못할 정도로
단단히 뭉쳐 있었다는 것이네.
저 아이 스스로 운기행공해 풀 희망도 없고,
영원히 그렇게 잠재해 있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는 것이 매우 유감이네."
그도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도 낙헌지와 혈발마를 구하기 위해 내공의 칠할 정도를 잃은 후라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낙헌지의 얼굴에 중인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주 준수한 용모, 그리고 매우 선량하게 생긴 기운은 중인에게 호감을 주는 동시에
도저히 풀지 못할 신비감을 던져 주었다.
***
낙헌지는 십주야 내내 운기행공하다가
한순간 코로 붉은 기류를 빨아들이며 감았던 눈을 스르르 떴다.
번― 쩍―!
그의 눈에서 활활 타는 혈광이 흘렀다.
그 눈빛은 금석이라도 녹여 버릴 듯 강했다.
또한 눈빛에 접하는 사람의 내공지기를 흩트리고도 남음이 있는 안광이었다.
모두들 그런 낙헌지를 바라보며 만족해했다.
혈발마, 취마, 잔도마, 백절마와 만독마 등 오대마왕과 과거 대무신국의 삼밀사는 환희에 젖었다.
"허허… 이제 정신이 드느냐?"
혈발마가 웃자 낙헌지가 얼른 그 앞으로 가서 무릎을 꿇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은혜라고 할 것은 없다.
네가 마음에 들어 지니고 있던 것을 아낌없이 전수해 주었을 뿐이다
. 어차피 거래였지 않느냐?"
"저의 오만무도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허허… 너는 오만하지 않았다."
낙헌지는 감격한 마음에 계속 고집을 부렸다.
"아닙니다. 저는 무례한 놈이었습니다."
"허허…!"
혈발마는 전에 비해 백 살은 더 늙어 보였다.
치렁치렁하던 혈발은 어느새인가 반 잿빛으로 물들었고,
전보다 열 배는 깊은 주름살이 얼굴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 보였다.
낙헌지가 괴로워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였다.
"저… 저는 다섯 분을 사부(師父)로 부르고 싶습니다."
낙헌지가 넙죽 절을 올리자 혈발마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녀석, 그렇게 전인이 되기 싫다 할 때는 언제고."
혈발마는 잔잔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헌지야, 노부의 전인이 된다면 좋은 평판을 얻기 힘들다.
그리고 노부에게는 많은 원수가 있어 네가 노부의 전인임을 밝힐 경우 신상에 화를 초래하기 쉽다.
그러니 굳이 사제지간(師弟之間)을 맺을 필요는 없다."
"아… 아닙니다."
"허허, 고집 부릴 일이 아니다
. 너를 위해서 그리고 노부가 사랑하는 네 자신을 위해서 사제지간의 예를 맺지 않겠다."
"이 후 혈발마의 전인임이 밝혀져 화를 입게 되더라도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지금 사부님께 배사지례를 취하겠습니다."
낙헌지는 구 배를 올리며 제자로서의 예를 갖추었다.
"허허허…!"
혈발마의 진물 가득한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나왔다.
그의 가슴은 감동으로 요동쳤다.
낙헌지는 힘있게 외쳤다.
"사부님!"
혈발마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입술을 천천히 떼었다.
"네가 노부를 굳이 사부로 섬기겠다니 뭐라 고맙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노부의 전인이 되었다고 마도(魔道)를 걸으려 하지는 마라."
"예에…?"
"허허…노부는 제자가 마도제일인(魔道第一人)이 되어 노부의 전철을 밟기보다
천하제일협(天下第一俠)이 되어
노부가 과거 중원무림계에 지은 죄를 씻어주기를 오히려 바라고 있다."
혈발마의 눈빛은 득도한 고승처럼 맑았다. 낙헌지는 눈시울을 붉혔다.
"사… 사부님!"
"네가 이 안에서 배운 마공으로 협행해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노부가 말할 것은 그게 전부다."
"삼가 사부님의 뜻을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이 안에서 배운 절기는 모두 상승 절학이다.
그러나 서장의 칠마 또한 만만치 않은 수법을 지니고 있다.
심마지안(心魔之眼)이 그러하고 음마지장(陰魔之掌)이 그러하다.
그들과 지금 싸운다면 이기기보다 패하기 쉽다."
혈발마는 백수십 년을 살아온 노마답게 진중했다.
"하지만 너는 뛰어난 아이이라 이후 무공이 일취월장할 것이다.
청산(靑山)이 있는 한 땔감 걱정이 없다는 말을 기억하고 매사를 서두르지 마라. 알겠느냐?"
"명심하겠습니다."
"허허…그럼 이제 이곳을 나가거라.
무저갱은 피가 펄펄 끓는 젊은 사람이 오래 있을 만한 장소는 아니다."
낙헌지는 막상 헤어진다는 생각을 하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사… 사부님! 제자는 여기 더 머물러 있고 싶습니다."
"아니다. 강호에 나가 천하제일협이 되어 무저갱을 다시 찾거라.
그 날만을 기다리고 있겠다."
"아…!"
"저기 대무신국의 삼밀사를 함께 데리고 나가도록 해라."
그러자 삼밀사의 으뜸인 적지만리객이 외쳤다.
"그럴 것 없소, 무저갱주(無底坑主)!"
그는 뻣뻣하게 누운 상태에서 말을 이었다.
"우리들은 반 시체이니 강호에 나간다면 추하다는 소리를 들을 뿐 아무 일도 할 수 없소.
오히려 헌지의 짐이 될 뿐이오."
"나가고 싶지 않느냐?"
혈발마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적지만리객은 아주 쾌활한 어조로 말했다.
"허허… 헌지가 여기 들어오기 전이라면 나가지 않을 이유가 없겠지만 이제는 다르오.
헌지가 칠마전을 막아줄 것이니 구태여 강호에 나가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을 허비할 필요가 있겠소?
차라리 이 안에 계속 머물며 오대마왕과 우의나 새로 쌓는 것이 나을 듯 하오."
"으허헛…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
역시 정의무성의 부하들은 남다른 데가 있군.
정의무성은 우리 다섯을 칠십 년 간 가두었고,
우리는 정의무성의 충복 셋을 십 년 간 가두었으니 피차일반이고 원한도 없는 셈이다."
혈발마가 호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마침내 오마와 삼밀사 사이의 원한이 결말을 보게 되었다.
'하늘의 뜻이다. 선주(先主) 정의무성이 오마를 죽이지 않고 살려둔 것은 정말 다행이다.
지금 선주를 대신할 정의의 호법(護法)을 만들지 않았는가?'
적지만리객은 하늘 어딘가에서 정의무성의 혼백이 이곳 무저갱 안을 지켜보고 있다고 믿었다.
낙헌지는 정의무성의 혼백이 보낸 선물이리라.
얼마 후, 낙헌지는 두 개의 패(牌)를 품에 지닌 채 여덟 노인에게 하직인사를 하게 되었다.
두 개 중 하나는 마존령(魔尊令)이었고, 다른 하나는 정검령(正劍令)이었다.
마존령은 칠십여 년 전 중원의 마도를 장악한 혈발마에게서 받았고,
정검령은 적지만리객에게 받았다.
여기에 뇌공부와 낙헌지를 지옥제일검으로 오인케 하기 위해
낙헌지의 손에 쥐어주었던 지옥령을 합한다면 네 개의 영부가 낙헌지의 품안에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보검 하나가 낙헌지의 모든 소지품이었다.
백룡(白龍)이라 불리는 전국시대(戰國時代)의 명검(名劍)이 검집이 없이
낙헌지의 허리띠 사이에 찔려 있었다.
백룡검의 전주인은 백의검제였다.
낙헌지에게 어검술을 시전했던 사람이 백의검제라는 것이 백룡신검으로 밝혀진 셈이었다.
낙헌지는 영부와 백룡보검을 지닌 채 오마와 삼밀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하직 인사를 했다.
그리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들어올 때와는 달리 무저갱의 진정한 출입구 안으로 걸어나갔다.
'뜻을 이룬 후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낙헌지는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뒤돌아보지도 않았고,
오마와 삼밀사도 낙헌지의 마음을 약하게 하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회자정리(會者定離)요 거자필반(去者必返)이었다.
낙헌지는 다시 만나기 위한 이별이라 여기며
짐승의 아가리처럼 입을 쩍 벌린 음침한 굴 안으로 몸을 날렸다.
흑의인영이 흐르는가 싶더니 낙헌지의 모습은 무저갱 어디에도 없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즐독
즐감~!
ㅈㄷㄳ
김사합니다~~~~^~
ㅎㅎㅎ
감사합니다
회자정리~~.언제쯤 일까!
즐감하고갑니다.
즐감요!!!!!
출도
잼나유!!!!!!!
즐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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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독했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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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고갑니다~~~
즐독 감사합니다^^^
감사...
잘 보고 갑니다
칼 이 사람을 해칠때는 흉기 이지만 요리에 사용할땐 이기 이지요 ,